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5화 (75/163)
  • 75화

    메이아는 테오도르와 함께 지하 감옥으로 내려와 루인츠를 만나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루인츠를 기다렸다. 테오도르는 바로 그녀의 뒤에 섰다.

    그리고 루인츠가 고문관들의 손에 붙들린 채로 나타났다.

    “루인츠, 오래간만이야.”

    “살려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습니다.”

    루인츠는 메이아를 보자마자 덜덜 떨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 이외 모든 동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걸 보았다. 많은 사람을 죽여 놓은 여자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테오도르 또한 겁이 났지만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마법으로 사람을 죽인 그녀가 루인츠 눈에는 더 무서웠다. 공포 아니, 두려움 그걸 모두 초월한 암흑을 보았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공녀님.”

    목소리를 높이는 루인츠의 어깨를 고문관이 거칠게 잡아 눌렀다.

    “컥.”

    메이아는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루인츠는 흠칫하며 떨었다.

    “나는 대공님처럼 착하게 심문하진 않아. 네가 저지른 죄가 있으므로 발목을 자르고, 손목을 자르고, 눈알이 뽑혀도 나는 부족하다고 말할 거야.”

    온몸의 솜털이 설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루인츠는 몸을 움츠리며 벌벌 떨었다.

    ‘죽을지도 몰라!’

    루인츠 머릿속에는 오로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저 여자는 아무렇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 살인마다.

    “살려 주십시오.”

    “루인츠, 나는 그 날 널 살려 줬잖아. 대체 나에게 뭘 살려 달라고 하는 거지?”

    “그, 그게…….”

    그렇게 웃으며 사람을 죽여 놓고 대공 앞에서 연약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걸 다 봤다. 마음 같아서 ‘이 살인마!’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테오도르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봐야 하지 않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덕분이었을까.

    그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른 혓바닥을 내밀었다.

    마법사라면 눈치채 주지 않을까? 자신의 상황을!

    메이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루인츠가 내민 혀를 보았다.

    그가 알려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루인츠는 혓바닥을 보인 뒤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좌에서 우로 그으며 죽는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테오도르는 의아하게 쳐다봤다. 감히 혓바닥을 내밀고 자리에서 쓰러지는 모습은 오히려 그녀를 욕보이는 것 같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루인츠…….”

    “잠깐만요. 대공님.”

    “네.”

    “그가 저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자리에 쓰러져 있던 루인츠는 벌떡 일어나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 파는 곳에 가면 내가 찾고 싶은 와인이 있을까?”

    그는 와인 가게라는 말에 동요를 감출 수가 없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갑니다.”

    루인츠를 바라보던 메이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미세한 마력이 혓바닥에서 느껴졌다. 그것도 어둡고 찝찝한.

    그렇다면 말을 돌려 질문하는 수밖에 없겠다.

    “얼마 전 옷감을 파는 곳이 망했어. 로먼이 대공가를 상대로 가짜 옷감을 팔았거든. 속상하지만 혹시 와인 가게도 옷감 가게처럼 속이는 게 없을까?”

    옷감 가게처럼 와인 가게도 인신매매 소굴이지?

    메이아의 뜻이 바로 그에게 잘 전달되었다. 루인츠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옷감 가게와 와인 가게 또한 플로렌스령에 숨겨진 인신매매 소굴이다.

    “혀 내밀어 볼래?”

    고개를 끄덕이는 루인츠의 눈에서 눈물을 맺히기 시작했다.

    대답을 잘했으니,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만 머리를 쓴다면 자신의 죄를 지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에 걸렸다는 걸 알아챈다면 분명 걸린 마법을 풀어 줄 것이다.

    그리고 분명 배후가 누구냐고 하겠지! 그때 눈물을 뚝뚝 흘리면 연기하면 될 일이다.

    ‘저도 노예였습니다. 억지로 혀에 마법진을 새겨 놓고 저를. 흑흑, 저도 피해자입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흑흑.’

    루인츠는 살 희망이 보이자 적극적으로 혀를 더 내밀며 보여 주었다.

    혀를 내민 그의 모습을 보고 메이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테오도르 대공님, 잠시 바깥에서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요.”

    밖으로 나온 메이아는 그에게 말했다.

    “라키아 남작이 관리하는 무역 물품이 와인 그리고 옷감이었죠.”

    “맞습니다.”

    “와인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루인츠는 심하게 동요하더군요.”

    대체 플로렌스령에 얼마나 많은 인신매매 소굴이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지만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루인츠의 혓바닥에서 느껴지는 마법의 기운이었다.

    “그의 혓바닥에 뭔가 걸려 있어요.”

    “걸려 있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 루인츠는 계속 혓바닥을 내밀며 가리키며 울먹거리고 울었다. 거기서 어둡고 음침한 마력에 혀에서 흘러나왔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게 확실해졌다. 그러니 테오도르가 고문하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어쩌면 마법사인 자신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신매매단 안에 마법사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푸링 스승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어요.”

    “마법에 걸려 있는 겁니까?”

    “마법이라 하기에는 어두워요. 더럽고 끈적거리는 그런 느낌의 마력이 느껴져요.”

    예전에 푸링이 우연히 알려 준 흑마법사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메이아 공녀님. 나중에 흑마법사를 보시게 된다면.>

    <네, 스승님.>

    <꼭 도망가셔야 합니다. 그들은 어두운 마법을 쓰며 저주를 거는 게 특기입니다.>

    <저주요?>

    <시신을 되살린다거나 사람을 죽이기 위한 저주를 겁니다.>

    <그렇지만 전 피하기 싫습니다. 제가 마법을 배우는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인걸요.>

    <흑마법사는 강해지기 위해 마법을 익힌 자들이 아니라서 그럽니다.>

    <그럼 무엇을?>

    <사람을 실험하고 저주를 거는 걸 즐기기 때문에 흑마법사가 되는 거죠.>

    <흑마법사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마법사들은 불, 물, 땅, 바람 4대 원소의 힘을 빌리지만 그들은 어둠에 힘을 빌리죠. 그래서 어두운 느낌. 더러운 늪 같은 느낌을 줍니다.>

    푸링은 그들은 잔인하고 살육을 즐기기 때문에 꼭 피해야 하며 만나게 될 일이 생긴다면 도망치라고 경고했었다.

    ‘그때 스승님한테 이것저것 물어볼걸.’

    “테오도르 대공님, 오늘부터 루인츠의 고문을 멈춰 주시고 음식을 잘 챙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유는 안 물어보세요?”

    “예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메이아 공녀님이 시키는 대로 할 것입니다.”

    테오도르의 말에 메이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더 정보가 있을 거예요.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선 숨구멍 하나쯤 뚫어 주는 게 좋겠죠.”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메이아 공녀님.”

    육체 고통만이 고문은 아니다. 고문하다 죽여도 되는 죄인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루인츠가 가진 여러 가지 정보가 필요하니 살려 두어야 한다.

    숨구멍 한 개쯤은 뚫어 줘야 한다.

    어차피 사냥이 끝나면 ‘사형’이다. 그때 가서는 살려 줄 필요가 없으니 그때까지만…….

    비참한 현실을 잠깐 도망칠 수 있도록 희망을 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살 수 있다’라는 ‘기대’를 준다. ‘기대’는 바로 ‘희망’이 된다.

    희망 고문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살 수 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 기대를 주고, 희망을 듬뿍 갖게 된 루인츠는 희망과 기대를 건 만큼 더 고통스러워 하게 될 것이다.

    죄인은 죄에 맞게 벌을 받아야 한다.

    구더기를 발견해서 밟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구더기가 말했다.

    “저쪽에 나와 같은 구더기가 많아요.”

    구더기를 따라가니 시체 위에 많은 구더기가 있더라.

    그렇다면 그걸 발견하게 도와준 구더기에게 감사하며 살려 주는 사람은 ‘없다’. 전부 치워 버릴 뿐이다. 깨끗하게.

    “숨구멍 제대로 뚫어 주세요, 대공님.”

    그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살포시 맞추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테오도르는 지하 감옥에 들어가 루인츠에게 더는 고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키는 간수나 병사들에게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저자를 고문하지 말고, 음식도 다른 죄인들과 비슷하게 챙겨.”

    “알겠습니다.”

    테오도르의 발언에 지키는 고문관들의 얼굴은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루인츠가 정확하게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저자 또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테오도르는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혓바닥이 답답해도 참아라.”

    “알아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살고 싶으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물론이죠!”

    그의 말에 루인츠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

    “스텔라.”

    “예, 대공 각하.”

    “그래서 쥐새끼들은 무슨 이야길 하고 있지?”

    테오도르가 묻는 말에 비밀 정보원인 스텔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테오도르의 명을 받고 노르딕 부인과 애쉬 영식, 다이애나 영애 이 세 명이 하는 대화를 고스란히 도청했다.

    “재현해, 스텔라.”

    스텔라는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차마 듣기에도 너무 더러운 대화를 자신이 모시는 대공님과 예비 대공비 앞에서 재현한다는 사실에 속상했다. 특히 예비 대공비를 노리개처럼 생각하는 애쉬 영식의 말을 재현한다면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이다.

    꿀꺽.

    저절로 마른침이 목울대를 지나갔다.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긴장이 되었다.

    그림자 일족인 스텔라의 특기는 ‘도청’이다. 그것도 몰래 숨어서 듣는 그런 ‘도청’이 아니다.

    스텔라는 들은 대화를 잊어버리더라도 차례대로 말할 수 있는 ‘재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재현 능력을 쓰면 대화하던 상대방들의 모든 대화가 스텔라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재현 능력에 한 치의 거짓은 없다. 그렇기에 테오도르는 스텔라의 재현을 100% 신뢰한다.

    “재현하기 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결코, 좋은 내용은 아닙니다.”

    “스텔라.”

    “네, 메이아 공녀님.”

    “괜찮아.”

    “그러면 재현하겠습니다.”

    스텔라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발끝부터 검은 기운이 나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눈동자의 초점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인형의 얼굴 같았다.

    그리고 도청한 대화들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