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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91화 (91/163)

91화

“피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치더라도 메이의 미소만 있으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피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마주해야 하고 극복해야 한다.

“인생에서 원하는 건 뭐든 얻을 수 있었기에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린 테오도르는 천천히 메이아를 바라보았다.

“메이를 만나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세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메이가 행복해지는 것.”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향해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메이가 매일 웃는 것.”

그의 얼굴이 점점 눈앞에 다가왔다.

“제 곁에서 메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것.”

따뜻한 온기가 심장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제가 원하는 건 제 곁에서 메이가 행복하게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사탕발림 가득한 칭찬이었다면 실망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메이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었습니다.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여러 칭찬 말을 듣는 것 보다 지금 그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지독하고도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다. 메이아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테오도르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봤다.

그의 말에 기분이 말랑말랑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 참아 보았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메이는 저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주십시오.”

“든든하네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접힌 그의 눈매가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죠?”

테오도르는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든지.”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웃는 모습에 이토록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그가 처음이다.

메이아가 강한 충동을 누르고 심장을 진정시킬 때 테오도르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이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응접실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집무실로 돌아가야죠.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약혼에 관해 이야기도 해야죠, 테오.”

응접실에 더 있다가는 분위기에 휩쓸려 자제력을 잃게 될 것 같았다.

“약혼……!”

테오도르의 뺨이 복숭앗빛으로 물들고, 입술에 미소가 번진다.

메이아는 그의 미소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꼭 소중히 아껴 주겠다는 마음을 굳게, 여러 번 다짐했다.

귀족의 결혼에는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 폐하의 승인이 필요하다.

양가의 가문 인장을 약혼서나 결혼서에 찍은 뒤에 황제 폐하에게 올린다.

하지만…….

“테오, 그러면 약혼서에 하츠벨루아 공작 가문의 인장만 찍으면 바로 약혼 관계가 된다는 거죠?”

테오도르는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플로렌스가는 황제 폐하에게 결혼 승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황가에 통보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얼른 인장을 받아야겠네요.”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말에 기뻐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성대한 약혼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약혼 관계라 하더라도 대공비 권한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혼서에 하츠벨루아 가문 인장만 찍힌다면 저는 플로렌스 예비 대공비가 되는 거네요.”

“메이가…… 대공비…….”

눈가까지 붉게 물들이며 옹알거리는 테오도르의 모습이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테오도르, 왼손을.”

메이아의 우아한 미소에 마치 조종당하기라도 한 듯 테오도르는 왼손을 메이아의 오른손에 올렸다. 메이아는 그의 넷째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테오도르는 생일이 언제예요?”

“10월 2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네요.”

“네. 그날은 제 성인식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대공저로 올 것입니다. 전 그들 앞에서 메이를 대공비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도 제 성인식 날엔 테오도르를 약혼자로 소개할게요.”

자신의 말에 수줍어하는 테오도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메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메이아는 편지를 작성했다.

만날 장소와 날짜 시간을 적은 뒤 간단한 내용을 썼다.

[삼촌, 마탑으로 와 주세요. 약혼과 결혼 문제로 급하게 논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츠벨루아가의 메이아-]

편지를 읽은 삼촌이 애타는 마음을 억누르며 마탑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애튼은 몸이 나아 퇴원이 결정되었다.

“애튼,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공녀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애튼은 메이아에게 인사를 하며 재빠른 곁눈질로 테오도르를 쳐다봤다.

“저는 오전에 진료를 한 번 더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워스트 의원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사 드리기로 했습니다. 점심 먹고 바로 들어와 일하겠습니다.”

메이아는 아직도 몸이 불편한데 책임감을 느끼고 출근한 애튼을 기특하게 쳐다봤다.

“전에 목숨을 구해 준 일도, 몸이 아픈데도 이렇게 출근도 하고. 애튼, 정말 대단하네요.”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신뢰의 눈빛과 미소를 받는 애튼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애튼은 ‘대공 각하! 오해이십니다!’라는 처절한 눈빛을 테오도르에게 간절히 보냈다.

“애튼은 정말 훌륭해요.”

그렇지만 메이아는 애튼을 계속 칭찬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는 메이아를 속으로 원망하며 애튼은 울고만 싶어졌다.

애튼의 칭찬이 계속될수록 테오도르의 질투 어린 시선은 그에게서 거두어지지 않았다.

*

루루나 후궁의 티 파티에서 모진 수모를 겪은 메릴은 우울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티 파티 당일 황궁에서 나온 메릴은 바로 토마스를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메릴의 방문은 쿠룬달스 백작저에 혼란을 주었다. 다행히 베테랑 집사 호만은 침착하게 메릴을 응접실로 안내한 이후 보고를 올렸다.

집사의 이야기를 들은 토마스는 바로 메릴에게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메릴의 눈가에선 굵은 눈물이 떨어졌고, 토마스는 마음 아프다는 듯 바라보며 다가가 안아 주었다.

토마스는 무슨 일이냐 물었고, 메릴은 슬퍼하며 말했다.

“토마스, 결혼하나요?”

“그걸 어떻게.”

“루루나 후궁 마마의 티 파티에서 세자르 영애를 만났어요. 당신과 곧 결혼한다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정략혼일 뿐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건 오로지 당신입니다.”

“절 사랑한다면 정략혼 하지 마세요. 저와 결혼해요, 토마스.”

“와인 사업이 위험해져 세자르 영애 집안에서 사업 자금을 대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업 자금 줄게요. 필요한 거 다 줄 수 있어요.”

“그건 받을 수 없습니다. 어찌 제가!”

“전부 줄게요, 토마스.”

토마스의 손이 메릴의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었다.

“우선 정략혼을 미루기 위해서는 급한 적자 자금을 메꾸어야 합니다.”

“금액만 말해요. 제가 준비할게요. 세자르 영애와 결혼하지 마세요.”

메릴의 끈질긴 설득 끝에 토마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돈을 받는 건 조금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사업 계약을 하나 맺어 주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업 계약이요?”

토마스가 현재 하는 사업 중 하나는 타 제국에 질 좋은 와인을 파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얼마 전 자연재해로 배가 침몰해 큰 적자를 내고 말았다.

“무역으로 보낼 수 있는 배 다섯 척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수익이 나면 메릴에게 일부를 주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파츠래리와 파혼을 하고, 토마스와 결혼을 올리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메릴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준비할 테니 여기서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마법 공증이 걸린 서류이니 꼼꼼히 읽어 보시고 사인해 주세요, 메릴.”

하지만 메릴은 토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류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곧바로 사인을 하고, 지장까지 찍었다.

“토마스, 제가 꼭 도울 테니 절대 세자르 영애와 결혼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메릴.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 토마스. 저도 사랑해요.”

그의 사랑을 받은 메릴은 행복한 마음을 가득 담은 채 공작저로 돌아왔다.

“드레스랑 보석 좀 팔면 자금 마련이 되겠지?”

세자르 영애와 결혼을 안 할 거란 그의 확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렇지만 티 파티 때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짜증 나.”

오락가락하는 메릴의 기분 따라 오늘도 공작저 내 하녀와 시녀들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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