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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64화 (64/163)
  • 64화

    “엄마,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다이애나, 수업은 끝났니?”

    “너무 힘들어.”

    “그래도 대공비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거란다. 뭐든지 완벽해야 한다.”

    “오빠도 내 입장 돼 봐!”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날렵한 눈매를 가진 노르딕 부인의 자랑스러운 유학파 출신의 아들인 애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군말 없이 다 배우도록 해.”

    노르딕 부인이 읽었던 편지를 애쉬가 건네받아 읽으면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머니, 쟈스민 부인이 현재 대공가에 없으니 다시 대공가로 들어가셔서 안살림을 보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대공님에게 인사도 드릴 겸 그리고 다이애나는 직접 안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제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타국의 공녀쯤이야,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죠. 누명 씌워 쫓아내면 그만이니.”

    애쉬의 말에 다이애나는 즐겁게 맞장구쳤다.

    “맞아, 가신 가문을 더 믿어 주시겠지, 타국의 공녀 말을 듣겠어?”

    “타국 공녀의 신분에 마법사라…….”

    애쉬 역시 마법사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누명을 씌우고 내쫓길 때 자신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만약 미인이라면 공녀 출신이니 부인으로 두어도 좋을 것 같고, 그게 아니라면 코르티잔처럼 만들어 가지고 놀아도 즐거울 것 같다. 아름답다는 전제하에.

    “그래, 자랑스러운 내 아들 애쉬. 그 공녀는 대공가에 가서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자.”

    대공은 아름다운 딸과 첫눈에 반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메이아를 쫓아내기 더 쉬울 수도 있다.

    “대공비는 우리 다이애나가 되어야지.”

    눈 맞을 다이애나와 테오도르 생각에 노르딕 부인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타국의 공녀쯤이야. 노르딕 부인이 보기에는 다이애나가 제일이다.

    “다이애나가 예비 대공비로서 미리 안살림을 맡아 미리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내가 꼭 대공님을 유혹해 볼게. 엄마, 플로렌스 대공가로 같이 가자. 응? 내가 대공비 되면 안살림 비용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자신의 딸이 대공비가 된다면 권력뿐만 아니라 재력도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그 생각이 드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다이애나, 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얼굴과 몸매를 가꿔야 한단다. 그리고 수업도 빠짐없이 듣고, 대공비는 뭐든지 완벽해야 해.”

    다이애나는 만개한 장미꽃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신 있어, 엄마.”

    모든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설설 기며 아부를 한다. 아름답다는 말 듣는 것조차 지겹다.

    마음에 드는 남자들은 있지만 플로렌스 대공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남자들이다.

    “난 대공비가 될 거야, 엄마.”

    *

    테오도르와 메이아는 집무실에서 가볍게 차 한잔을 하며 베나블이 가져다준 노르딕 부인의 편지를 읽었다. 그가 다 읽은 뒤 메이아에게 편지를 건넸다.

    메이아는 편지를 읽기 위해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은 뒤 그 안에 티스푼을 넣었다. 더는 마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테오도르 또한 티스푼을 넣었다.

    베나블은 조용히 허리를 숙이고 나서 티스푼이 든 찻잔을 쟁반 위에 담은 뒤,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노르딕 부인은 편지로 플로렌스 대공가의 안살림을 굉장히 걱정하는 편지를 보냈다.

    더불어 가신으로서 자기 아들과 아름다운 딸을 이번에 꼭 인사를 시키고 싶다고 했다.

    “노르딕 부인이 안살림을 타국의 공녀에게 맡기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게 편지에 잘 적혀 있네요. 몸이 아파도 와서 일을 보겠다라…….”

    메이아는 읽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쥐들이 알아서 와 주니 다행입니다.”

    “당연하죠. 쥐들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풀어 놓았잖아요, 테오도르 대공님.”

    하지만 메이아가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노르딕 부인의 편지 속 아름다운 딸이었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여자? 얼마나 아름답길래,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어나기 충분했다.

    미혼의 대공에게 아름다운 딸에 대한 호소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노르딕 부인의 딸을 만나 본 적이 있으세요?”

    “없습니다.”

    “쥐가 고양이 자리를 탐낸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고양이 자리에 앉는다고 쥐가 고양이가 될 순 없죠. 쥐는 결국 쥐일 뿐이니까요.”

    “그 쥐가 매우 아름다우면요?”

    “고양이 눈에는 다 똑같은 쥐일 뿐입니다.”

    메이아는 옆에 다가온 테오도르를 올려다보며 뺨을 어루만지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죠. 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고양이 눈에는 간식거리겠죠.”

    메이아의 손에 더욱 자신의 뺨을 비비면서 테오도르는 말했다.

    “고양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쥐를 죽인 뒤 물어다 가져다주는 충성스러운 동물이기도 하죠.”

    가신들의 만장일치로 뽑힌다면 자작 가문의 딸이라 하더라도 대공비가 될 수 있다.

    노르딕 부인이 자신의 딸을 대공비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뻔히 편지에 다 보였다.

    쥐가 맹수의 자리를 넘본다는 생각을 하니 왜인지 기분이 불쾌해지고 짜증이 났다.

    “빨리 오면 좋겠네요. 어미 쥐와 새끼 쥐들.”

    그들은 분명 자신을 적으로 볼 것이다. 어떻게서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시비를 걸겠지만 굳이 싸울 생각은 없다. 고양이가 쥐랑 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물론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는 하지만 그건 쥐에게 물린 고양이의 잘못이다.

    메이아는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노르딕 부인은 테오도르의 답장을 받자마자 짐을 꾸리고, 마차를 타고 플로렌스 대공가에 도착했다. 당연히 자신의 아름다운 딸 다이애나와 똑똑한 아들 애쉬까지 함께 말이다.

    웅장한 플로렌스 대공가의 문 앞에는 잘 관리된 갑옷 차림의 기사들이 서 있었다.

    기사들은 노르딕 부인을 보자마자 인사했다.

    “노르딕 부인, 안녕하십니까?”

    “어머, 체서 경! 그리고 채플 경.”

    “이젠 몸은 괜찮아지신 겁니까?”

    “네, 물론이죠. 다시 대공가에서 열심히 일하기 위해 왔답니다. 옆에는 제 딸과 아들입니다.”

    “노르딕 부인을 닮으셔서 다들 미남과 미녀이십니다.”

    “어머, 호호호.”

    “마차를 부를 테니 타고 들어가십시오.”

    “고마워요, 체서 경.”

    플로렌스 대공가는 입구에서 저택까지 30분 정도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만큼 넓은 땅과 거대한 저택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한 가문이다.

    대공가를 처음 와 본 다이애나는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땅과 그 부유함에 넋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공비가 되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오빠, 내가 대공비가 되면 여기 있는 게 다 내 것이 되는 거야?”

    애쉬는 다이애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당연하지. 대공가가 무역으로 버는 돈이 얼만 줄 알아?”

    “엄청나다는 건 확실히 알았어.”

    “모든 사람은 널 부러워할 거야. 대공비가 되면 이 오라비 잊지 말고. 가족만큼 좋은 내 편은 없으니깐.”

    “알았어. 오빠도 그 여자 마법사인지 공녀인지 확실히 쫓아내 줘.”

    “걱정하지 마. 이 오라버니한테 걸려서 안 넘어간 여잔 없으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이아나와 애쉬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대공가 진짜 넓고 크다.”

    “후후, 앞으로 다이애나 네가 살 곳이니 잘 봐 두렴.”

    “응!”

    다이애나는 마차 밖 풍경을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며 자신이 대공비가 된다는 상상에 사로잡혀 버렸다.

    30분 정도 달린 마차가 멈추었다. 마부의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웅장한 높이의 커다란 저택에 다이애나는 또 넋을 놓았다.

    “엄청나네…….”

    “다이애나, 촌스럽게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알았어, 오빠.”

    대공저 입구에서 지나가던 시녀가 손님이 온 걸 확인하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커다란 대공저의 문이 열리고 메이아가 걸어 나왔다.

    노르딕 부인은 베나블이나 한나 적어도 부집사 켈베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입은 옷과 착용한 보석이 꽤 있는 집안의 영애처럼 보였다.

    “어느 집안 영애일까요? 어머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새벽 같은 은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애쉬가 가장 좋아하는 귀족다운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드레스 자락이 일정하게 움직이는 건 그만큼 가장 귀족다운 걸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얀 피부에 선명한 사파이어 빛의 푸른 눈동자, 붉은 과일주 같은 입술이 매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애쉬의 가슴은 요동침을 느끼기 시작했다.

    메이아는 눈을 위로 치켜올리며 오른손을 애쉬에게 내밀었다.

    여왕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애쉬는 자신도 모르게 메이아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멋진 기사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올려다봤다.

    환한 미소를 짓는 메이아를 보자 애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저는 노르딕가의 애쉬라고 합니다.”

    “노르딕 영식의 인사 잘 받았습니다.”

    메이아는 애쉬 옆에 서 있는 다이애나와 노르딕 부인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가문의 장남이나 가주가 무릎을 꿇고 모르는 미혼 영애의 오른손에 입을 맞추는 일은 예법에 어긋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곁에 있던 같은 가문의 여성들은 가문의 장남이나 가주가 무릎을 꿇은 상대 여성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먼저 이름을 물어볼 수가 없다.

    당연히 애쉬의 행동에 다이애나는 어이없어했다.

    “오빠, 뭐 하는 짓이야!”

    다이애나의 비명에 아차 싶은 애쉬는 꿇었던 무릎을 펴며 노르딕 부인과 여동생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에 애쉬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한 행동으로 이 은발 머리의 미인에게 다이애나와 어머니가 먼저 인사를 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소개해 줘야 한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 애쉬였다.

    “여기는 노르딕가의 아만다, 저희 어머님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바로 제 여동생인 노르딕가의 다이애나입니다.”

    다이애나는 부르르 떠는 손을 진정시키며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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