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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21화 (121/163)

121화

메이아가 떠난 이후 테오도르는 식음을 전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키는 베나블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인님, 제발 한 술만 더 드십시오.”

“입맛이 없는걸.”

“억지로라도 드셔야 합니다. 곧 주인마님도 만나실 텐데 싱그럽고 잘생긴 모습을 보여 주셔야죠.”

쟁반 위에 따뜻한 수프를 가지고 온 베나블은 메이아가 떠난 이후 매일 수척해지는 테오도르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먹고 싶지 않아.”

정말 입맛도 없고 계속되는 심장 통증에 잠조차도 오지 않는다.

“메이는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을까?”

테오도르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주인님! 잘 지내고 계실 겁니다. 그것보다 지금 주인님 모습을 보시면 주인마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실지 모릅니다.”

“심장이 너무 아파.”

“주인님, 또 상사병이.”

베나블은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마른세수를 했다.

“주인마님께서도 분명 주인님을 그리워하고 계실 겁니다.”

“날 그리워하면 안 돼!”

베나블이 테오도르를 살살 달래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뾰로통하게 답했다.

“베나블, 난 그녀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이다. 그리워한다는 건 꽤 괴로운 감정이다. 물을 계속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갈증이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심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통증이 된다.

결국, 그리워한다는 건 서서히 정신이 말라 가는 아픔을 준다.

손만 닿으면 바사삭 부서질 것 같은.

“나 혼자 그리워하면 돼.”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베나블은 궁금하다는 듯 테오도르를 바라봤다.

“그리운 감정은 너무 많이 아파. 그녀가 날 그리워하다가 나처럼 아파하는 건 너무 싫어. 그러니 나 혼자서만 그리워하고 싶어.”

아프고 힘든 건 나만 느끼면 된다.

나의 여왕은 오로지 웃으며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나만 아프면 돼.”

그리고 아파하는 자신을 보고 메이아는 걱정하며 옆에 있어 주겠지.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을 모른 척하고, 사랑과 동정을 받기 위해 계속 아픈 척, 약한 척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줘야지.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초상화가 끼워진 액자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그때였다.

쾅쾅쾅쾅쾅쾅.

여섯 번의 노크는 급한 손님이란 뜻이다. 황궁에서 사람이라도 왔나?

베나블은 문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켈베인 부집사.”

“푸링 대마법사님께서 오셨습니다. 대공비 마마의 일로 급하게 오셨다 했습니다.”

켈베인의 말이 끝나자 테오도르는 벌떡 일어서 푸링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푸링 님!”

“대공 각하.”

그녀의 소식을 들고 온 푸링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얼굴로 응접실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테오도르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저렇게 화가 난 모습일까? 메이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제발 좋은 소식 왔기를 빌고 또 빌었다.

“마법사 푸링입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에게 인사 올립니다.”

“인사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메이아 소식은?”

베나블은 초조해하는 푸링에게 소파에 앉길 권했다.

그리고 테오도르 또한 맞은편에 앉았다.

푸링은 베나블에게 차가운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

차가운 물 한 잔을 쉬지 않고 벌컥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메이아 공녀님께서는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강한 마법사로서 제가 무척 아끼는 제자입니다.”

테오도르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푸링의 말에 경청했다.

“메이아 공녀님께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쓰시면서까지 마탑에 오셨습니다. 텔레포트 스크롤은 마법사에게 비상 탈출 수단 같은 겁니다. 정말 위험할 때 아니면 쓰지를 않습니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갔다.

“마법사에게 스크롤은 정말 죽기 직전에만 쓰는 마지막 동아줄인데 메이아 공녀님께서 그 동아줄을 쓰셨습니다!”

“주인님!”

테오도르는 허리를 숙이며 손으로 꾹 가슴 아래 심장을 눌렀다. 격렬하게 뛰는 심장은 메이아를 볼 때와 다른 의미로 힘차게 뛰었다. 불쾌함의 시작을 알리는 심장의 울림이었다.

푸링은 메이아 팔의 멍이 든 것까지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테오도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편지를 보낼까 생각했지만 급한 나머지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푸링 님, 매우 잘하신 행동입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꼭 말씀해 주십…… 아니, 아니, 앞으로 이런 일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입이 열릴 때마다 지독하게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사람을 한순간 얼려 버릴 것 같은 그의 목소리에 베나블의 목울대가 울렸다. 메이아를 만나기 전의 테오도르로 돌아온 것 같아 순간 긴장되었다.

“그리고 대공 각하 무엇보다…….”

푸링이 테오도르에게 메이아가 다친 이유는 데미안 때문이라 설명하자 그의 기운이 점점 흉흉하게 풍겨 나왔다. 오로지 순수한 분노만 느껴지는 매서운 기운이 응접실 안을 짓눌렀다.

테오도르는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보다 더 차가워 보이는 검은 눈동자로 베나블을 응시했다.

“베나블.”

“예.”

“플로렌스 대공비를 시해하려는 자들에게 어떤 형벌을 내리지?”

베나블은 상냥한 말투를 걷어 낸 음성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사형입니다.”

“그거 가지곤 부족한데…….”

테오도르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온몸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퍼져 나갔다.

그녀가 보고 싶어 괴롭고 아파하던 심장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쿵쾅거렸다. 감정의 갈무리가 되지 않았다.

메이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 걸 숨길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를 위협한 데미안에 대한 분노 또한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숨길 생각이 없었다.

“지금 당장 마탑으로 가겠어.”

의자에서 일어선 테오도르를 말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은 당분간 헤만에게 맡겨. 지금 당장 떠난다.”

테오도르는 푸링과 함께 마탑에 도착했다.

초조한 마음이 더더욱 깊어지고 마음이 아팠다. 푸링이 해 준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팔에 시퍼렇게 멍이!>

<데미안 그 집착 쓰레기가 공녀님한테!>

<대공 각하, 아주 요절을 내야 합니다!>

푸링이 해 준 말을 계속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기분 나쁜 감정들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그녀를 혼자 카르펜 제국에 보내는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루만에게 오는 편지를 모두 불태워 버렸어야 한다.

가슴 속 깊은 곳이 아팠다. 죄어드는 고통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계속되는 통증에 테오도르는 가슴 부근을 눌렀다.

소파에 앉지도 않은 채 응접실 문 앞에서 메이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왔다 갔다 서성이던 테오도르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괴로웠다.

푸링은 샐리에게 메이아에게 테오도르가 응접실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전해 달라 부탁했다.

샐리는 바로 메이아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르는 고개를 번쩍 들고 문 앞으로 더욱 가까이 갔다.

한편 테오도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메이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섰다.

분명 그는 메이아의 손님으로 방문했다. 그렇다는 건 마탑에 본인이 있다는 걸 알고 왔다는 뜻이다. 내가 여기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왔다고? 그 짧은 시간에?

“스승님께서 플로렌스령까지 가서 모시고 온 건가?”

‘정말 그런 걸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푸링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메이아는 자신의 멍든 팔을 쳐다봤다.

“이걸 보고 스승님이 가만히 있지 못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설마 그를 데리고 오실 줄이야.”

이번 일로 어쩌면 테오도르는 카르펜 제국을 향해 크게 분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파츠래리를 본 그가 질투하며 카르펜 제국을 지도에서 지우고 싶다고 예전에 고백까지 하지 않았는가!

메이아는 마법 이공간에서 푸른색 계열의 드레스를 꺼내 입으며 단장을 마치고, 응접실로 내려갔다.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문을 활짝 열자 바로 그가 앞에 서 있었다. 메이아는 곱게 눈을 휘며 테오도르의 품에 안겼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테오도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은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만큼 지독하게 아파 보이는 눈빛이었다.

메이아는 그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사랑스럽게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 부드러웠다.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도 메이아의 볼을 감쌌다. 따뜻한 손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살이 빠졌다고 베나블이 매일 잔소리입니다.”

“나 없다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그런 건 아니죠?”

테오도르는 몸을 숙였다. 메이아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메이.”

유일하게 나의 애칭을 부를 수 있는 사람.

내 가족. 나의 남편이 될 사람, 그리고 내가 몹시 사랑하는 남자.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품에서 겨우 얼굴이 떨어지자 테오도르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꼭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가슴이 아파졌다.

“보고 싶었습니다.”

메이아는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테오, 정말 많이요.”

테오도르는 숨을 삼키며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안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지만, 꾹 참았다.

테오도르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메이아의 은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미소 지었다.

“……!”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멍하니 보았다.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진정해 나가는 기분.

“만약 메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메이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테오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만두지 마세요, 테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만에 하나 테오도르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메이.”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즉답에 메이아는 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가 자신의 머리를 더 잘 쓰다듬을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메이가 곁에 없어서 솔직히…… 너무 힘들었습니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메이아를 향한 그리움과 갈증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심했다.

그녀와 함께할 수 없었던 시간은 테오도르에게 무척 가혹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는 대로 살았을 테지만 이미 알아 버린 달콤함을 어떻게 놓겠는가!

“저도 테오가 곁에 없어서 너무 외로웠어요.”

“메이…….”

테오도르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메이아의 손을 감싸 쥐었다. 서로 애틋하게 시선을 나누었다.

그때였다.

“허흠, 허흠흐흠흠!”

누군가 일부러 내는 헛기침 소리에 메이아가 그와 몸을 떼고 슬쩍 고개를 비스듬히 내렸다.

“스승님.”

얼굴을 붉힌 푸링은 말했다.

“두 분 다른 사람들 좀 생각해 주십시오.”

“베르샤 기사단장도 오래간만이야.”

고개를 다른 데 돌리고 있었던 베르샤는 일어나 허리 숙이며 인사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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