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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8화 (58/163)

58화

“일어나셨습니까?”

보기 드물게 목덜미와 귀까지 빨개진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사과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실례를 용서하세요.”

자신의 팔에서 메이아의 얼굴이 떨어지자 테오도르는 몹시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더 주무셔도 되는데…….”

메이아는 자세를 잡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풍겨 오는 그의 체향에 마음이 편해져서 눈을 감고 잠들었다고 말도 할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무방비하게 자신의 자는 얼굴을 보여 주고 말았다. 카르펜 제국에서는 자는 얼굴은 오로지 부부 사이에만 보여야 한다.

분명 유모 유디는 남자에게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을 보여 주면 책임을 져야 한다 했다.

비록 서재이긴 했지만 미혼의 남성의 팔에 기대어 잔 것은 맞으니 이 일에 책임을 져야 된다.

“왜 그러십니까……. 메이아 공녀님?”

메이아는 당황하며 말했다.

“왜 그럴까요?”

당황해서 말이 헛나왔다. 왜 그러냐고 왜 물어보냐고!

메이아는 습관처럼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뺨을 쓰다듬었다.

‘귀여워.’

자신보다 키도, 덩치도 크다.

그런 테오도르가 자신을 안달이 난 표정으로 바라보다 눈가를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귀엽다고 느껴진다.

“공녀님은 왜 자꾸 제 뺨을 왜 만지시는 겁니까?”

왜 만지느냐고? 뺨에 손을 올릴 때마다 당황하는 얼굴이 귀여우니까…….

귀여워서 뺨을 만지고 싶어서 만진다는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메이아에게 말했다.

“저도…… 뺨을 만질 겁니다.”

메이아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게 아주 좋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다.

만에 하나 뺨을 만진다는 이유로 나도 만지겠다는 말을 한다면 ‘이제부터 안 만질 거예요’라는 답변을 들을 수도 있다. 정말로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섭섭한 기분이 들겠지만 다시 만지고 싶어질 수 있도록 자신이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낼 수 있었던 큰 용기였다.

“제 뺨을요?”

메이아는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테오도르의 얼굴을 쓰다듬었는지 생각했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시리우스 제국의 대공이다. 분명 기분이 나빴다면 만지지 말라 말했을 거다.

그런데 내 뺨을 쓰다듬겠다고?

메이아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거절해야 되는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어 하는 그의 말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테오도르에게 이미 자는 얼굴까지 보여 줬다.

“네, 공녀님이 제 뺨을 쓰다듬으실 때마다 저는…….”

테오도르는 자신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그저 얼굴만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메이아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는 견디기 어렵다는 식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힘겹게 말했다.

“뺨을 쓰다듬으실 때마다 저는 미칠 것 같습니다.”

메이아가 손을 뻗어 뺨을 만질 때마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손에 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미치겠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설마 싫은 데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뜻이었을까? 그래서 ‘미치겠다’라고 말하는 것인가?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말에 질문으로 되물었다.

“그럼 저는 테오도르 대공님께서 껴안으실 때마다 어땠을까요?”

테오도르 또한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껴안기도 하고 안아 들기도 했다.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포옹을 거절하지 않은 자신 또한 문제다. 그렇지만 자신을 껴안거나 안아 올릴 때 테오도르의 표정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았다.

메이아는 자신을 걱정하며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마음에 든다. 특히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들면서 자신을 바라볼 때 말이다. 지금도 자신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계속 놀리고 싶은 기분도 불쑥 치밀어 오른다.

메이아는 미소를 지으며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이 점점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도 그녀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쿵쿵.

자물쇠 열쇠가 없어 열리지 않았던 상자가 스스로 걸어나가 열쇠를 발견하고 자물쇠를 열었다.

상자는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바닥에 자물쇠를 떨어뜨리며 ‘쿵’ 하는 소리를 냈다.

메이아 자신의 심장이 지금 딱 ‘바닥에 떨어진 무거운 자물쇠’ 같았다.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든 알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래도 왠지 그 상자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할 것 같다. 아니, 보고 싶다.

“제가 대공님 뺨을 만질 때 대공님은 ‘미칠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대공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절 포옹하실 때 그때 마음 또한 미칠 것 같으셨나요?”

그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웃으며 다가오는 테오도르에게 메이아는 강하게 말했다.

“말씀해 주세요.”

“궁금하세요? 메이아 공녀님?”

어릴 때 테오도르는 자신의 아버지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테오.>

<네, 아버지.>

<만에 하나 너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말이다. 무조건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단다.>

아버지의 말에 어린 테오도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책하며,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남자라고 억울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테오도르는 물어보았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억울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열심히 공부도 잘하고 있는데 만약에 공부한 게 소용이 없으면 억울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버지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나 검술은 노력하면 이루어지지만, 사랑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단다.>

<노력했는데도 안 이루어진다면 사랑 따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이 아버지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네, 아버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백을 하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이루어질 확률이 높단다.>

지금에 와서는 왜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 말을 했는지 모두 이해할 수가 있었다.

“메이아 공녀를 안을 때도, 제 뺨을 만질 때도, 저는 항상 미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다시 뺨을 만진다면 제 마음이 지금보다 더 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굳게 잠겨 있었던 자물쇠가 떨어진 상자는 제멋대로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있어 심장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심장을 가져간 사람은 메이아다.

테오도르는 ‘미치겠다’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왼쪽 심장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매일 부끄럽다는 듯이 피하던 평소의 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확실한 사실은 그의 발언이 가리키는 것이 딱 한 가지뿐이라는 점이었다.

“대공님께서 그런 말을 하시면 저에게 마음이 있는 거로 보입니다.”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린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말에 답했다.

“마음 있습니다.”

테오도르의 간절함을 담은 단어가 그의 입 밖으로 나왔다.

“좋아합니다.”

메이아 왼쪽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전에 쥬안이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혹시 대공님을 보실 때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거나 그러진 않으신 거죠?>

왜 쥬안의 말이 생각나는 거지?

“1분 1초라도 메이아 공녀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테오도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 그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좋아합니다.”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고백을 한 뒤에 한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꾹 눌렀다.

그리고 손을 내린 뒤, 다시 메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 제 마음에 답을 달라거나……. 저와 같은 마음이 되어 달라고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메이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매일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만 허락해 주십시오.”

메이아에 대한 마음이 더는 주울 수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매일 매일 끝도 없이 새싹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파내도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속에 자리 잡은 뿌리는 뽑아내더라도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눈 깜박할 틈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테오도르의 고백에 메이아는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자신의 뺨이 점점 뜨거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담스러울 것 같았던 그의 고백은 생각보다 전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쩌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지금 당장 답을 안 주셔도 됩니다. 저는 기다리는 거 잘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진지한 말을 듣던 메이아는 손을 들어 테오도르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빨갛게 물든 매끈한 그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감기에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손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입술에 아름다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메이아 공녀님이 절 좋아하실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 겁니다.”

테오도르의 가슴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안 된다’,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싫어할지도 모른다’ 등등의 스스로 절제하고 있었던 감정들과 마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남자입니다.”

메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활짝 미소를 띄웠다. 그녀의 미소에 테오도르는 살짝 기대감에 부풀었다.

“대공님, 고…….”

그때였다.

쾅쾅쾅!

서재 문밖의 복도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거친 노크 소리와 함께 서재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쥬안과 아그니타 그리고 베나블이었다.

소파 위에서 연인들이 할 법한 자세로 앉아 있었던 메이아와 테오도르는 갑자기 들어온 사용인들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베나블은 테오도르에게 기특하다는 눈빛을 보냈고, 쥬안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으며, 아그니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의 옷을 움켜쥐며 살벌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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