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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60화 (60/163)
  • 60화

    “즐거운가 보구나, 데미안.”

    어릴 때부터 데미안은 메이아에게 유난히 집착했다.

    <너, 예쁘다.>

    열한 살의 데미안이 일곱 살이 된 메이아를 처음 보자 한 말이었다.

    그 이후부터 메이아를 쫓아다닌 데미안이었다.

    <어디 가고 있었던 거야?>

    데미안은 메이아를 본 이후부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약혼 먼저 해야겠죠?>

    <아버지께 말씀 올려주세요!>

    해맑게 웃으며 메이아와 핑크빛 미래를 꿈꾸었다. 파츠래리와 메이아의 약혼이 이야기 나오기 전까지는.

    <파츠래리 형님보다 나야! 나라고!>

    <데미.>

    <어머니! 왜 저는 안 되는 거죠?>

    왜 메이아가 자신의 신부가 될 수 없는지 알려 준 이후부터 그는 매우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리고 미친 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싫어하던 검술 연습도 열심히 했다.

    솔직히 그 어린 여자아이의 미소가 데미안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데미안에게 있어 파츠래리는 천하의 원수가 되었고, 황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덕분에 파츠래리의 경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둘은 사이가 나빠졌다. 분명한 건 데미안은 황태자 자리와 더불어 메이아를 원한다는 거다.

    어머니인 루루나 입장에서는 솔직히 불안한 마음은 있다. 데미안은 어릴 때부터 메이아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집착은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만에 하나 제 생각대로 제 의뢰를 수락한다면 저는 더욱 그녀에게 반하게 되겠죠.”

    황홀한 표정으로 데미안은 웃다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어디에 있든 기필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억지로라도…….

    “아아, 메이아.”

    지금부터 근사한 새장을 만들 거다. 새장을 가시 돋친 아름다운 장미로 감아 놓을 거다.

    누구도 다가올 수 없고 그녀 또한 아무 데도 날아갈 수 없도록.

    그 새장은 오로지 나만 열어 볼 수 있다.

    새장에 갇힌 채 자신만 오길 기다리는 그녀 생각에 데미안은 활화산처럼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메이아는 의자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쥬안에게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늦게 온 이유를 말해 봐.”

    메이아의 질문에 쥬안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답했다.

    “아그니타가 독방에 갇혀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쥬안의 말에 메이아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자기가 떠나기 직전까지 유일하게 공작저에 없었던 게 바로 ‘독방’이었기 때문이다.

    “공작저에 독방이라니 누가 그런 걸 만든 거야?”

    “메릴 공녀께서 만드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다음 궁금한 이야기를 물었다.

    “요즘 메릴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메릴 공녀는 영식들과의 티 파티를 즐겼습니다. 영식들이 주로 노는 지하 클럽을 2, 3일에 한 번씩 꼭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쿠룬달스 백작 영식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보였습니다.”

    “황후 마마는?”

    “황후 마마께서는…….”

    쥬안은 메이아가 물어보는 인물들의 현재 상황을 전했다. 파츠래리와 메릴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과 메릴이 요즘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토마스 영식이란 점, 루만은 무리한 사업으로 돈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리엔느 부인이 다쳤습니다.”

    “그녀가 왜?”

    메릴이 모피 선물을 주지 않는다며 다과 접시를 던져 마리엔느 부인이 피를 흘릴 정도로 다쳤다는 이야기 들은 메이아는 한숨이 나왔다.

    메이아가 아무리 멀리 떠나 있고 삼촌과 사촌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그녀가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일원이라는 건 변함없다. 그런데 그들의 행보로 인해 사람들이 하츠벨루아 공작가를 어떻게 생각할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수고했어, 쥬안.”

    쥬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메이아는 푸링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아그니타와 쥬안을 데리고 무사히 대공가로 와 주셨잖아요.”

    “공녀님, 제가 온 이유는 쥬안과 아그니타를 데려다주기 위해 온 것만은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데미안 황자의 의뢰 때문입니다.”

    “의뢰요?”

    푸링은 로브 안쪽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메이아에게 건넸다.

    바로 그 봉투를 열고 안에 든 의뢰서를 읽어 보았다.

    “이걸 마탑이 승인했다는 건가요?”

    “현명한 마탑은 제가 공녀님에게 의뢰서를 먼저 보여 줄 거라는 걸 알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전 같으면 이런 의뢰는 바로 반려되었습니다.”

    의지를 가진 마탑은 언제나 마법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마탑주가 새로 탄생하거나 위험한 전쟁이 발발할 때 마탑은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는 곳으로 건물 자체를 텔레포트 시킨다.

    푸링은 자신의 마법 가방 안에서 편지 한 무더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공녀님 앞으로 온 편지들입니다. 연서와 청혼서들은 태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데미안의 의뢰서를 눈동자를 굴리며 읽던 메이아는 마침내 그걸 내려놓으며 푸링에게 질문했다.

    “마탑에 등록된 마법사라면 데미안 황자의 의뢰를 받아도 된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분명 데미안 황자는 마탑에 의뢰를 하면서 의기양양 카르펜 제국으로 돌아갔을 거다.

    정말 안 봐도 뻔한 그의 야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스승님, 그를 만나 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위험할 정도로 메이아 공녀님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습니다.”

    “상당하다는 걸로는 그를 표현할 수 없어요.”

    어릴 때 무수히 당해 왔다. 아끼는 반려동물들이 그의 손에 무참히 죽었다.

    죽인 이유는 하나다. 자기에게 신경 쓰지 않고 동물을 돌보았다는 게 이유다.

    “그럼 데미안 황자의 의뢰는 제가 받겠습니다.”

    마탑에 등록된 마법사들은 의뢰서를 고를 수 있다.

    ‘나를 찾는 나의 의뢰라.’

    낭만적인 기분이 드는 메이아였다.

    쥬안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선을 다른 데 돌렸다. 아그니타 또한 한숨을 쉬며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푸링은 집무실에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메이아를 쳐다보았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없었습니다.”

    하츠벨루아가의 하나밖에 없는 고고한 공녀로 살아오면서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심지어 약혼까지도 메이아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선택이란 걸 한 적이 없었다.

    “제게 있어 선택이란 딱 한 가지 대답밖에 없었죠.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최고의 훈련을 받은 똑똑한 사교계의 꽃. 예정된 황태자비 그리고 황후감.

    그 모든 걸 만들어 준 건 전 하츠벨루아 공작 부부였던 데이빗과 바이올렛이었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절 끔찍이 사랑하신 만큼 제국에서 제일 좋은 자리인 ‘황후’로 저를 올려놓고 싶어 하셨던 거고 그 마음을 알기에 항상 ‘예’라는 대답을 했죠.”

    물론, 하기 싫다고 투정 부렸을 때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뜻을 존중하며 때때로 자유롭게 풀어 놔 주신 것도 부모님이다. 그렇지만 메이아의 반항기는 짧았다.

    그 뒤에도 ‘아니오’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그에 비해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과 본인은 큰 책임과 의무를 진 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갔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더는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에서 벗어났다.

    물론 ‘예’라고 답해도 들어 주는 부모님이 없었던 이유도 크다.

    더는 황후가 되어도 기뻐해 줄 부모님이 안 계신다. 그래서 파츠래리와의 파혼도 쉽게 받아들였다. 물론 자존심 금이 간 건 확실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가 아닌 주도권을 잡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 앞에 온 편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답은 정해져 있으니 골라 보라는 선택지’라는 게 보였다. 친하게 지내는 영애들의 편지에는 자기 가문 남자들의 장점들이 잔뜩 적혀 있을 뿐이었다.

    [메이아 공녀님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희 가문으로…….]

    [제 오라버님은 예의가 바르고…….]

    [제 사촌은 심성이 고우며…….]

    메이아는 자신 앞의 편지들을 훑어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자신을 좋게 봐서 가문의 안주인으로 와 달라는 마음이 참으로 고맙지만 현재 데미안 황자가 자신을 황자비로 맞이할 것이라 말하고 다닌다.

    메이아가 데미안과 결혼하기 싫어 카르펜 제국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더라도 그는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메이아는 어린 시절 길렀던 반려동물들에게 데미안이 그러했듯 자신과 결혼할 남자까지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아는 곧 황자비가 될 거다’라고 선언하면서 말이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메이아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위해 다른 편지도 읽어 주었다.

    “저희 가문으로 시집을 오신다면 꽃길, 돈길만 밟게 해 드릴게요.”

    모르는 사람은 말할 거다. 이 많은 귀족 영식 중 선택하라고!

    이렇게 많은 남자가 애원하는데 선택하기가 싫다고? 배부른 생각을 한다고? 무엇이 문제냐고? 그렇지만 그게 바로 문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메이아라는 사람이 아니다. 가문의 힘이 되어 줄 사교계의 꽃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위치가 필요할 뿐이다.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뻔한 속내가 다 보이는데 그걸 모를 만큼 자신은 순진한 사람이 아니다.

    좋아하는 건 자유지만 그걸 강요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그렇게 미소 짓는 메이아를 보며 푸링은 말했다.

    “어지간히도 질리신 건 알겠습니다, 공녀님.”

    메이아는 푸링이 가져온 편지들을 벽난로 불에 태우며 말했다.

    “이 편지 중에서도 나의 선택을 존중해 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몹시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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