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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66화 (66/163)

66화

앞에서 이야기를 듣던 노르딕 부인은 화를 내며 말했다.

“공녀님, 암살자 변장이라니요! 제 아들딸들이 맞습니다.”

메이아는 고개를 돌려 노르딕 부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말하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정확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메이아는 한 발자국씩 노르딕 부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 노르딕 부인의 가족들을 죽이고, 시체를 숨긴 뒤에 암살자들이 부인의 가족들로 변장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메이아의 차가운 눈빛에 노르딕 부인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렸다. 메이아가 한 발자국 다가오면 노르딕 부인은 한 발자국 뒤로 계속 물러났다.

“그럴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암살자들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노르딕 부인은 목소리를 결국 높이고 말았다.

“저처럼 평범한 귀족이 암살자를 만날 일은 없습니다.”

“평범한 자작 가문에서는 만날 일이 당연히 없겠죠. 하지만 테오도르 대공님은 만날 일이 있습니다.”

메이아는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노르딕 부인은 이해력이 다른 분들과 다른 것 같으니 어렵게 말하지 않을게요. 똑바로 들으세요. 플로렌스 대공가를 모시는 가신 가문으로서 방문을 하시는 거라면 기사들이 들어오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권유를 거절한 뒤에 방문한 사실을 대공님께 알려 달라고 기사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가신의 마음가짐입니다.”

메이아는 애쉬 곁의 다이애나를 보았다. 표정이 볼만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다이애나 자작 영애가 입고 있는 것은 노르딕 부인의 1년 치 월급을 단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지만 구매할 수 있는 디자이너 클레리라의 고급 드레스였다.

착용한 브로치, 장갑, 그 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꽤 공들여 꾸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분명 테오도르와 처음 설레는 만남을 가지고 떨리는 첫인사를 하리라 상상하며 치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꽤 공들인 치장과 모습은 테오도르에게 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최악의 첫인상을 남겼을 거다.

“노르딕 부인과 그리고 애쉬 영식과 다이애나 영애. 이 셋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 일주일 근신을 한 뒤에 재방문하세요.”

메이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도 이와 같은 실수를 한다면 근신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메이아는 그 말을 남기고는 테오도르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결국, 노르딕 부인과 다이애나, 애쉬는 마차를 타고 다시 대공가 입구 밖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됐다.

“대체 이게 뭐야!”

다이애나는 울분을 토해 냈다.

이날을 위해 몸매 유지를 위해 음식을 굶으며, 고가의 명품 드레스를 구매했다.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숨쉬기조차 어려운 코르셋을 견디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만 저택 앞에서 바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테오도르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에서 끝나 버렸다.

오늘 입었던 드레스를 또 입을 수 없다. 다시 고가의 드레스를 주문하고 몸매 유지를 위해 굶어야 한다. 너무나도 짜증이 올라왔다.

“오빠는 왜 그 여자 손등에 입맞춤한 거야!”

다이애나는 울분이 애쉬를 향했다.

“오빠의 행동이 나와 엄마에게 얼마나 큰 창피를 줬는지 알아?”

다이애나의 칭얼거림은 애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햇빛을 받은 화사한 은발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하얀 피부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에 귀족다운 걸음걸이부터 도도한 눈빛과 카리스마 있는 모습까지, 애쉬의 심장이 소란스럽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다이애나, 우리가 실수한 것이 맞아.”

“지금 그 공녀 편드는 거야?”

“나는 현실적으로 말하는 거다. 어머님, 분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체서 경과 내가 친한 사이다 보니 기본적인 걸 잊었어. 그래! 실수한 거 맞아. 그렇다고 지금까지 헌신해 온 가신을 이렇게 쫓아낼 필요는 없는 거잖니!”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귀족 영애 때문에 사용인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노르딕 부인은 며칠을 잠 못 이루는 날을 보냈다. 다이애나는 플로렌스 대공가 방문 전에 물과 약간의 묽은 수프, 과일로 식욕을 조절했다. 그런데 일주일을 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폭식을 해 버렸다.

정확히 7일이 지난 뒤에 노르딕 부인과 다이애나와 영식이 플로렌스 대공가 입구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기사들이 앞에 서 있었다.

“누구십니까?”

“노르딕가의 아만다입니다.”

기사는 아무런 말 없이 입구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노르딕 부인은 메이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와 같은 실수를 한다면 근신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자신보다 어린 공녀에게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대공님께 노르딕가의 아만다와 그의 아들딸들이 왔다 알려 주십시오. 허락을 받은 뒤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 응접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플로렌스 대공가 정문 바로 옆에는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의 1층에는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작은 응접실과 손님들 응대를 위한 사용인들이 항시 대기 중이다.

노르딕 부인은 입구에 서 있는 기사 한 명에게 말했다.

“응접실로 안내해요.”

저택 입구까지 가는 데만 30분, 오는 데만 30분, 족히 1시간은 걸릴 게 분명하니 응접실에서 시녀들이 가져다주는 시원한 냉차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는 게 낫다.

“배고파.”

“다이애나, 대공 각하 앞에서 예쁘게 인사하기 전까지는 참아.”

다이애나는 꽉 낀 코르셋과 하이힐 때문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무엇보다 플로렌스령 자체는 너무나도 더운 곳이다. 덥고 배가 고프니 짜증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걸을 때마다 꼬리뼈와 허리뼈가 비명을 질렀지만, 참아야만 한다. 대공비가 되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은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이애나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지만 플로렌스 대공의 허락을 받으러 간 기사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시간이 흘렀다.

“대체 언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다이애나는 배가 고플 대로 고픈지 짜증밖에 나지 않았다. 시녀가 다이애나의 목소리를 듣고 응접실로 들어와 말했다.

“다과를 더 준비해 드릴까요?”

다이애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지금 내가 먹게 생겼어? 눈치껏 행동해!”

시녀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노르딕 영애.”

“죄송하다면 다인 줄 알아?”

옆에 있던 노르딕 부인은 짜증이 난 다이애나를 달랬다.

“다이애나 사용인들한테 그러면 못 써.”

“짜증 나! 난 배고파 죽겠는데 계속 응접실에 앉아 있어야만 하고!”

옆에 있던 애쉬 또한 자신의 여동생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늦은 오후, 기사인 레슬리가 들어와도 좋다는 대공의 허락을 알려 주자 그들의 기다림이 끝이 났다.

*

얼마 전 메이아가 테오도르의 포옹을 한 번 받아 준 이후, 그는 두 번 세 번 아니, 틈만 나면 자신을 껴안기 시작했다. 방실방실 웃으며 고백하는 그에게 그만 떨어지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테오도르가 대번에 울적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점점 마음이 약해졌다. 왠지 어린아이의 간식을 빼앗은 기분이 든다는 거다.

내가 이렇게나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그런 것까지 모두 테오도르 한정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 수 있다. 테오도르의 커다랗고 순수한 검은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포옹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그의 자연스러운 손깍지도, 다가오는 그의 커다란 품도 받아 주게 된다.

그리고 요즘 들어 점점 그는 뻔뻔함이 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의 손만 닿아도 얼굴이 빨개지며 도망 다녔지만, 지금은 오히려 몸에 더 닿고 싶어 안달이 난 강아지 같았다.

예전에 순수했던 그 남자는 어디 간 거지? 내가 너무 틈을 준 것인가?

무엇보다 계속 이렇게 끌어안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그만 껴안으세요.”

“……전 껴안은 게 아닙니다.”

“이게 껴안은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제가 기댄 겁니다.”

“누가 봐도 껴안으신 건데요.”

“아닙니다. 마음 심약한 저는 공녀님에게 제 마음을 기댄 것뿐입니다. 그게 다만 껴안는 것처럼 느껴지셨을 겁니다. 사람이란 마음을 기대게 되면 껴안는 것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잡고 집요한 시선을 주면서 엄지손가락으로 메이아의 아랫입술과 턱을 살살 쓸어 가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메이아 공녀님이 절 거부하지 않아서입니다.”

테오도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메이아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쓸던 그의 엄지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화들짝 놀란 테오도르는 순식간에 돌처럼 굳었다. 물론 얼굴은 새빨갛게 익은 자두 같았다.

“곧 노르딕 부인과 애쉬 영식 다이애나 영애가 도착해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헛기침하며 정신을 차렸다. 도발하려다가 오히려 당했지만 계속 당하고 싶은 마음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 좀 다시 메이아 공녀님에게 기대도 되겠습니까?”

그 말의 끝으로 테오도르는 다시 메이아의 어깨를 감싸 끌어안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노르딕 부인와 애쉬, 다이애나는 대공저 문 앞까지 올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부집사 켈베인은 그들에게 인사를 한 뒤 응접실로 안내했다.

배가 고파서 얼굴을 찌푸린 채 힘없이 소파에 앉은 다이애나의 모습을 보며, 노르딕 부인은 딸의 옆구리를 찌르며 표정 관리를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애쉬는 혹시나 메이아가 들어올까 문 쪽을 힐끔거렸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테오도르와 메이아가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노르딕 부인과 애쉬, 다이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며 인사를 했다.

노르딕 부인은 메이아를 흘깃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녀님도 오셨군요, 호호.”

“예, 저번에 그렇게 헤어진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번에 공녀님 덕분에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좋게 표현해 주셔서 고맙군요, 노르딕 부인.”

“……예.”

말에 가시가 느껴진 노르딕 부인은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입매에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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