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86화 (86/163)

86화

노르딕 부인 옆으로 노르딕 자작이 끌려 나왔다. 재판장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모든 걸 체념하며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장은 그들의 형벌을 결정했다.

“노르딕 부인은 라키아 남작이 인신매매로 사람들을 매매하는 걸 알렸기 때문에 그걸 높이 인정한바 사형까지는 가지 않겠다. 그렇다고 5년간 대공가를 횡령한 죄와 힘없는 평민에게 누명을 씌운 죄는 전혀 가볍지 않다.”

땅, 땅, 땅.

“판결을 내리겠다. 횡령한 노르딕 자작은 엘븐가드에 있는 망자의 산에서 30년 노역형을 처하며 노르딕가의 아만다는 추운 북쪽 지역 50년 노역형에 처한다.”

노르딕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잠시 휴정한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라키아 남작과 노르딕 부인, 그리고 노르딕 자작에게 음식물 쓰레기와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때 아니면 누가 귀족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사람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재판을 지켜보고 있던 애쉬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소리만 지를 뿐 살벌하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공개 재판에서 휴정 시 죄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걸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재판장이 돌아오자 사람들은 돌 던지는 걸 멈추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돌을 맞다 기절한 노르딕 부인과 노르딕 자작은 그대로 기사들 손에 끌려나갔다.

애쉬는 끌려나가는 부모님을 보며 오열했다.

재판장은 땅땅, 두 번 의사봉을 두들기고 다이애나에게 물었다.

“노르딕 영애는 사람을 살해하려고 했다. 얼마 전에 잡힌 마약과 독약을 파는 의원의 증언과 그가 가지고 있던 장부를 확인했으며, 독약을 사람에게 먹이려는 정황까지 포착되었다.”

재판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가?”

미약을 구매했을 뿐인데 독약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그니타가 메이아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배신감에 눈물이 흐르고 그만큼 억울했다.

“노르딕 영애는 미약만을 구매했다고 하지만 플로렌스 대공 각하에게 미약을 먹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형받아 마땅하다.”

“흑…….”

다이애나는 눈물을 보이며 오열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걸 불쌍히 보지 않았다.

“노르딕 영애는 카르반섬 수도원으로 보내겠다. 그곳에서 평생 자신의 죄를 뉘우치길 바란다.”

카르반섬의 수도원은 죄를 저지른 여자들이 가는 곳이다. 머리카락부터 온몸의 털을 밀어야 한다. 이마에는 죄인을 상징하는 인두가 찍힌다. 직접 농사를 해서 밥을 챙겨 먹어야 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릎 꿇고 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다이애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재판장은 말했다.

“잠시 휴정한다.”

재판장이 나간 뒤 사람들은 다이애나에게 돌과 쓰레기를 던지며 말했다.

“너 같은 게 마녀야.”

“독약을 먹여?”

“귀족이면 사람한테 독약 먹이고 죽여도 되는 거야?”

애쉬는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기사들 손에 제재당해 재판장 밖으로 쫓겨났다. 다시 들여보내 달라 외쳤지만, 재판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문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애쉬가 사라지고, 재판장이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웅성거렸다.

재판장은 의사봉을 몇 번 두들겼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조용해질 때쯤 재판장은 말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라키아 남작이 끌려 나왔다. 그는 아킬레스가 끊겨 걸을 수 없었다.

“라키아 남작의 죄는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악행들이기에 어떠한 처벌로도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죄인의 처벌은 플로렌스 대공가로 위탁한다. 이상으로 재판은 마치겠다.”

땅, 땅, 땅.

재판장이 나가고 난 뒤, 테오도르가 걸어 나왔다.

“요번에 리우 가구의 대표 리우와 그의 식솔들과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노르딕 부인과 라키아 남작의 공평한 재판을 위해 공개 재판을 했음을 알린다.”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는 테오도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플로렌스 대공가의 이름으로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 비록 보상을 받더라도 억울한 일을 당했던 기분이 지워지지 않겠지만 이번 일의 계기로 앞으로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공평하게 재판을 열어 죄인들이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억울한 일을 풀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보상까지 해 주는 테오도르 모습에 사람들은 크게 감명받아 자리에 일어서 박수를 보냈다.

레베카는 테오도르에게 허락을 받고, 라키아 남작이 있는 독방으로 찾아갔다.

그녀를 발견한 그는 히죽거리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아름다운 레베카.”

“헤덴 자작가를 위해 일한 이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 퇴직금은 주지도 않고 그들에게 죽음을 선사할 필요는 없었어!”

퇴직금을 줬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을 죽일지는 몰랐다.

“내가 좋은 곳으로 보냈다고 말해 줬잖아. 네 멋대로 해석해 놓고 내 탓 하지 마! 퇴직금은 줬어! 물론 죽이고 다시 가져왔지만 돈을 줬단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난 오늘 너에게 복수를 할 거야. 하지만 평생 복수했다는 생각을 못 할 거야.”

어두운 방 안에 묶여 그에게 수천수만 가지로 복수하는 상상을 했다. 어떠한 상상도 만족스럽게 복수할 수 없었다.

“복수는 아니야……. 나는 너에게 복수하더라도 억울함은 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거든.”

“레베카, 누가 널 구했지? 대체 장부는 어떻게 빼돌렸지?”

레베카는 묶여 있는 라키아 남작의 바지를 날이 선 칼로 찢었다.

그의 하체는 금방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여전히 칼이 쥐어져 있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그러지 마!”

“넌 술 먹고 날 때리는 걸 즐겼잖아. 그 뒤에 너는 만족스럽게 잠들었잖아. 나는 아파서 잘 수가 없더라.”

그녀가 쥐고 있는 칼은 라키아 남작의 중요한 부위를 향했다.

“하지 마! 레베카! 아름다운 레베카!”

라키아 남작은 양손에 묶인 채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반항했지만 레베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매일 상상했어, 이 순간을.”

“으읍!”

“술 먹고 장부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덕분에 잘 활용했지만.”

그녀의 칼이 그의 중요한 부위를 향했다.

스걱.

“수천수만 가지 상상 속에서 너에게 가장 많이 했던 거야. 축하해! 고자가 된걸!”

“끄아아악!”

레베카의 몇 번의 칼질로 그의 중요한 제2의 분신이 몸과 분리가 되었다.

애처로운 그의 비명에 간수들이 들어와 시끄럽다며 그의 입을 막았다.

“에이, 자르셨군요.”

“혀도 잘라야 해요. 자살할지 몰라요.”

“그건 저희가 자르겠습니다.”

뒤에 다른 간수가 성수 한 병을 들고 들어왔다.

“너무 심한 고통은 쇼크사가 됩니다. 헤센 부인, 대공 각하께서 성수를 챙겨 주셨습니다.”

성수가 그의 중요한 부위에 뿌려지자 바로 지혈이 되었다.

“이젠 그만 더러운 곳을 나가시죠, 헤센 부인. 나머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레베카는 간수에게 칼을 건네주며 물었다.

“이거 꿈은 아니죠?”

간수들은 답했다.

“꿈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노르딕 자작은 남쪽에 있는 망자의 산으로, 노르딕 부인은 북부로 떠났다.

다이애나 또한 수녀원으로 끌려갔으며, 라키아 남작은 지하 감옥에서 온몸을 결박당한 채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벌을 받았다.

“메이, 애쉬를 벌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쥐덫에 걸리지 않은 쥐는 쥐약을 먹게 될 거예요.”

“쥐약이요?”

“네.”

테오도르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쥐약까지 준비하셨습니까? 역시 메이는 똑똑하십니다.”

“그는 평생 가족을 그리워할 거예요. 하지만 평생 만날 수 없죠.”

그는 외로울 때마다 가족 생각을 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부모님이나 여동생 대신 돌에 맞을걸.’

‘대공가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에게 딱 맞는 벌이다.

“그는 후회와 그리움 속에서 괴로워하다 술을 찾게 될 거예요.”

사람이 괴로울 때 마음을 쉽게 달랠 수 있는 걸로 술을 찾게 된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과하게 마시면 독이 되죠.”

쥐는 덫으로 잡아 죽여도 되지만, 때론 쥐약을 먹이는 것으로 죽일 수 있다.

“술 먹고 매일 매일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면서 마신다면 쥐는 알아서 죽게 될 거예요.”

노르딕가의 모든 재산은 몰수당했다. 애쉬는 돈 한 푼 없이 맨몸으로 홀로 남겨졌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은 것이다. 자신을 챙겨 주는 아버지도, 걱정해 주는 어머니도, 투덜거리던 여동생까지,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노역장에서 힘들지 않을까?’

‘노역장에서 쓰러지지 않으실까?’

‘여동생은 그곳에서 잘 지낼까?’

‘나 혼자 괜찮을까?’

달라진 환경 속에 애쉬는 괴로워하며 찾은 것은 메이아 예상대로 ‘술’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술’은 그의 쥐약이 되었다.

결국 술에 만취해 걷다 다리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었다. 아름답고 부유했던 노르딕 자작가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

플로렌스 대공가는 한 차례 큰 폭풍이 지나간 듯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

가신들은 모두 테오도르의 성장을 기뻐하며 미래를 기대했다. 그리고 회계 직원들은 모두 사임처리 되었고,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인물들 중에서 신분 상관없이 실력 좋은 사람들로 물갈이가 되었다.

테오도르는 변해 가는 대공가를 만족스러워하며 오늘도 변함없이 메이아를 에스코트했다.

그는 조금만 힘을 주면 깨지는 유리 세공품을 다루는 것처럼 메이아의 손을 살살 쥐었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는 그를 무척 따뜻하게 만들었다.

테오도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메이아의 눈부신 은발이 찰랑거리며 향긋한 꽃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말랑한 뺨, 오뚝한 코, 긴 속눈썹 그리고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메이아 공녀님.”

“네, 테오도르 대공님.”

대답하며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에는 온전히 자신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흰 손등에 입술을 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