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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9화 (79/163)

79화

애쉬와 라키아 남작은 크게 싸웠다.

그것도 여자 한 명 때문에 말이다. 노르딕 부인은 그 일 때문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애쉬에게 메이아를 포기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는 그녀를 포기하기 싫습니다.>

관심 없는 척하더니만, 실상 욕심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깟 여자가 뭐라고.’

결국, 화가 난 라키아 남작은 대공에게 쓸 미약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애쉬! 라키아 남작님에게 사과하렴!”

“싫습니다.”

노르딕 부인은 끝내 대공에게 먹일 미약을 얻지 못했다.

라키아 남작은 공녀만 손에 넣고 돌아가겠다고 선전포고했다.

“내가 대공가에 온 이유는 대공께서 불러서 왔을 뿐입니다. 대공비가 누가 되든 나랑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미약 맡겨 놨습니까?”

그 말에 노르딕 부인은 발끈하며 말했다.

“인신매매에 대한 걸 입 다물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노르딕 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라키아 남작은 대꾸했다.

“인신매매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분들’에게 살해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노르딕 가문이 될 겁니다. 부디 입을 조심하시길.”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한 시녀가 들어왔다. 테오도르가 노르딕 부인을 찾는다고 말하고 물러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녀와서 하죠, 라키아 남작님.”

“뭐, 그러시죠.”

노르딕 부인은 테오도르 부름에 집무실에 왔다.

“노르딕 부인.”

“예, 대공 각하.”

“안살림은 이젠 안 맡아도 돼. 그러니 이젠 돌아가도록.”

그의 말에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떨어진다 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

안살림을 맡지 않으면 다시 가난해진다.

노르딕 부인은 다급히 말했다.

“안살림을 타국의 공녀님에게 계속 맡기신다는 말입니까? 대공 각하.”

테오도르는 노르딕 부인의 뻔뻔한 소리에 속에서 역겨운 쓴 물이 올라왔다.

노르딕 부인의 눈에 빤히 보이는, 호의로 감싼 뻔한 욕망들에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난다.

“타국의 공녀가 아니야. 앞으로 플로렌스 대공비가 될 사람이지.”

테오도르의 대공비 선언에 노르딕 부인은 크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평소보다 다른 그를 엿본 것 같았다.

뭔가 차갑고, 오싹하다. 날 선 가위가 종이를 날카롭게 잘라 낼 듯한 눈빛이다.

“달라지는 건 없어.”

갑자기 불러서 집무실에 왔더니만 안살림 신경 쓰지 말고, 집에나 가라고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달라진 그의 분위기가 신경 쓰였지만 노르딕 부인은 짜증이 더 많이 났다.

다이애나를 대공비로 앉힌다거나, 자신이 계속 안살림을 맡는다거나, 메이아를 쫓아낸다거나!

아직 원하는 건 하나도 얻지 못한 상황이라 더 답답했다.

“대공비는 아무나 앉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주제넘은 말을 하는군.”

얼음장같이 서늘하게 떨어지는 한 마디에 노르딕 부인은 입술을 짓이겼다.

테오도르의 싸늘하게 식어 버린 눈빛으로 노르딕 부인을 응시했다.

“가신들의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 합니다. 타국의 공녀께서 받으실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테오도르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답답함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노르딕 부인은 입술을 깨물고는 말이 이어 나갔다.

“그러면 안살림 인수인계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건 괜찮죠. 대공 각하?”

방금까지는 타국의 공녀 운운하며 당황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인수인계?

솔직히 인수인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메이아가 너무 일을 잘해 주고 있다.

테오도르는 노르딕 부인이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해 인수인계 이야기를 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 줘야 하기에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노르딕 부인이 그간 플로렌스 대공가에 바친 많은 노고를 절대 잊지 않겠네.”

노르딕 부인은 그동안 횡령으로 모은 돈들을 아쉬워하는 생각을 애써 숨기며 답했다.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와 대공가 일을 돕겠습니다.”

*

아그니타는 자신의 삶 중에서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이애나 아가씨 피부는 마시멜로와 같이 부드럽고 뽀얗고. 정말 아름답다는 표현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후후.”

아그니타는 다이애나가 듣기 좋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아 그것은 그냥 내숭에다가 화장발이에요.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4일 전부터 굶는다니까요! 아주 독한 여자예요.”

“생긴 것부터가 독하게 생겼어.”

아그니타는 부들거리는 자신의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계속 메이아의 험담을 이어 갔다.

험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가씨의 명령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아그니타, 당분간 네가 노르딕 영애의 시녀가 되어 줘야겠어.>

메이아의 말에 아그니타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제가 무슨 잘못 했는지 알려 주시면 고치겠습니다. 버리지만 말아 주세요, 아가씨.>

혹시, 테오도르에게 새로 항목을 더 추가한 약혼자 62가지 테스트를 하고 있던 게 걸린 걸까?

분명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설마?

아그니타는 슬픈 눈동자를 보이며 메이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그니타, 내가 가족 같은 사람을 버릴 리가 없잖아. 너에게 임무를 하나 주려고 해. 이 임무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꼭 맡겨야 하는 일이야.>

신뢰!

그 말 한마디에 아그니타는 눈물을 멈추고 방실방실 웃기 시작하다 이내 곧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곁을 떠나기 싫습니다.>

<아그니타, 다이애나 영애는 날 죽이려고 해.>

<아가씨를 죽이려고 하다니요!>

<날 정말 죽이려고 해. 대공님에게 드레스 선물 받는 걸 질투하고 있어. 그녀는 대공비 자리를 노리고 있거든. 내가 없어져야 대공비가 될 거라 믿는 모양이야.>

아그니타는 메이아의 말을 듣고 비틀거렸다. 분노가 서린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감히 아가씨를.>

생각만 하더라도 분노가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못생기고 화장 지우면 오크같이 생긴 게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 아가씨 목숨을 노리다니!

<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아가씨.>

아그니타의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주며 메이아는 입을 열었다.

<쥐덫 위에 치즈를 올려 두면 돼.>

<쥐덫에 치즈요?>

<쥐덫의 설치는 쉽지만 그 위에 치즈를 올리는 건 쉽지 않아. 자칫 치즈를 잘못 올리면 쥐덫을 재설치해야 해.>

<네.>

아그니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메이아는 매혹적으로 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그니타는 내 사람이야. 내 사람은 실수하면 안 돼.>

<네, 아가씨, 맡겨 주세요.>

메이아는 매혹적으로 웃으며, 가까이 다가온 아그니타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현재.

쾅! 벌컥.

다이애나 방을 거칠게 문을 열고 노르딕 부인은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깜짝이야! 엄마, 왜 그래?”

“다이애나, 엄마는 화가 나 미치겠다!”

“무슨 일인데?”

“대공께서…….”

입을 열려던 노르딕 부인의 눈에 아그니타가 들어왔다. 그리곤 입을 닫으며 다이애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엄마, 이 아이는 괜찮아. 대공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고, 메이아한테 학대받던 불쌍한 아이야.”

“공녀한테 학대를 받았다면 반대로 공녀를 모셨던 아이구나.”

“그렇습니다, 부인. 저를 때리다가 마음에 안 든다며 쫓아내셨습니다.”

“엄마, 아그니타는 너무 불쌍하고, 몸에 상처들도 많아.”

아그니타는 밤에 쥬안과 검 수련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 생긴 상처들을 다이애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상상하게끔 내버려 두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이 순간을 견딜 수가 있다.

빨리 쥐덫에 치즈를 올린 다음에 메이아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신뢰를 사야 한다.

“제법 쓸모도 있고, 눈치도 빠른 아이야. 대공비가 되면 시녀장으로 두고 싶을 만큼.”

“다이애나 아가씨.”

아그니타는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빛 연기를 펼치며 무릎을 꿇었다.

“다이애나 아가씨야말로 대공비에 어울리시는 분입니다. 만에 하나 공녀가 대공비가 된다면 전 이곳을 그만둬야 합니다.”

아그니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연신 하품을 하며, 눈물을 최대한 짜내 보았다.

“다이애나 아가씨가 대공비가 되신다면 전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저에게는 심신이 좋지 않은 친오빠가 있습니다.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서 돌볼 사람이 필요해요. 불쌍한 오빠, 끄읍…….”

제정신이 아닌 친오빠 쥬안을 상상하며 슬퍼하는 아그니타에게 다이애나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대공비가 된다면 시녀장으로 만들어 줄게.”

“아가씨…….”

“나는 엄마와 이야기 해야 되니 잠시 나가 있어 주겠니?”

뺨에 흐르던 눈물을 쓱 닦은 아그니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이애나에게 답하며 나갔다.

짧은 시간 노르딕 부인과 대화를 나눈 후, 다이애나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가씨,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니야.”

노르딕 부인이 한 이야기에 다이애나는 초조했다.

라키아 남작은 애쉬 때문에 크게 화를 내며 미약을 맡겨 놓았느냐며 으름장을 놓았다.

‘미약이 있어야지만 대공비가 될 텐데…….’

테오도르와 합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약이다.

“아가씨.”

“응?”

“심신이 좋지 않은 저희 오빠에게 먹일 약이 떨어져서 지으러 가야 해서 그러는데 잠시 의원에게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약?! 의원?’

“약을 지어 주는 의원 실력이 좋니?”

아그니타는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약 지어 주시는 의원분이 실력이 뛰어나서 플로렌스령에 오게 된 거예요. 그 의원은 못 만드는 약이 없다고 하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확실히 약 효과가 좋아서 요즘 오빠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 뭐예요.”

아그니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못 만드는 약이 없으시데요. 약초 조합의 달인이세요.”

다이애나는 생각했다. 약을 만드는 의원이라면 남자들 몸을 주체하지 못할 미약 만드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을까?

“아그니타, 나도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그 의원 좀 만나 볼 수 있을까?”

아그니타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이며 우왕좌왕했다.

“아가씨, 어디가 편찮으신 거예요!”

“지금 이렇게 내가 아파할 시간에 네가 이야기한 실력 좋은 의원을 데리고 와 줘.”

“아가씨, 그분은 얼굴에 흉한 화상 자국이 있어서 움직일 수 없으세요…….”

“귀족이 불러도 안 오는 사람인 거야?”

“예……, 실력이 좋지만 은둔하시는 분이라…….”

“그렇다면 날 그와 만나게 해 줄 수 있겠니?”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저 다녀와도 될까요?”

미약이 없으면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다이애나는 즐겁게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 가서 물어보고 오렴. 이 일이 잘되면 아그니타 너는 시녀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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