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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00화 (100/163)

100화

딸기 차는 그냥 말린 딸기만 넣어서 우려먹는 차가 아니다.

컵의 크기에 따라 넣는 물의 양이 달라지는 만큼 말린 딸기의 양도 다르게 넣어야 한다.

거기에다 물 온도까지 신경 써야 한다.

메이아는 따뜻한 딸기 차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딸기 차 맛이 최대한 우러나오는 물 온도를 정확히 맞춰야 하고, 그만큼 말린 딸기를 알맞게 넣어 줘야 한다.

웬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딸기 차는 금방 새콤한 맛이 사라진다.

“그리고 아가씨는 플로렌스 대공 각하가 따르는 딸기 차를 다 드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대 이상인데?”

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공작저 내에서 아가씨의 딸기 차 담당은 플로렌스가의 집사와 대공 각하가 하고 계십니다.”

“그 밖에는?”

“키, 외모, 권력, 재력, 성격적인 부분은 파츠래리 황태자보다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그 밖에 병력은…….”

“병이 있으시니?”

“몰래 입수한 정보인데 병이 있으십니다.”

쥬안은 침울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이어 말했다.

“상사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의 말을 들은 헬레나와 유디는 바람 빠진 가죽 공처럼 변했다.

“상사병 대상은 우리 아가씨겠군.”

“그렇습니다.”

“상사병에 걸릴 정도로 우리 아가씨에 빠져 있다라…….”

“자세한 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하겠군.”

헬레나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약혼식 날짜는 정해진 거야?”

“그렇습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의 성인식 날에 합니다.”

“몇 살이시니?”

“열일곱 살이며 곧 성인이 되십니다.”

“나이는 합격.”

“그리고 대공 각하의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돌아가셨니?”

“예.”

“얼른 휴가서 내고 출발하자.”

헬레나와 유디는 휴가서를 일방적으로 제출하고 쥬안의 뒤를 따랐다.

*

메이아는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이내 미소 지었다.

“테오, 곧 있으면 내 유모 유디와 헬레나가 올 거예요.”

“네.”

“헬레나는 정원사지만 중급 땅의 정령사예요.”

“중급 정령사라니 대단합니다.”

“헬레나의 아들은 용병 왕이에요.”

“그렇습니까? 용병 왕이라면…….”

“예, 소드 마스터죠.”

정령사는 소드 마스터급으로 귀한 존재다. 특히 정령사는 자연의 힘을 말 한마디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헬레나가 꾸민 정원은 언제나 아름다워요.”

“저희 시리우스 제국에도 정령사 한 분이 계십니다.”

“알아요. 너무 유명하신 분이시죠.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이젠 록벨리온 공작 부인이 되셨습니다. 수도에 올라가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상냥하신 분입니다.”

“만남이 기대되네요.”

“저도 유모 유디와 헬레나와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메이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오로지 내 안전만 생각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베나블은 유디와 헬레나 이야기를 귀에 담기 시작했다.

“주인마님, 딸기 차를 더 따라 드리겠습니다.”

이야기하던 메이아는 눈을 감고 베나블이 따라 주는 딸기 차의 향을 맡았다.

“오늘도 딸기 차의 향이 좋네.”

“최고 품종의 딸기를 재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가 좋아하는 딸기를 신선하게 공급하기 위해 대공저에 있는 땅 중에서도 제일 비옥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딸기밭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새콤하고 맛이 좋은 딸기를 재배하기 위해 많은 정원사와 농부들이 노력했다.

그 결과, 메이아는 매일 신선한 딸기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맛있다.”

오늘도 행복한 메이아와 그 곁을 지키는 테오도르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베나블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소중한 메이아가 파츠래리의 일방적인 파혼을 당하자 유디는 헬레나와 함께 반역까지 생각했다.

진심으로…….

하지만 메이아는 홀가분한 모습으로 마탑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유디는 메릴의 패악과 루만의 무시에도 묵묵히 참고 견뎠다.

‘아가씨 몸 건강히만.’

어느 날, 하녀 링링이 흥분하며 신문을 한 장 가지고 왔다.

유디는 메이아가 유람선 위에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한 신문 기사를 보며 한참을 울면서 너무 걱정했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였다.

매질 당하던 퀴니가 떠나고, 독방에 갇혀 있던 아그니타가 도망갔다.

다들 떠나더라도 자신은 절대 떠날 수 없다. 성인식 날 아가씨가 오니 말이다.

성인이 된 메이아가 분명 루만에게서 공작위를 뺏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탑으로 떠난 메이아를 이해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약혼 소식을 접하니 유디는 잘못된 소식이라 믿었다. 하지만 메이아의 약혼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루만 공작님께서 약혼서에 인장까지 찍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유디와 헬레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빨리 앞장서. 쥬안, 아가씨를 만나야겠어!”

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장섰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타고 플로렌스령으로 출발했다.

플로렌스 대공저 입구에 도착한 그들은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의 환대를 받았다.

“대공저까지 들어가는 마차가 곧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마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깥에 넓은 정원들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세상에…….”

“공작저보다 확실히 넓네요.”

“대공저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니 편히 앉아 쉬십시오.”

창밖을 구경하던 헬레나와 유디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기는…….”

쥬안이 설명했다.

“대공 각하께서 메이아 아가씨를 위해 만든 딸기밭입니다.”

딸기밭에는 많은 농부가 정성껏 물을 뿌리고 열심히 비료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커다란 무대가 있었고, 지휘자의 지시를 받으며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들이 흘러나오며 편안한 기분을 들게 했다.

헬레나는 왜 딸기밭에서 음악을 연주하느냐고 쥬안의 멱살을 붙잡고 물었다.

“대공 각하께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자란 딸기가 싱싱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특별히 고용하신 음악가들입니다.”

헬레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도 안 해 본 짓을?”

“비료는 황금 벼 이삭만 먹고 자란 소의 똥으로 제작했습니다.”

“뭐? 황금 벼 이삭?!”

황금 벼 이삭은 키우기 까다롭다. 오로지 밝은 빛만 흡수하는 식물이다.

그래서 해가 떠 있는 시간 외에 저녁과 밤 새벽에는 마정석으로 빛을 쬐게 해야 한다.

마정석의 빛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사람이 지키고 돌봐야만 했다.

한순간 빛을 쬐지 못한 황금 벼 이삭은 그 색이 죽으면서 시들어 버린다.

웬만한 돈으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오로지 정성과 시간, 돈, 이 삼박자가 맞아야지만 키울 수 있다.

“저쪽 딸기밭 위에 황금 벼 이삭을 키우는 밭이 따로 있고 그 옆에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있습니다.”

쥬안이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넘실거리는 벼 이삭이 멀리서 봐도 잘 보였다.

“원래 있었던 거야?”

“처음에 왔었을 때는 없었습니다.”

“딸기밭 때문에 황금 벼 이삭과 소를 키운다고?”

“소들도 그냥 소들이 아닙니다. 동국에서 직접 데리고 온 미우입니다.”

소 중에서도 최상급 육즙과 품질을 자랑하는 미우는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사랑하는 농부 곁을 지키기 위해 소를 변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극상의 맛을 자랑한다.

특히 미우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입이 까다로운 만큼 좋은 것들만 먹여 키운 미우를 해당 요리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만 조리를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하네.”

메이아가 좋아하는 딸기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보여 주는 플로렌스 대공에게 헬레나는 마음이 살짝 풀어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공저 입구에서는 시녀장 한나와 베나블이 그들을 맞이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베나블은 메이아가 이야기해 준 조심해야 할 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응접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헬레나는 이상 미묘한 기분이 들어 바닥을 내려보았다.

“바닥이 이상한데?”

쥬안이 눈썹을 치켜들며 설명했다.

“바닥은 마정석입니다.”

“뭐?”

“아가씨가 마법사이시기 때문에 대공 각하께서 마정석으로 바닥을 다 바꾸셨습니다. 마정석이 마법사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으시자마자 바로 다음 날 바꾸셨습니다.”

“뭐? 마정석?! 쥬안, 지금 마정석이라고 했어?”

“그렇습니다.”

대체 플로렌스 대공가의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

마정석이란 마나를 다루는 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광물이고, 보석이다.

크기가 클수록 부르는 게 값이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비싼 광물이다.

이건 카르펜 황실에서도 하지 못한 극한의 사치다.

“마정석 도배는 기본입니다. 현재 아가씨가 쓰는 식기들 모두 마정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만간 문도 교체하신다 합니다. 천장도 바꾸신다 하셨습니다.”

“할 말이 없네, 없어.”

다이아 응접실에 들어온 유디와 헬레나는 베나블이 타 준 딸기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공작저 딸기 차보다 훨씬 맛나네요!”

“그러게.”

똑똑.

문이 열리고 메이아가 환한 미소로 들어왔다. 유디는 금세 눈물을 흘렸다.

“유모! 헬레나.”

그리고 메이아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퀴니와 아그니타였다. 그리운 얼굴들을 본 유디의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유디 님!”

“아그니타! 아이고!”

아그니타는 유디에게 달려가 안겼다.

“고생했다.”

“보고 싶었어요.”

유디에게 곧장 달려가 안긴 아그니타를 보며 헬레나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아그니타, 나는 안 보이니? 네가 땅 파서 기사들 심어 놓고 간 거 내가 다 뽑아내고 복구시켰다.”

“헤헤, 헬레나 님도 보고 싶었어요.”

“유디 님만 안지 말고, 이리 와서 나도 안아 줘, 아그니타.”

퀴니는 그 모습을 보며 품 안의 작은 메모장을 꺼내 스케치했다.

떠났던 영감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메이아는 의자에 앉았다.

“다들 오느라 고생했어.”

유디는 또 눈물을 흘렸다.

“아가씨.”

“모두 놀랐지? 내가 갑자기 약혼한다 해서.”

“심장이 떨어질 뻔했습니다.”

“저도요.”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말할게.”

다들 메이아의 말에 집중했다.

“내가 선택한 남자야.”

메이아의 ‘선택’은 신뢰를 부른다.

“전 아가씨가 성인식을 치르고 공작위를 되돌려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헬레나에게 땅굴을 파라고 해서 그 안에 몰래 무기까지 모으고 있었다고요.”

“유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가 공작이 된다면 황실 측에서는 가만있지 않을걸. 하츠벨루아 공작이 된 며느리를 맞이하려고 별짓 다 했을 거야. 특히 데미안 황자가.”

파츠래리를 단념시키는 건 쉬운 일이다. 그의 자존심에 몇 번이고 칼을 꽂고 찢어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아니다. 그는 자존심을 내던질 사람이다.

“그렇지만.”

“가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나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어.”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쁜 입술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은 내가 성인이 아니므로 삼촌에게 맡겼을 뿐이야. 내가 가지고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때 하츠벨루아 공작위를 가질 거야.”

“역시 우리 아가씨! 변함이 없으십니다.”

“문제는 데미안 황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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