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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40화 (40/163)

40화

“메이아 공녀님.”

테오도르의 머뭇거리는 모습에 메이아는 편하게 물어볼 수 있도록 말했다.

“예, 말씀하세요.”

“만약에 약혼자가 필요하다면 저는 어떠십니까?”

메이아는 순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전 그래도 대공이고, 권력도 있고, 돈도 많고 무엇보다 메이아 공녀님을 꼭 지켜 드릴 수 있는 무력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약혼 이야기에 메이아는 뭔가 훅,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테오도르의 발언에 놀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껌벅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메이아의 모습에 그는 살살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미소 지었다.

갑자기 약혼하자고 해서 놀라신 건가? 괜히 약혼하자고 말을 꺼냈나?

데미안 황자랑 결혼하기 싫어 일부러 오신 분인데, 내 이야기 때문에 불편해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마친 테오도르는 입을 열었다.

“계약 약혼으로라도 좋습니다. 공녀님께서 파혼하고 싶으실 때 파혼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저를 약혼자로 두시는 거 어떠십니까? 전 공녀님을 지켜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저를 왜요?”

블랙 레트리버 같은 이 남자. 지금 나한테 ‘계약 약혼’ 하자고 한 거야?

갑자기 푸링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늑대도 개과라는 사실 잊지 마십시오.>

아니, 이 순간에 왜 스승님 말이 떠오르는 거지?

“지금 당장 답변 안 주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약혼자로 있으면 카르펜 제국의 황자라 할지라도 플로렌스 대공가를 절대 건드릴 수 없습니다.”

“테오도르 대공 각하께서는 이 계약 약혼으로 뭘 얻으실 수 있는 거죠?”

“그건.”

‘당신과 있을 수 있는 시간.’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테오도르는 골똘히 생각하며 메이아에게 답을 주었다.

“전 유능한 마법사를 얻게 되겠죠?”

“아하.”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말에 어쩐지 실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왜 실망감이 드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고민해 볼게요, 계약 약혼.”

그리고 메이아 본인도 왜 이런 말을 테오도르에게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삼촌과 쓴 계약서가 신전 공증받아서 결혼은 선택일 뿐이에요!’라고 말해도 되는데 이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약혼하자고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계속 쿵쿵거렸다.

점점 부정맥이 심해지는 모양이다.

집무실로 돌아온 테오도르는 얼굴이 발개진 채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메이아가 그려진 액자를 들고 한참을 쳐다보다 그걸 살포시 껴안기를 계속 반복했다.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던 애튼은 참다 참다 더는 참지 못해 테오도르에게 말을 꺼냈다.

“각하, 메이아 공녀님 오신 건 매우 기쁜 일이지만 밀린 서류들이 많습니다.”

“애튼.”

“예, 말씀하십시오.”

“있잖아.”

“네.”

“메이아 공녀님한테 약혼하자고 했어.”

애튼과 헤만은 들고 있던 서류들을 손에서 우수수 떨어뜨리는 바람에 집무실은 종이로 어지러워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약혼이라니요!”

애튼은 믿을 수가 없었다. 테오도르는 계속 부끄럽다며 도망만 다녔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약혼을 제안하다니!

“세상에! 매일 얼굴 붉히며 도망만 치셨던 분이…… 이 애튼, 정말 감동했습니다.”

헤만도 옆에서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공녀님께서 수락해 주셨습니까?”

“드디어 플로렌스 대공가의 안주인이 들어오시는구나!”

테오도르는 붉게 물든 자신의 볼을 긁적이며 수줍게 말했다.

“약혼을 생각해 보신다고 했어.”

테오도르의 말에 애튼과 헤만은 만세를 지르며 기쁘게 포효했다.

“우아!”

“세상에!”

헤만과 애튼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기특하십니다! 너무 잘하셨습니다.”

“애튼, 나 오늘 집에 늦게 들어간다!”

“그래 한잔해야겠다. 베르샤 기사단장도 불러.”

“알았어!”

무엇보다 생각해 본다는 건 반의 확률로 약혼을 수락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이다.

용기 있게 고백한 테오도르가 애튼은 너무 기특했다.

애튼과 헤만은 계속 만세를 부르며 용기 있는 테오도르를 찬양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찬양을 멈추었다.

“그런데 계약 약혼을 하자고 했어.”

기뻐하던 애튼과 헤만은 포효를 멈추고 머리 위 물음표를 띄우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테오도르를 쳐다봤다.

“네?”

“계약이라니. 각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테오도르는 메이아와 이야기했던 것들을 간략하게 애튼과 헤만에게 말해 주었다.

카르펜의 제2 황자인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와 황자비가 싫어 마법사 등록을 하고 대공가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신다고 하셨다니. 하지만 안 지 얼마 안 된 대공님하고 계약 약혼을 고려해 볼 정도라면 메이아 공녀께서 그 황자를 엄청나게 싫어하시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카르펜 황가에서 억지로라도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약혼을 밀어붙이기라도 한다면 억지로 결혼하실지도 몰라.”

“황가에서 밀어붙인다면 불가항력이긴 하죠.”

“카르펜 제국을 공녀님 몰래 밀어 버리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래도 그녀의 고향인데……. 그리고 몰래 밀어 버리는 건 안 돼. 메이아 공녀님이 원하면 그때 밀어 버릴 거야.”

골똘히 생각하던 애튼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집안에서 황태자비와 황자비라니……. 메이아 공녀님의 본래 약혼녀 자리를 빼앗은 사촌 언니가 황태자비가 되고 황후가 된다는데 공녀님께서 황자비가 된다면 과연 삼촌이 좋아할까요? 공작가도 바보가 아닌 이상은 메이아 공녀님을 황자비로 세우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테오도르는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난 메이아 공녀님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에 계약 약혼을 하자고 한 거야. 나와 약혼을 한다면 카르펜에서는 황제조차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거지.”

“그렇죠.”

“사실 카르펜 제국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게 더 쉽겠지만…….”

하지만 애튼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걸 본 헤만의 얼굴을 찌푸렸다.

“애튼, 표정이 보기 거북하다.”

“조용히 해. 헤만, 이건 기회라고, 기회!”

“무슨 기회?”

“메이아 공녀님 입장에서는 분명 계약 약혼을 수락하실 겁니다.”

“그렇겠지?”

“대공 각하께서 열심히 미모와 온몸으로 공녀님을 유혹하시면 계약 약혼이 진짜 약혼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기회입니다!”

애튼은 의자에 앉은 테오도르에게 물어보았다.

“공녀님을 놓치기 싫으신 거죠?”

“응.”

“그렇다면 저희 플로렌스 대공가 사용인들은 최선을 다해 메이아 공녀님 대공비 만들기 계획을 실시하겠습니다.”

“메이아 공녀님이 대공비…….”

“이미 베나블은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메이아를 마음에 담은 테오도르의 상사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꼭 그녀가 대공비로 들어와야 했다. 베나블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을 것이다.

“앞으로 대공 각하께서는 미모를 가꾸셔야 합니다. 저는 퀴니 화가님에게 데미안이 어떤 작자인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화가 퀴니는 대공가에 메이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다며 울며 기뻐했다.

“정말입니까? 애튼 보좌관님.”

“예, 식사 자리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공녀님은 지금 무엇을?”

“대공 각하와 이야기 중이십니다.”

“아아! 대공 각하께서 엄청 좋아하시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주 살아나셨습니다. 저희도 한숨 돌렸고요. 그런데…… 퀴니님.”

“예.”

“데미안 황자를 아십니까?”

데미안이란 이름을 꺼냈을 뿐인데 퀴니의 얼굴에는 분노가 퍼져 나갔다.

“그 황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십시오! 설마?!”

퀴니는 잠시 잊고 있었다. 데미안이 마탑으로 찾아갈 테니 꼭 피하라고 메이아에게 보낸 편지를.

“사실 공녀님께서는 마탑에서 여기로 도망 오신 겁니다.”

“……!”

“저희는 솔직히 카르펜 제국을 지도에서 지우면 그만입니다. 쉬운 일이죠. 그렇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대공 각하께서 메이아 공녀님의 고향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지도에서 지워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데미안 황자가 공녀님을 많이 괴롭히나요?”

“그 미친 황자는 우리 공녀님에게 심하게 집착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집착이 상당히 위험합니다. 공녀님이 예뻐하는 새를 죽인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기만 한다면 공녀님에게 큰 소리를 치며 울리기까지 했죠…….”

“새를 죽여요?”

“아, 그때가 공녀님 나이 여덟 살 때 겪은 일입니다. 한동안 죽은 새가 꿈에 나와서 힘들어하셨으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퀴니는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애튼에게 데미안의 이야기를 해 줬다.

*

메이아는 대공저에 왜 퀴니가 있는지 이해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기에 궁금증을 접었다.

“아이고! 메이아 아가씨!”

퀴니는 달려가 메이아 앞에 허리를 깊게 숙였다.

“흑흑, 아가씨를 다시 만나다니…… 이 늙은이 기뻐 죽을 것 같습니다.”

“퀴니가 늙다니요. 더 오래 사셔서 나중에 제가 낳은 아이들까지 그려 주셔야죠.”

메이아 곁에 있던 테오도르는 그녀의 아이들이란 단어에 부끄러워했다.

“응? 테오도르 대공님, 어디 아프세요? 왜 또 얼굴이 빨개요.”

“아, 아닙니다. 우선 자리에 앉죠.”

“퀴니와 함께 식사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오도르의 손짓에 사용인들은 신속하게 식탁 위에 갖은 산해진미를 차려 냈다.

“맛있게 드십시오.”

퀴니는 감격에 겨워하며 식사를 했고, 메이아는 조용히 웃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퀴니가 편지를 보내 준 덕분이야. 편지가 안 왔다면 나는 안일하게 마탑에 있다가 데미안 황자와 마주쳤을 거야. 고마워.”

고마워하는 메이아에게 퀴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퀴니, 궁금한 점이 있어. 어떻게 플로렌스 대공가로 오게 된 거야?”

“그게.”

퀴니는 하츠벨루아 공작가에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메이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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