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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32화 (32/163)

32화

“메…… 이아…….”

의원 워스트는 메이아라는 인물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애튼을 불러 물어보았다.

“애튼 님.”

“예.”

“대공께서 계속 ‘메이아’라고 부르시는데.”

애튼은 앓고 있으면서도 메이아를 찾는 테오도르를 생각하니 애잔해졌다.

“카르펜 제국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공녀님이신데. 요번에 마탑에 가다가 만난 분이십니다.”

워스트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약이 통하지 않고, 불규칙한 심장 소리와 괴로워 보이는 표정의 테오도르.

그리고 잠들어 있는데도 찾는 이성의 이름. 아마도 그 ‘불치병’인 게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큰일입니다. 이거, 이거…… 참. 제 진단이 맞는다면. 아주 오래간만에 본 병이군요.”

워스트의 말에 애튼은 두려움에 떨며 물어보았다.

“대공 각하가 심각한 병에 걸리신 거 아니겠죠?”

워스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병명을 알아냈습니다. 베나블과 한나를 불러 주십시오.”

워스트가 병명을 알아냈다는 말을 듣자마자 베나블은 전력 질주로 방에 도착했다.

방에 모인 헤만, 베나블 그리고 한나까지 워스트의 말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워스트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이 병은 절대 약이 통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낫지 않는 병입니다. 아무리 만병통치약이라 하더라도. 안 통할 겁니다. 이 병은…… 불치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애튼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부정하며 워스트에게 외쳤다.

“신성력과 약이 통하지 않는 병이라니! 그런 병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각하는 누구보다 건강하신 분입니다!”

워스트의 말을 옆에서 들은 집사 베나블과 시녀장 한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워스트 의원님, 제발 각하를 살려 주세요, 흑흑.”

“이 집사 베나블, 대공 각하 곁에서 보필하지 못한 죗값을 목숨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애통해하는 그들을 워스트가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불치병은 불치병이지만. 치료 방법은 있는 병입니다.”

치료 방법이 있다는 말에 베나블은 눈물을 멈추고 워스트의 어깨를 흔들며 빨리 말하라 재촉했다.

“치료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정하세요, 베나블 님. 워스트 의원님의 어깨를 놔 주세요.”

베나블에게 속절없이 어깨를 흔들린 워스트는 다시 한번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다들 쉿! 워스트 님 말씀을 듣죠.”

“흠흠, 우선 병명과 그 증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긴장하며 테오도르의 병명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이 병은 증세는 식사도 잘 못 하게 되고. 잠도 잘 못 주무시게 되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 우울증까지 동반하게 되어 매우 위험한 병이죠. 여기서 증상이 더 나빠지면 술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매우 위험한 병이죠.”

“맞아요. 요즘 식사도 못 하시고…….”

“편지 쓰신다고 잠도 못 주무셨습니다.”

워스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병명은 뭡니까?”

“이 병의 이름은 상사병입니다.”

흐느끼던 베나블과 한나는 흐느낌을 멈췄다.

“상사병이요?”

“상사병은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암, 무섭고말고요. 현재 병상에서 일어나게 하시려면 메이아라는 분을 각하와 만나게 해야 합니다.”

방 안에 정적이 휩싸였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워 신음하던 테오도르는 허공에 대고 양팔을 흔들며 메이아를 간절히 부르기 시작했다.

“메이아……. 메이아, 공녀님.”

“잠을 자도 좋아하는 이성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상사병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증상입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아주…… 우습게 볼 병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

메이아는 마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방을 푸링에게 안내받았다.

그리고 아침마다 매일 도착하는 편지들을 읽었다.

그 수가 꽤 많아 오전에만 편지를 읽는 데 시간을 다 쏟았다.

플로렌스령으로 돌아간 테오도르의 편지도 매일 도착했다.

그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날씨 이야기 그리고 음식 이야기를 시작으로 열심히 일하고, 검술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아기자기한 그의 일상 이야기는 메이아를 미소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테오도르의 편지 글씨 때문에 미소가 지어졌다.

‘글씨체가 상당히 부드럽네. 상당히 신경 써서 글을 썼어, 테오도르 대공 각하.’

검을 잡는 사람은 깃펜을 쥘 때 힘이 절로 들어간다.

깃펜은 가볍게 쥐는 것만으로도 부러지는 일이 많다.

가느다랗고 약한 깃펜을 제어하며 글씨 쓰는 건 검은 잡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악필이다.

그렇지만 테오도르가 보낸 편지에는 그러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글씨체가 정갈했고 부드러웠다. 그만큼 글씨에 신경 썼다는 걸 뜻한다.

“역시 귀엽단 말이지.”

미소 짓는 메이아의 중얼거림을 들은 푸링이 물어봤다.

“뭐가 귀엽다는 겁니까?”

“테오도르 대공 각하 편지가 참 귀여워서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보내는군요.”

“테오도르 대공 각하를 생각하면 귀여운 강아지가 곁에 있는 기분이에요.”

“정말 강아지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생긴 거 생각해 보십시오. 덩치도 크고 시커먼 사내놈입니다.”

“강아지 같아요. 제 눈치도 살살 보면서 싱긋 잘 웃고, 그리고 절 보고 얼굴 빨개질 때 뭐랄까요. 정말로 그가 귀엽게 느껴져요, 스승님.”

“대공님 이야기를 하실 때…… 표정이 참 밝아지십니다.”

“귀여운 걸 보고 인상 찌푸리는 사람은 없어요, 스승님.”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편지를 차곡차곡 접어 자신의 마법 가방에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답장을 써 볼까나.”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답변을 썼다.

[당분간 마탑 일이 있어서 편지를 보내 주셔도 바로 답장하기 어렵습니다.]

테오도르는 이 편지를 읽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나타나면 그는 어떤 얼굴을 보여 줄까?

‘난 테오도르 대공의 그런 얼굴들이 왜 궁금할까?’

차갑고 서늘한 인상이 금방 안절부절못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간다.

메이아는 짓궂게 웃으며 플로랜스령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조금씩 꾸리기 시작했다.

*

테오도르는 드디어 도착한 메이아의 편지에 기분이 매우 좋아 환하게 웃으며 병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인님!”

집사 베나블도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응, 베나블! 얼른 메이아 공녀님의 편지를 읽고 싶어!”

그렇지만 그 기쁨은 곧바로 절망으로 바뀌었다.

“하아.”

테오도르는 읽던 편지를 내려놓으며, 슬픈 얼굴을 한 채 큰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베나블에게 등을 보이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며 누웠다. 그 모습이 의아해 베나블은 그를 조용히 불러 보았다.

“주인님?”

“……혼자 있고 싶어.”

분명 메이아의 편지는 테오도르를 춤추게 한다고 워스트가 말했다.

<상사병의 대상에게서 오는 편지는 처방약 같은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편지를 읽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테오도르는 무척 괴로워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베나블의 속이 타들어 갔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저렇게나 힘들어하시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베나블은 테오도르에게 조심히 물었다.

“제가 편지를 읽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응.”

베나블은 테오도르가 읽었던 편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글자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벌벌 떨리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당분간 마탑 일이 있어서 편지를 보내 주셔도 바로 답장하기 어렵습니다.]

베나블은 메이아의 편지를 다 읽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른하늘에 우박이 떨어져 머리를 강타한 기분이었다.

“답장을 못 보내신다니…….”

베나블은 메이아가 테오도르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테오도르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집사 베나블, 꼭 각하를 낫게 해 드릴 겁니다!’

베나블은 테오도르를 한 번 더 살펴본 뒤 그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의원 워스트에게 달려가 편지 내용을 말했다.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주인님께서 우울해하십니다.”

“상사병 말기에 우울증은 자주 올 수 있습니다.”

“워스트 의원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제발 주인님을 살릴 수 있게 그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베나블의 간절한 말을 듣던 워스트는 심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것까지는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군요.”

“워스트 님, 뭐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임시방편이지만 그래도 꽤 효과가 좋습니다. 하지만 상사병에 ‘그 방법’을 쓰게 된다면 효과가 좋은 반면에 반대로 그리움도 배로 커집니다.”

“그리움이 커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워스트의 말을 듣고 베나블은 그야말로 핵마법을 머리에 직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베나블은 워스트의 진단을 듣자마자 테오도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울컥 올라왔다.

“상사병은 예방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물론 그리움이 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안 좋아질 수 있지만 충분한 동기 부여를 계속한다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동기 부여요?”

“예를 들어 곧 공녀님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격려 말이죠.”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상사병이 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동기 부여만 된다면 괜찮다. 그렇지만 분명 위험한 방법이다.

정신을 망가뜨리는 상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동기 부여란 오히려 광기와 집착을 심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기 부여를 했지만 만에 하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감이 커지게 됩니다. 이 방법은 확실히 위험합니다. 실망감은 곧 좌절감이기도 하죠. 동기 부여가 강해지면 집착과 망상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워스트 의원님. 최선을 다해 공녀님을 대공저로 모실 수 있도록 플로렌스가의 힘을 총동원할 것입니다.”

베나블은 비장하게 말했다. 꼭 전쟁에 나가기 전 총사령관의 모습 같았다.

위험한 방법이라도 지금의 테오도르를 잠시라도 좋아지게 할 수 있다면 베나블은 드래곤 둥지로 뛰어 들어가 한 입 거리가 되어도 좋았다.

“임시방편으로는 메이아 공녀님의 초상화만 있으면 됩니다. 물론 다양한 버전으로 있으면 더욱 효과가 좋습니다.”

“꽤 어려운 주문이군요.”

“그렇다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가가 보죠. 예를 들면…….”

베나블은 한참 동안 워스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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