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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6화 (106/163)
  • 106화

    “테오.”

    “분명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위험하다고요?”

    “……예.”

    테오도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뜩이나 심장이 말 안 듣는 것도 서러운데 이젠 이성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가도 내심 이성의 유혹에 계속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성이 속삭였다.

    -그녀를 원하잖아. 테오도르 플로렌스, 그냥 덮쳐 버려! 남자답게! 그동안 베나블이 전수한 밤에 늑대 되는 101가지 방법을 활용할 때라고.

    테오도르는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돌렸다.

    “참을 겁니다.”

    자제해야만 한다.

    “오늘 이렇게 데리고 나와 줘서 고마워요, 테오.”

    그녀의 섬섬옥수 같은 손길이 그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부드러운 손길에 테오도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 즐거워요.”

    메이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즐겁다는 감정을 깨달았다.

    즐겁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하고 설렌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자리에서 입술 꼬리를 힘주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웃었다. 그게 웃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와 있으면 진짜 웃음은 심장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메이아는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만지작거렸다. 해사하게 웃으며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쳐다봤다.

    “테오.”

    그는 알까?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과 몸이 가는 대로 맡기고 싶다는 걸.

    “테오, 저는 약혼식 올리고 성인이 되면, 결혼식은 빨리 올리고 싶어요.”

    그의 얼굴에서 손을 뗀 메이아는 마법 이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 손을 뻗어 고급스러운 상자를 꺼냈다.

    “오늘 꼭 주고 싶어졌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사실 그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다.

    얼마 전 드워프 친구 알베르트에게 부탁해서 받은 반지였다.

    메이아는 상자를 열었다.

    “봐도 모르겠어요?”

    “압니다. 아니깐.”

    테오도르는 반지를 보며 자신의 왼쪽 가슴을 눌렀다.

    “테오도르 플로렌스.”

    “네, 메이.”

    메이아는 반지를 꺼내며 말했다.

    “제 남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테오도르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그는 메이아의 손을 잡고 가까이 잡아당겼다. 순간 메이아는 균형을 잃고 그에게 기울어졌다.

    “예, 꼭 남편이 되겠으니, 남편 시켜 주십시오.”

    메이아는 양팔로 그를 감싸 안았다.

    “전 혼자 자라서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아이는 많이 낳을 계획이에요.”

    테오도르는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답했다.

    “예, 열심히 돕겠습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자 심장에서 기분 좋은 연주곡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자신의 심장에서 연주하는 곡과 매우 비슷했다.

    *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대공저에 돌아왔다.

    돌아온 주인과 주인마님을 베나블은 기쁘게 맞이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주인마님.”

    마차에서 먼저 내린 테오도르는 부끄럽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메이아를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베나블은 정확히 보았다.

    그의 왼손에 보이는 처음 보는 선명한 반지를 말이다.

    베나블과 테오도르는 눈을 마주쳤다.

    테오도르는 쑥스럽다는 듯 베나블을 쳐다보며 고개를 빠르게 한 번 끄덕였다.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그것도 테오도르의 탄생석! 평소보다 달콤한 두 분의 분위기!

    애틋한 눈빛! 결혼! 아기! 만세!

    베나블의 머리는 평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마차에서 내린 메이아에게 인사하며 공손히 말했다.

    “방을 옮기셔야 하겠습니다, 주인마님.”

    뜬금없이 방을 옮겨야 한다는 말에 메이아는 베나블을 쳐다봤다.

    “방?”

    “네, 주인마님.”

    갑자기 방을 옮기라는 말에 테오도르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말이야, 베나블?”

    “대공비만 쓰실 수 있는 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제야 테오도르는 베나블의 말의 의도를 이해했다.

    사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방을 썼다. 그래서 따로 대공비 방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아가 대공저에 오자마자 베나블은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대공비 방이 꼭 필요합니다.>

    베나블은 테오도르 옆방에 대공비 방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메이아 취향에 맞춰 인테리어까지 갖췄다.

    <침대는 가장 튼튼한 거로.>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걸로!>

    <침구는 무조건 최고급 실크 천으로 만들 것!>

    베나블의 말이 떠오른 테오도르는 얼굴이 빨갛게 익어 갔다.

    “약혼하시고 결혼도 올리실 테니 미리 대공비 마마의 방을 쓰시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마님께서 손님방에 있는 것이 이상할 수 있습니다.”

    메이아가 대공비 방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얀 접시 위에 물 떠 놓고 밤마다 달을 향해 치성을 드린 베나블이다.

    “플로렌스 가문의 안주인이십니다. 그에 맞는 방을 쓰시는 게 맞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방을 옮기는 겁니까?”

    메이아를 마중 나온 유디는 베나블의 뻔한 속셈을 눈치를 채고 소리쳤다.

    뻔하지 않은가!

    서로 한참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남녀를 붙이기 위한 베나블의 흑심을!

    “아가씨, 결혼식 올리시고 방을 옮기셔도 됩니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에 베나블은 당황했다. 그래도 물러서면 안 된다!

    “옮기셔야 합니다.”

    “결혼 올리고 옮겨도 됩니다, 베나블 집사님.”

    유디와 베나블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의 눈싸움을 지켜보던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속삭였다.

    “구경만이라도 해 보시겠습니까? 메이아만을 위한 방입니다.”

    “구경이요?”

    테오도르가 애원하듯 메이아를 바라봤다.

    측은하게 빛나는 그의 검은 눈동자를 보니 ‘구경 정도 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구경이라도 할까요?”

    아직 방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지만, 어차피 앞으로 자신의 방이 될 테니 구경하고 부족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공비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유디는 안 된다며 뜯어말렸다.

    “방만 구경할게.”

    베나블이 안내해 준 대공비의 방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샹들리에의 불빛은 은은하며 천장의 웅장한 벽화도 보기 좋았다.

    전체적인 색감들과 가구 배치, 커튼까지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메이아의 취향에 맞춘 완벽한 방이었다.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는 말에 베나블과 한나는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대공비 방까지 오니 정말 대공비가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세상 앞일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딱 생각났다.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원래대로라면 성인식을 치른 다음 파츠래리의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플로렌스 대공비가 된다.

    마음에 들어 하는 메이아 모습에 힘입어 베나블은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결혼까지 약속하시는 마당에 방을 옮기지 않으실 이유가 전혀 없으십니다.”

    유디는 이빨을 꽉 깨물며 도끼눈을 뜨고 베나블에게 말했다.

    “결혼식 하고 옮기셔도 됩니다.”

    베나블 또한 지지 않고 답했다.

    “어허! 유디 님, 아가씨라니요! 이젠 대공비 마마이십니다! 호칭을 바로 해 주십시오.”

    생각보다 방어가 심한 유디를 보며 베나블은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유디와 베나블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메이아는 대공비 방을 계속 둘러봤다.

    대공비 방에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청혼도 했다. 이젠 온전히 내 남자다.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닌 가족이 된다는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스스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기쁨이 심장에서 마구 솟아올랐다.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가씨, 결혼식 하고 옮기실 거죠?”

    메이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유디에게 말했다.

    “유모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유디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메이아의 말에 어깨에 힘을 줬다.

    “왜 옮기면 안 되는 거야? 유모.”

    “옆방이 바로 대공 각하의 방입니다.”

    메이아는 유디가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요컨대 남녀 간의 사고를 걱정하는 투였다.

    “전 아가씨를 믿습니다. 믿지만.”

    유디는 테오도르를 살짝 곁눈질하며 말끝을 흐렸다.

    사랑하는 여자가 옆방에 있는데 자제할 남자가 없지 않은가!

    시시콜콜 들어와서 이런 짓, 저런 짓이나 하며 유혹할 게 뻔하다.

    그러다가 합방이라도 한다면?! 아이라도 생기면? 배가 부르게 한 상태로 결혼식을 올리게 할 수 없다!

    “유모가 걱정하는 게 뭔지 모르지 않아.”

    “아가씨.”

    “걱정하지 마.”

    유디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잠시 접었다. 메이아가 걱정하지 말라고, 믿으라고 하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베나블.”

    “예, 주인마님.”

    “방 옮기는 건 약혼식이 끝나고.”

    오늘 당장 방을 옮기고 싶어 애가 달은 베나블이었지만, 메이아가 약혼식 이후 옮긴다는 말에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대며 ‘지금 당장 옮기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약혼식 날 옮기는 게 어딘가! 소기의 목표는 이룬 셈이다.

    “알겠습니다.”

    베나블은 백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를 했다.

    *

    가신 가문들은 당연히 테오도르의 성인식을 축하했다. 전 대공 부부의 안타까움 죽음 이후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의 정신 상태를 걱정했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이해했다.

    그런데 성인식과 동시에 약혼한다는 소식에 가신들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시리우스 제국을 다스리는 시리우스 3세 클라우드 황제 또한 테오도르의 약혼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도대체 약혼할 여자가 누구인지, 어느 집안 영애인지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성인식 겸 약혼식 초대장에 약혼녀 이름과 성이 적혀 있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

    가신들은 이름을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는 그분?”

    “맞습니다! 그분이십니다…….”

    “이럴 수가!”

    “영웅이 우리 대공비가 되어 주시다니!”

    “대공가의 축복입니다.”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대공 각하와 공녀님이 유람선 위에 있는 걸.”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플로렌스 가신 가문들은 메이아가 대공비가 된다는 걸 안 이후 크게 반겼다.

    그들은 절대 안 반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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