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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4화 (104/163)
  • 104화

    로즈는 스트레스도 풀 겸 친한 귀부인들과 티 파티를 열었다. 이날만큼은 파츠래리도 황후도 찾아오지 않았다.

    <일레이나 부인, 지하 경매장이라고 했습니까?>

    <네, 황태후 마마, 각종 희귀한 물건들이 경매에 나옵니다.>

    옆에 있던 샤르포자 부인이 말했다.

    <요번에 지하 경매장에 샤르딕 화가의 작품이 나온답니다!>

    샤르딕 화가의 열렬한 팬인 로즈는 바로 지하 경매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날짜와 시간에 맞춰 황궁에서 나왔다. 로즈는 가면을 쓰고 경매장의 귀빈실로 들어갔다.

    나오는 물건들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입찰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황후와 황태자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대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황태후 마마, 이제 나오려나 봅니다.”

    그리고 무대 가운데가 환하게 빛났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멋지게 등장했다.

    로즈는 그 모습을 보고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재미있구나, 호호.”

    마정석으로 목소리를 키운 사회자는 매혹적인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아주 귀한 물건들이 나옵니다! 첫 번째로는 샤르딕 화가의 작품입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위조품이든, 진품이든 만나기 힘든 유명 작가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혹시 위조품일지 모른다고 의심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요. 진품인 것은 확인했습니다. 만에 하나 위조품일 경우 입찰금액의 100배를 보상하겠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에 사람들은 더 술렁거렸다. 이제부터 나오는 샤르딕 화가의 작품이 진품이든, 위조품이든 이익을 주는 경매 물품이 된 것이다.

    “진품이 확실한가 봐요, 마마.”

    “그런 것 같구나. 꼭 입찰받아야겠구나!”

    로즈가 기다리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얼마가 들더라도 구매할 것을 다짐하며 나오는 그림을 망원경으로 살펴봤다.

    그림을 살펴보던 로즈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변했다.

    “저 그림은!”

    로즈의 행동에 옆에 있던 부인들은 걱정스레 물었다.

    “황태후 마마, 왜 그러십니까?”

    로즈는 다시 망원경을 들고 살펴봤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찰하기 시작했다.

    “30만 골드.”

    “70만 골드.”

    로즈는 그림을 입찰받기 위해 처음부터 큰 금액을 던졌다.

    “200만 골드.”

    경매장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귀빈실에서 200만 골드 불렀습니다. 더는 없으십니까? 5, 4, 3, 2, 1. 샤르딕 화가의 첫 번째 작품 200만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탕탕탕.

    사회자의 경쾌한 망치 소리에 사람들은 높은 금액을 부른 귀빈실 사람에게 갈채를 보냈다.

    로즈는 말했다.

    “만에 하나 위조품이라면 200만 골드의 100배를 받아 낼 거야.”

    “마마, 저 그림은 대체.”

    200만 골드면 시세의 세 배를 주고 산 금액이다.

    “이 그림이 여기에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군.”

    옆에 있던 부인들은 로즈의 화끈한 구매에 “정말 가지고 싶으셨던 작품이었나보다” 하며 웃으며 넘어갔지만 로즈는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 그림은 메이아에게 선물로 줬던 샤르딕 화가의 작품이었다.

    황궁으로 돌아온 로즈는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샤르딕은 감정을 주제로 그리는 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느낀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로즈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샤르딕의 작품을 좋아한다.

    샤르딕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배신당한 원망을 담은 작품이 바로 눈앞의 그림이다. 이리 살펴보아도 저리 살펴보아도 진품이 확실하다. 이 그림은 메이아에게 선물로 줬던 그림이 맞았다.

    “지금 메이는 카르펜 제국에 없는데…… 누가 감히!”

    좋아했기에 그의 작품을 모조리 수집한다. 로즈는 차가운 목소리로 시녀장 가르시안에게 물었다.

    “가르시안, 경매장 측에서 뭐라 이야기하느냐.”

    사실 로즈는 샤르딕 화가의 그림이 왜 경매장에 있는지 너무 예상되어 화가 났다.

    “저, 그게 마마…….”

    가르시안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로즈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그리고 그 화를 꾹 참고 있는지 눈에 보여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그래도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매장 측에 알아봤습니다만 익명이기에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로즈는 그림에서 눈을 떼고 몸을 틀어 가르시안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가르시안, 앞에서 안 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뒤에서 하라 하셨습니다.”

    “가르시안,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사람을 심어 놔. 루만 공작과 메릴 공녀 중심으로.”

    “알겠습니다, 마마.”

    “누가 메이아 물건에 손을 댔는지 알아야겠구나.”

    샤르딕의 ‘원망’.

    멀쩡하게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있어야 할 그림이 익명 경매장에 나왔으니 로즈의 기분이 당연히 좋지 않았다. 메이아에게 선물로 줬던 그림이 왜 익명 경매장에 나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내야 한다.

    자선 경매장에 나왔다면 이해라도 한다. 그럼 물건을 낙찰받아 다시 메이아에게 주면 그만이다.

    메이아 또한 그 사실을 분명 알고 있다. 주로 자신이 선물한 물건을 첫 번째로 자선 경매에 출품한다.

    자선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은 ‘내가 이만큼 좋은 선물 받았습니다’라고 자랑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은 선물의 규모에 부러워하고 선물 준 사람의 재력에 감탄한다.

    당연히 자신이 아끼는 샤르딕 화가의 작품이 자선 경매에 나오는 것은 메이아가 가진 많은 물건 중에서 ‘자랑하고 싶은 물건’이란 뜻이다.

    말로는 자선 경매라고 하지만 실상은 재력을 서로 자랑하는 자리다.

    그래서 자선 경매에 나온다면 이해되지만, 익명 경매장에 나온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로즈는 지금 상황이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만에 하나 메이아가 겪은 일 때문에 자신과 척을 지고 싶어져서 ‘황태후 마마의 선물은 팔아 버리자’라는 생각으로 그랬다고 치자. 하지만 그녀라면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물건을 팔 만큼 돈이 궁한 아이도 아니다.

    적어도 메이아가 자신과 척을 지고 싶다면 받은 선물을 팔지 않는다. 그것도 익명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건 누군가 메이아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녀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에 화가 나기보다는 로즈는 다른 면에서 화가 더 났다.

    “내가 그 경매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을 다른 사람이 사 갔을 거야. 나는 그게 무척 화가 나.”

    로즈는 다른 사람 손에 그 그림이 팔렸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내 나한테 보고하도록.”

    “예, 마마.”

    만에 하나 루만 공작이 돈이 없어서 메이아 물건에 손을 댄 것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파츠래리의 힘이 되어 줄 공작 가문이 어린 공녀의 선물을 팔 만큼 가난해졌다?

    하츠벨루아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 돈이 없을까?

    루만 공작이 한 일이 아니라면 메릴이 한 짓일까?

    하츠벨루아 공녀로서 매달 받는 품위 유지비가 엄청나게 많을 텐데도 또 돈이 필요하다면 그 돈이 필요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황가에 사람이 잘못 들어온다면 그것만큼 큰일은 없다.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로즈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그림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죽은 데이빗과 바이올렛이 그리웠다. 아니, 원망스러웠다.

    *

    이른 아침부터 루만의 잔소리를 들은 메릴은 짜증이 났다.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집에만 있어 다오!>

    토마스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던 메릴은 싫다고 말했고, 결국 부녀간의 말싸움까지 되었다.

    <황태자비가 되니 공부해야 할 것들이 있단다, 메릴.>

    그놈의 공부. 공부. 공부!

    “진짜 짜증 나.”

    메이아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참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 황후가 되고 싶어 하던 메이아가 돌아만 온다면!

    지긋지긋한 황태자비 교육.

    사람들의 눈치.

    사교계의 텃세.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와 결혼하는 거다.

    그러니 메이아가 돌아오기 전까지 얌전히 있기로 다짐한 메릴은 방으로 돌아와 메이아를 좋아하는 시녀들에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시녀들은 메릴의 폭력에 다쳐서 일을 그만둔다.

    그 덕분에 로즈의 명을 받은 가르시안은 사람을 공작저에서 쉽게 일을 그만두는 시녀들 사이로 사람을 쉽게 심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얼마 가지 못해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긴 했지만 곧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었다.

    수시로 메이아 방을 들락날락하는 메릴을 포착했다.

    보고를 받은 가르시안은 바로 이 사실을 로즈에게 알렸다.

    “마마, 메릴 공녀였습니다.”

    로즈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황제에게 찾아가 황태자비를 메릴로 하지 말자 말하고 싶지만 이번에 일어난 추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메릴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곰곰이 생각하던 로즈는 한숨을 쉬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

    테오도르는 침대에 누워 익숙한 천장의 모습을 봤다.

    아름다운 천사들이 그려진 그림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샹들리에가 보였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천장이지만 오늘만큼은 달리 보였다.

    천장에 그려진 아기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청혼 성공 축하해!’ 말하면서 신나게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테오도르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분 좋다.”

    자신에게 있어 청혼은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가!

    <대공 각하! 결혼이란 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응.>

    결혼.

    아내.

    그리고 가족.

    생각만 하더라도 가슴이 너무 떨리고 뭉클해지는 단어.

    그녀와 가족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지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각하, 힘내십시오! 청혼하실 수 있습니다.>

    청혼하기에 앞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약혼서에 인장을 찍었지만 메이아가 싫다면 찢어질 종이일 뿐이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져 갔다.

    <촛불을 활용한 청혼 방법. 하트 모양으로……. 청혼은 진심과 그리고 마음의 정성이 중요하다…….>

    테오도르는 청혼과 관련된 로맨스 책들을 참고했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책 속에 남자 주인공들은 여자 주인공에게 청혼하는 방법이 다양했다.

    그리고 읽었던 책을 토대로 보좌관들과 회의했다.

    선물할 반지 디자인, 청혼 장소, 청혼할 시에 해야 할 대사와 행동……. 모든 계획이 세워졌고, 연습만이 남았다.

    마법 이공간에서 반지를 꺼내고 무릎을 꿇어야 하나?

    아니,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야 하나? 손가락에 언제 반지를 끼우지?

    청혼 대사를 거꾸로 말한다거나 실수하면 어쩌지?

    긴장한 마음과 다르게 몸은 청혼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꾸준히 연습한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청혼할 때 즉흥적으로 ‘감히’라는 말을 했다. 과장된 느낌일까?

    모르겠다. 멋대로 튀어나온 진심이다.

    메이아는 청혼을 받아 주었다.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낄 때 손이 덜덜 떨렸다.

    못난 모습을 보여 줬는데도 불구하고 메이아는 크게 기뻐했다.

    <반지가 매우 예뻐요.>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며 눈물이 났다.

    반지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그녀의 미소는 심장을 아프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달콤한 만족감을 주었다.

    “하아.”

    지금쯤 그녀는 뭘 하고 있을까? 나처럼 침대에 누웠을까?

    천장을 바라보던 테오도르는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며 옆으로 누웠다.

    메이아를 생각하며 베개를 껴안았다.

    눈을 감고 사랑스럽게 안겨 오는 메이아를 떠올리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살짝 붉어진 그녀의 뺨의 감촉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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