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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4화 (54/163)

54화

“공녀님이 제 심장에 칼을 꽂아도 원망하지 않는다면요?”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오도르의 말을 기다렸다.

“오히려 전 더 깊게 제 심장에 칼을 찔러 넣어 달라고 공녀님에게 부탁할지도 모릅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말하는 걸까?

“대신 절 죽이실 때는 꼭 환하게 미소 지어 주십시오.”

“왜요?”

“눈 감기 전에 미소 짓는 메이아 공녀님이라면 전 행복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을 다 하는 순간,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는다면…….

“알았어요. 꼭 미소 지어 줄게요.”

어쩌면 테오도르하고는 가족보다 더 깊은 사이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메이아는 그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의 턱을 만지다가 뺨을 쓸어 올리며 쓰다듬었다.

그의 몸이 움찔하며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메이아는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제가 테오도르 대공님을 죽일 리가 없잖아요.”

테오도르는 무척이나 눈을 크게 뜨며 메이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제 얼굴을 자주 만지시는 것 같습니다.”

테오도르의 열기를 가득 품은 시선을 메이아는 피하지 않았다.

“불쾌하신가요?”

“전혀요. 뭘 하시든 제가 공녀님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싱긋 웃어 주고는 다시 몸을 틀어 앞을 보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테오도르 또한 그녀의 곁을 따라붙으면 함께 걸어갔다.

메이아는 대공가의 안살림을 봐 주기로 결정했다. 애튼은 만세를 외쳤다.

<정말 간단하게 서류만 봐주시면 됩니다.>

가볍게 일할 생각에 기분 좋게 집무실에서 서류들을 살펴봤다. 그런데 읽을수록 서류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분명 10개의 금액은 1실버라고 적혀 있어야 하지만 10실버라고 적혀 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아도 숫자 1 옆에 0이 하나 늘어나 있다.

계산이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한번 더해 보고 곱해 보았지만 자신이 낸 정답과 비용 청구에 적힌 비용이 확연하게 달랐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메이아는 서류에 표시된 부분을 테오도르에게 보여 주었다.

“아무리 더하고 곱해도 제가 답을 낸 숫자와 다릅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가 보여 준 서류 속 체크된 부분을 보았다.

“헤만.”

“예, 대공 각하.”

“회계사를 부르도록.”

그 모습을 보던 쟈스민 부인은 메이아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타국에서 온 어린 공녀가 일을 도와주어 보았자 서류 정리 정도만 옆에서 도와줄 거라 생각을 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간단한 것부터 먼저 하죠.>

<이 부분 계산을 다시 해 보시겠어요? 계산이 복잡할 때는 500씩 끊어서 곱하고 나중에 더하면 편하실 거예요.>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정확히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모습에 쟈스민 부인은 메이아가 한두 번 이런 일을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일하는 회계 직원 매튜는 갑자기 오라는 테오도르의 말을 전해 받고 긴장한 채 그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테오도르가 책상 위에 서류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매튜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매튜는 초조하게 쳐다보며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테오도르는 그에게 말했다.

“매튜, 지금 내가 보여 주는 서류들을 회계 직원으로서 계산해 보도록.”

“……예.”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펜을 잡고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며 차분하게 계산했다.

펜을 잡은 손가락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서류를 보고 있는 매튜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먹잇감을 구석에 몰아넣은 맹수의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그에게 준 문제는 메이아가 낸 문제들이다.

<이 문제를 푼다면 그는 수학 실력은 뛰어난 거겠지만 유능한 회계 직원은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뭐가요?>

<제가 더 꼼꼼히 확인했어야 하는데…….>

<하시는 일도 많으셨고, 바쁘셨잖아요. 그럴 때 가신들에게 일을 맡기는 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어린 나이에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서류를 혼자 보고 일할 수 있을 때쯤 서류를 보고 가장 골치 아프다고 느낀 것은 바로 돈 문제였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저택 안팎의 수리 및 보수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관리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물론 청구서를 회계 직원들이 모두 받아 정리한 다음, 집무실로 올려 보낸다.

올려진 서류에 적힌 비용 처리를 확인하고 인장을 찍어야 하지만 바쁜 일이 있을 때는 노르딕 부인이 대리로 인장을 찍고 넘긴다.

“대공 각하, 문제를 다 풀었습니다.”

서류를 받아든 테오도르는 답안지를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걸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나?”

“예?”

“돼지 한 마리가 13골드. 소 한 마리가 9골드. 바닷가재 22골드. 7일 동안 평균적으로 서른네 마리 구매를 했는데 이상하지 않아? 매튜.”

“예……?”

테오도르는 형형한 눈빛으로 매튜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분명 회계 직원으로서 문제를 풀라고 이야기했는데…….”

테오도르는 뚜벅뚜벅 걸어가 매튜에게 제 얼굴을 디밀며 말했다.

“다시 풀어.”

“……예.”

매튜는 아무리 보더라도 자신이 계산한 것이 맞는데 자꾸 다시 풀라고 반복하는 테오도르의 의중이 뭔지 몰라 계속 반복해서 문제만 풀었다. 그렇게 계속 문제만 보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물었다.

“분명 계산이 맞습니다. 그런데 자꾸 아니라고 하시는 의중을 말씀해 주십시오.”

“플로렌스 대공령이 언제부터 돼지 한 마리가 13골드가 되었지?”

“……!”

“매튜라고 했죠?”

매튜는 고개를 슬쩍 돌려 집무실 의자에 앉아 문제 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메이아에게 머리를 숙였다. 마법사이지만 타국에서 온 공녀라는 사실은 이미 소개받았다.

“돼지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그리고 플로렌스령에서 나고 자란 돼지인지 그게 아니라면 타 제국에서 수입해 온 돼지인지…… 궁금하지 않으시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수학의 정답만 찾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올라온 비용 청구 서류들을 볼 때 무슨 생각이 드는지 말해 드릴게요.”

매튜의 목울대가 울렸다.

“수학 문제 푸는 선생님이 계산하신 거구나.”

같은 돼지 한 마리라도 암컷, 수컷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정말 제대로 일하는 회계 직원이라면 돼지 한 마리를 보더라도 암컷, 수컷의 구분부터 먼저 물어보는 게 맞다. 당연했다. 성별에 따라 돼지 가격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실수는 창피한 건 아니에요.”

메이아가 온화하게 웃었다. 매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예……,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네?”

“본인 실수를 모두가 알게 된다면 꽤 창피한 일이 되는 거죠.”

매튜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메이아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걸 실수라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니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회계사로서 자질을 의심받았다. 그리고 실수한 걸 사람들 앞에서 인정해 버렸다.

창피했다. 쥐구멍이 있으면 몸을 수그리고 사라지고 싶을 뿐이다. 회계사가 수학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메이아 앞에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옳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기로 하죠.”

당분간 비용 청구가 되는 모든 영수증은 메이아가 보기로 결정했다.

매튜는 할 말이 없었다. 한숨만 나왔다. 그건 매튜뿐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메이아가 낸 문제를 푼 사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 다른 회계 직원이 찾아와 문제를 다시 내 달라는 말에 메이아는 문제를 줬지만 그는 이 또한 제대로 풀지 못했다.

<미라클, 봐 봐요. 백조 깃펜이 비쌀까요? 그게 아니라면 가고일 안쪽 날개 깃펜이 비쌀까요?>

<백조 깃펜…….>

<아니죠. 가고일 안쪽 날개 깃펜이 더 비쌉니다. 구하기 어렵거든요. 그렇다면 왜 더 비싼 깃펜을 쓰지 않고, 백조 깃펜을 구입한 이유가 뭘까요?>

<그, 그게…….>

<구입한 이유를 모르면 구입한 사람에게 물어보셔서 정확하게 서류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죄송하다는 말을 들을 입장이 아니에요. 죄송하다는 말은 대공 각하께 하세요.>

<……네.>

회계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각도로 재무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알고 서류를 보고해야 한다. 그들은 그걸 외면했다.

메이아는 그저 수학만 잘하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을 이번 기회에 뜯어고칠 생각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실망감만 안겼다.

테오도르는 그런 메이아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물어봤다.

“일하시느라 너무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전 역시 일하는 게 즐거운가 봐요.”

메이아는 너무 일을 못하는 직원들 때문에 한동안 자신이 모든 비용을 확인받고 싶다 말했다. 테오도르는 그 부탁을 들어주며 그들의 해고 여부를 물었다.

“지금은 그들을 해고할 때가 아니에요.”

“해고해야 할 때 미리 말씀만 해 주십시오.”

지금 이 상태에서 그만두게 한다는 건 다른 곳으로 취직을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해고당했더라도 플로렌스에서 일한 기간과 경력은 다른 곳에서 무시 받을 수 없다.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고용주들은 기대하며 채용하겠지만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일을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플로렌스 대공가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금은 해고를 하는 것보다 회계사로서 능력을 키워 준 다음에 해고를 할 것이다.

그들이 절대 예뻐서 능력을 키워 주는 게 아니다. 앞으로 나올 잡음을 없애기 위한 투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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