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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20화 (120/163)

120화

데미안은 그녀를 파츠래리의 약혼녀로 만든 데이빗 공작을 무척 원망했다.

‘나에게서 메이아를 빼앗아 간 사람! 그래, 이게 바로 원망이란 감정이겠지! 이게 화난다는 분노겠지!’

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주체할 수 없다.

데이빗 공작 부부만 없었더라면 그녀는 약혼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하츠벨루아 공작 부부만 없다면 파혼할지도 몰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그녀의 성인식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미성인에서 성인이 된 그녀는 파츠래리와 국혼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초조함이란 감정은 결국 사달을 냈다.

어차피 암살로는 데이빗 공작 부부를 죽일 수 없었다.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 결국 손을 잡지 말아야 하는 것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산사태를 크게 일으켰다. 마차는 바위와 흙에 쓸려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다.

그렇게 메이아의 부모님은 사라졌다. 비록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 조금 껄끄러웠지만 저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는데 살았을 리가 없다.

분명 죽었을 거다. 아니, 죽어야만 한다.

나와 메이아를 떨어뜨린 장본인들이 이 세상에 없어졌다는 생각만으로도 통쾌하고 짜릿했다.

‘메이아와 내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죽이는 게 통쾌한 감정이구나!’

“하하하.”

눈물보다 웃음이 나왔다.

거울을 보니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동안 거울을 보며 남들 표정 따라 하느라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는데 억지로 표정을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남들처럼 웃을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이 웃는 모습을 메이아에게 보여 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녀는 슬퍼하는 것 같으니 참아야겠지!

이젠 루만이란 작자를 하츠벨루아 공작에 올리고, 황태자의 약혼녀를 메릴로 바꾼다면 그녀의 파혼은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데이빗 공작 부부를 죽이길 아주 잘한 것 같다.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또 죽일 것이다.

나의 메이아의 관심을 빼앗아 간, 둥지에 떨어진 새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슬픔에 메이아가 자신에게 기대어 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에 강력한 떨림을 느꼈다.

‘이런 게 사랑이겠지?’

또다시 처음으로 느낀 감정에 기쁠 뿐이다.

역시 데이빗 공작 부부를 죽인 뒤 루만이나 메릴 또한 생각대로 잘 움직여 줬다.

메릴과 약혼하는 파츠래리를 보고 만족감이 올라왔다.

다만, 메이아가 마탑으로 갑자기 떠나 버리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약혼? 하하하. 약혼이라고?”

내가 널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날 벗어나려고 해? 그런데 약혼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하, 그냥 죽여 버리면 되지.”

나와 그녀 사이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죽일 거야.

그래.

그녀가 불쌍하게 봤던 땅에 떨어진 새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그리고 데이빗 공작 부부한테 했던 것처럼.

다 죽이다 보면 메이아는 혼자가 되겠지. 혼자가 된 그녀와 함께 영원히 새장 속에서 살아가면 되겠지. 계속 메이아가 자신을 거부한다면 결국, 상처 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상처 나고 다친 그녀가 철저하게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

“날개 잃은 새라도 새는 새야. 예쁜 새장에 있을 새. 자유롭지 못한 새. 그저 내 품에서 지저귀며 노래할 새. 메이, 언제나 함께하자.”

비스듬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데미안은 자신의 손에 축 늘어진 하녀를 바닥에 쓰레기처럼 던졌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글렌은 그 모습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데미안은 죽은 하녀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치워.”

그는 응접실을 빠져나와 무작정 하츠벨루아 공작저로 향했다.

*

-메이아 하츠벨루아 마법사님이 텔레포트 스크롤로 마탑에 오셨습니다.

마법사가 의뢰를 위해 외부로 나갈 때 마탑에서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의무적으로 지급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사를 탐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마법 구속구가 채워져 마나를 차단당한 마법사는 연약하다.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없다.

그 밖에 전투 도중 마나를 모두 소비한 바람에 위험에 처한 마법사들은 이제껏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여 여러 번 목숨을 구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여 마법사가 마탑으로 오면 위험한 상황에서 탈출했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

마탑의 음성을 듣고 푸링은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쓰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메이아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푸링의 안색이 점점 파리해져 갔다. 메이아 걱정에 눈에 핏발까지 섰다.

은인의 딸이자 아끼는 제자가 위협을 받아서 스크롤을 사용했으니 제정신일 수가 없다.

푸링의 마나가 무서운 기세로 흘러나왔다.

메이아가 있는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는 소파에 앉아 푸링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스승님, 잘 지내셨어요? 흑마법 조사는 잘 되고 계시죠?”

“텔레포트 스크롤을 쓰시다니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쓸 만하니까 쓰게 된 거죠.”

“대체 누구입니까! 공녀님한테 스크롤까지 쓰게 만든 사람은!”

얼어붙은 표정의 푸링은 사뭇 진지했다.

“데미안 황자를 만났어요.”

“그 집착 왕쓰레기를요?”

메이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푸링의 시선이 그녀의 가느다란 팔 위에 생긴 시퍼런 멍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느낀 메이아는 한 손으로 멍이 든 팔을 살짝 가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다.

만에 하나 자신이 마법사가 아니고 평범한 영애였다면 데미안에게 더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만으로도 몸이 저절로 떨렸다.

“그 쓰레기 짓입니까?”

메이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양미간이 잔뜩 찌푸렸다.

괜찮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인 제자를 보니 분노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키웠다.

“쥬안 녀석은 뭐 하고 있었던 겁니까!”

“제가 시킨 심부름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저도……, 하.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스승님. 쉬고 싶습니다. 저 오늘 무척 피곤했습니다. 제가 지내던 방 그대로죠?”

“방은 그대로입니다. 쉬시기 전에 먼저 팔을 치료하셔야죠!”

메이아는 차갑게 웃었다.

“지금 팔의 고통도 욱신거림을 잊기 싫습니다.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되돌려 갚아 주는 것이 하츠벨루아입니다.”

푸링은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쳤다.

“갚아 주긴 뭘 갚아 줍니까!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걸 모르십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는 똥이 더럽다고 피하지 말라 했습니다. 오히려 냄새가 심하고 독한 똥일수록 훌륭한 거름이 된다면서요. 전 피곤하니 이만 가서 쉬겠습니다.”

나직하게 짓씹는 말을 푸링에게 남기고 메이아는 몸을 돌려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마탑에서 지내던 방으로 들어온 메이아는 곧장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시큰거리는 눈가에 힘을 줬다. 심란한 마음과 동시에 화가 났다.

데미안 얼굴에 따귀 한번 올려붙이지 못한 걸 뒤늦게 후회했다.

폭언하는 그의 입을 한 대 때려야 했는데 팔을 잡히기 전에 잽싸게 몸을 피해야 했는데.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지간히도 분한 모양이다.

“후유.”

분노 섞인 한숨이 침대에 스며들었다.

“어떻게 죽이지?”

메이아는 침대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돌아누웠다.

베이지색 천장을 쳐다보면서 계속 욱신거리는 팔을 어루만지다가 눈을 꾹 감았다.

누군가 멍이 들 정도로 자신의 팔을 잡고 놔주지 않은 일은 처음 겪는다.

아프고 기분이 더러웠다. 불쾌함이 온몸을 기어 다녔다. 토할 것 같았다.

어떻게든 더러워진 기분을 잘 갈무리하려고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참을 심호흡하며 데미안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했다.

하지만 죽이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당장 카르펜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고 싶다.

열받아서 하는 행동은 좋지 않은 결과를 주니까.

철저히 기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야 한다.

창밖에 스며드는 햇볕의 따스함을 쳐다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도 속이 풀리지 않은 화기가 더욱 커져만 갔다.

한참을 누워 있던 메이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마법사 샐리입니다.”

걱정 많은 푸링이 샐리에게 가 보라고 시킨 모양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곤 샐리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죠?”

“공녀님을 찾아온 손님이 계십니다.”

손님이라고?

“테오도르 플로렌스 대공 각하께서 공녀님을 뵙길 원하십니다.”

정확히 마탑에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그가 왔다.

*

푸링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메이아는 고귀한 공녀님이기 전에 자신이 아끼는 애제자다. 그런 그녀가 텔레포트 스크롤을 쓸 정도로 목숨을 위협받고 마탑에 도착했다.

손목과 팔꿈치 사이 하얀 피부 위에 푸르고 붉은 멍까지 발견한 시점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푸링은 깃펜을 들고 편지를 썼다.

[메이아 공녀님께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마탑으로 텔레포트 하셨습니다.]

쓰다 보니 또 화가 올라왔다.

마음 같아선 카르펜 제국에 쳐들어가서 황제 목을 움켜쥐고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대며 자식 교육 좀 똑바로 시키라며 소리치고 날뛰고 싶었다.

그럴 생각을 할수록 옛 스승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내가 못 하는 일을 남이 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부탁해라.>

분노를 견딜 수 없었던 푸링은 편지를 집어 던지고 바로 텔레포트 포털로 향했다.

자신이 나서 보았자 티끌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산만큼 도움이 되는 이에게 가면 될 일이다. 그 사람에게 가면 이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 것 같았다.

텔레포트 관리 마법사들은 예를 다해 푸링에게 인사했다.

“위급 상황이다. 마법사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이용하셔야 하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도록 해라.”

“예? 세상에! 알겠습니다. 푸링 대마법사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플로렌스 대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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