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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29화 (29/163)

29화

공작저에서 나온 데미안은 바로 루루나를 찾아갔다.

“어머니.”

“왔니, 데미안?”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초대장만 주고 왔습니다.”

“그랬단 말이지……. 잘했다.”

루루나는 시녀들을 손짓으로 모두 물러나게 한 뒤에 데미안을 앉게 했다.

“메이아 공녀는 확실히 마탑으로 간 것이겠지?”

데미안은 손에 들린 신문과 잡지를 건네주었다.

“이건.”

“아쉴롬이 쓴 신문입니다. 테일론으로 가는 유람선 위에 해적이 급습했는데 메이아 공녀가 사람들을 구해 준 모양입니다.”

“테일론이라.”

루루나의 말에 데미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론에 마탑이 있습니다.”

“마탑에 간 게 확실한 거구나.”

“저도 마탑으로 갈까 합니다.”

“어차피 곧 돌아올 텐데 마탑까지 가려고?”

“지금 페르젠 후작 쪽에서는 바람둥이로 유명한 장남 마커스가 든든한 지원을 받고 메이아 공녀를 유혹하기로 결정되었다 합니다. 페르젠 후작가뿐만이 아닙니다. 해리언 남작가, 버나드 자작가, 메이슨 백작가. 입으로 말하기도 피곤할 정도로 잘생긴 영식들이 메이아 공녀의 성인식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제2 황자가 선전 포고를 했는데도, 다들 귓등으로도 말을 안 듣는군.”

“아무래도 공작가에서 메이아 공녀의 결혼에 먼저 나서지를 않으니 다들 그런 것 같습니다. 에머슨 백작가에서 무려 다이아몬드 광산 다섯 개를 지참금으로 준다 했는데도 하츠벨루아 공작저에서 거절했다 합니다.”

“그 욕심 많은 하츠벨루아 공작이 자신의 조카딸을 비싼 값에 팔 수도 있을 텐데 하지 않는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어머니.”

“그래도 그 덕분에 메이아 공녀가 정략혼으로 팔려 나가지 않고 있는 거 아니니.”

“다만 타 제국에는 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마탑으로 가 그녀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루루나는 기분이 좋아져 계속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 있는 거지? 데미안.”

“이야기해 봐야 알겠지만.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메이아 공녀가 황자비가 된다면 판도가 달라질 거다. 그렇게 됐을 때 황후와 황태자 얼굴이 아주 볼만하겠어, 호호.”

루루나는 기분이 좋게 웃었다.

전 하츠벨루아 공작 부부가 죽은 뒤에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젠 메이아만 황자비로 와 준다면 더욱 완벽하게 데미안 자리가 확고해질 것이다.

아니, 확고 정도가 아니다. 다음 대 황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루루나는 데미안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메이아에게 황태자와 루만 공작에게 복수하자고.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 버림받은 그녀라면 분명 손을 잡을지도 모른다.

루루나의 말을 듣던 데미안은 생각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는 보통 여인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오로지 황후가 되기 위해 철저하게 만들어지고 키워진 아름다운 여인이다.

머리 또한 비상했다. 뛰어난 언변으로 사교계에서도 꽃으로서 군림했다.

그 누구도 메이아를 거스르지 않았고, 그 누구도 메이아의 말이라면 따르며 동경했다.

심지어 신분이 낮은 자까지 그녀를 존경하고 따랐다.

“솔직히 조금은 이상합니다.”

“무엇이?”

“평생 황후가 되기 위해 살아온 그녀가 쉽게 약혼녀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녀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너무나도 쉽게 약혼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데미안은 메이아가 믿었던 황태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그냥 약혼녀 자리를 내준 것으로 예상했다.

“어미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메이아 공녀처럼 자존심이 강한 여인이라도 버림받으면 상처받고, 자존심이 상하죠.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어쩌면 카르펜 제국에 있기 싫었을 거예요. 유람선에 탑승한 이유도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데미안은 눈을 감고 메이아 공녀를 떠올렸다.

“그녀를 빨리 제 새장 속에 넣고 싶습니다.”

“데미안…….”

“그녀는 제 여인입니다. 처음부터 그리 정해졌습니다. 망할 형님이 약혼녀로 데리고 가지만 않았어도 저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심한 집착은 여인을 떠나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로워지세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스스로 알기 때문에 자중할 뿐입니다. 그럼 저는 마탑으로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데미안은 메이아를 자신의 품으로 데리고 올 생각에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

마탑에 도착한 메이아는 바로 푸링과 만날 수 있었지만 테오도르와 애튼은 푸링과의 만남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아 1층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테오도르 대공 각하,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네, 메이아 공녀님 나오시기만 기다리겠습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만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저는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 테니…… 오시면.”

“잘 기다렸다고 칭찬해 드릴까요?”

그 말에 테오도르는 귀까지 붉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메이아는 푸링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 번 고개를 돌려 테오도르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눈가에 힘을 주고 커다랗게 눈을 떴다.

그런데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그 뒷모습이 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커다랗게 떴던 눈을 깜박이며 애튼을 불렀다.

“애튼.”

“예, 각하.”

“은방울꽃이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아.”

“메이아 공녀님은 꽃이 아니고 사람이십니다.”

“내 눈엔 왜 이렇게 꽃 같아 보이고 요정 같지?”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눈을 반짝거렸다.

“테오도르 대공 각하, 그런 눈으로 우리 아가씨를 보지 않으셨으면 합. 니. 다.”

어느새 나타난 쥬안은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테오도르를 노려보며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삑!

-여기서 싸우시면 안 됩니다. 칼을 집어넣어 주세요. 칼을 집어넣지 않으면 마탑 밖으로 내보내겠습니다.

마탑의 목소리에 쥬안은 잠시 흠칫했다가 품에 단검을 다시 집어넣고 애튼 옆에 가서 앉아 앞에 놓인 과자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며 테오도르를 계속 노려보았다.

메이아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푸링에게 털어놓았다.

“스승님 말씀을 듣길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푸링은 허허 웃었다. 그리고 마탑으로 특급 전달된 메이아 앞으로 온 편지들을 건네주었다.

“연서나 청혼서들은 모두 불태웠고, 개인적인 편지만 남겨 두었습니다. 선물들은 반송시켰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푸링이 건네준 편지는 올리비아. 그리고 친한 영애들과 귀부인들의 편지들이었다.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졌다. 읽어 보니 내용은 다 비슷했다.

걱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현재 사교계 일까지 전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서 영식들이 외모를 가꾼다는 내용을 읽다가 메이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유 결혼 계약서에는 5년간 카르펜 제국의 어떠한 남자와도 결혼을 올리지 않겠다 적어 두었다.

“인간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스승님.”

메이아의 질문에 푸링은 잠시 생각했다.

“고통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는 고문은 바로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오시기 전에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오셨습니까?”

“아니요.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희망 고문을 당하기 위해 애쓰니 그게 몹시 우습군요.”

5년간 카르펜 제국의 어떠한 남자와도 결혼할 수 없다. 자유 결혼서에 그리 작성했다.

메이아는 사람들이 무지에서 오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유혹하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메이아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사교계의 꽃을 꺾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스승님.”

메이아의 말에 푸링은 크게 웃었다.

“흥! 공녀님, 만에 하나 꺾는 자가 있다면 제가 그 손목 꺾어 버릴 겁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화분에 꽃을 옮겨 심을 줄 아는 마음 착한 분을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푸링은 메이아가 읽고 난 뒤에 건네준 편지들을 쭉 훑어보며 혀를 찼다.

메이아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마저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공작저에 있는 화가, 퀴니의 편지 때문이었다.

얼마 전 데미안이 루만에게 다녀갔다는 것과 마탑으로 갈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메이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마탑에 제2 황자가 오겠는데요.”

“데미안 폰 마브로 황자 전하가 오신단 말입니까?”

“전 그와 마주치기 싫습니다.”

자신이 떠난 이후 데미안은 사람들에게 메이아를 황자비로 맞이할 거라는 말을 하고 다니고 있단다.

그는 파츠래리와 다르게 사교계를 무시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계획적이다.

어릴 때부터 그를 봐 왔던 메이아다. 그는 잔인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심각한 표정의 메이아를 살펴보던 푸링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메이아는 다시 찻잔을 들고 차향을 맡았다.

“도와주실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최대한 데미안을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메이아 공녀님, 정녕 데미안 황자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푸링의 질문에 메이아는 확고하게 답했다.

“그는 올 거예요. 저를 항상 욕심낸 사람이니까요.”

메이아가 보기에 데미안 황자는 야망이 크고 욕심이 많다.

그리고 그걸 숨기지 않는다.

<형님이 황태자가 되었을 때도 형님이 부러웠지만, 메이아 공녀님이 형님의 약혼녀가 된 것이 더 부럽습니다.>

<저보다 좋은 영애들은 많습니다, 황자 전하.>

<아아……, 아름다운 은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오로지 메이아 공녀님밖에 없죠. 난 첫눈에 당신한테 반했었는데……. 형님이 당신을 빼앗아 갔군요. 아니지……, 내가 황태자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메이아는 데미안 황자가 항상 자신을 쳐다볼 때마다 느껴지는 소유욕으로 인해 거리를 뒀다.

<형님은 바쁘실 테니 제가 첫 춤을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아름답습니다, 메이아 공녀님.>

데미안 황자는 항상 노골적으로 자신을 유혹했다. 그리고 서슴없이 황태자 자리에 대한 욕심을 보여 주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쭉 그랬다. 오로지 자신만 봐 달라며 소리치고 화냈다.

데미안도 황궁의 사람이니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았다. 분명 웃고 있지만 눈동자에 웃음이 없다. 싱글싱글 웃는 눈빛에서 읽히는 살기 그리고 집착과 소유욕은 항상 메이아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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