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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8화 (78/163)
  • 78화

    라키아 남작이 집무실에서 나가자마자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라키아 남작과 있을 때는 차갑고 무뚝뚝했던 얼굴이 지금은 푸딩처럼 흐물흐물해지고, 표정에선 꿀이 흐르는 것 같았다.

    “푸링 님 오셔서 마중 나가셨던 거 아닙니까?”

    “네, 그러다 라키아 남작을 만났어요. 스승님은 현재 지하 감옥에 계세요.”

    “그렇습니까?”

    “루인츠 혓바닥을 좀 더 검사하겠다 하셨어요. 저녁 식사도 감옥에 가져다 달라 하셨어요.”

    “푸링 님이 와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메이아와 눈이 마주치자 뭐가 그리 기쁜지 테오도르는 빙긋 웃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인데 그렇게 웃으니 메이아까지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테오도르의 미소는 마치 심장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처럼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쥐덫은 잘 설치되었습니까?”

    그의 질문에 메이아의 머릿속에 라키아 남작의 음흉한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잘 설치돼서 곧 잡힐 거예요.”

    “전 쥐들을 덫으로 몰아넣기 위해 나가라 말할 겁니다.”

    메이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쥐들을 조급하게 만들 생각이시군요.”

    현재 원하는 걸 얻지 못한 그들에게 나가라고 말을 한다면 분명 초조해질 것이다.

    “조급해지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 그걸 노릴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노르딕 부인은 안살림을 맡고 싶어 하고, 노르딕 영애는 대공비를 탐내고 있고, 애쉬 영식은 당신을 넘보고 있습니다. 거기다 라키아 남작까지 내 연인에게 관심을 보이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역겹고 추악한 쥐새끼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게 싫다. 쳐다보는 그 눈동자를 모두 뽑아 길거리에 뿌리고, 그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대공가의 사용인들 모두가 메이아를 좋아해서 걱정인 테오도르다.

    그녀의 시선을 뺏기고 싶지 않다.

    그들이 말을 걸면 메이아는 자신을 향했던 시선을 그들에게 돌린다. 그게 몹시 싫다.

    주제도 모르고 그녀를 넘보는 쥐새끼들도 문제다.

    테오도르는 몸 안의 피가 다 빠져나가도 응어리지는 분노 때문에 죽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와 연인이다. 남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 그녀와 약혼식도 성대하게 올릴 것이다. 테오도르는 커다란 몸을 숙여 그녀에게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녀린 몸을 꼭 끌어안았다.

    아름다운 은발을 쓰다듬고 나서 다시 입을 맞추었다. 달콤한 체향이 코끝을 스쳤다.

    “메이아 공녀님은 제 연인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 당신이 가라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할게. 곁에만 있게 해 줘.’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메이라고 부르기로 했잖아요, 테오.”

    “알겠습니다, 메이.”

    메이아는 넋이 나간 채 자신을 껴안고 있는 테오도르의 몸을 꼭 끌어안고 다정하게 등을 쓸어 내렸다.

    “윽.”

    메이아의 손길에 테오도르는 허리 부근에서 낯선 오싹함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절제해야 한다는 듯이.

    그는 그녀의 몸을 떨어뜨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몸이 밀려 난 메이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테오, 왜 그래요?”

    “하아, 아닙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평소보다 더 새빨개진 그의 눈가를 바라본 메이아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선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메이아가 주는 자극에 테오도르는 그녀의 두 뺨을 커다란 손으로 감싸며 열기로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합니다, 메이.”

    고백하며 메이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메이아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메이아를 두 팔 사이에 가둔 테오도르는 그녀의 입술을 서서히 덮었다. 모든 마음을 보여 주고, 애정을 퍼붓고 싶었다.

    매 순간 그녀를 만난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평생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제 목줄은 당신이 쥐고 있습니다.”

    “목줄 끊고 어디 가지 마세요.”

    그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살거렸다.

    “목줄 끊지 말아 주십시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독점욕에 그의 입맞춤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메이아의 입술을 완전히 뒤덮은 그의 커다란 입이 그녀의 몸속 뿌리까지 한 번에 삼키고 먹어치울 것 같았다.

    이 이상 계속 입을 맞춘다면 이성을 놓아 버릴 것 같았다.

    테오도르는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하여 황급히 몸을 비틀며 그녀의 몸과 떨어졌다.

    그는 상기된 뺨을 보이며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금방 오겠습니다.”

    테오도르는 황급히 집무실 밖을 뛰쳐나갔다.

    메이아는 당황하며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왜 저러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

    저녁 시간.

    입맛을 돌게 하는 해산물 음식이 계속 나왔지만 라키아 남작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메이아가 있었다.

    메이아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의 진한 육즙이 맛있었는지 눈매를 곱게 접으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라키아 남작은 그 모습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흠.”

    테오도르의 헛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라키아 남작의 시선은 다시 메이아를 향했다.

    그 모습은 꼭 메마른 사막 위를 정처 없이 걸어 다니다가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사람 같았다. 라키아 남작은 메이아의 머리부터 얼굴까지 요모조모 훑어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굉장히 못마땅했다. 아니,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이렇게 더럽고 찜찜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녹아 생각이란 게 없어질 것만 같았다.

    메이아는 고개를 돌리며 라키아 남작에게 물었다.

    “라키아 남작님,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꾸 쳐다보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라키아 남작님.”

    그녀는 요리사가 정성껏 구운 스테이크를 썰어 입으로 가져간 뒤 연신 맛있어하며 활짝 웃었다.

    마찬가지로 초대를 받은 애쉬 영식도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라키아 남작 또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테오도르의 심기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애쉬 영식, 그리고 라키아 남작, 내 연인을 왜 계속 쳐다보는 거지?”

    라키아 남작은 답했다.

    “이 세상 미모가 아닌 아름다움이라 자꾸 눈이 갔습니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대공 각하.”

    테오도르의 눈이 애쉬를 향했다.

    “저도 라키아 남작님과 같은 이유입니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테오도르는 배고픈 맹수가 눈앞에 먹이를 발견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은 꼭 입만 조심하라는 법은 없어. 라키아 남작, 애쉬 영식.”

    더는 자신의 연인을 보지 말라는 테오도르의 살벌한 경고였다.

    그렇게 식사 시간이 끝나고, 라키아 남작은 애쉬를 조용한 응접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애쉬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라키아 남작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애쉬 영식,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여자에게 통하는 미약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여성 노예들을 다룰 때 아주 좋은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쓰실 생각입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라키아 남작이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물었다.

    “여자에게 통하는 미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노예들한테만 쓰죠.”

    납치당한 노예들이 반항하거나 자살하지 못하도록 먹이는 것이 미약이다.

    미약을 먹는 순간 몸은 인형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하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하다.

    부작용으로 미약에서 깨어나면 정신 놓는 일도 있고, 혀 깨물고 자살하는 노예들도 있지만, 상관없다. 부족해진 노예만큼 사람을 납치하면 그만이다.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애쉬 영식, 미약을 누구에게 쓸 것인지 정확히 말해 주십시오.”

    애쉬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침묵에 라키아 남작의 기분 역시 편치 않았다.

    “공녀님이 제 여자가 된다면 대공께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라키아 남작은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기가 막혔다.

    미약을 써서 공녀를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애쉬의 말에 라키아 남작은 이가 으드득 갈렸다.

    “미약을 먹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알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녀는 제 노예가 되는 거죠.”

    라키아 남작은 천장을 한번 보다가 하아, 하며 짜증 섞인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미약을 꼭 애쉬 영식이 먹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애쉬의 질문에 그는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공녀님에게 미약을 먹이는 건 제가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애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남이 보면 참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확실히 이해된 건 라키아 남작도 메이아를 원한다는 거다.

    ‘그녀는 내 거야. 너 따위한테 주지 않아!’

    그녀를 가지는 건 애쉬 본인이어야만 했다.

    “그녀는 제겁니다.”

    그의 말에 라키아 남작은 킬킬킬 웃었다. 누가 들어도 저속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하하, 애쉬 영식, 이제 와서 내 거?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제정신으로 하는 이야깁니다. 라키아 남작님은 유부남이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에 세 번째 부인을 팔아……. 아니, 죽어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또 결혼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네 번째 부인을 공녀님으로 결정했습니다.”

    애쉬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미약은 내가 알아서 먹일 테니 내 네 번째 부인에게 관심 두지 마시고 이만 물러가십시오.”

    애쉬의 얼굴은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는 라키아 남작이 오면 미약을 얻고, 공녀를 침대에 끌고 들어갈 계획에 신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네 번째 부인으로 결정했다며 메이아는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꺼지란다.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나서도 안 되는 현실이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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