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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31화 (31/163)

31화

“편지 보내 주세요.”

“……편지 보내도 되겠습니까?”

테오도르의 말에 메이아는 웃으며 답했다.

“네, 편지 주고받아요. 테오도르 대공 각하 덕분에 재미있게 잘 왔어요. 애튼도 조심히 가요.”

“예, 공녀님.”

테오도르는 한참 동안 메이아를 내려다보았다. 애타고 들끓어 오르는 자신의 심정을 말해 주고 싶었다.

“공녀님과 헤어지기 싫습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에요.”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마주 보다 그의 뺨에 손을 댔다.

그는 잠시 움찔거리다 뺨을 더 만져 달라는 듯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였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편지 자주 보내 주시고요.”

그의 얼굴은 곧 울 것 같았다. 붉어진 눈가에서 슬픈 감정이 전해졌다.

“안녕히 가세요.”

“네……, 안녕히…….”

메이아는 푸링이 올라간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쥬안은 테오도르와 애튼을 흘겨본 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테오도르는 소파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애튼.”

“대공 각하, 애쓰셨습니다.”

“응…….”

“대공가로 돌아가시죠.”

“응……. 잠깐만, 여기 잠깐만 앉아 있다 갈게…….”

테오도르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메이아가 올라간 계단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마탑에서 나온 테오도르는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발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애튼이 애처롭게 바라봤다.

“각하…….”

“알아. 가야 한다는 거.”

하늘 위를 올려다본 테오도르의 얼굴 위로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더니 곧 물이 되어 테오도르의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더는 안 울려고 노력을 했지만 코끝이 자꾸 찡해졌다.

속 안에서는 계속 쓴 물이 올라오고, 가슴이 술렁거리면서 콕콕 쑤셨다.

“애튼, 가자.”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자신은 플로렌스 대공이다.

대공저로 얼른 돌아가야만 했다.

*

테오도르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향해 갔다.

거기에는 자신의 또 다른 보좌관인 헤만이 열심히 일을 보고 있었다.

“고생했어, 헤만.”

“아닙니다, 각하.”

헤만은 테오도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 해 주었다.

“그리고 이건 노르딕 부인과 쟈스민 부인이 정리한 것입니다.”

쟈스민 부인과 노르딕 부인이 테오도르의 도착 소식을 듣고 집무실을 방문했다.

“대공 각하!”

“각하!”

아직 플로렌스 대공가에는 안주인이 없으므로 가신 가문의 부인들이 대공가에 와서 안살림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다들 나 없을 때 고생했어.”

“아닙니다.”

“그나저나 마법사가 오기로 한 것입니까? 현재 해적으로 인한 항구 쪽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응, 곧 보내 준다고 했어. 대마법사 푸링이 한 이야기니 확실할 거야.”

그 말을 하는 테오도르는 슬퍼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먼 여행길에 피곤한 거라 생각했다.

테오도르는 대공가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집무실에서 일을 보았다.

그리고…….

“헤만, 꽃향기가 나는 최고급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준비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놔.”

“꽃향기가 나는 편지지요?”

헤만은 자기가 들은 것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재차 물어보았다.

“응, 준비해 줘. 은방울꽃이든 백합이든 아무튼 향기 좋은 걸로 갖다 놔.”

편지지를 준비해 달라는 테오도르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상기된 것을 보고 헤만은 의아해했다.

애튼은 알겠다는 얼굴로 헤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집무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갑자기 편지지를 왜 찾으시는 거지?”

“우선 준비나 해.”

헤만과 애튼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절친한 관계였기에 둘이 있으면 허물없이 말을 놓았다.

헤만은 테오도르가 원하는 편지지와 봉투를 구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편지지의 향을 맡아 본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깃펜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먼저 써야겠지.”

테오도르는 편지를 쓰기 위해 정말 일을 열심히 했고, 일과를 마무리했다.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깃펜을 들고 편지지를 바라보는 테오도르는 행복했다.

그렇지만 편지를 쓸수록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인사까지는 잘 작성했지만 나머지는 뭐라 써야 할지 막막했다.

생각나는 편지 내용은 오로지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이런 말만 생각날 뿐이었다.

테오도르는 집무실에서 메이아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뜻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계속 편지를 쓰고 구기고 버리는 걸 반복했다.

“헤만!”

“네, 각하!”

“예!”

“편지지를 좀 더 많이 가져다줘.”

“편지지를 또요?”

“많이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테오도르는 긴장을 풀고 다시 편지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메이아 하츠벨루아 공녀님께.]

여기까진 괜찮았지만 그다음 내용을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애튼, 편지는 뭐라고 써야 하는 거야?”

애튼은 테오도르가 메이아에게 보내기 위한 편지를 작성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가 원하는 답을 꺼냈다.

“잘 지내는지 안부도 묻고, 날씨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도 하면 좋습니다.”

“그래? 내 마음을 표현, 표현, 표현.”

얼굴이 빨개진 테오도르는 다시 편지지를 쳐다보며 깃펜을 들었다.

[보고 싶은 메이아 공녀님께.]

테오도르의 얼굴과 귀 목덜미까지 새빨개졌다. 너무 부끄러워 편지지를 구겼다.

다시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었다.

[당장 만나고 싶은 메이아 공녀님께.]

테오도르는 깃펜을 놓고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쓰는데 너무 심장이 쿵쿵거려.”

“그걸 이겨 내셔야 합니다. 그런 두근거림을 이기지 못하신다면 사랑은 도망갑니다!”

“도망가면 안 되지. 극복해야지.”

테오도르가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깃펜을 들고 편지를 쓰다, 편지지를 구기고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기를 반복할 때 헤만은 궁금하다는 듯 애튼에게 물어봤다.

“애튼……. 대공 각하께…… 좋아하시는 여자분이 생긴 거야? 그리고 저 편지를 그분에게 보내는 거고?”

“짝사랑이시다.”

“뭐 짝사랑?”

헤만은 꽃향기가 나는 편지지를 가져다 달라는 그의 말에 약간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떤 분이신데?”

“카르펜 제국의 하츠벨루아 메이아 공녀님이야. 엄청나게 미인에다가 능력자야. 딱 대공비감이지.”

“애튼 네가 대공비감이라고 할 정도니 그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애튼은 헤만에게 메이아에 관한 일화들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 와중에도 테오도르는 계속 편지를 썼다가 구기고, 썼다가 또 구겼다.

결국, 구겨진 종이가 산처럼 쌓였을 때 간신히 한 장을 완성했지만 그마저도 구겨 버렸다.

“편지 쓰는 거 너무 어렵잖아.”

어질러진 집무실의 풍경에 애튼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헤만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도와 드릴까요?”

“아니야. 내 힘으로 쓸 거야.”

테오도르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깃펜을 들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이 돼서야 그의 첫 편지가 완성되었다.

*

테오도르는 낮에는 많은 업무를 처리했고, 밤에는 편지를 쓰다 보니 날 새는 일도 점점 많아졌다. 날을 새다 보니 몸은 피로해지고, 입맛 또한 없어졌다.

플로렌스 대공가의 집사 베나블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시녀장 한나와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식사를 남기셨습니다.”

“네, 베나블 님. 한 입도 안 드시네요. 좋아하시는 음식인데도 말이죠.”

“요즘 잠도 편히 못 주무시는 것 같은데.”

“밤새워 일하시는 것 같아요.”

“저러다 각하께서 쓰러지실까 너무 걱정됩니다.”

집사 베나블과 시녀장 한나는 어떻게서든 테오도르에게 음식을 제대로 먹고 쉴 수 있도록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쯤 건강 체질이던 테오도르가 갑자기 쓰러져 대공가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의원 워스트는 곧바로 대공가로 찾아와 테오도르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이 오르고 사경을 헤매는 그의 모습에 해열제와 할 수 있는 의학 처방은 모두 했다. 그렇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약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워스트는 심각하게 이야기했고, 한나와 베나블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체 왜 약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헤만과 애튼은 다급히 말했다.

“워스트 의원님! 각하를 살려 주십시오.”

소식 듣고 달려온 노르딕 부인과 쟈스민 부인도 간절히 청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분명 해열제를 드렸습니다. 신성력이 담긴 아티팩트도 썼지만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몸살은 아닌 듯한데…… 우선은 왜 약이 안 드는지 최선을 다해 원인을 찾아보겠습니다.”

테오도르는 꿈에서 계속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다. 왜냐하면 저 앞에 조금만 뛰어가도 닿을 거리에 너무나도 보고 싶고 사랑하는 메이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꽃봉오리가 활짝 핀 장미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든 메이아에게 손을 흔들며 꽃밭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가슴이 터져도 좋으니 자신의 손끝이 그녀에게 닿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전력 질주한 끝에 가까이 마주 보며 사랑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드디어 닿았다.>

테오도르는 행복한 미소를 보이여 메이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 더 잘생겼다 했다. 그러니 계속 웃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매혹적으로 방긋방긋 웃었다.

<얼굴 보니 좋습니다.>

메이아는 자신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어 주었다.

<테오, 저 보고 싶었어요?>

<네, 무척.>

테오도르는 자신에게 웃어 주는 메이아를 바라만 봐도 좋았다.

너무 행복하고 가슴에 꽃이 핀 기분이었다.

<메이아.>

<네? 테오.>

<키스해도 되겠습니까?>

의원 워스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테오도르를 간호했다.

그런데 잠들어 있는 그가 이상했다.

“메이…… 아…….”

테오도르가 신음하며 계속 ‘메이아’라는 이름만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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