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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41화 (41/163)
  • 41화

    “손을 다칠 뻔한 일이 생기고 나니 더는 공작가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메릴 언니가 그렇게까지 했단 말이야?”

    “아그니타는 뺨을 많이 맞았습니다. 무표정하다는 이유만으로요! 유모 유디 님께도 화를 내고 사용인들이 다 죽을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절 때리면서 아가씨에게서 주신 선물인 화구통 등 물건들을 던지셔서 모두 망가졌습니다!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메이아는 깜짝 놀라 하며 되물었다.

    “화구통은 내가 얼마든지 더 좋은 걸로 사 줄게. 물건은 망가지더라도 퀴니의 손은 절대 다치면 안 돼. 알았지? 앞으로 내가 준 선물보다는 무조건 손을 지켜 줘.”

    “알겠습니다.”

    메이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갔다.

    하얗게 굳어 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테오도르는 걱정 가득한 말투로 메이아에게 물어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공녀님?”

    “사실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있는 내 사람들이 걱정되네요. 아그니타는 제가 어릴 때부터 돌보던 아이라 제 여동생 같은 시녀거든요.”

    “아그니타가 아가씨를 너무 그리워하다 몸져누웠습니다. 그런데 밥만 축내고 일을 안 한다면서 메릴 공녀님이 아그니타의 뺨을 때리시다가……. 아무튼…… 모두들 아가씨를 그리워합니다.”

    메이아는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리고 괴로운 얼굴로 퀴니에게 말했다.

    “이젠 그곳엔 내 자리는 없어. 알잖아, 퀴니.”

    그렇게 말하는 메이아를 테오도르는 안타깝게 바라봤다.

    퀴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기 시작했다.

    “불쌍한 우리 아가씨, 흑흑.”

    메이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퀴니.”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테오도르 대공님.”

    “예.”

    “공작저에서 제 가족 같은 시녀 한 명을 여기 플로렌스 대공가에 오라고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신원은 제가 보증할게요. 쥬안의 여동생이기도 해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즉답을 내렸다.

    “얼마든지요. 베나블에게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퀴니 일도, 지금 제 일도.”

    테오도르는 더욱 싱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메이아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한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근면 성실하고 실력 좋은 화가분을 모실 수 있어 오히려 영광입니다.”

    테오도르는 연신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예쁜 말만 골라 했다.

    그러니 메이아 눈에 그는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다.

    “테오도르 대공님은 웃으실 때 참 예쁘세요.”

    “웃으면 잘생겼다고 칭찬해 주셔서 항상 웃고 있습니다.”

    “퀴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보기 드문 아름다운 미형이시지만, 솔직히 데이빗 님보다는…… 흠흠, 테오도르 대공님이 못난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워낙 데이빗 님이 미남이셔서, 허허.”

    “퀴니도 참…….”

    데이빗이라는 남자 이름에 메이아는 살짝 볼이 빨개진 걸 테오도르는 똑똑히 보았다.

    자기보다 그 남자가 아름답다고? 이건 중대한 일이다.

    자신이 메이아에게 가장 멋지게 보여야 한다. 이건 위기다.

    테오도르는 저편에 서 있는 베나블에게 눈짓을 보냈다. ‘데이빗이라는 자를 죽여’라는 뜻을 담아서.

    베나블은 그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대체 데이빗이란 자가 누구일까? 누군데 메이아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거지?

    혹시 메이아가 약혼을 주저한 이유가 데이빗이란 사내 때문인 건가?

    초조해진 테오도르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애튼과 헤만을 찾아갔다.

    그리고 질투에 휩싸인 테오도르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당장 메이아 공녀님 주위에 있던 데이빗이란 사내가 누구인지 찾아와. 초상화도 반드시 구해 오도록.”

    나보다 아름다운지 초상화를 보고 판단해 주겠어!

    테오도르는 식사를 마치고 뭐가 바쁜지 빠르게 사라졌다.

    “테오도르 대공님이 참 바쁘신가 봐. 그렇지, 퀴니?”

    “대공이신데 아무렴요.”

    메이아는 한나와 하녀들이 가져다주는 후식을 퀴니와 함께 먹은 뒤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외웠다.

    “아가씨, 갑자기 왜 마법을 쓰시는 겁니까?”

    “쥬안, 나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쥬안이 나타났다.

    “예, 아가씨.”

    그런 쥬안을 보고 퀴니는 팔을 벌려 환영했다.

    “허허, 쥬안 오래간만이구나!”

    “안녕하십니까, 퀴니 님.”

    쥬안을 바라보는 메이아의 눈이 한없이 차갑게 변해 갔다.

    “쥬안.”

    쥬안은 메이아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공작저에서 메릴 언니가 아그니타한테 몹쓸 짓을 하는 모양이야.”

    쥬안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예, 그림자 속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아그니타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아. 쥬안은 지금 당장 하츠벨루아 공작가로 가서 아그니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 줘.”

    “데려오겠습니다.”

    메이아는 자신의 영롱한 긴 은발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쥬안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냥 데리고 나오면 안 될 거야. 나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아그니타가 갑자기 이유 없이 그만두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메이아의 말에 퀴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그니타가 공작저의 일을 갑자기 그만둔다는 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아그니타가 공작저에서 버티는 이유는 아가씨를 모시기 위한 건데. 메릴 공녀도 그걸 아니 아그니타를 학대하는 겁니다. 절대 공작저에서 나갈 리가 없다는 걸 잘 아니 말이죠.”

    “퀴니도 맞다가 이직한 거고. 내가 아끼는 시녀도 두들겨 맞고 사라진다면…….”

    메이아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평소보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가 살기와 차가움으로 짙어져 갔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퀴니는 오래간만에 보는 싸늘한 표정의 메이아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황홀한 얼굴로 말했다.

    “아아! 아가씨! 정말 데이빗 님의 그 얼굴과 똑같습니다. 아아!”

    메이아는 무릎 꿇은 퀴니를 내려다보며 더욱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딸이니 똑같지.”

    퀴니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워서 돋는 게 아니다.

    처음 데이빗을 만났을 때 느꼈던 오싹한 짜릿함에 온몸이 부들부들 몸이 떨려 왔다.

    “아아……, 데이빗 님이 생각납니다. 지금 당장 이 모습을 그림을 그려 간직하고 싶습니다!”

    “화구통 멋진 거로 선물해 줄 테니까. 그때 그려.”

    메이아는 쥬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쥬안, 내가 이야기한 계획에 불만이 있다면 이야기해.”

    “아닙니다. 저희 남매의 목숨은 메이아 아가씨 것입니다. 설령 목숨이 잃을지라도 아가씨의 명을 지키다 맞는 죽음이야말로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잊지 마. 너희들은 내 가족 같은 존재라는 걸.”

    *

    메릴은 공작저에 토마스를 비롯한 많은 영식을 초대해 그들에게 둘러싸여 즐겁게 웃고 있었다.

    “다들 너무 재미있어요.”

    “하하하, 메릴 공녀님의 화법과 발음, 목소리도 너무 훌륭하십니다.”

    “아름다운 공녀님과 대화할수록 즐거워지는 건 저희랍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토마스를 비롯해 많은 영식이 메릴을 칭찬했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메릴 공녀님.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만 아니셨다면 제가 청혼하고 싶습니다.”

    메릴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토마스를 비롯한 영식들은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전에 있던 메이아 공녀님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지적인 아름다움이 있으십니다.”

    “솔직히 그 메이아 공녀님은 오만하고 거만해 보였습니다.”

    토마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거기다가 사치 또한 심했죠. 사교계 꽃이라면서 비싼 물건들을 사들여 영애들에게 허영심을 부추기게 했지요.”

    메이아의 뒷담화를 들은 메릴은 기분이 좋아졌다.

    “제가 동생을 잘 돌보고 가르쳐야 했는데……. 메이아는 제 말을 통 듣지 않아요.”

    토마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메릴을 다독였다.

    “이런, 속상하셨겠군요.”

    “속상하지만 제 동생인걸요……. 잘 챙기지 못하고, 못 가르친 제 잘못이에요.”

    “마음도 참 고우십니다. 동생이라 감싸주시다니…….”

    “메릴 공녀님은 정말 착하십니다.”

    메릴의 영식들의 말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시녀장에게 다음 다과와 차를 내오라 시켰다.

    “다음 다과도 먹어 볼까요? 쉐프가 새로 들어왔는데 케이크를 잘 굽는답니다.”

    메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그니타를 비롯해 몇 명의 시녀들이 테이블 위에 차와 케이크를 차렸다. 누가 봐도 먹음직스러운 모양새와 달콤한 향에 다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메릴 공녀님, 여기 딸기 케이크입니다.”

    “난 딸기 케이크 안 좋아해.”

    티 파티에서 나오는 케이크, 샌드위치, 스콘 등등 다과가 어떤 걸로 준비되는지 주최자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메릴은 “안 좋아해.”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이 티 파티 준비를 준비하지 않았음을 인증한 꼴이 되었다.

    “하하……, 딸기 케이크를 원래 안 좋아하셨던 겁니까?”

    “먹기는 먹지만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예…….”

    “여러분들은 맛있게 드세요.”

    분명 티 파티 때 딸기 케이크가 올라갈 예정이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메릴에게 시녀는 답답함이 치솟아 올랐지만 티를 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저 방긋방긋 웃으며 다른 케이크로 내온다고 말할 뿐이다.

    “다른 걸로 내 오겠습니다.”

    메릴의 시선은 테이블 끝에서 서빙을 하는 아그니타에게 닿았다.

    “아그니타가 가지고 와.”

    아그니타는 오로지 메이아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인형과도 같은 시녀로, 메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릴은 짓궂은 미소를 감춘 뒤, 가녀린 표정을 지으며 영식들에게 말했다.

    “제가 여동생을 잘못 돌본 거라 영식들에게 미안해지네요.”

    메이아에 관한 이야기에 아그니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닙니다. 메이아 공녀의 잘못을 감싸 주시는 메릴 공녀님의 심성에 감동했습니다.”

    “맞습니다.”

    “메릴 공녀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메이아 공녀가 마탑으로 가서 다행입니다.”

    메릴은 자신의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하지만 메이아가 그렇게 된 건 분명 제가 안 챙겨서 그리된 건데요. 메이아의 그 철없고 사치도 심하고 오만방자한 태도를 고쳐 줘야 하는데…… 언니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메릴 공녀님은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오죽하면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쯧쯧, 영애나 귀부인들은 억울하게 쫓겨났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쫓겨날 만하니 쫓겨난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사교계의 꽃이랍시고 거만하게 굴고 다닐 때부터 전 이리될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언제나 무표정하게 있는 아그니타의 눈동자 속에 서린 분노가 메릴의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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