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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68화 (68/163)
  • 68화

    노르딕 부인은 계속 씩씩거리며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메이아 욕을 했다.

    “고 앙칼진 하츠벨루아 공녀를 어찌 내쫓지! 애쉬, 좋은 생각 없니!”

    애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생각하던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그 공녀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침대에 앉은 다이애나는 울분을 토했다.

    “내 드레스가 중고 드레스가 되어 버렸어! 날 비웃었어. 대공님은 날 쳐다도 안 본다고.”

    “다이애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대공이 혼자 계실 때 유혹했어야지.”

    “몰라! 몰라! 모른다고!”

    오늘을 위해 해 온 과정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이애나는 서글퍼졌다.

    자신을 이렇게 차갑게 거절한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언제나 거절하는 건 본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단칼에 거절한 테오도르에게 매력을 느꼈다.

    벼랑에 높게 핀 꽃이 더 아름다우며 가지기 어렵지만, 그래도 가질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없다.

    “엄마, 나 대공님 너무 탐나.”

    “탐난다고 대공님이 너랑 결혼할 줄 알아?”

    “결혼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될 거 아니야.”

    “무슨 방법으로?”

    “침대에 숨어들까?”

    분명 혈기왕성한 나이의 남자라면 자신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농담으로 하는 거 아니겠지? 귀족 영애로서 옳지 못한 거다. 그러다 거절당하면? 가문 망신이 따로 없는 거다.”

    “단둘이 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다. 잊지 마, 대공 각하는 열일곱 살이야.”

    “열일곱 살이어도 가문의 주인인데 마시고 싶다면 마시는 거지!”

    “대공 각하가 아까 네 부탁도 거절했는데 술 마시자고 하면 좋다고 하시겠어? 다이애나, 냉정히 좀 생각이란 걸 좀 해.”

    “몰라! 오빠가 생각해 봐. 아니면 그 공녀인지 뭔지에게 누명이라도 씌워 내쫓아.”

    애쉬의 원래 작전은 ‘메이아를 유혹하기’였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매우 어리석어진다.

    그래서 자신에게 빠지게 하여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젠장!”

    그렇지만 테오도르가 메이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시선 또한 언제나 메이아에 고정되어 있다. 자신들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단둘이 만들 틈이 없다.

    무엇보다 메이아가 자리에서 일어서기라도 하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한다.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서재예요.>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메이아가 어디를 가든 에스코트를 하고 있다. 개도 그렇게까지 주인을 쫓아다니진 않을 거다.

    그리고 명백하게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이다. 메이아 또한 테오도르를 바라볼 때 다정해진다. 자신을 바라볼 때와는 완전 달랐다. 그 둘은 서로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유혹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틈이 안 보이고, 암담해졌다.

    애쉬는 한숨을 쉬고 노르딕 부인은 다이애나와 메이아에 관한 뒷담화를 하던 사이, 어느새 늦은 오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

    메이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마법 가방 안에서 드레스 한 벌을 꺼냈다.

    이 드레스는 클레리라의 작품이다. 그리고 카르펜 제국 내 딱 한 벌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유는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레리라가 메이아에게 선물로 준 드레스는 아름다운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나는 정교한 디자인이었다. 천 또한 얇아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을 입을 수 없다.

    무릎까지 잡힌 라인과 함께 허벅지부터 퍼져 내려가는 스커트에 레이스와 화려한 자수가 더해져 몸의 라인을 날씬하고 고혹적으로 보여 줄 수가 있다.

    일명 ‘인어 드레스’라고 불리며, 몸매가 되지 않은 사람은 주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마른 사람도 입을 수 없다. 오히려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아가 이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나타났을 때 클레리라는 엄청난 문의량을 받았고, ‘메이아 공녀님처럼 입지 못하잖아요’라는 이유로 환불 또한 많았다.

    그래서 디자이너 클레리아는 인어 드레스 허리선에 귀여운 러프를 달아 주는 것으로 해서 많이 판매할 수 있었다.

    “아그니타.”

    “네! 아가씨.”

    “이 드레스를 입을 거야.”

    “어머나! 인어 드레스잖아요.”

    아그니타도 클레리라의 인어 드레스를 잘 알고 있다.

    메이아가 한 번 인어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간 이후에 많은 디자이너가 영감을 얻어 인어 드레스와 비슷한 드레스 작품을 만들어 선물로 보냈던 기억이 났다.

    다들 입고 싶지만 입을 수 없는 드레스! 오로지 메이아만 소화할 수 있는 드레스!

    아그니타는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분됐다.

    “아가씨, 이거 정말 입으실 거죠? 너무 떨려요!”

    메이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울리게 머리와 화장을 부탁해.”

    “당연하죠! 아가씨!”

    아그니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메이아의 고운 머릿결을 매만지며 행복해했다.

    “아가씨, 인어 드레스 입으실 거면 이번에는 꽃송이 장식 핀으로 해서 땋아서 머리를 올려 볼까요?”

    “아그니타, 좋은 생각이지만 꽃송이 장식 핀은 빼고 잔머리 하나 흘러내리지 않게 깔끔하게 올려 줘.”

    “머리를 땋지 말고 올릴까요?”

    “머리카락을 전부 깔끔하게 올릴 수 있으면 땋아도 괜찮아.”

    인어 드레스는 얼굴선 그리고 목선과 쇄골 라인을 그대로 살려 줘야지 더 고혹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을 한 뒤 메이아는 드레스를 착용하고 전신 거울을 보았다.

    “괜찮네.”

    “아가씨, 조금 살이 빠지신 것 같습니다.”

    “먹는 양을 늘릴게.”

    “네, 오늘 저녁 많이 드셔야 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을 기대하는 중이야.”

    즐거운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메이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복도 모퉁이 뒤에 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는 데 한두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걸려요.>

    <기다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메이아에게 기다리지 말란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고민은 깊어졌다.

    방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기다릴까? 고민하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대로 조금만 서 있으면 메이아가 곧 나올 것이다.

    방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나오는 시간조차도 아깝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다.

    혹시 문을 열고 메이아가 나올지 모르니 복도 모퉁이 뒤에서 힐끔힐끔 방을 쳐다보며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지나가던 시녀 엘리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있던 테오도르를 발견하고 놀란 나머지 인사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시녀 리타가 엘리의 입을 막으며 지나갔다.

    “대공 각…….”

    “쉿!”

    시녀 엘리는 자신의 입을 막은 리타를 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뒤에 여러 사용인이 모퉁이에 숨어 있는 테오도르를 발견하고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능숙하게 그를 모르는 척하며 지나갔다.

    그것이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방이 언제 열릴지 모르기에 복도 벽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다 숨기를 반복했다.

    메이아의 방문이 열리자 테오도르는 문 앞까지 달려 나갔다.

    “어? 대공님. 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그는 정면으로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얀 피부와 푸른 눈동자가 아주 잘 어울리는 짙은 남색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그녀는 아름다웠다. 고귀한 여신이 자신 앞에 강림한 것 같았다.

    게다가 상체부터 무릎까지 딱 달라붙어 몸매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드레스여서 그녀의 어깨선과 목선이 훤히 보이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왠지 쳐다보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렇다고 안 쳐다볼 수도 없다. 에스코트도 한두 번 한 게 아닌데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그녀가 걸어 다가올 때마다 바닥에 퍼지는 드레스 밑단은 은은하면서 화려한 빛 덕분에 은하수의 별처럼 반짝이며,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비춰 주었다.

    “테오도르 대공님, 설마 절 기다리신 거예요?”

    빨개진 얼굴로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리는 테오도르의 모습을 보니 자신을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떨어져 있는 게 너무 싫습니다. 1분이라도 곁에 더 있고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는 요즘 극도로 자신과 떨어져 있는 걸 싫어했다.

    한 번의 포옹을 허락한 이후에는 틈만 나면 손을 잡고 끌어안는 것마저 주저하지 않고 있다. 물론 테오도르가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그와 닿는 게 싫지 않았다.

    “곧 성인식 때문에 잠시 카르펜에 다녀와야 하는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러세요.”

    “카르펜 제국에서는 성인식 날에 각 제국의 귀빈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귀빈으로 참석해서 공녀님 곁에 있을 겁니다.”

    메이아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카르펜 제국으로 갈 수 있겠네요.”

    그는 입꼬리를 한없이 위로 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함께 갈 겁니다.”

    “지낼 곳은 저희 공작저면 충분하겠네요.”

    메이아는 미소 짓는 테오도르가 매우 귀여워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수줍은 듯이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손을 내린 테오도르는 좀 더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공녀님한테 기대도 되겠습니까?”

    “오늘은 말하고 기대시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테오도르는 크게 웃으며 순식간에 메이아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저와 함께 가는 걸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 껴안으면 그는 도통 떨어질 줄 모른다.

    자신을 껴안은 테오도르의 등을 메이아는 토닥토닥해 주며 말했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가요.”

    “그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리엔느 부인 기억하시나요? 엘른 항구에서 만난.”

    “물론입니다.”

    “마리엔느 부인과 디자이너 클레리라는 매우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절 많이 좋아해요. 언제나 좋은 작품은 저에게 제일 먼저 보내곤 해요. 그래서 참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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