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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44화 (44/163)

44화

“테오도르 대공님.”

메이아가 보기에 테오도르가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꼬리를 있는 힘껏 붕붕 좌우로 흔들며 뛰어오는 커다랗고 귀여운 블랙 레트리버 같았다.

“그냥 제가 찾아가면 되는데…….”

“에스코트해 드리기 위해서…… 온 건데 안 될까요?”

듬직한 블랙 레트리버가 자신의 목줄을 물고 와서 산책가자고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에요.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은 배려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저어, 이거…….”

테오도르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받…… 받아 주십시오.”

“꽃다발이네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기운이 없어 보일 때 꽃을 선물해 주면…… 좋다고요. 공작저에 아끼는 시녀 때문에 기분이 좋으실 것 같지 않아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혹시 꽃다발 싫어하십니까?”

메이아는 테오도르가 들고 있는 꽃다발을 가만히 살펴봤다.

델피늄, 로즈마리, 베고니아…… 그리고 조팝나무의 꽃까지.

“꽃 좋아해요.”

메이아는 테오도르가 준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정말 진심으로 물어보는 말인데요. 이 꽃을 주는 의미는 알고 계시나요?”

“의미요?”

테오도르는 심장이 강하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자신의 마음이 들킨 건가?

저 꽃들의 꽃말들 대부분 짝사랑과 관련된 거다.

<메이아 공녀님이시라면 이 꽃을 주는 의미를 아실 수도 있겠습니다.>

<괜찮아, 베나블.>

테오도르는 자신의 마음을 지적받은 것 같아 쑥스러움이 그득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도망가면 안 된다!

<부끄러워하면 사랑이 도망칩니다.>

이제 테오도르는 애튼과 헤만, 베나블에게 정신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견딜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꾹 참고 메이아 앞을 떠나지 않았다.

“꽃다발은 베나블이 준비한 것입니다.”

테오도르는 모르는 일이라며 메이아에게 설명하며 귀를 붉혔다.

“꽃을 보고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아침부터 위로해 주는 그의 기특한 말에 메이아도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정말 아름답네요.”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테오도르가 준 꽃들의 꽃말들 대부분은 짝사랑과 관련된 꽃말들이기 때문이다. 설마 저 어리고 잘생긴 그가 날 좋아하나?

쿵.

“어?”

“왜 그러십니까? 메이아 공녀님.”

메이아는 꽃다발을 받으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부정맥이 또 시작인가……. 빨리 의원을 만나야 되겠는데.’

왠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지 않은 채 그 앞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 심장이 내려앉으며 가했던 충격은 상당했다.

“아니에요. 그러면 에스코트 부탁드릴게요.”

메이아는 집무실에서 플로렌스령의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 스크롤과 아티팩트, 그리고 그에 대한 재료비들에 대해 짧은 회의를 할 예정이었다.

“집무실 서류가 많아서 조금 너저분할 수 있지만 양해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매일 이렇게 에스코트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니요.”

그 말에 테오도르의 눈꼬리는 한없이 내려갔다. 곤란해 보이는 눈빛 속에 절망이 엿보였다.

메이아는 웃으며 테오도르의 내민 손을 잡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저 꽤 대공님 에스코트 받는 거 기분이 좋아요.”

“내일도 모시러 오겠습니다. 이따가 또 방 앞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메이아는 꿈을 꿨다.

커다란 블랙 레트리버가 입에 꽃다발을 물고 자기에게 달려오는 꿈이었다.

아주 귀엽게 왈왈 짖으면서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자신 근처에 누가 오기라도 하면 낯빛을 바꾸며 다가온 사람을 물어뜯어 피를 보는 그런 꿈을 꾸었다.

*

주위는 온통 붉은 꽃밭이었다.

테오도르는 끝없이 펼쳐진 꽃밭 위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메이아 공녀님과 왔어야 하는데…….’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볼 때 강한 바람에 장미 꽃잎들이 우수수 흩날리며 더 멋진 절경을 보여 줬다.

테오도르는 팔을 뻗어 장미 꽃잎을 잡아 보려 했지만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붉은 장미 꽃잎을 잡을 수 없어 그저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절경만 눈에 담고 있었다.

어느덧 바람이 멈추고, 많은 꽃잎이 바람에 날리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따라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곧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니 메이아가 서 있었다.

테오도르는 순간 너무 반가워 얼른 그녀에게 뛰어가며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메이아 공녀님!>

<테오가 여기 왜 있나요?>

테오도르를 발견한 메이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요? 얼굴이 안 좋아 보입니다.>

<테오, 미안해요.>

테오도르는 자신의 애칭을 부르며 사과하는 메이아를 보고 의아해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사과를 하는 거지?

<갑자기 왜 사과를 하시는 겁니까? 이유 없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전 거절하겠습니다.>

<사과해야 해요.>

<사과하는 이유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갑자기 거센 바람이 갑자기 불어왔다.

테오도르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다시 메이아를 쳐다봤다.

그녀의 곁에는 아름다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 자신이 보더라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메이아는 그 아름다운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그 이름을 들은 테오도르의 얼굴은 순식간에 파랗게 질려 버렸다.

<데이빗.>

데이빗이란 아름다운 남자 또한 메이아의 애칭을 다정하게 불렀다.

<메이.>

데이빗이라고 사내의 품에 안긴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테오. 계약 약혼 건은 거절할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데이빗이랑 약혼하기로 했어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데이빗은 메이아를 등 뒤로 숨기며 차가운 눈빛으로 테오도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만 물러나면 좋겠군.>

데이빗의 말에 테오도르는 발끈하며 외쳤다.

오로지 머릿속에서는 그녀 곁의 남자를 치워 버려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신이 데이빗이군.>

화를 내며 걸어오는 테오도르의 앞을 메이아가 두 팔 벌려 막았다.

자신을 막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더는 데이빗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쪼개지는 고통에 테오도르는 자신의 왼쪽 심장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이렇게라도 부여잡지 않으며 바닥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데이빗이란 사람과 팔짱을 끼고 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장미 꽃잎과 함께 메이아는 점점 테오도르에게서 멀어져 갔다.

<메이! 메이!>

내가 더 잘해 줄게요. 제발 떠나지 말아요.

테오도르는 슬픔에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읍.”

온몸이 축축하게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눈가는 땀과 함께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두 손으로 이마를 쓸어 땀을 닦은 뒤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침대 위였다. 그리고 메이아가 데이빗이란 사람과 떠나는 것이 꿈이란 걸 깨달았다.

“꿈이었어……. 하아, 다행이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데이빗이란 사람이 대체 누구지? 꿈이라지만 너무 찝찝했다.

꿈속에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메이아를 당당히 빼앗아 갔다.

꿈이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테오도르는 솟구쳐 올라오는 질투에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이 이해를 거부했다.

똑똑.

“주인님, 기침하셨습니까?”

“들어와, 베나블.”

베나블은 문을 열고 들어가 테오도르를 먼저 살펴보았다. 눈 밑이 초췌하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간밤에 잘 주무시지 못하셨습니까?”

베나블의 질문에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꾼 악몽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끔찍한 꿈을 꾸었지. 데이빗이란 잘생긴 사내가 메이아 공녀와…… 하…… 이야기도 하기 싫어.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아. 그나저나 메이아 공녀님은?”

베나블은 손수건을 꺼내 땀에 흠뻑 젖은 그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 내며 위로했다.

“꿈은 반대라 했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메이아 공녀는 어디 있지?”

테오도르의 질문에 베나블은 바로 답했다.

“메이아 공녀님께선 기침하신 뒤에 퀴니와 아침 산책 중이십니다.”

“어디서?”

“정원입니다.”

“그러면 나도 정원으로 가겠어.”

“알겠습니다. 최고로 멋지게 꾸며 드리겠습니다.”

좋아하는 메이아 앞에서는 늘 예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은 테오도르의 마음이 부쩍 커진 걸 베나블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베나블은 항상 노력했다.

“데이빗이란 사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절대 꿈에서 일어난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할 거야.”

“이 집사 베나블, 끝까지 보필하겠습니다.”

미치도록 갈망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

정원에서 퀴니와 함께 메이아는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그니타는 잘 오고 있겠지?”

“잘 올 겁니다.”

“하아…….”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얼마 전에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테오도르 대공 각하가 계약 약혼을 하자고 했어.”

그 말에 퀴니는 발걸음이 멈췄다.

“약혼이라고요?”

아니, 약혼이면 약혼이지 갑자기 계약 약혼은 또 뭐지?

“데미안 황자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면서 약혼을 하자고 하셨고, 파혼도 내가 원할 때 해 주신다고 했어.”

“왜 그러실까요, 하하.”

퀴니는 분명 테오도르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메이아에겐 이야기하진 않았다.

메이아에게 있어 고백받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늘 겪는 일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하하, 테오도르 대공이 아가씨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퀴니는 입이 가볍지 않았다. 무엇보다 1년 동안 모셔야 되는 분이니,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맞다.

“받아 주실 겁니까? 아가씨?”

“생각 중이야.”

“생각 중이시라면 받아 주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나쁜 상대는 아니야. 테오도르 대공님은 나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 했어.”

“배려심 많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맞아.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조용히 잘 기다리고 있어.”

테오도르에게 기다리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정말 잘 기다리고 있었다.

“귀여우신 분이야.”

“아가씨, 플로렌스 대공 각하가 귀엽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메이아는 활짝 미소 지어 보이며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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