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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1화 (101/163)
  • 101화

    데미안 이야기에 유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어릴 때 메이아를 황태자의 약혼녀로 만든 이유 중 99%는 데미안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유디.>

    <예, 주인님.>

    <데미안 황자가 우리 메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네.>

    유디는 처음에 그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황자비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데미안과 메이를 결혼시키고 싶지 않아.>

    <네?>

    데이빗은 둥지에서 떨어진 새를 메이아가 돌본다는 이유로 밟아 죽인 데미안을 떠올리며 말했다.

    <데미안 황자는 위험해.>

    데미안은 메이아의 시선을 뺏는 꽃과 보석, 그게 사람일지라도 밟아 죽일 것이다.

    데이빗의 눈빛에는 진지함과 심각함이 보였다.

    <어쩔 수 없어, 유디……. 메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황태자의 약혼녀가 되어야 해.>

    <하지만 아직 어리십니다.>

    <어리니까 잔혹한 걸 숨길 줄 모르는 거야. 조금만 지나면 그 잔혹성을 숨기고 살 거야. 데미안 황자는 매우 위험해…….>

    <하지만…….>

    <데미안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거야……. 예전에 에스라 영애처럼 느껴져…….>

    에스라 영애는 데이빗의 스토커였다.

    <에스라 영애는 나에게 집착한 나머지 나의 관심을 끌던 영애 세 명을 죽였지…… 소중한 메이를 자유롭게 살게 하고 싶었는데…… 결국 나도 딸아이를 내 아버지와 똑같이 대할 수밖에 없어 속상하군.>

    그 뒤로 메이아는 하루 종일 황후가 되기 위한 공부만 하게 되었다. 중립을 지키던 하츠벨루아 공작은 파츠래리와 메이아를 약혼시키면 중립에서 황제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유디는 플로렌스 대공이라면 메이아를 지켜 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헬레나는 맞은편에 앉은 테오도르를 살펴봤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외관적으로 보이는 것은 합격이다.

    아무리 메이아의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최선을 다해 뒤에서 괴롭힐 생각이었다. 아무리 퀴니가 입이 마르도록 플로렌스 대공을 칭찬했지만 거기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거다.

    “대공 각하께서는 술을 좋아하십니까?”

    “술을 싫어합니다.”

    “말씀을 놓으십시오.”

    “그러지.”

    “아예 안 마시는 겁니까? 대공 각하.”

    헬레나의 질문에 테오도르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메이가 마시라고 할 때는 죽더라도 마실 거야. 하지만 스스로 마시진 않아.”

    눈웃음과 다르게 입을 웃지 않았다. 그 모습에 헬레나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어려도 대공은 대공이다. 풍기는 분위기가 제법이다.

    “그러시군요.”

    헬레나는 앞에 있는 딸기 차를 한 모금 호로록 마셨다.

    “사실 딸기밭에 감동했습니다.”

    그 말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붉어졌다. 빨개진 얼굴이 꽤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반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인물이라 느껴졌다.

    “점차 딸기밭을 늘릴 생각이야.”

    헬레나 옆에 앉아 있던 유디는 찻잔을 내려놓고, 테오도르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두 분 잘 어울리십니다.”

    유디의 갑작스러운 축하 말에 테오도르 옆에 앉아 있던 메이아는 활짝 웃었다.

    “유디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네.”

    유디는 사랑스럽다는 듯 메이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전 공작 부부가 돌아가신 뒤 메이아는 미소를 잃었다. 웃지 않던 메이아가 지금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그것만으로 유디는 충분히 테오도르가 마음에 들었다.

    “대공 각하, 저는 아가씨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곁에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번에 마탑을 가신다면서 저를 두고 가셨지만 마음만은 항상 곁에 있답니다.”

    테오도르는 유디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제가 바라는 건 한 가지입니다.”

    “무엇이지?”

    “아가씨가 항상 미소 짓게 해 주세요.”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이름으로 약속해 주십시오.”

    가문의 이름으로 약속한다는 것은 구두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가문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건 명예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유디의 말에 고민조차 하지 않고 즉시 답했다.

    “플로렌스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유디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둘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

    약혼식은 미래를 함께할 사람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황족이나 귀족 간 결혼은 가문의 혈통 그리고 재산과 영토의 가치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인 이해를 위해서 한다.

    결혼식이 아닌 약혼식을 먼저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직 결혼을 올릴 당사자 중 한 명이라도 성인식을 올리지 않았을 경우.

    두 번째는 결혼하기 전 주변 분위기를 읽기 위해서다. 양쪽 집안의 분위기를 알 수 있고 약혼을 통해 집안을 위협하는 진짜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다.

    약혼서 내용은 가문의 가주끼리 협의로 작성된다. 특히 재산 문제를 철저하게 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죽은 후에 아내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갈 것인지 명시한다.

    이 부분은 아이가 없을 때 이야기다. 아이가 있는 경우 모든 재산은 가문을 이어갈 아이에게 주어진다. 결혼 후의 재산 이동, 재산 분할 및 자녀 양육에 관해 상세히 적는다.

    그리고 파혼했을 때의 책임 부담금과 결혼식 하기 전 지참금이 어느 정도인지도 명시해 놓는다.

    양가에서 만족스러운 약혼서가 작성이 되면 정해진 날짜에 약혼하게 된다.

    그리고 약혼을 올린 남녀는 예비부부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원래는 하츠벨루아 공작저에서 약혼식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아닙니다. 시리우스 제국에서는 약혼식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풍습이네요. 카르펜 제국은 꼭 신부의 집에서 약혼식을 올려요.”

    “저희는 마구간에서 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두 사람 마음이 중요하니까요.”

    메이아와 테오도르는 마주 보며 웃었다.

    원래는 양가 부모님들끼리 약혼식 진행을 이야기할 부분들이다. 하지만 메이아와 테오도르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약혼식 이야기를 당사자들끼리 할 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르의 성인식과 더불어 뜻깊은 약혼식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뭐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선 인사말부터 생각해야겠죠?”

    원래는 약혼식에 초대된 사람들 앞에서 양가 부모님들이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부모님 관점에서 인사드리는 게 아니니 아무래도 당사자 입장에서 감사 인사를 해야 하겠죠?”

    메이아도 스스로 약혼식 준비는 처음 해 본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예비 플로렌스 대공비가 얼마나 테오도르의 성인식과 약혼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감각이 있는지 가신들에게 보여 주는 자리다.

    빈틈없이 준비해야만 했다.

    “메이, 전 당신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네? 무슨 말이요?”

    “제 가족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테오도르에게 아픈 단어다.

    하지만 이젠 웃으면 ‘가족’이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메이아 덕분이다.

    “가족…… 그렇네요. 남편과 아내가 될 예정이니 저와 테오는 가족이 되는 거네요.”

    그녀의 달콤한 말에 테오도르의 눈가가 붉어졌다.

    “테오.”

    “매우 좋은데, 좋아서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눈물이 납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감각과 감정들이 눈물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테오, 웃어 줘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눈가를 얼른 훔치고, 활짝 웃었다.

    “역시 난 테오의 웃는 얼굴이 좋아요.”

    티 나게 붉어진 테오도르의 귓불을 지긋이 바라보며 메이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와 손을 마주 잡았다.

    달래려는 듯 살짝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테오도르는 몸을 흠칫했다.

    “메이.”

    “눈가가 더 붉어졌네요.”

    목덜미까지 빨개진 테오도르는 이렇게 자주 울면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눈물을 자꾸 보여서 죄송합니다.”

    “귀여워요.”

    “네?”

    “예뻐요.”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뺨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테오는 울어도 예뻐요.”

    테오도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젖은 눈동자로 메이아를 바라봤다.

    “테오, 당신이 너무 좋아요.”

    갑작스러운 고백과 칭찬에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렸다.

    “난 욕심 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메이가 내 마음만 알아주고 내 곁에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가 메이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메이를 원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달콤한 속삭임.

    메이아는 사랑스럽다는 듯 손바닥으로 그의 양 뺨을 감쌌다.

    테오도르는 그대로 그녀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갔다.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서 솟아올랐다.

    거칠어진 숨결과 질척거리는 젖은 소리가 방 안을 크게 울렸다.

    두 사람은 흘러넘친 타액을 뒤쫓아 핥으며 농밀한 입맞춤을 계속 반복했다.

    “메이.”

    그의 뜨거운 눈길과 입술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테오, 그만.”

    메이아는 첫날밤을 이렇게 치를 수 없다는 강한 마음을 실어 힘껏 테오도르의 어깨를 밀었다. 그렇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만.”

    테오도르는 왠지 떼쓰는 듯 간절한 눈빛을 메이아에게 보냈다.

    “테오는 한 번만 한 적이 없잖아요.”

    눈꼬리가 내려갈수록 묘하게 귀여운 얼굴과 색기 가득한 눈빛.

    ‘기다려요! 테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다시 입술이 삼켜졌다.

    강하게 빨아올리는 뜨거운 감촉에 숨소리는 다시 거칠어져만 갔다.

    “메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이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 느낄 수 있다.

    “오늘 갈 데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벌써 잊은 건 아니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울 것 같은 얼굴로 간절히 원하는 표정을 짓는 테오도르는 쉽게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면 갈 준비해야죠.”

    끙 하는 소리를 내며 테오도르는 신음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예쁘게 웃으며 잔망스럽게 굴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놀아 주지 않는 주인에게 다가와 요망하게 배를 보이며 낑낑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 요망하게 굴고 있어!’

    요즘 테오도르는 키스를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다.

    그와의 키스가 싫은 건 아니다. 아주 좋아서 문제다.

    그래서 자제하지 못할까 걱정된다.

    여기서 강하게 한 번 나가 주지 않으면 또다시 길게 입맞춤이 시작된다.

    “그런 귀여운 표정 지어도 안 넘어갑니다, 약혼자님.”

    일어서려는 메이아를 다시 한번 끌어안아 가볍게 입을 맞춘 테오도르는 활짝 웃으며 잔뜩 요망하게 굴었다.

    “……이래도요?”

    덕분에 가야 할 곳을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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