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9화 (109/163)

109화

영애들의 인사를 쉬지 않고 받은 메이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이만 드레스를 갈아입으러 가야겠습니다.”

간다는 말을 들은 영애들은 티 나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조만간 티 파티를 한번 열 예정입니다. 그때 못다 한 이야기 나누죠.”

“공녀님, 꼭 초대 주셔야 해요!”

“저도 초대장 주세요!”

메이아는 조잘거리는 영애들을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모두 초대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새 다가온 유디와 아그니타는 메이아에게 끈덕지게 붙어 있으려고 하는 영애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다들 공녀님에게서 떨어져 주시길 바랍니다.”

그 순간이었다. 떼어 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손쉽게 메이아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메이.”

테오도르였다.

“테오.”

테오도르가 메이아에게 가기 위해 걸음을 뗄수록 끈덕지게 붙어 있던 영애들은 한둘씩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빨리 못 와서 죄송합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퇴장했다.

레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메이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귀족다우신 분이세요.”

“좀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저런 분이 사교계의 꽃이죠. 누구와는 다르게.”

“쉿!”

“아차차.”

“오필리아 황녀님 귀에 들어가면 아시잖아요!”

“솔직히 그분이 우겨서 사교계의 꽃이지. 사실 사교계의 꽃은 메이아 공녀님 정도는 돼야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뭘요?”

“황제 폐하께선 원래 대공 각하와 오필리아 황녀님을 결혼시키시려고 하셨다네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필리아 황녀는 시리우스 제국의 시리우스 3세의 여동생이다.

황녀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다.

스스로 사교계의 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건 ‘우겨서’ 된 사교계의 꽃이다.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메이아 공녀님께서 대공비가 돼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오필리아가 대공비가 된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싫은 현실이다.

*

“매우 아름답습니다, 메이.”

약혼식 드레스를 입은 메이아는 활짝 웃었다.

아름다운 장미꽃 패턴의 자수가 수놓은 드레스는 무척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샹들리에 조명 아래 드레스를 입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메이아는 마치 귀여운 요정 같았다.

테오도르는 그대로 메이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정이 춤추는 것 같습니다.”

메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요정이요?”

그냥 드레스 입고 한 바퀴 제자리 돈 것뿐인데?

테오도르도 메이아를 따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말했다.

“요정이 꽃잎을 들고 살랑살랑,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테오도르의 흉내에 메이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드레스는 꽃잎이고요? 장미꽃이 자수로 되어 있으니 꽃잎처럼 보일 수 있겠네요.”

심장이 쿵쿵 뛴다. 그녀가 꽃같이 활짝 웃는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심장에 꽃이 핀다.

매일 그녀를 웃게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더 웃게 해 줄 수 있을까?

테오도르에게 다가간 메이아는 그의 목을 감싸며 속살거렸다.

“테오,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녀의 고백에 테오도르의 동공이 커지고, 입가가 시원하게 벌어졌다.

점점 밝아진 그의 눈빛이 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메이, 오늘 제 생일 선물 중 최고입니다.”

손끝이라도 그녀에게 닿기를. 그녀의 미소를 보는 걸 허락해 주기를.

그녀의 마음이 나와 같기를. 신에게 올리는 혼자만의 기도는 언제나 그녀 중심이다.

그녀가 건강하길. 아프지 않길 바라며 항상 행복하고 밝게 웃기를. 그리고 날 사랑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정말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다.

심장이 멈출지라도…….

그리고 드디어 닿았다. 서로의 마음이.

“그거 아십니까?”

“네?”

“닿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함이라는 걸.”

테오도르의 눈가가 점점 빨개지며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과 마음이 닿는다는 건 꿈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지금 이 순간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고 또 원했습니다.”

“울지 마요, 테오.”

그를 울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꼭 사랑한다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막상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 느낌이 달랐다. 어색할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가슴이 벅차도 눈물이 나오는군요.”

메이아는 마법 이공간에서 손수건을 한 장 꺼내 테오도르의 뺨을 꾹꾹 눌러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테오, 사랑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순간 처음 느끼는 성취감은 깜짝 놀랄 정도로 세상에서 제일 달콤했다.

이 좋은 표현을 왜 이제야 했을까? 앞으로라도 자주 표현을 해야겠다.

“테오, 사랑해요.”

“메이!”

그의 검은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계속 저 눈빛을 보고 있다가는 또 홀라당 넘어갈 게 분명하다.

메이아는 처량한 저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테오도르가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슬퍼 보이는 블랙 레트리버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 기분.

귓가에 맴도는 ‘낑낑’거리는 애처로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말려들면 안 되는데.

“저도 사랑합니다.”

테오도르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메이는 왜 이렇게 사랑스럽습니까?”

테오도르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살거렸다.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자 메이아는 움찔했다.

“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심장이 하나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 하나만 담기 위해서라고요. 어릴 때는 몰랐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니 아버지가 해 주신 말씀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메이아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바람이 왜 시원한지, 햇볕이 왜 뜨거운지, 밤이 왜 어두운지 바다는 왜 물이지만 짠맛이 나는지 궁금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죠. 원래부터 그랬으니까요. 테오는 저한테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에요.”

테오도르는 눈꼬리를 휘며 살랑살랑 눈웃음을 지었다.

“테오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뒤통수와 허리를 감고 번쩍 들어 올렸다. 메이아는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고개를 묻고 비비적거렸다. 흠칫하는 그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이마에 느껴졌다.

메이아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마주친 그의 시선은 굉장히 목이 마른 사람처럼 보였다.

왠지 지퍼를 내린 느낌? 누르면 안 되는 셔츠 단추를 풀어 버린 느낌?

그의 손길이 스쳐 가는 자리엔 열감이 올라왔다.

지금이라도 약혼식이고 뭐고 다 던져 놓고 이대로 세상 끝까지 가고 싶다는 아찔한 감각에 온몸이 들썩거렸다.

당장 그녀를 품에 안고 싶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단단한 욕망에 이성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쾅쾅쾅!

문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밖이 시끄럽네요.”

느른하게 입꼬리를 올린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그녀의 허리를 바짝 당겨 몸을 밀착시켰다.

“빨리 결혼해야 되겠습니다.”

“테오, 제 성인식까지 참아 줘야죠.”

“하아.”

쾅쾅!

“아가씨!”

밖에서 소란스럽게 아그니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 되겠어요!”

콰앙!

아그니타는 베나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곧 약혼식 시작이신데 왜 이렇게 안 나오신…….”

딱 봐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방 안. 딱 붙어 있는 남자와 여자.

시누이보다 더 무섭다는 아그니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에서 불을 뿜어냈다.

메이아는 헛기침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그니타, 곧 나가려고 했어.”

아그니타는 천천히 메이아에게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아까와 다른 모습이 된 메이아의 빨개진 얼굴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아그니타는 부르르 떨리는 분노를 누르며 한 자씩 힘주어 말했다.

“곧 약혼식인데 화장도 다 지워지시고 머리와 옷도 구겨지시고! 자. 제. 좀. 해 주시죠. 대. 공. 각. 하.”

아그니타의 분노 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는 눈꼬리를 휘며 살랑살랑 눈웃음만 쳤다. 그 모습에 더욱 아그니타의 분노가 커졌다.

“아그니타.”

메이아는 아그니타를 불렀다.

“예.”

메이아의 부름에 아그니타는 분노를 싹 지운 얼굴로 고분고분하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어요, 아가씨.”

“머리 장식이 떨어져서 대공님이 장식을 다시 꽂아 주시려다가 잘 안 되어서 내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 것뿐이야.”

“아니, 아가씨 절 부르시지…….”

“아그니타 불러서 장식을 고정하려고 했는데…… 대공님이 하겠다고 해서 나도 부탁드렸어.”

“네에? 시녀들이 하는 일인데…… 왜…….”

“대공님은 나와 관련된 일에는 앞뒤 안 가리고 해 주려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 나에게 뭐든 해 주고 싶어 하는 대공님 마음이 느껴져서 머리 장식을 꽂아도 된다고 허락했을 뿐이야. 아그니타를 부르기 싫어서 안 부른 게 아니고.”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두 손으로 발그레 익은 뺨을 감싸고 입가에 크게 호선을 그렸다.

테오도르 편을 드는 메이아의 말에 아그니타는 괴롭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유디는 정신을 차리라며 팔뚝을 찰싹찰싹 때렸다.

“흑…… 흑, 아가씨.”

유디는 충격에 빠진 아그니타를 뒤로 한 채 능숙한 손길로 메이아의 화장과 머리를 고쳤다.

베나블은 손수건을 꺼내 테오도르의 입가를 닦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후계’, ‘사고’, ‘야호!’ 하는 생각뿐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