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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1화 (71/163)
  • 71화

    <테오도르 대공님.>

    <네, 메이아 공녀님 무엇이든 이야기해 주십시오.>

    <카르펜 제국으로 오셔서…….>

    <네.>

    <저에게 청혼서를 넣어 주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직후 테오도르는 눈물을 보이며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 너무 좋아 벅차오르는 심장이 더욱 아파졌다.

    그리고 저녁 식사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중에 메이아의 성인식 드레스를 자신이 구매해 선물해 주기로 했고, 메이아도 그 제안을 수락했다.

    누군가 노크를 하지 않았더라면 밤새 이야기를 했을 거다.

    “돈은 플로렌스 대공가가 지급합니다. 금전적인 비용 생각 하지 마시고 아낌없이 최선을 다해 드레스를 만들어 주십시오.”

    메이아는 싱그럽게 웃으며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대공님, 디자이너 클레리라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만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식사 이후, 집사 베나블이 테오도르 다가와 살짝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 일인가요? 편히 다녀오세요.”

    “맞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식당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다이애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공님하고 무슨 사이세요?”

    어린아이가 자신이 먹을 과자를 빼앗긴 표정을 짓고 물어보는 식의 유치한 질문이었다.

    “노르딕 영애, 얼마든지 제게 질문을 하셔도 좋지만 질문에는 항상 예의를 갖추세요.”

    “타국에서 오신 공녀님에게 저는 최대한 예의를 차려 드리고 있습니다.”

    메이아는 작게 혀를 찼다.

    테오도르가 나가자마자 표정 싹 바꾸고 얄밉게 말하다니. 어지간히도 현재 상황이 싫고, 질투가 난 모양이다. 아주 바짝 약이 오른 게 눈에 보였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 있게 웃어 주는 것이 상대방의 속을 더욱 긁어 놓을 수 있다.

    그리고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은 화를 쉽게 낸다. 화를 내다 보면 생각이란 게 짧아지고, 실수하게 된다.

    “저는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타 제국에서 온 하츠벨루아 공녀님.”

    다이애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메이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허리를 곧게 펴고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날카롭게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메이아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디아애나가 원하는 반응은 이게 아니었다. 화를 낸다거나 또는 말투가 그게 뭐냐는 등등 지적하며 같이 맞받아 칠 줄 알았다.

    화가 나게 해서 자신을 때리게 하려고 했다. 그러면 돌아온 테오도르 품에 안겨 울려고 계획까지 세웠다.

    다이애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노려보며 메이아의 눈치를 살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메이아 시선을 돌려 클레리라를 쳐다보며 입이 열렸다.

    “클레리라.”

    “네, 공녀님.”

    “요즘 남성들이 입는 제복도 만든다고 했죠?”

    “네, 록벨리온 공작님과 그 약혼녀분께서 시리우스 제국의 황태자 전하 탄신 기념일 날 연회장에서 같은 색상의 연인풍 옷을 입고 참석하셨지요. 그 후에 약혼 사이인 분들께서 제작 문의를 많이 주셨답니다.”

    메이아의 우아한 눈매가 가느다랗게 휘며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디자이너 클레리라, 록벨리온 공작이라면 전쟁광 소드 마스터 말씀하시는 거죠?”

    “예, 약혼녀분이 로엔그린가의 영애세요.”

    “로엔그린가라면 물의 중급 정령사 율리아나 영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연인끼리 서로 어울리는 옷을 입은 약혼자와 약혼녀라…… 너무 예쁘겠어요.”

    “제가 다음에 올 때 그분들이 입었던 디자인 그림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볼을 살짝 붉힌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성인식 날 같이 연인 느낌을 주는 옷을 입어 보자 말할 생각이다. 만에 하나 입는다고 말한다면 클레리라에게 그의 제복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너무 기대됩니다, 클레리라.”

    “저도 빨리 공녀님만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합니다.”

    뺨이 분홍빛 살구처럼 물들어 가는 메이아를 보자마자 바다의 커다란 해일처럼 엄청난 영감이 클레리라의 마음과 몸을 강타했다. 클레리라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말리지 않았다.

    “공녀님 저에게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호호.”

    “전 클레리라의 드레스를 좋아하니까요.”

    “영광입니다, 공녀님.”

    메이아는 생긋 웃으며 클레리라를 계속 칭찬했고 드레스에 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다이애나는 식탁 밑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동안 클레리라에게 가져다준 돈이 얼마인데! 그런데도 메이아만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겠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입술에 저절로 꾹 힘이 들어가고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화가 주체 되지 않았다.

    둘의 대화가 잠시 멈추자 그 틈에 다이애나는 클레리라를 불렀다.

    “디자이너 클레리라…….”

    “예, 노르딕 영애.”

    “혹시 하츠벨루아 공녀님 드레스 때문에 제 드레스를 못 만들거나…… 그럴 일은 없겠죠?”

    클레리라는 공손하게 머리를 살짝 숙였다 올리더니 그녀에게 시선을 두며 답했다.

    “아무래도 못 만들어 드릴 것 같습니다. 신상 드레스 또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찬물이 머리부터 쏟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메이아의 드레스만 만들겠다는 그녀에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제가 신상 드레스 항상 기다리는 거 잘 아시잖아요!”

    “다이애나!”

    노르딕 부인은 자리를 박차 일어서며 언성을 높였다.

    다이애나의 드레스 문의에 클레리라가 이 자리에서 ‘좋습니다’라고 수락이라도 한다면 자작가는 드레스를 주문할 만큼 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렇게 입을 조심하라고 말했거늘 섣부른 말을 내뱉다니!

    “어머니.”

    “조용히 하렴.”

    생각을 멈춘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다이애나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대단하신 분이야.’

    옆에 있던 베나블은 메이아의 언행에 당장 박수라도 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 냈다.

    보통 영애들이라면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무시를 당했으니 화가 나고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무슨 사이냐’라고 묻는 건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이아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훌륭하다는 말로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베나블은 당장 테오도르와 결혼식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베나블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메이아를 바라보며 또 한 번 충성을 맹세했다.

    ‘저분 아니면 절대 대공비로 인정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저분이 대공비가 안 된다면 집사직에서 사퇴한다.’

    굳은 결심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킨 베나블은 옆에 있는 시녀장 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한나의 눈에도 자신과 똑같은 충심을 읽을 수가 있었다.

    가장 귀족다운 분을 모시는 것 또한 사용인들의 복이며,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레스 선물을 하고, 그걸 받아 준다는 건 두 분의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갔다는 뜻이다.

    한 방에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방에 남자와 여자!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러다 대공가의 후계자도 생길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더욱 한 방에 밀어 넣을 계획을 세웠다.

    베나블은 상상만 하더라도 너무 두근거리고 설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당장 저택 밖으로 나가 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다.

    ‘봐라! 저분이 우리 대공비님이시다.’

    베나블 머릿속에서는 메이아는 이미 ‘대공비’였다.

    창피와 모욕을 당한 다이애나는 계속 입술을 짓씹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직 테오도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뜨며 메이아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열렬한 시선을 받은 메이아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노르딕 영애, 저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저를 그리 빤히 쳐다보시는 건가요?”

    생긋 웃는 메이아의 모습은 여신같이 아름답다고 애쉬가 말했지만 다이애나 눈에는 여신이 아니라 마녀 같았다.

    “아닙니다.”

    식당 문을 열리고 잠시 볼일을 보고 온 테오도르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메이아만을 부르며 다가갔다.

    “메이아 공녀님.”

    “테오도르 대공님,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물론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메이아의 입가에는 삐딱한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노르딕 영애도 클레리라에게 드레스를 주문하고 싶다 해서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메이아의 말을 듣자마자 테오도르의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던 목소리가 바다 깊은 곳까지 가라앉은 듯 변하고 말았다.

    “노르딕 부인.”

    “네, 대공 각하.”

    “자작가는 요즘 사업이 잘되나 보군.”

    그의 말에 노르딕 부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제, 제 딸이 실언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노르딕 부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메이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예의 밝은 노르딕 영애가 드레스 문의는 할 수 있는 데 그게 실언인가요?”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지 문의하면서 먼저 입을 디자인을 고르고 견적을 낸다. 같은 드레스라도 입는 사람의 취향이 따라 디자인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레스 문의를 한다고 무조건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돈이 없는 영애들이 가지고 싶은 드레스를 문의만 하고 구매 안 하는 예도 많아요, 대공님.”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 영애들이 혹시 문의만 넣고 구매 안 한 드레스가 있다면 제가 대신 구매하곤 해요.”

    테오도르는 왜 구매했는지 물었다.

    “그래야 생일날 선물로 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귀부인과 영애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받는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셨겠군요.”

    테오도르는 감탄했다. 그 많은 영애들과 귀부인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며 그녀들이 원하는 선물을 준비하는 모습에 괜히 사교계의 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노르딕 부인, 다이애나 영애의 말은 실언이 아닙니다.”

    “예…….”

    “예의 바른 다이애나 영애의 마음 잘 알았어요.”

    갑자기 지목당한 다이애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이아를 쳐다봤다.

    “네?”

    “당분간 제 드레스에만 집중해야 하는 클레리라에게 신상 드레스 문의를 할 정도면 얼마나 그녀의 드레스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네요.”

    테오도르는 얼음처럼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기가 막히는군.”

    분명 방금 전에 그녀의 드레스를 잘 만들어 달라 신신당부했던 테오도르였다.

    그런데 신상 드레스 문의를 한다?

    다이애나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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