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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3화 (103/163)

103화

데미안은 파츠래리와 메릴의 국혼 소식에 크게 웃었다.

“메이아 공녀를 다시 잡는다면서 메릴 공녀와 국혼을 올려?”

우스웠다. 얼마 전 파츠래리를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메이아 공녀를 만났어.>

<어디서?>

<마탑에서.>

<내가 갔을 땐 없었는데.>

그 말에 파츠래리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넌 만나기 싫었겠지만 난 만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형님을 다시 받아 준다 합니까?>

<아마도.>

<하하? ‘아마도’라는 건 거절의 뜻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메이아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데미안은 잘 알고 있다.

파츠래리와 재약혼할 바에야 혀를 깨물고 죽으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킬 여자다.

<아니, 다시 받아 준다는 뜻이야.>

<뭘 그리 자신하십니까?>

<그녀는 나에게 미련이 남았지.>

웃기는 소리였다. 누구보다 냉정한 사교계의 아름다운 꽃이 미련이 남았다고?

차라리 부모님의 시신을 찾지 못한 일에 미련 남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절대 메이아는 파츠래리에게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을 거다.

<황태자비가 될지 아니면 황자비가 될지는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형님.>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메이아가 파츠래리를 다시 받아 준다면 형을 죽이면 된다.

원래 황좌란 강한 사람이 갖는 것이다.

“후후.”

“데미안, 뭘 그리 즐겁게 웃니?”

“아, 어머니. 형님의 국혼 축하 선물을 뭘 드릴지 고민 중입니다.”

데미안은 계속 무엇을 주면 파츠래리가 좋아할지 선물 목록들을 생각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파츠래리의 국혼 선물을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생각한 선물은 싱싱한 딸기였다. 하지만 메이아가 좋아하는 딸기 위주의 선물은 어쩐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딸기를 보며 메이아를 그리워할지 모른다.

그렇게 만들 순 없다.

파츠래리가 단 한 순간도 메이아를 생각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데미안은 깊은 고심 끝에 국혼 축하 선물을 결정하면서 옆에 있는 로버트에게 명했다.

“로버트, 나는 형님에게 유자나무를 선물 드릴 거야.”

로버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무요? 황궁 안에 나무를 심으려면 황후 마마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절차가 많이 복잡해질 게 뻔합니다.”

“난 뜻깊은 선물을 주고 싶어.”

“왜 하필 유자나무입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보석으로 유자나무를 세공할 거야.”

“진담이십니까?”

“국혼 축하 선물로 농담할 만큼 난 그리 웃긴 사내가 아니야, 로버트.”

사람들은 축하해 줄 상대방이 좋아하는 꽃이나 탄생화를 보석으로 세공해 선물하는 편이다.

하지만 파츠래리는 유자나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고, 탄생화도 아니다.

그렇기에 데미안의 선물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황색 토파즈로 나무를 표현하고 녹색 비취와 에메랄드로 유자나무의 잎사귀를 만들고, 유자는 특별히 황금색 마정석으로 예쁘게 정성 들여 만들어.”

“예에? 마정석 말입니까?”

“그래. 어디 두어도 고급스러운 유자나무 보석! 국혼 축하 선물로 훌륭할 거야.”

“네.”

“이왕이면 형님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딱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코팅 재질도 신경 써 달라고 해 줘. 집어 던져도 깨지지 않도록.”

로버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겠다고 답했다.

“네, 황자 전하.”

“두 개 만들어서 메릴 공녀와 그리고 형님에게 보내.”

총 두 개를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한 데미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선물의 의도를 안다면 형님도, 형수님도 분명 좋아할 거야.”

데미안은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보석 나무가 완성될 때까지 데미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모시는 데미안은 파츠래리를 싫어한다. 아니, 증오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그 비싼 보석과 마정석으로 세공된 유자나무를 선물한다니?

분명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로버트는 확신했다.

많은 돈을 지불하니 한두 달 걸릴 작품도 3일이면 완성이 되었다.

완성된 유자나무 보석을 보며 데미안은 미소를 지었다.

보석들이 마정석과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형님에게 보내는 유자나무는 특히 신경을 써서 포장해.”

“예.”

그렇게 완성된 유자나무 보석을 하츠벨루아 공작저와 파츠래리 앞으로 보내졌다.

선물을 받은 메릴은 커다란 보석이라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파츠래리는 데미안의 선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물의 의도를 단 한 번에 파악했다.

“데미안, 이 자식.”

선물을 가지고 온 시종은 말했다.

“데미안 황자께서 국혼이란 ‘기쁜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시다며 유명한 보석 세공사에게 의뢰해서 만든 보석 ‘유자나무’입니다. 유자 열매는 마정석으로 세공되었습니다.”

시종은 선물을 파츠래리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한동안 그 선물을 쳐다보던 파츠래리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기가 막히는군.”

유자나무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데미안의 의도는 분명했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국혼을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축하하는 의미가 분명하지만 보낸 사람은 데미안이다. 파츠래리 입장에서 선물을 해석하면 자신과 메릴의 국혼은 데미안에게는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이건 국혼 축하 선물을 위장한 조롱이다.

파츠래리는 세공이 잘된 유자나무 보석을 들어 바닥으로 힘껏 내동댕이쳤다.

“당장 데미안한테 돌려보내!”

그때였다.

똑똑.

“전하, 데미안 황자님께서 오셨습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안절부절못하는 시종을 뒤로한 채 데미안은 웃으며 파츠래리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유자나무를 가엾게 쳐다봤다.

“들어오라고 허락한 적 없다, 데미안.”

“제가 보낸 선물을 던지신 겁니까?”

“그걸 지금 선물이라고 보낸 것이냐?”

데미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국혼이란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뜻을 가진 유자나무를 보낸 건데 왜 그리 화를 내시는 겁니까?”

“데미안.”

파츠래리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상당히 화가 났다는 게 전해졌다.

“유자나무의 의도를 내가 정말 모를 거라 생각하느냐?”

“메릴 공녀를 형수님으로 맞이해 기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준비한 선물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말하는 데미안이 파츠래리는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메릴 공녀는 선물 고맙다 답장도 주시는데 형님은 집어 던지시다니……. 다행히 코팅에 신경 써서 그런지 던져도 깨지지 않지만…… 제가 드린 선물 던진 걸 보니 저 상처 받았습니다.”

“나가.”

“상처 받은 동생을 위해 차 한잔도 안 주시는 겁니까?”

데미안의 능청스러운 태도를 보고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참은 파츠래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가라고 했다.”

“형님이 국혼을 올리신 뒤에는 저도 메이아 공녀님과 결혼을 할 겁니다. 먼저 결혼 올리시는 형님께서 결혼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 주십시오.”

“유자나무 들고 나가.”

“형님, 설마 화나신 겁니까?”

데미안은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결혼 전 신랑들의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설마 형님께서도 그런 겁니까? 형님을 위해 좋은 상담사 한 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파츠래리는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당장 나가!”

파츠래리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고함은 복도까지 울렸다.

“국혼을 진. 심. 으. 로. 축하합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데미안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인 뒤 자리를 떠났다.

파츠래리는 바닥에 나뒹굴던 유자 열매 보석을 집어 들고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 파츠래리 앞으로 다시 유자나무가 돌아왔다.

아주 귀엽게 포장이 되어서!

“데미안!”

파츠래리는 다시 유자나무를 데미안이라 생각하며 창밖으로 힘껏 던졌다.

그제야 로버트는 데미안의 선물의 의도와 깨지지 않도록 코팅에 신경 쓰란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데미안의 일방적인 국혼 축하 선물을 받은 파츠래리는 분노와 굴욕으로 몸을 떨었다.

*

카르펜 제국의 황태후 로즈 폰 샤네르 마브로.

그녀는 살벌한 권력 암투 속 아들을 지키고 황제로 만들었다.

귀족으로 태어나 한 제국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가 왔다. 로즈는 걱정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오만’이다. 매우 예뻐하던 메이아와 파츠래리가 파혼을 했다.

‘그래, 파혼할 수도 있지. 그래도 메이아만 한 황후감도 없는데 아쉽구나.’

귀족과 황족의 약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겼다. 파혼 뒤 파츠래리는 메이아의 사촌 언니와 약혼을 올렸다.

그리고 온갖 구설수를 이겨 내고 국혼을 올리는가 싶었다.

그렇지만…….

<황태후 마마, 제발 도와주십시오.>

<남은 생 편하게 놀다 가려는데 대체 뭘 도와달란 말입니까? 황태자.>

<메이아를 다시 붙잡고 싶습니다.>

<제가 잘못 들은 거지요?>

<메이아는 할마마마를 좋아하니 할마마마께서 재약혼을 부탁하면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메릴 공녀와 이미 국혼까지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메릴 공녀도 절 싫어하고, 저도 싫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다.

부모님 돌아가셔서 상심이 큰 메이아를 등진 것은 바로 파츠래리다.

<황태자, 난 부탁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오로지 협상만 할 뿐이지.>

<협상.>

<메이아가 뭐가 아쉬워서 황태자와 재약혼을 하겠습니까? 돈? 권력? 뭐로 협상이 될 것 같습니까?>

<황후로 만들어 줄 겁니다.>

파츠래리의 철없는 소리에 로즈는 코웃음이 나왔다.

<이 할미는 손주가 싸 놓은 똥 치우는 취미는 없답니다. 당장 돌아가세요, 파츠래리.>

다음 날, 파츠래리는 황후 엘르민까지 대동해서 왔다.

아침부터 찾아와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로즈는 궁중 예법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짜증 내며 말했다.

<어부가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았다 놓쳤다. 누구 탓인 줄 아느냐?>

<어부 탓입니다, 마마.>

<그래, 어부가 잘못한 거다. 물고기를 꽉 잡고 있었어야지! 다른 물고기가 더 커 보인다고 잡아 놓은 물고기를 왜 놓쳐서 후회하느냐 말이다.>

<다시 잡을 겁니다.>

<떠나보낸 것에 미련을 갖지 마라.>

젊은 시절 후궁들과 밤을 즐기던 남편에게 마음고생.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갖은 고생을 겪었는데 이젠 징징거리는 황후와 황태자 때문에 또 다른 고생길이 열릴 것 같아 로즈는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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