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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19화 (119/163)

119화

“저에게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더라도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습니다, 황자님.”

얼마든지 기분 나빠져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긍지 높은 하츠벨루아의 공녀로서 딱 한 가지만 참을 수 없는 한 가지.

“하지만 제 명예를 건드리는 건 매우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제 팔에서 손을 떼 주십시오!”

메이아는 상당히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원하지 않은 사람에게 신체접촉을 당하는 일은 귀족 영애에게는 상당히 불쾌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메이, 나한테 화내는 거야?”

“황자님께서 허락 없이 팔을 만지셨습니다. 제가 불쾌해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메이아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난 내 명예를 건드리는 것보다 못 참는 게 뭔지 알아?”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바로 후회하는 일이야. 메이가 명예를 건드리는 걸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앞으로 후회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메이아는 온몸이 차가운 이슬로 뒤덮인 기분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팔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메이아는 불쾌한 표정을 지우고 차가운 무표정을 지었다.

“데미안 황자님.”

“응, 메이.”

“후회하는 일을 안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데미안은 궁금하단 듯이 메이아를 쳐다봤다.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후회할 일 따위 생기지 않습니다.”

“나는 간절해. 후회하더라도 나는…… 메이를 원해.”

메이아는 데미안의 얼굴을 차갑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원한다고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일 겁니다.”

“내가 새의 날개를 꺾게 하지 말아 줘, 메이.”

데미안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꽉 잡힌 팔에 힘이 가해지자 메이아는 눈썹을 찌푸렸다.

여전히 메이아의 팔을 붙잡은 채 데미안은 사정했다.

“새의 날개를 꺾는 이유가 뭔지 알아, 메이? 새가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서야.”

“팔을 놔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도 내가 날아가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새는 내 말을 못 알아듣잖아.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도 너는 내 곁을 떠나 날아가 버려. 그렇다면 메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새를 말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까?”

데미안이 말하는 새는 메이아를 지칭한 것이다.

“내가 말한 걸 몸에 깊이 새겨 넣으면 되는 거야.”

메이아 팔을 잡고 있는 데미안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날개를 꺾어 버리면 날 수 없잖아. 그러면 내 곁을 떠나지 않겠지.”

강제로 신체접촉을 당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그에게 싸늘히 말했다.

“그 말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후회는 진작부터 했어. 마탑으로 떠나기 전 꺾어 놓아야 했는데 말이야.”

데미안이 입을 열 때마다 지독한 폭언과 집착이 섞여 흘러나왔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메이아는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불 마법이 펼쳐졌다.

“팔에서 손 떼지 않으신다면 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데미안 황자님의 손을 태우겠습니다.”

“이 팔 놓으면 날 떠날 거잖아.”

“황자님 손을 태우기 싫습니다.”

그는 눈썹을 내려트린 채 그녀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며 몇 번을 부탁하다가 마침내 붙들었던 팔을 놓아 주었다.

메이아는 데미안에게 우악스럽게 잡혔던 팔을 매만지며 차갑게 말했다.

“처음부터 데미안 황자님 곁에 머무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떠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데미안에게서 거리를 벌린 메이아는 마법 이공간에서 텔레포트 스크롤 한 장을 꺼냈다.

“메이, 당장 그거 집어넣어.”

“전 황자님하고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했으니까요.”

“거짓말하지 마.”

“삼촌에게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메릴 언니가 황후가 되어야 하는데 제가 황자비가 된다면 삼촌이 좋아할지를.”

“아니야. 공작은 메이 네가 원하면 결혼시켜 주겠다고 말했어! 약혼한 거 거짓말이지? 그렇지? 나랑 결혼하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지!”

데미안은 슬픈 듯 외쳤다.

“메이, 거짓말하면 안 돼. 마탑에 있었던 네가 약혼을 했다고? 그렇게 내가 싫은 거야?”

“전 싫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녀의 말에 데미안은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과 다과 그릇들이 떨어져 와장창 깨지며 흩어졌다.

“그 예쁜 얼굴로 날 자꾸 거부하지 마. 내가 더 미치기 전에.”

“자꾸 후회하실 일만 만드시는군요.”

데미안은 크게 웃었다.

“후회라고? 하하하, 새의 날개를 안 꺾어 놓으면 새가 날아 도망칠 텐데? 그러면 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도망치는 새의 날개를 꺾어 놓을걸, 하고 말이야.”

“분명히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는 걸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못 가, 메이!”

싸늘하게 데미안을 응시하던 메이아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세로로 찢었다.

이걸 찢으면 마탑으로 가게 되지만 상관없다. 여기 있는 것보다는 안전하니.

그녀가 사라지자 데미안은 괴성을 질렀다.

와장창.

쨍그랑.

쾅!

“아악!”

텔레포트 하던 메이아를 잡을 수 없었던 데미안은 물건을 부스며 소리쳤다.

“젠장! 팔을 놔 주는 게 아닌데! 꼭 붙잡고 있어야 했는데!”

물건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응접실에 한 하녀가 들어왔다.

초토화된 응접실을 보며 하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그렇게 싫은 거야, 메이? 약혼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날 왜 거부하는 건데!”

“데미안 황자님, 꺅!”

그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다가온 하녀에게 데미안은 손을 뻗어 목을 움켜쥐고 짓눌렀다. 갑자기 목조름을 당한 하녀는 공포에 숨을 꺽꺽 넘겼다.

“내가 우스워?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흐읍.”

“말해. 내가 우스우냐고.”

“아, 끅. 닙니다……, 황자님. 제발 손 좀.”

하녀는 겁에 질린 눈동자로 계속 헐떡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 살. 끅…… 려 주세요.”

“꺾어 버릴 거야. 그래, 꺾어 버릴 거야. 꺾으면 날아가지 못해. 날 떠나지 못해!”

데미안은 공허한 눈빛을 한 채 그대로 하녀의 목을 비틀어 꺾었다.

“이렇게 꺾으면 될 일이야.”

발버둥 치던 하녀는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데미안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람이 느끼는 희로애락이란 걸 공감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똑같아 보였다. 그는 그저 목소리의 떨림과 높낮이 울음 섞인 소리로 상대방의 기분을 읽어 낼 뿐이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을 연습하지만 왜 웃어야 하는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기쁨을 알고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 번은 시녀에게 슬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슬픈 게 뭐야?>

<황자님께서 아끼는 망아지가 죽으면 눈물이 나오게 될 거예요. 그러면 그게 슬픔이라는 감정이에요.>

<그래?>

데미안은 곧장 자신이 아끼는 망아지를 죽였다.

<흠, 이상하다? 망아지가 죽어도 눈물이 안 나오는데? 다른 방법으로 죽여야 했나?>

그 모습을 본 시녀는 주저앉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망아지를 죽이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잖아!>

생명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존재들을 불쌍하게 봐야 된다는 말에 데미안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다 느끼는 감정들은 왜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왜 예쁘다는 거지?’

어떤 사람은 여인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또 누구는 꽃을 보면 예쁘다고 한다. 보석을 보고 예쁘다는 사람도 많았다.

생김새가 전혀 다른데 무엇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걸까?

그러는 와중, 황궁에 놀러 온 메이아를 처음 보았다.

<하츠벨루아가의 메이아입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쳐다보는 메이아는 자신에게 무척 신기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이었다.

그 뒤에도 황궁에 놀러 온 메이아와 함께할수록 데미안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예쁘고 귀여운 게 뭔지 깨달았다.

‘예쁘고 귀여운 건 심장이 말랑해진다는 거구나!’

그리고 심장이 말랑해지는 증상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란 걸 깨달았다.

그 순간은 데미안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김새가 전혀 다른 보석과 꽃,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데미안에게 있어 메이아는 꽃이 되었다.

메이아를 알게 된 순간부터 말랑해진 가슴은 시시때때로 딱딱하게 굳을 때가 있었다.

<데미안 황자님, 어떡해요. 불쌍한 새……. 둥지에서 떨어졌나 봐요.>

메이아가 자기 이외 다른 걸 신경 쓸 때면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랑해진 심장을 사정없이 때리며 고통을 줬다.

그깟 죽어 가는 새가 뭐라고 너의 시선을 빼앗아 가지?

<메이! 어차피 죽을 새야. 그런 새 따위 신경을 쓰지 말고 나만 봐!>

<살릴 수 있을 거예요!>

열 받은 나머지 그 새를 밟아 죽였다. 그때의 메이아의 표정은 평소의 얼굴과 달랐다.

평소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주지 않았다.

신경 쓰게 만든 걸 죽여 줬는데 왜 나한테 웃어 주지 않는 거지?

화가 났다. 메이아의 눈길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너무 싫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데이빗 공작에게도 여러 번 그녀와의 결혼을 언급했다. 그는 생각해 보겠다만 말하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날 배신했다. 메이아와 파츠래리가 약혼을 올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체 왜?’

데이빗 공작은 철저하게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

분명 메이아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생각해 본다며 뒤에서 파츠래리와 메이아의 약혼을 추진한 것이다.

‘만약에’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차지한다.

만약에 내가 황태자였다면.

만약에 후궁 소생이 아니었다면.

만약에 파츠래리가 죽었더라면…….

처음으로 슬픈 감정을 깨달았다.

‘슬프다는 건 가질 수 없는 거구나.’

아니.

‘메이아를 가질 수 없어 슬프구나.’

파츠래리의 약혼녀가 된 그녀가 파혼하지 않는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무척 고통스러웠다.

‘고통이란 건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깨달아서 그런 거구나.’

아니.

‘메이아를 가질 수 없으니까 내가 고통스러운 거구나.’

‘메이아가 파츠래리의 약혼녀가 되어 내가 슬픈 거구나.’

그의 모든 감정은 메이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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