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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84화 (84/163)
  • 84화

    감옥에 끌려온 노르딕 부인이 생각하는 건 딱 하나였다.

    ‘다이애나와 애쉬만 무사하면 돼.’

    그리고 맞은편 감옥에 갇혀 있는 낡은 로브를 꾹 눌러쓴 사람이 보였다. 딱 봐도 더럽고 음침해 보이는 범죄자와 한 공간에 있으려니 노르딕 부인은 토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맞은편 상대는 노르딕 부인을 보며 가래가 끓는 듯한 혐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도 독 팔다가 잡혀 왔나?”

    노르딕 부인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저런 범죄자와 대화하는 게 치욕스러워 오히려 입을 굳게 닫았다.

    “나는 얼마 전에 예쁜 아가씨한테 독을 팔았는데 당신 그 아가씨랑 닮았어, 끌끌. 특히 갈색 눈동자가 닮았어. 난 또 그 아가씨가 잡혀 온 건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군.”

    순간 다이애나가 떠오른 노르딕 부인은 맞은편 죄수에게 질문했다.

    “나와 닮은 아가씨?”

    죄수는 낡은 로브를 벗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흉측한 얼굴을 보이며 노르딕 부인에게 말해 주었다.

    “얼마 전 독약을 사 간 아가씨랑 닮아서 하는 말이야. 대공가에서 왔다고 말했지. 아무래도 잘못되었나 봐. 그러니 이렇게 내가 끌려온 거겠지. 자네 닮은 그 아가씨가 은발 머리 여자를 잘 죽였는지 궁금해지는데, 낄낄.”

    노르딕 부인은 ‘은발 머리 여자’라는 말에 메이아를 떠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한테 통하는 미약을 구하고 싶다 했는데 말이야. 내가 그런 걸 팔 리가 없잖아. 끌끌, 난 독약만 파니깐. 대공은 살아 있는 거 보니 여자를 먼저 죽였나 궁금하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독약을 사 간 사람의 이름이 다이애나였던가…… 다이아였나…….”

    “안 돼. 아닐 거야. 안 돼.”

    노르딕 부인은 망연자실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속으로 수십 번 다이애나를 외쳤다.

    정신을 차린 뒤에 큰소리로 간수를 불렀다.

    “내 딸 다이애나를 불러 줘! 제발! 다이애나, 내 딸!”

    독약을 사 간 적이 없어야 해!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

    노르딕 부인은 계속 울부짖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간수가 찾아와 “알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그렇지만 다시 온 간수의 말에 노르딕 부인은 주저앉았다.

    간수가 한 말은 “영애께선 저택에 안 계셨습니다.”였다.

    그 말을 들은 노르딕 부인은 창살을 붙잡고 서럽게 울며 다이애나 이름을 계속 불렀다.

    하지만 곧 다이애나는 기사들 손에 붙잡혀 감옥에 끌려왔다. 그 모습을 본 노르딕 부인은 사색이 되어 울부짖었다.

    “다이애나!”

    “엄마, 난 억울하단 말이야, 흑흑!”

    억울하다고 계속 말하는 다이애나를 차갑게 쳐다보는 기사들의 손길은 거칠었다.

    “독방에 가두라는 명이 있다.”

    “엄마! 나 좀 살려 줘!”

    다이애나가 끌려가는 모습에 노르딕 부인은 창살을 붙잡으며 울었다.

    “아가!”

    “엄마!”

    그녀의 비명은 노르딕 부인의 심장을 파내기 충분했다.

    “우리 다이애나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노르딕 영애는 독약으로 공녀를 살해하려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기사는 이야기해 주었다. 과정은 말하지 않았다.

    무수한 상상이 노르딕 부인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기 충분했다.

    “타국이라 하지만 그분은 고귀한 혈통의 하츠벨루아 공작 가문의 공녀이십니다. 카르펜 제국에서 공녀님을 시해하려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건 우리 선에서 끝날 외교 문제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노르딕 영애를 엄벌에 처하고 대공 각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노르딕 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녀님 문제를 떠나 대공가에 독약을 가지고 들어온 것 자체가 큰 죄이기도 합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대공 각하에게 제발 제 딸아이를 살려 달라 전해 주십시오.”

    노르딕 부인은 창살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어두운 지하 감옥으로 내려온 테오도르는 감옥 창살 앞에서 산발이 된 노르딕 부인 앞에 섰다.

    “대공님…… 다이애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독약이라니 말이 안 됩니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테오도르는 노르딕 부인이 듣고 싶은 말과 다른 질문을 했다.

    “라키아 남작이 인신매매하는 걸 알고 있어. 노르딕 부인도 연관이 있나?”

    “제가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딸아이의 목숨을 살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노르딕 부인은 울먹거리며 사정했다.

    “대답에 따라 목숨은 살릴 수도 있겠지.”

    “저는 인신매매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야기만 듣고 묵인해 주었을 뿐입니다.”

    테오도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라키아 남작을 인신매매로 처벌할 때 증언해. 그러면 노르딕 영애의 수명은 길어질 거야.”

    노르딕 부인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타국의 공녀를 시해하려는 것만으로도 사형이다.

    다이애나가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증거가 뚜렷하다면 이미 죽은 목숨과 같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떠나 테오도르에게 억울하다고 백번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노르딕 부인은 그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노르딕 부인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자신에게 인신매매업에 대한 정보는 묻지 않고 증언만 하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이내 생각을 지웠다. 라키아 남작을 팔아 딸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안살림을 도맡아 대공가를 도와준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목숨이라도 살려 주고 싶었어.”

    “흑…….”

    *

    쥬안은 양탄자로 돌돌 말아 숨긴 한 여자를 데리고 플로렌스 대공가에 도착했다.

    “쥬안, 고생했어.”

    “아닙니다.”

    돌돌 말린 양탄자를 풀자 금발의 미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몸은 삐쩍 말라 있고, 머리에는 피딱지들이 그득하며 팔과 목에는 손바닥 모양의 멍들이 가득했다. 누가 보더라도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었다.

    “어서 오세요, 라키아 남작 부인.”

    “절 구해 주신 분 맞으시죠?”

    스텔라의 도청으로 알게 된 사실은 라키아 남작의 세 번째 부인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녀를 팔아 버린 것을 알게 되자마자 메이아는 쥬안을 보냈다.

    <제 부인은 팔아…… 아니, 죽었습니다.>

    부인을 팔았다는 말을 얼버무리는 그의 간사한 말에 메이아는 몹시 화를 냈다. 사랑까지 아니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물건보다 못한 존재로 팔아 치웠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했다.

    메이아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식사 먼저 하시죠.”

    라키아 남작 부인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자마자 군침을 흘리며 홀린 듯이 의자에 앉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않고 두 손으로 음식을 집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몇 입 먹지도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서럽게 울며 배에 손을 댄 채 메이아에게 고백했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비참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끄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바닥에 머리를 계속 박으며 오열했다. 지옥 같았던 그곳에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피해자만이 가진 깨지 않는 악몽이다.

    “레베카.”

    울고 있던 레베카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른 메이아를 쳐다보았다.

    “현재 라키아 남작 부인은 레베카입니다. 그는 당신이 죽었다 말했지만 죽은 부인을 사망 신고도 안 했습니다.”

    레베카는 흠칫했다.

    “결국 임신으로 인해 휴양 다녀왔다 말하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레베카, 남은 인생 편하게 남작 부인 소리 들으면서 살고 싶지 않나요? 더불어 당신이 꾸고 있는 악몽도 되돌려 주고 싶지 않나요?”

    메이아는 레베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살고 싶습니다. 끅…… 복수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피해자인 걸 알아요. 라키아 남작은 갚을 수 없는 빚을 만들어 레베카의 가문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보다 더한 능멸을 주었죠.”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쳐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 냈다.

    “라키아라는 가문 성이 싫다면 다른 가문 성을 내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배 속의 아이가 남작 가문의 후계자인 건 변하지 않습니다.”

    레베카는 한참을 서럽게 울고 난 뒤, 메이아가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라키아 남작이 관리하는 인신매매 관련된 모든 서류는 제 비밀 공간에 있습니다.”

    “비밀 공간이 어디죠?”

    “제 비밀 공간…… 끅.”

    “참지 말고 울어요.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요.”

    다시 레베카는 울었다. 그녀의 울음이 진정될 때까지 메이아는 조용히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학대를 받아 왔다. 온종일 울어도 메이아는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흐느낌을 멈추고 레베카는 말했다.

    “어머니 무덤에 숨겨 놨습니다.”

    레베카 헤덴.

    레베카의 결혼 전 이름이다.

    유복한 집안. 상냥하고 다정한 부모님과 충심 깊은 사용인들과 귀여운 남동생, 그리고 미래를 약속한 연인까지 남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모든 불행은 한 번에 레베카를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부도.

    어머니와 남동생의 의문사.

    떠나가 버린 연인.

    집요한 빚 독촉.

    라키아 남작은 레베카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레베카 영애. 나와 결혼하면 사용인들에게 퇴직금을 챙겨 주고, 빚을 없애 주겠소.>

    그의 눈에 담긴 번들거리는 욕망은 더운 날 손에 묻은 끈적거리는 녹은 사탕 같았다.

    <사용인들 퇴직금과 이름만이라도 헤덴 가문을 지켜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대신 내 말을 잘 따라 주면 되오.>

    그는 분명 약속을 지켜 주었다.

    결혼하기 전 사용인들에게 퇴직금을 주었고 모두 ‘좋은 곳’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결혼한 뒤 남작 부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라키아 남작은 술만 먹으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했다.

    때리는 건 일상이고, 억지로 잠자리를 강요했다. 거절하는 순간 또 매질을 당했다.

    그의 비열한 웃음이 많아질수록 그녀는 울며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거지? 어머니! 아버지! 레오나드! 유모!>

    눈을 감았다가 떠도 악몽은 계속되었다.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악몽 속에서 현실인지, 꿈인지 무엇을 부정하고 어디서부터 잊어 가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아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을 느끼는 건 나에게 ‘사치’다.

    나의 모든 시간은 무의미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생각나는 행복한 그 시절.

    돌아가고 싶다.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다. ‘누나’ 하면서 해맑게 뛰어오는 남동생도, 그걸 보며 웃어 주는 부모님도 그런 우리를 지켜 주던 사용인들도, 누구도 내 곁에 없다.

    응답하지 않은 신에게 빌어 본다.

    ‘악몽에서 깰 수 있길.’

    꿈에서 만나는 어머니가 상냥한 목소리로 ‘사랑한다’라며 안아 주었다. 그럴 때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다시 한번 간절히 신에게 기도한다.

    ‘꿈이라면 깨지 않길.’

    하지만 신은 없었다.

    그에게 매일 복수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복수를 한다는 건 나에겐 ‘소설’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소설’. 내 마음속 희망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가는 ‘소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나만 알고 있는 ‘소설’을 이젠 결말짓기로 했다.

    누가 보면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결말일 것이다.

    무정하게 무너지는 마지막 마음을 지키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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