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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4화 (74/163)

74화

루인츠는 인신매매를 해오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돈을 벌어 매우 좋았고, 평소라면 안아 보지도 못한 계집도 안아 봤다. 짧고 굵게 사는 인생이란 이런 거라 생각하면 인생을 체념해 나갔다.

지하 감옥에 갇힌 채 물 고문, 쇠 고문, 불 고문을 비롯해 각종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를 때 성수가 한 바가지 쏟아지면 고문으로 상처받은 곳이 금방 낫는다. 처음에는 봐주려나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시작되는 고문에 로먼처럼 자백하고 싶어졌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혓바닥을 보여 주었다. 물론 혓바닥을 내보이는 건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위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발 눈치 있는 자가 자신의 상황을 빨리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다행인 건 테오도르는 제법 눈치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주니 잠시 고문이 멈췄다.

루인츠는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자신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처량하고 불쌍해서 계속 눈물만 흘리며 울었다.

“살아 있겠지?”

어두운 지하 감옥에 칠흑 같은 사내가 나타나자 지하 감옥을 지키던 고문관들은 일렬로 나란히 서며 들어온 그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대공 각하!”

“어서 오십시오!”

숙이는 고문관들을 한 번 훑어본 테오도르는 입을 열었다.

“그자의 치료는 잘 끝났나?”

“그렇습니다.”

테오도르가 지하 감옥에 내려온 이유는 한 가지다. 메이아가 인신매매단원인 루인츠를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하 감옥을 지키고 있는 간수 아힌은 익숙하다는 듯 테오도르 옆에 다양한 종류와 모양의 칼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무심한 얼굴을 지으며, 양날이 날카로운 단검을 하나 집어 들며 루인츠를 기다렸다.

덜그럭, 덜그럭.

그의 양 손목과 발목에는 무거운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루인츠를 끌고 온 고문관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무릎 꿇게 했다.

“의자에 앉혀.”

테오도르의 한 마디에 고문관은 루인츠를 의자에 앉혔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루인츠는 계속 이 말만 반복하며 혓바닥을 보였다. 인신매매단의 정보를 팔면 혓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말하는 순간에 바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거운 죄를 저질렀지만 삶에 대한 미련도 강했다. 여기서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남아 도망칠 수만 있다면…….

“루인츠.”

루인츠는 고개를 들어 테오도르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자신에게 고문할 때 쓰이는 검과 기구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지만 하도 고문을 받다 보니 이젠 본다고 해서 겁도 나지 않는다. 다만 받았던 고문의 고통에 미간만 찌푸려졌다. 어차피 그 고통만 견디면 성수를 뿌려 줄 테니 말이다.

앞에 있는 플로렌스 대공의 무심하고 차가운 눈빛은 큰 위압감을 느끼던 루인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고문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이러다 고문을 받아 죽을까 봐 두려웠다.

생긴 건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일 것처럼 순진하게 생겼지만 그건 오산이다.

고문을 하는 사람은 인상을 쓰기 마련이지만 테오도르는 인상 한 번, 표정 한 번 바꾸지 않았다. 다양한 검과 기구로 자신을 죽지 않을 만큼 몰아붙이면서 고문을 하는 편이다.

오늘은 어떤 고문을 당할지 모르겠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데 절대 입 안 열 거다.

“걱정 마. 오늘은 고문을 안 할 생각이니.”

단검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으며 테오도르는 말했다.

“조금 있으면 내 연인이 여기에 내려올 거다.”

“예?”

‘이 험한 지하 감옥에 연인이 온다고?’

루인츠는 그때 은발 머리 공녀랑 껴안았던 테오도르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테오도르의 말에 루인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그때 그 공녀님이 연인이십니까?”

테오도르는 환한 미소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맞아. 내 연인은 마법사야. 네가 자꾸 혓바닥을 내민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만나 보겠다 하더군. 마법사가 필요한 게 맞다면 고개를 끄덕거려라.”

루인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위아래로 세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내 연인에게 나한테 한 것처럼 성의 없이 대답한다면 널 죽일 거야. 그걸 알려 주기 위해 온 거다. 상당히 조심히 행동하도록.”

루인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살려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습니다.”

테오도르는 조금 전 일이 떠올렸다.

<그자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분명 입을 열지 않는 이유를 파악해야 하겠죠. 고문을 어느 정도 하신 거예요?>

대공이 직접 고문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메이아를 위험하게 만든 자인만큼 테오도르는 용서할 수가 없어 직접 고문했다. 그리고 죽으면 안 되니 지극정성으로 치료도 하고 죽지 않을 만큼 음식도 챙겨 주었다.

조금 잔인하게 괴롭힌 일이 생각이 나자 말하기가 괴로웠다. 이런 자신을 알고 메이아가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테오도르의 눈매가 살짝 좁혀지는 걸 본 메이아는 말했다.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인신매매로 잡힌 어린아이부터 수인족들까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입은 심신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에게 자비롭게 고문할 필요가 없어요. 고문이 견딜 만하니까 입을 열지 않은 것 같아요.>

테오도르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며 떨렸다. 그리고 고문을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했다. 조금 순환해서 말이다.

이야기를 들은 메이아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너무 상냥하시네요, 내 연인은.>

연인이란 말 한마디에 테오도르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을 연인이라고 했다!

기쁜 얼굴로 멍하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빙긋 웃은 메이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한 번 그자의 입을 열어 보죠.>

그녀 생각에 또 입이 호선으로 그려진 테오도르는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루인츠를 무심하고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네가 굳이 정보를 말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니, 네가 죽어도 상관없어. 그러니 조금 있다 내려오는 내 연인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켜. 모른다는 말을 개처럼 짖지 말고.”

*

아버지는 죄인을 대할 때 귀족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셨다.

<메이, 죄인들에게는 동정심을 가지면 안 된다.>

<네.>

<죄인에게 동정심은 물론 고문하게 되더라도 겁먹은 그들에게 감정을 보여 주면 안 된다.>

어린 나이의 메이아는 아버지의 말이 이해하기 위해 따라다니며 형벌을 지켜봤다.

가벼운 도둑질부터 살인까지, 죄의 무게에 따라 받는 벌도 달라졌다.

어느 날이었다.

먹을 게 없어 빵을 훔친 어린 남자아이의 손등을 30대나 때리는 벌을 지켜봐야 했다.

빵을 훔친 이유는 아픈 형이 있고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 한 명 없는 데다 돈도 없어서 배고파 빵을 훔쳤다고 했다.

<아버지, 불쌍합니다.>

<메이, 동정심을 거두어야 한다. 저 아이는 도둑질을 했어.>

<하지만 배가 고파 빵을 훔쳤잖아요. 책임을 져 주는 부모도 없고요!>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자신하고 비슷한 나이인데 그 아이는 삐쩍 말랐다.

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아이의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니 마음이 아파져 왔다.

<배고프고 불쌍해서 저지르는 범죄를 눈감아 주어선 안 된다.>

결국, 메이아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저 아이는 굶어 죽는 건가요?>

눈물 흘리는 자신을 아버지가 껴안으며 토닥여 주었다.

아버지는 빵을 훔친 아이의 손등 30대를 직접 때리며 벌을 내린 뒤에 공작저 안에서 그 아이가 일할 수 있도록 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죄를 저질렀고, 벌을 받았고, 반성했다. 피해자는 이 일을 평생 기억하겠지만, 불쌍하다며 용서해 주었단다. 그리고 저 아이가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 귀족의 역할이란다.>

정말 그때의 아버지는 참 멋졌다.

<저지른 죄의 크기는 상관없다. 피해자는 당했던 모든 일을 기억한다.>

그리곤 정말 빈곤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걸 도와주는 것 또한 귀족이라고 알려 주셨다.

<벌을 받지 않은 자는 죄를 반복한다. 메이,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정말로 죄를 저질렀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눈도 길러야 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인지, 아니면 억울한 척하는 죄인인지.

그걸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만 했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공평하게 바라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무수히 들었던 이야기 아니, 배웠던 한 ‘과목’이다.

“테오도르 대공님.”

“예.”

“전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메이아 공녀님은 정의롭고 용감하십니다. 그리고 친절하십니다.”

생각을 물어볼 줄 알았는데, 칭찬이 나오자 그를 쳐다보았다.

“대공님, 제가 친절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느낀 공녀님은 친절하십니다. 다만 저에게만 친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친절하게 대한 것 같지 않은데.”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말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 지나가는 시녀들도, 시종들도, 베나블까지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안다. 그게 몹시 싫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초조해져만 간다.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마음이 너무 무겁게 침전되며 불안감에 휩싸인다.

자신에게만 친절하고, 자신만 보고, 자신에게만 웃어 주고, 오로지 자신만을 안아 주면 좋겠다.

“공녀님은 친절합니다, 무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려다보는 그녀만 보면 흐릿한 시야도 선명해진다.

왜 보물을 숨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보물이다. 남들이 볼 수 없게 숨기고 싶다.

그렇지만 영롱한 보석은 아무리 숨겨도 어둠 속에 빛을 내는 법이다.

그렇다면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을 내 입 속으로 삼켜 버리면 내 속에서만 빛나지 않을까?

그녀가 이런 마음을 알면 도망칠까?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얼굴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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