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1화 (51/163)
  • 51화

    “노예들 많이 데리고 있어? 두 번째 질문이야.”

    “예……, 있습니다.”

    메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있으면 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면 옷감 가게 밖에서 대기하던 기사 두 명 중 한 명은 분명히 가게 문을 열 것이고, 자신과 애튼이 없어진 걸 발견하면 대공가에 알리러 갔을 것이다.

    루인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메이아를 초조하게 쳐다만 보았다.

    메이아의 발아래로 얼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인츠의 허벅지까지 얼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루인츠는 괴롭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메이아는 루인츠의 비명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펼쳤다.

    “살려…… 끄억, 주…… 끄아아아아악!”

    얼어 버린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차가운 냉기가 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루인츠를 메이아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루인츠는 큰 공포감을 느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덜컥 큰 겁이 났다.

    루인츠는 살기 위해 울먹이며 사정했다.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끄억. 제발!”

    “손과 발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는 거 맞지?”

    “예, 예! 살려 주십시오.”

    “내가 궁금한 건 이게 아닌데.”

    살려 달라고 애처롭게 외치는 루인츠의 모습에 메이아는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악인이다. 다만 자신이 악인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저 사람 관점에서 이쪽이 ‘악인’이 되었을 뿐이다.

    “너에게 그렇게 살려 달라, 죽이지만 말아 달라, 울며불며 말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너는 그 사람들 말을 무시했겠지. 반대 입장이 되어 보니 어때?”

    “살려 주십시오……, 제발. 잘못했습니다! 저도 시켜서 한 일입니다.”

    루인츠가 인신매매단의 흑막일 리 없다는 건 이미 예상했다.

    인신매매단이란 폭력을 잘 행사한다고 운영되는 범죄 조직이 아니다.

    루인츠와 자신이 죽인 부하들은 분명 노예로 팔 사람들을 폭력으로 다스릴 줄만 아는, 쓰다가 버릴 패일 것이고 매매단에서도 제일 밑바닥에 있는 조직원일 거다.

    “시켜서 했다 하더라도 네가 저지른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허용치를 넘어섰어.”

    “잘못…… 해쑤…… 니 크어억…… 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널 살려야 하는 이유를 난 도저히 모르겠어. 너는 그저 살려 달라고 시끄럽게 울부짖을 뿐이잖아.”

    “절 살려 주신다면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대신 절 보호만 해 주시면 됩니다!”

    메이아의 발밑에서 생기던 얼음이 더는 루인츠의 몸을 타고 올라가지 않은 채 멈췄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얼음이 더는 올라오지 않으니 지금은 목숨을 구한 것이 맞다. 하지만 악마 같은 저 여자가 또 언제 마음 바꿀지 모른다.

    “사람들이 올 때까지 이 상태로 버티면 넌 살 수 있을 거야. 누구 한 명이라도 들어온다면…….”

    “살……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아…… 맞다. 여기 사람 안 온다고 네가 말했지…….”

    “흐끅…… 흑. 사람 옵니다. 곧 사람 온다고요. 흑, 흑. 그분들이 직접 노예를 보러 오시기로 했습니다.”

    “그분?”

    루인츠는 덜덜 떨며 눈물을 흘렸지만, 곧 눈물마저 얼음 결정으로 변해 갔다.

    “흐끅……. 지하로 가는 비밀 문이 있습니다. 거기에 팔기 위한 사람들이랑 아이들이 있습니다. 수인이나 남자들이랑……, 흐끅.”

    “그분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올 것 같지는 않아.”

    “살려 주세요. 용서해 주십시오.”

    그때, 갑자기 메이아는 자신의 소매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 드레스 치맛자락까지 찢은 뒤에 은빛이 감도는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까치집처럼 헤집고 헝클어 놓기 시작했다.

    루인츠는 갑작스러운 메이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맹수는 사냥한 것을 다른 맹수에게 숨기는 법이거든.”

    메이아는 눈을 곱게 접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녀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들이 루인츠 주위를 에워싸며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루인츠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점점 얼어 가는 자신의 목 때문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어 가는 그에게 다가간 메이아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사람이 오면 살 수 있어.”

    *

    테오도르가 다스리는 남쪽 바다의 플로렌스령의 특징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다들 한결같이 ‘더운 지역’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옷감 가게의 문을 열고 뛰어나온 테오도르는 여기저기 골목길을 뛰어다니다 바람 속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바람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테오도르는 마력이 나오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헤만에게 말했다.

    “헤만, 저 오른쪽에 있는 빨간 건물이다!”

    “기사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각하!”

    헤만의 말에 테오도르는 필사적인 얼굴로 말했다.

    “헤만,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 나 먼저 갈 테니 기사들을 데리고 오도록.”

    테오도르는 있는 힘껏 빨간 건물 앞으로 뛰어가며 부디 메이아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빨간 건물 앞에 다다른 테오도르는 계속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마력을 감지했다.

    “여기 있어.”

    테오도르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내 자세를 잡고 사선으로 빨간 건물의 문을 그었다.

    투득. 쨍그랑!

    잘린 문은 돌에 맞은 거울처럼 와장창 깨졌다. 이상함을 느낀 테오도르는 무너진 문을 살펴봤다.

    ‘얼어 있어.’

    부서진 문 사이로 들어가자마자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발견했다.

    “메이아 공녀님!”

    “테오도르 대공님?”

    테오도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메이아의 찢어진 치맛자락과 옷소매, 그리고 드레스에 잔뜩 묻은 피를 보고 테오도르를 크게 분노했다. 곧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메이아는 다급히 말했다.

    “대공님. 이건 제 피가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애튼 보좌관님께서 절 지키시다 칼에 맞으셨어요. 이 피는 애튼 보좌관님 거예요. 저는 안 다쳤어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이제야 쓰러져 있던 애튼을 쳐다보았다. 그의 옷에 묻은 흥건한 피 때문에 얼마나 그 부상이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수로 지혈했어요.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얼른 의원에게 보여야 해요.”

    테오도르는 말하는 메이아를 그저 꼭 안았다.

    “걱정했습니다! 왜 저를 두고 애튼과 둘이 나가셨던 겁니까! 제가 얼마나, 얼마나!”

    그의 몸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테오도르는 품에서 잠시 메이아를 떨어뜨린 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한숨을 쉬었다.

    “크게 다치신 데는 없으시군요. 다행입니다…….”

    그의 눈이 붉어졌다.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슬픈 얼굴이었다.

    “공녀님은 제가 어떤 심정인지는 절대 모르실 겁니다.”

    “구하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제가 얼마나 공녀님을 찾았는지 아십니까! 도저히 어디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고, 골목길을 뛰어다니면서 공녀님을 찾아 헤매다가 다행히 공녀님의 마력이 느껴져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그의 붉어진 눈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사들을 데리고 가셨어야죠!”

    “저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테오도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루인츠를 손가락질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 사내는?”

    “인신매매단의 한 명이에요. 원래는 열댓 명 정도 있었는데…… 애튼 보좌관님께서 저 대신 칼에 맞으시고 전 두려움을 느끼는 바람에 마력 제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혹시 다 죽이신 겁니까?”

    메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얼음에 꽁꽁 얼어 부서졌어요…….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거라 너무 무서워요.”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메이아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애튼이 칼에 맞아 쓰러지고 무서운 사내들에게 둘러싸였을 그녀를 생각하니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잘 죽이셨습니다. 너무 잘하신 일입니다, 메이아 공녀님. 먼저 죽이지 않으셨다면 큰 봉변을 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테오도르는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고 버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메이아 공녀님이 마법사라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합니다.”

    테오도르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메이아를 계속 껴안으며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메이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무서운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싸운 그녀를 칭찬했다.

    가슴에 묻은 그녀의 귓가에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릴까 봐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안고 있는 그녀를 밀어 내고 싶지 않다. 되찾은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 오히려 팔에 힘을 실어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기사들과 헤만이 도착했다.

    “각하! 공녀님!”

    헤만은 들어오자마자 메이아를 자신의 품에 가둬 놓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테오도르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곧 자신을 쏘아보는 테오도르의 오싹한 눈빛을 보았다.

    “헤만…….”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쳐다볼 때와 다른 사나운 표정으로 헤만을 불렀다.

    ‘조금 늦게 들어올걸.’

    헤만은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자신의 이름 뒤에 남은 긴 침묵으로 테오도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아.”

    메이아가 비틀거리는 모습에 테오도르는 재빠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부축했다.

    “공녀님!”

    “괜찮아요. 마력을 갑작스럽게 방출해서 약간 어지러울 뿐이에요.”

    메이아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테오도르의 눈에서는 불길이 일어났다.

    그녀가 싱긋 웃을수록 힘들어하는 걸 숨기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아파져 왔다.

    이렇게 연약하고 가녀린 메이아가 인신매매단들 상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심으로 그녀가 마법사인 걸 감사했다.

    “저한테 기대십시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그의 단단한 두 팔이 다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으신 거죠?”

    “네.”

    정말 괜찮은지 물으면서도 테오도르는 안절부절못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메이아를 계속 껴안으며 연신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