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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0화 (50/163)

50화

테오도르는 집무실로 되돌아가려는 헤만을 데리고 애튼과 메이아가 간 곳인 옷감 가게를 찾아갔다. 가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던 기사들이 테오도르를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각하!”

“각하!”

“너희는?”

“저는 플로렌스 대공가의 기사, 레이진입니다.”

“전 플로렌스 대공가의 기사, 아서입니다.”

테오도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메이아의 행방을 물었다.

“메이아 공녀님과 애튼 보좌관은 어디에 있지?”

기사 아서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예! 애튼 님과 함께 가게로 들어가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왜 서 있는 거지? 메이아 공녀님께 문 앞에서 대기 명을 받은 건가?”

“네! 그렇습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가게 문 앞을 지키며 대기하라는 명을 받아 이렇게 있었습니다.”

또 다른 기사가 말을 이어서 했다.

“만에 하나 한 시간 이내로 나오지 않는다면 단 한 명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신들의 안전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만에 하나 자신들이 가게 안에 없다면 옆에 있는 레이진이 바로 대공가로 돌아가 보고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걸 모두 메이아 공녀님께서 지시한 건가?”

“예, 그렇습니다.”

헤만은 두 기사의 말을 들으며 메이아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리고 애튼이 계속 외치는 ‘대공비감’이라고 한 이유를 이해했다.

“각하! 정말 공녀님께선 대단하십니다.”

갑작스러운 헤만의 칭찬의 테오도르는 한결 밝은 표정을 지었으나 곧바로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앞에 있는 옷감 가게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문 열어.”

기사들이 문을 열자 바로 테오도르는 가게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옷감을 파는 만큼 다양하고 많은 천이 진열되어 있었다.

테오도르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공녀님이 안 보이는데…….”

가게에 손님이 들어온 걸 보고 옷감 가게의 사장이 밝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테오도르는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헤만은 그의 앞을 나서 사장에게 말했다.

“이 가게에 은발의 아가씨와 밤색 머리의 사내가 오지 않았는가?”

“예? 아까 그분들은 오셨다가 뒷문으로 나가셨습니다만.”

테오도르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로먼은 그의 눈길이 마치 칼로 살갗을 더듬는 듯한 기분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스산한 분위기에 위축되며 물어보았다.

“그분들과 무슨 관계입니까?”

“플로렌스 대공가에 찾아온 손님이지. 내 손님.”

“내 손님이요……?”

플로렌스 대공가를 찾아온 손님. 이건 즉 앞에 있는 사내가…… 설마!

테오도르 뒤에 있던 헤만은 로먼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고개를 숙여라. 플로렌스 대공 각하시다.”

로먼은 몰래 음식을 훔쳐 먹다가 들켜서 딸꾹질하는 사람처럼 딸꾹거렸다.

그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러가고 표정이 희미하게 굳어 갔다.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뒷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 그녀는 나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나가셨습니다. 뒷문으로 곧 돌아오시겠죠.”

로먼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들이 메이아와 애튼을 빨리 숨기기를!

테오도르는 냉정하게 눈썹을 치켜올린 채 로먼을 노려보았다.

메이아는 애튼이 칼에 맞아 쓰러졌을 때 생각나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이었다. 바로 테오도르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각종 암살자에게 살해 위험 및 각종 위험한 일들을 겪고 살벌한 사교계를 평정하면서도 절대 누군가를 떠올린 일이 없었다.

황후가 되기 위한 공부가 힘겹고 그래서 놀지 못하더라도, 처음 암살자를 만났을 때도 흔히 ‘엄마, 아빠’조차 떠올린 적이 없었다.

위험한 일이 생겼어도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 계속 그래 왔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 상황에서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테오도르’를 떠올렸다.

왜 떠올랐을까? 이런 기분, 이런 생각이 메이아에게 생소하고 낯설었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 느낀 테오도르에 대한 생각에서 도망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를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우선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메이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얼음 가루들이 빗자루에 쓸려 가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얼음 결정들이 아직 남아 있었네.”

루인츠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부하와 동생들의 시신조차 묻어 줄 수 없게 되었다.

살아 있는 채로 얼음 조각처럼 꽁꽁 얼었다가 깨져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그들이 이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꿈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네 부하를 죽인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루인츠는 조용히 분노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당방위라는 거야.”

메이아는 다리와 손이 얼어 움직일 수 없는 루인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옷감 가게의 로먼이랑 무슨 사이지?”

지금 이 현실이 제발 꿈이길 바랐다. 꿈이라면 잠에서 일어나 멀리 떠나 착하게 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생각이 미친 것은 바로 ‘그분’이다.

자신이 시간만 잘 끌면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아직 존재했다. ‘그분’이 오신다면 말이다.

“그냥 상부상조하는 사입니다.”

“다행이다. 입 안의 혀는 안 얼었구나. 혀가 얼기 시작하면, 심장도 점점 차가워지고 냉기로 꽁꽁 얼게 되거든.”

메이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친절하게 그것도 아주 조곤조곤 설명했다.

“혀가 얼지 않게 하려면 계속 말을 해야 해. 그런데 난 말 많은 건 질색이지만 혀가 부서지면 안 되니 너의 수다를 이해해 줄게.”

자신의 너그러움에 감사라도 하라는 듯 고개를 도도하게 치켜든 메이아에게 루인츠는 추위에 벌벌 떨며 살려 달라 사정했다. 지금은 살고 봐야 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메이아는 손뼉을 치며 기쁘게 루인츠에게 말했다.

“살려 줬는데 왜 자꾸 살려 달라고 하는 거야?”

루인츠는 메이아의 말에 침을 삼켰다.

“내 질문에 대답 잘해 주면 좋겠어, 루인츠.”

메이아는 절대 사람의 말을 믿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그들이 은연중에 하는 행동을 더 믿는 편이다.

그렇지만 분명 좋은 대답은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은 안 했다. 다만 100% 믿지 않을 뿐이다.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 결코 어떠한 것도 믿지 않는다.

그게 하츠벨루아 전 공작인 데이빗, 그러니까 자신의 아버지에게 직접 배운 것이기도 했다.

“잡혀 있는 노예들이 있는 거지?”

분명 자신을 비싸게 팔아넘기는 상품 대하듯 말했다. 그렇다는 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노예들도 분명 어딘가 숨겨 놓았다는 말과 같다. 하다못해 장부라도 찾을 수 있겠지.

“대답 안 해?”

*

“로먼이라고 했지?”

테오도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옷감 가게 사장 로먼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과 몸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며 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그렇습니…… 다, 대공님.”

“정말로 애튼과 공녀님께서 뒷문으로 나가서 모른다는 것인가…….”

뒷문을 나가 보니 그냥 골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테오도르는 당장 칼을 들어 로먼의 목을 쳐 내고 싶었지만 우선 메이아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내리며 말했다.

“왜 뒷문으로 나가셨을까? 이 안에 계셔야 하는데…….”

“전……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로먼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을 하면 안 되었다.

이미 ‘그들’에게 메이아를 넘겨줬다. 남자는 이미 죽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처럼 실크를 가지고 지적하는 예쁜 여자를 그들에게 넘겨줬을 뿐이다!

그런데 플로렌스 대공이 여기까지 찾아와 그 여자와 남자를 찾을 줄이야…….

로먼은 답답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그들’이 잘 처리했으리라 믿어야만 했다.

“불안한가?”

로먼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테오도르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 모르는 일이라. 지금 그 말이 진실이어야 할 거야. 그럼 다른 이야기 좀 해 볼까?”

“네?”

“플로렌스 대공가를 상대로 옷감을 속여 팔았더군.”

“그…… 그게 말입니다. 실수입니다.”

“옷감을 파는 사람이 몰랐다, 실수다. 그 말로 다 용서받는 건 아니야.”

로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도저히 없었다. 일부러 잘못된 옷감 천을 판 것이 맞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진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거야. 어차피 진실을 말해도 네 미래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쾅!

테오도르는 주먹으로 테이블 위를 내려쳤다.

“히익!”

로먼은 부들부들 떨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테오도르는 차가움이 깃든 검은 눈동자로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그의 표정을 낱낱이 주시했다.

“지금 네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까…….”

쾅쾅!

“말해!”

로먼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난 우리 아버지 말을 항상 되뇌며 이 플로렌스령을 다스리려고 하는 편이야. 아버지는 항상 평민이든 귀족이든 항상 세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셨지! 난 지금 세 번째 기회를 준 거다……, 로먼.”

로먼은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그 모습에 짜증을 느끼며 일어서 뒷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뒤를 헤만이 따랐다.

말하지도 않은 로먼을 계속 추궁해 보았자 답이 없어 보였다. 자신은 충분히 기다려 주었고 기회를 주었다.

이젠 더는 추궁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메이아를 찾아야만 했다.

“이젠 늦었어…….”

테오도르의 한 마디에 로먼은 흐느끼던 고개를 들고 비명을 지르며 대답을 크게 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알고도 일부러 다른 것으로 팔았습니다.”

로먼은 비명을 지르며 말을 하려고 했지만, 기사들에 의해 입에 재갈이 물리고 몸이 밧줄로 묶이기 시작했다.

“베르샤, 지하 감옥에 가둬.”

“알겠습니다.”

테오도르는 뒤를 돌아 다시 한번 싸늘히 로먼을 노려본 다음, 뒷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헤만은 이렇게 오싹한 테오도르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자신이 모시는 대공 각하는 온화한 편이다. 사용인들에게 친절하며, 화가 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조용히 넘어가 주는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저렇게 화를 내는 테오도르가 낯선 헤만이었다.

“헤만, 난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거다.”

“예, 각하.”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일을 했던 것 같아.”

테오도르는 거칠게 뒷문을 열었다.

손잡이가 나갈 정도로 강한 압력 덕분에 문에 금이 갔다.

“만에 하나 메이아 공녀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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