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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9화 (59/163)

59화

메이아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테오도르의 뺨을 마저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테오도르 대공님, 자신이 한 말에는 꼭 책임지셔야 합니다.”

테오도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기쁜 듯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메이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아그니타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메이아에게 잽싸게 달려갔다.

“보고 싶었어요. 아가씨! 세상에 서재에 갇혀 계셨다니 조금만 더 빨리 안내해 달라고 할 걸 그랬어요.”

“아그니타,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어.”

“괜찮습니다. 아가씨야말로 괜찮으세요?”

“괜찮아.”

아그니타와 이야기하는 도중 베나블이 다가와 메이아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서재의 문이 안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베나블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던 메이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테이블 위에 다과와 차는 맛있게 잘 먹었어, 베나블. 그리고…….”

서재에 갇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손잡이 없는 문을 누군가 고의로 닫아 놓지 않으면 갇힐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정말 서재의 문이 안 열린다는 걸 몰랐을까? 집사.”

“그…….”

베나블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메이아는 다시 말을 이어 했다.

“집사, 다음은 안 돼.”

*

파츠래리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울고 있는 메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화내고 떼쓰는 그녀에게 질릴 대로 질려 버렸다. 아무리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열 살짜리 영애들도 하지 않은 짓을 하고 다니니 답답할 뿐이다.

메릴이 황태자비가 되고 황후가 된다면 안 봐도 뻔한 미래가 눈앞에 벌써부터 펼쳐지는 것 같았다.

무조건 사 달라고 떼쓰고, 후궁을 들인다면 울고불고 싸우고, 생각만 하더라도 끔찍했다.

대체 왜 약혼녀를 바꾸었던 걸까? 너무 후회가 된다.

“마리엔느 부인은 황태자비가 될 저에게 예의가 없어요!”

메릴은 눈물을 흘리며 파츠래리가 말할 틈 같은 건 주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다들 메이아만 찾아요. 황태자의 약혼녀는 이젠 저인데…….”

파츠래리는 메릴의 모든 말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마리엔느 부인에게 다과 접시를 던진 거란 말이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상처받고 울고 있는 저는 안 보이세요?”

파츠래리는 계속 ‘참자’ ‘참아야 한다’를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며 지금 현재 상황 또한 참고 있었다.

“마리엔느 부인이 무조건 메릴 공녀에게 모피를 바쳐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황태자비가 되고, 황후가 될 사람이잖아요. 장차 미래의 황제도 낳을 몸이라고요!”

“그것과 모피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마리엔느 부인의 모피를 입어야지만 사교계의 꽃이 될 수 있단 말이에요.”

“모피를 입는다고 사교계의 꽃이 된다니 어디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겁니까?”

파츠래리도 알고 있었다. 항상 날이 추워지면 마리엔느 부인이 메이아에게 모피로 만든 옷과 장신구 가방 등등을 만들어 선물로 보내 왔고, 메이아는 그걸 입고 다녔다.

마리엔느 부인은 오로지 메이아만을 위해 그녀가 입을 걸 따로 만들어 놓는다.

“마리엔느 부인은 디자이너입니다. 그녀의 뮤즈가 메이아 공녀일 뿐이죠.”

“전하는 제 편이세요? 아니면 마리엔느 부인 편이세요?”

메릴은 파츠래리에게 소리를 빽 하고 지르며 화를 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메릴은 오전에 있었던 일이 또 생각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메이아는 해 주고, 나는 못 해 준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닙니다, 메릴 공녀님.>

<못 해 준다는 뜻이잖아!>

마리엔느 부인의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답했다.

<올해 괜찮은 모피가 없습니다.>

<모피의 연인 마리엔느 부인께서 모피가 없다고?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메릴 옆에 있던 토마스는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들은 메릴은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한 뒤,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리엔느 부인을 노려보았다.

<흥! 달빛 야수 털 얻은 거 모를 줄 알아? 내가 바보로 보여?>

<그 털은 안 됩니다.>

달빛 야수의 털로 만든 모피 작품은 제일 먼저 메이아를 위해 만들 생각이었다.

현재 제국에는 없지만 그녀의 성인식 날 전에 선물로 보내려고 했다.

메이아의 자리를 뺏은 메릴에게만큼은 그 작품을 절대 주고 싶지 않았다.

<안 됩니다, 메릴 공녀님.>

<그러면 메이아한테도 그 모피 주지 마.>

<제가 누구에게 모피 선물을 하더라도 메릴 공녀께서는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안 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무리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라 할지라도 다음에 뵐 때는 높임말 쓰는 모습 부탁합니다.>

메릴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리엔느 부인에게 다과 접시를 던졌다. 접시에 맞은 마리엔느 부인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토마스는 메릴이 다과 접시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흰 장갑을 마리엔느 부인에게 던질 뻔했다며 위로해 줬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건 역시 그밖에 없는 것 같다.

“파츠래리 님, 저는 꼭 모피를 입고 싶어요.”

파츠래리는 심기 불편한 눈으로 메릴을 바라봤다.

권력을 앞세워 마리엔느 남작 부인에게 모피를 만들어 자신의 약혼녀에게 선물로 주라는 부탁도, 명도 내리기 싫었다.

“안 되는 거에 미련 갖지 마세요, 메릴 공녀.”

“항상 파츠래리 님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만 하시니 답답할 뿐입니다.”

“흠흠.”

메릴과 파츠래리 옆에 있었던 보좌관 앤디는 큰소리로 헛기침했다.

“메릴 공녀님, 현재 황태자 전하께서는 급하게 하실 회의가 있습니다. 이만 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황궁에서 나온 메릴은 곧바로 토마스를 찾아갔다. 그가 자주 이용하는 클럽에는 많은 영식이 있었다. 그들은 메릴를 아주 깍듯이 대하며 그녀를 즐겁게 해 주었다.

“토마스는 방 안에 있습니다.”

똑똑.

다른 영식의 말을 전해 듣고 토마스의 방을 찾아간 메릴이 노크하고 문을 열자마자 토마스가 다가왔다.

“메릴 공녀님!”

그는 반갑게 메릴을 맞이해 주었고, 둘은 만나자마자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토마스 영식, 모피를 못 가질 것 같아요. 모피를 가지지도 못한 제가 사교계의 꽃이 될 수 있을까요? 모피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는데도 황태자 전하께서 거절하셨다고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토마스는 메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약혼녀가 가지고 싶다 하는데.”

“황태자 전하와 파혼하고 토마스랑 결혼하고 싶어요.”

토마스는 메릴의 볼과 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메릴 공녀님, 당신은 큰 자리에 앉으셔야 합니다. 황태자비가 되시고, 황후가 되셔야 하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토마스.”

“사랑합니다, 메릴 공녀님.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메릴도 알고 있다. 황태자와의 파혼은 정말 큰일이며, 루만이 그걸 쉽게 허락할 리 없다는 걸 말이다.

“메릴 공녀님의 애인으로도 남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방문 안이 닫히고, 메릴은 좀 더 토마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또한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메릴은 자신의 드레스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토마스도 일어서 메릴의 드레스 지퍼를 올려 주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보내드리기 너무 싫습니다.”

“이만 가 봐야 해요…….”

토마스는 메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겨 주며 말했다.

“마리엔느 부인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제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함부로 군 마리엔느 부인을 가만둘 수 없습니다.”

“내 생각해 주는 건 토머스 영식밖에 없어요.”

토마스의 말에 감동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메릴은 끈적이는 몸짓과 손짓으로 다시 한번 토마스의 품을 찾아 애틋하게 파고들며 말했다.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을까요? 토마스, 뭐든지 말해 봐요.”

“뭐든지 말입니까?”

“네.”

토마스는 메릴의 머리카락을 지분거리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난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

토마스는 붉게 물든 메릴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

“사랑합니다, 메릴.”

*

데미안은 자신의 어머니인 루루나와 함께 즐겁게 차를 마시면서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은 웃음을 지었다. 토마스와 메릴이 한 방에서 뒹군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어미도 그 소식을 듣고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답니다.”

“이걸 형님이 알면 아주 좋아하시겠습니다.”

설마 쿠룬달스 영식과 메릴 공녀와 그런 관계라니. 이 추문을 터뜨리면 형님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할까나?

카르펜 제국의 사교계의 꽃인 메이아 공녀가 고아가 되자마자 버린 파츠래리 황태자를 모두 손가락질하며 그를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분명한 진실은 더는 황태자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좋은 걸 어떻게 쓸까?”

분명한 건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거다. 다만 한 가지 메이아만 옆에 없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약혼한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확실하게 양가 집안과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지요.”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메이아는 행운의 여신 같다.

데미안은 행운의 여신이 내어 준 손을 놓친 파츠래리가 점점 추락해 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짜릿했다.

“데미안, 그렇게 즐겁니?”

“예, 즐겁습니다.”

“메이아 공녀를 찾을 마법사는 연락이 왔니?”

루루나의 말에 데미안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없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루루나는 미소를 지은 채 찻잔을 들며 물어보았다.

“괜찮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어쩌면 제 의뢰를 받을 사람이 메이아 공녀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마법사 푸링이죠.”

분명 대마법사 푸링이라면 자신의 의뢰서를 가지고 메이아에게 갔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메이아가 그 의뢰를 수락할 것이다.

데미안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 결국 황자의 체면을 내려놓고 큰 소리를 내며 하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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