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마탑에 들어온 두 사람은 바로 메이아를 찾았다.
그리고 받은 대답은…….
“떠나셨습니다.”
쾅!
데미안은 마탑의 1층 응접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녀가 떠나다니!”
데미안이 왔다는 소식에 푸링은 직접 대면하겠다며 모든 마법사들에게 응접실에 오지 말라 말했다.
푸링이 메이아가 없다고 말하자마자 데미안은 화를 내며 테이블을 손으로 쾅쾅 쳤다.
‘성질 한 번 더럽군.’
푸링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메이아를 찾아온 마커스와 데미안에게 말했다.
“마탑에 온 의뢰서들을 읽어 보시고 정식으로 마탑 의뢰를 받아 마법사로서 멀리 떠나셨습니다. 참고로 공녀님께서는 마탑에 정식으로 등록된 마법사가 되셨습니다.”
마커스는 다급한 마음으로 푸링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푸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들고 바닥을 살짝 콩콩 내려치며 외쳤다.
“마탑의 의지시여, 마탑의 메이아 하츠벨루아 마법사가 어디로 의뢰를 갔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푸링의 물음에 마탑의 벽에서 메아리처럼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탑 마법사의 위치를 발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이아 하츠벨루아 마법사의 위치를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푸링은 어깨를 으쓱이며 데미안과 마커스를 쳐다봤다.
“마탑은 언제나 진실만 이야기하고, 정확히 말해 줍니다. 메이아 공녀님의 위치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의뢰를 받고 가셨는지도 모릅니다.”
“정녕 모르는 것인가? 대마법사 푸링.”
“황자님, 모릅니다. 물론 마탑이라 하더라도 마법사 위치를 직접 알려 줄 방법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메이아 공녀님이 지명 수배를 받을 정도로 나쁜 짓을 했다면 마탑이 위치를 알려 준다는 겁니다.”
푸링의 마지막 말에 마커스는 그저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아 고개만 숙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불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푸링을 쳐다볼 뿐이었다.
“못 믿겠어.”
“무엇을 말입니까?”
“마탑에 메이아 공녀가 언제 떠났는지, 그리고 진짜 없는지.”
푸링은 데미안 황자의 집착을 엿본 기분이었다.
분명 마탑의 목소리까지 들려주었는데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 메이아가 바로 떠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푸링은 다시 한번 지팡이를 들고 바닥을 콩콩 살며시 두들겼다.
“진실한 마탑이시여, 마법사 메이아 하츠벨루아가 마탑에 있습니까?”
마탑은 바로 답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 마법사는 마탑의 의뢰를 받고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마탑에 없습니다.
지팡이를 고쳐 잡은 푸링은 차갑게 데미안 황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질문에 답이 되었겠죠? 황자님. 이만 마탑에서 나가 주십시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데미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커스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데미안은 무심하게 푸링을 응시했다. 그리고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탑에 의뢰를 하겠어.”
푸링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의뢰하겠다는 데미안에게 기가 막혔다.
그래도 기막혀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된다.
푸링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으며 물었다.
“어떤 의뢰를 하실 겁니까?”
“메이아 하츠벨루아 공녀를 찾아 줘. 의뢰비는 1천만 골드를 계약금으로 먼저 주겠어. 공녀를 찾으면 계약금 10배를 주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의뢰 비용을 말하고 있었다. 웬만한 섬 하나를 사서 왕처럼 살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데미안 황자님, 마탑 의뢰를 가지고 장난하지 마십시오.”
“난 있는 게 돈밖에 없는 황자야. 그녀만 찾아 준다면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데미안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푸링을 쳐다보았고, 푸링은 데미안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
메이아는 텔레포트를 나오자마자 감탄했다.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와 항구가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쥬안, 저거 봐 갈매기야!”
“예, 아가씨.”
“쥬안, 항구에 배가 들어오나 봐!”
“예, 아가씨.”
메이아는 신나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쥬안은 경계했다.
아름답게 웃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음흉한 날파리들의 더러움이 느껴졌다.
“아가씨, 로브를 쓰십시오.”
“응? 로브?”
“날파리가 붙습니다.”
“아아, 너무 들떠서 로브 쓸 생각을 안 했네.”
플로렌스 대공령은 바다를 삼면으로 끼고 있어 어업과 무역 관광업이 잘된 곳 중의 하나다. 다만, 다른 곳과 이어지는 해협 사이에 해적선 출몰이 잦아 치안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메이아에게 있어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걸 이야기한다는 건 무척 어리석은 일이기도 했다.
“좋다, 바다 냄새.”
“아가씨, 바로 플로렌스 대공가로 가실 겁니까?”
“가야지.”
자신을 보고 테오도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심 메이아는 궁금했다.
아니, 그가 무척 보고 싶었다. 어제는 꿈까지 꿨다.
헤어지기 싫다며 우물쭈물하는 그의 모습. 사실 메이아는 마탑에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했지만 미련 가득한 뒷모습으로 계속 서 있다가 한참 뒤에 떠난 테오도르를 마탑 창틀에 앉아 쳐다봤다.
‘얼굴이 빨개질까? 당황할까? 웃을까? 설마 놀라서 기절하는 거 아니겠지?’
테오도르의 표정이 너무 궁금했다. 생각하다 보니 메이아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술렁였다.
‘뭔가 심장이 짜릿한데……. 쿵쿵거리고 말이야. 설마 이 나이에 벌써 부정맥 오는 거 아니겠지?’
생각해 보니 테오도르도 전에 부정맥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하긴 병이 사람 가리고 오는 것이 아니니 좀 더 몸을 잘 관리해야겠다.
“아가씨,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테오도르 대공님 얼굴 생각하니까 기분이 막 좋아지네.”
쥬안은 메이아가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미소 짓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물론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지만 눈은 절대 웃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메이아는 콧노래까지 살짝 부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특히 부모님인 데이빗과 바이올렛이 세상을 떠난 이후 더욱더 미소 지은 적이 없었기에 쥬안은 지금의 웃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다행이란 기분도 들었다.
“대공 각하를 만나실 생각에 기분이 좋으신 겁니까? 아가씨.”
“응, 그런 것 같아.”
메이아는 마탑에 있으면서 부족한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만들면서도 다시 만난 테오도르 얼굴이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계속 우울한 일들만 있었는데 자꾸 생각나는 그 남자 때문에 웃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가씨……, 혹시 대공님을 보실 때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거나 그러진 않으신 거죠?”
메이아는 쥬안의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지 않으면 시체와 다름없다.
사람이 가슴이! 심장이 당연히 두근두근! 뛰는 것은 당연하다.
“쥬안……, 사람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지, 산 사람이겠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정확한 질문을 해 줘.”
쥬안은 메이아의 대답에 한숨을 흘렸다.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내가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만 물어보도록.”
“예.”
메이아는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어 로브 안으로 넣은 뒤, 바람에 로브가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며 쥬안에게 말했다.
“쥬안, 나 얼굴 잘 안 보이지?”
“잘 가려졌습니다.”
“쥬안은 이젠 그림자로 들어가 봐.”
“예.”
쥬안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메이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갈색의 말 왼쪽에 섰다. 말의 뺨을 쓰다듬었다.
“말이 순하네.”
메이아는 고삐와 말의 갈기를 쓰다듬다 움켜쥔 뒤, 왼발을 등자에 걸치고 안장의 뒷부분을 잡은 다음에 오른발로 땅을 박차며 안장에 올라탔다.
“그런데 대공저는 어떻게 가야 하지?”
테오도르를 생각하느라 저택 위치도 모르고 말에만 탑승했다.
결국 쥬안이 대공저를 먼저 찾아본 뒤 메이아에게 위치를 알려 주었다.
*
화가 퀴니가 플로렌스 대공령에 온 뒤부터 테오도르는 활기를 찾아갔다.
메이아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답답해져 계속 편지를 쓰게 되었다.
편지를 쓸 때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퀴니가 빌려준 메이아의 인물화를 보며 테오도르는 자신의 기분을 달래곤 했다.
그리고 마탑에서 10일 만에 마법사를 보내 줬다.
“대공 각하! 마법사가 왔다 합니다!”
집사 베나블은 대공가 입구에서 의뢰 수락서를 받아와 테오도르를 바로 찾아왔다.
“응접실에 마법사님을 모시고, 의뢰 비용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알겠습니다.”
베나블은 어쩌면 마탑에서 온 그 마법사가 메이아 공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테오도르가 더 기운을 차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10일 만인가……. 마법사가 온 게…….”
테오도르는 마법사라는 말에 또다시 생각나는 메이아의 얼굴에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녀장 한나는 그 모습을 짠하게 바라봤다.
“주인님, 그러면 마법사님을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응.”
베나블은 시녀장 한나와 함께 대공저 입구로 마법사를 마중하러 나갔다.
대공 저택저에서 대공 입구까지는 마차로 30분 거리다.
타고 있던 마차가 멈췄다. 베나블은 마차에 내려 대공저 입구 앞을 열라고 지시했다.
대공저의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말 위에 타고 있는 마법사를 베나블이 반갑게 맞이했다.
‘말을 타고 온 마법사라.’
마법사들이 말을 못 타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말 타고 온 마법사는 흔치 않았다.
그 마법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붉은 로브로 가리고 있어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로브가 꽤나 고가의 상품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 플로렌스 대공가의 집사 베나블이라 합니다.”
“안녕하세요. 시녀장 한나라고 합니다, 마법사님.”
메이아는 말의 등자에서 발을 모두 뺀 뒤 우아하게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허허, 마법사님 승마를 참 잘하십니다.”
“칭찬 고마워요.”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베나블과 한나에 귀에 꽂혔다.
“승마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답니다.”
마법사의 검붉은 로브가 벗겨지자 베나블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로브를 벗은 마법사의 머리카락 색이 흔하지 않은 은빛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는 어딘가에서 분명 본 얼굴이었다.
매우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니, 낯익은 얼굴일 수밖에 없었다!
베나블의 심장이 벌렁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테오도르가 요즘 소중하게 여기는 액자 속 초상화의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반가워요. 마탑에서 의뢰를 받고 온 마법사 메이아 하츠벨루아라고 해요.”
상사병에 걸린 테오도르를 병간호하느라 몇 날 며칠을 들었던 그 이름을 말에서 내린 마법사가 자기 이름이라며 소개했다.
베나블과 한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