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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30화 (30/163)

30화

“그는 잘못된 방법으로 절 집착하고 좋아한다 말하고 있어요.”

메이아의 말에 푸링은 혀를 차며 말했다.

“집착 있는 남잔 인기 없는데…….”

“그는 황태자 자리에 욕심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제가 황자비가 된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푸링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흔들렸다.

데미안은 분명 지독히도 달콤한 말을 하며 메이아에게 더욱 집착할 것이다.

그의 감춰진 광기는 어린 날에 충분히 겪어 봤다.

아무리 자신이 황후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 하더라도.

사촌 언니와 삼촌에 의해 약혼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데미안 황자를 황제로 만들어야 할 만큼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싫어했다.

“황후가 되고 싶지는 않으신 겁니까?”

현재 자신에게 있어 카르펜 제국의 황후 자리가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일까?

자신의 손에서 한 번 떠난 것에 욕심을 굳이 부릴 필요가 있을까?

“황자비가 되어 파츠래리 전하와 루만 공작에게 복수하고 싶으신 마음은 없으십니까?”

푸링의 진지하게 질문했다.

“진흙탕 속에 있을 필요는 없죠. 더러운 복수보다는 아름다운 용서가 낫지 않을까요?”

메이아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푸링은 하하 웃었다.

“더러운 시작보다는 아름다운 마무리가 훨씬 좋지요.”

“무엇보다 사촌 언니가 약혼녀가 된 것만으로도 제 복수는 나름 성공인 셈이라서요.”

메릴 언니와 자신을 단 한 번이라도 비교하게 된다면 아주 작은 복수의 성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웃어 주면 된다. 딱 그 정도다.

“그리고 처음 여행하는 게 즐거웠어요.”

유람선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여행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구나!

매일 보던 책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현실에서 직접 만나는 것도 꽤 재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허송세월이란 것도 겪어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니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저에게 원하는 것을.”

“마탑 마법사로 등록시켜 주시겠어요?”

“애제자가 도움을 부탁하는데 거절할 스승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언제쯤 자격을 발급받을 수 있나요?”

“어차피 마탑에서 공녀님을 거절할 리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메이아는 기대한다면서 소파에 편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

마력을 가진 귀족이 마법사가 되려고 할 때 굳이 마법사 등록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귀족이라도 돈이 필요하다면 마법사 관련 의뢰를 받고 나갈 수 있지만, 귀족의 자존심 때문에 의뢰자와의 트러블로 속 시끄러운 일이 더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마탑의 마탑주와 대마법사들은 귀족의 마탑 마법사 등록을 신중히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대마법사 중 한 명이 강력하게 추천한다면 마법사 등록은 간단히 끝난다.

그렇게 한 명의 대마법사의 허락과 마탑의 의지로 마탑 마법사로 등록되며 정식으로 브로치가 발급된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푸링은 메이아에게 정식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브로치를 건네며 축하했다.

“등록된 걸 축하합니다.”

“등록이 정말 빠르네요.”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면 금방 될 일입니다.”

“모두 스승님 덕분입니다. 언제나 마탑의 마법사로서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푸링은 흐뭇하게 메이아를 바라봤다.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나 있는 약혼자에게 외면받고, 노력했던 그 모든 시간을 부정당했으며, 사랑하는 부모님은 사라졌다.

단단한 나무 같아 보이더라도 속은 여리다.

자칫 다가오는 태풍에 뿌리까지 뽑힐까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잘 극복한 것 같아 안심이었다.

무엇보다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푸링은 크게 안도했다.

오히려 복수를 맹세했다면 분명 메이아는 망가졌을 거다. 그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스승님, 플로렌스 대공님께는 제가 마법사 등록한 건 말하지 마세요.”

플로렌스 대공이라면 메이아와 함께 온 시리우스 제국의 대공이었다.

마탑에 의뢰를 하기 위해 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이아의 표정이 약간 기대에 찬 사람처럼 보이는 건 그의 착각인 걸까?

묘하게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그는 마탑의 마법사 한 명이 대공가에 있기를 원해요. 마법 스크롤을 잘 만들고 전투에도 능한 마법사요.”

메이아는 스크롤도 잘 만들고 전투에도 능하다.

푸링은 설마? 혹시? 라는 생각에 물었다.

“혹시 대공가로 가실 생각입니까?”

“데미안 황자가 오기 전에 대공가 의뢰를 받고 가려고요. 그래서 마탑의 마법사로 등록해 달라고 했던 겁니다, 스승님.”

“그분하고 꽤 친해지셨나 봅니다?”

메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무엇이 그녀를 즐겁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마탑에서 편하게 지내도 되는데도 굳이 대공가로 떠나려는 메이아가 푸링은 걱정이 되었다.

이게 모두 데미안 황자 때문이다.

“스승님도 데미안 황자를 보면 제 마음을 알게 되실 거예요.”

“하지만 왜 하필 플로렌스 대공령입니까?”

“테오도르 대공 각하는 저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사람이 아니니깐요.”

마법사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메이아 공녀님께서 보시기엔 플로렌스 대공은 어떤 인물입니까?”

푸링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메이아는 웃으며 답했다.

“블랙 레트리버 같아요. 커다란 강아지가 꼬리를 붕붕 흔드는 것 같이 귀여워요. 그리고 테오도르 대공님은 상냥하고 웃으면 예뻐요.”

테오도르의 칭찬을 늘어놓는 메이아의 말에 푸링은 머리에 핵마법이 날아온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파츠래리와의 그 긴 약혼 기간에도 단 한 번도 그에 대한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늑대도 개과라는 사실 잊지 마십시오.”

“개는 이빨을 드러내도 늑대가 될 수 없어요, 스승님. 그는 귀여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테오도르 대공님의 의뢰를 받아 주신 뒤에 먼저 대공가로 가 있으면 마법사를 곧 보낸다고 해 주세요.”

의뢰를 받은 마법사와 의뢰인은 같이 길을 떠난다. 물론 마법사의 개인 사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 의뢰인과 함께 텔레포트를 타고 떠나는 편이었다.

“같이 안 가시려는 겁니까?”

“스승님하고 조금 더 있다 가려고요.”

“이 늙은이가 뭐가 재미있다고…….”

“싫으신 건 아니신 거죠?”

“설마요!”

“사실 제 아티팩트와 스크롤 작업 좀 하고 가려고 해요.”

유람선에서 해적들 상대로 몇 장 써 버려서 보충용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유람선 위에도 자신의 시중을 들고 쫓아다니던 테오도르가 생각이 나 메이아는 또 풉 하고 웃었다.

“응? 공녀님 왜 갑자기 웃음을?”

“아니에요.”

이별이 아쉬워서 끙끙거리는 테오도르가 생각이 나자 메이아는 또 웃었다.

만에 하나 헤어져 있다가 며칠 뒤에 만나면 그의 표정이 과연 어떨까?

그 표정이 너무 궁금했다.

‘울까? 웃을까? 당황할까? 초조해할까? 어떤 표정 지을지 기대되네.’

그래서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고 싶었는데 그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계속 눈을 맞췄다.

“뭘 그리 재미있는 생각을 하시길래 웃고 계십니까?”

“테오도르 대공님 생각이 나서요. 생각하다 보니 웃음이 나오네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줄곧 웃음기 하나 없던 메이아의 미소를 보니 푸링은 플로렌스가로 간다는 애제자를 더는 막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테오도르는 메이아가 올라간 계단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눈앞의 과자를 열심히 오도독오도독 씹었다.

원래 달콤한 걸 먹으면 기분이 풀린다고 하는데 자꾸만 울적해지기만 했다.

“휴우.”

애튼은 한숨을 푹푹 쉬는 테오도르를 보며 가슴팍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이아를 대공가로 모셔 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돈이 아쉬운 것도 아니었고 지위, 명예, 모두 다 가진 타 제국의 귀한 공녀님이시다.

낚싯대에 미끼도 좋아야 물고기가 걸리는 법이거늘…….

“에휴.”

애튼도 테오도르처럼 깊게 숨을 내쉬었다. 쥬안은 그런 그들을 차갑게 노려볼 뿐이었다.

두 남자가 연거푸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대마법사 푸링과 메이아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대공님, 오래 기다리셨죠?”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목소리에 빠르게 반응했다.

벌떡 일어나 계단 앞까지 달려 나가 메이아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메이아는 그의 손 위에 손을 올렸다.

“짧은 에스코트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메이아의 미소를 보자마자 달콤한 과자를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던 달콤함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바람에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에스코트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드득, 으드득.

쥬안은 그 모습에 단검을 다시 꺼내 들고 싶었지만 마탑에 의해 쫓겨날까 봐 참았다.

에스코트하는 귀족을 제재할 핑계가 없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속에서 칼을 갈며 테오도르를 살벌하게 노려보던 쥬안은 메이아를 보자마자 표정을 느슨하게 풀며 허리를 숙였다.

애튼은 그 모습을 보고 이중인격이라며 속으로 욕했다.

“아가씨, 나오셨습니까?”

“응, 쥬안. 난 아티팩트와 스크롤 때문에 스승님의 연구실에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림자 권능은 잠시 차단할 테니 마탑 아무 데서나 편하게 지내.”

메이아는 쥬안과의 그림자 언약으로 주종 관계에 있다.

그림자 일족인 그는 항상 메이아 그림자 속에 있으며 그녀를 지키기로 맹세했다.

다만, 그녀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언약과 그녀의 뜻에 따라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수 없다.

“푸링 님이 지낼 곳을 봐 주실 거야.”

“알겠습니다.”

메이아의 말에 이별이 다가온 걸 예상한 테오도르의 눈동자는 금세 촉촉해지고,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메이아는 그에게 물었다.

“테오도르 대공님…….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침울해하는 테오도르 대신 보좌관 애튼이 푸링에게 의뢰서를 건네주었다.

“시리우스 제국의 플로렌스 대공가의 의뢰입니다. 저희는 현재 3써클 이상의 마법사를 필요로 합니다. 아티팩트나 스크롤 만들어 주실 분이라면 더 환영합니다. 보수는 상담하에 결정하겠습니다.”

푸링이 애튼에게서 의뢰서를 받아 들었다.

“의뢰를 받겠습니다. 현재 마탑에 마법사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조금 시간을 주십시오. 먼저 플로렌스 대공가로 돌아가 기다리시면 마법사를 보내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가십시오.”

푸링은 뒤돌아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테오도르 대공 각하,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네요.”

테오도르의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만 같았다.

왼쪽 심장의 통증은 처음 겪어 본 것처럼 끔찍해서 몸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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