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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25화 (25/163)
  • 25화

    갑판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메이아는 하늘 위에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봤다. 갈매기가 보이는 것은 항구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다.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테일론은 1년 내내 눈이 내리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추운 곳이다.

    테오도르는 두툼한 담요와 함께 따뜻한 딸기 차를 메이아에게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메이아는 찻잔을 들고 딸기 차를 호 하고 불며 한 모금 마셨다.

    “더 필요한 거 없으십니까?”

    “아니요. 없어요.”

    뭔가 우물쭈물하는 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딸기 차 맛은 괜찮으십니까?”

    “네, 맛있어요.”

    “다행입니다.”

    오늘따라 계속 딸기 차 맛이 괜찮냐고 묻는 그였다.

    찻잔을 들고 마실 때마다 그의 표정에 긴장감이 어린 게 느껴졌다. 마시고 난 뒤에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맛있다고 말할 때마다 테오도르의 얼굴은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설마? 이 딸기 차를 대공님이 만드신 거 아니겠지?’

    “오늘 유독 딸기 차가 맛있어요.”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음에 드십니까?”

    기대감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테오도르는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며 도망 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한시도 메이아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어디를 가든 에스코트는 물론이고, 때가 되면 딸기 차와 다과를 내오며 메이아가 책을 읽고 바다를 볼 때 말없이 조용히 곁에 있으면서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지금처럼 딸기 차를 내오거나 담요를 가져다주는 일까지 테오도르가 맡아 하다 보니 시중을 들어야 하는 안나와 아센이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대제국 시리우스의 플로렌스 대공이 자신들이 모셔야 하는 아가씨를 위해 직접 수발을 드니 어찌 안 부담스러울까?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한 번은 메이아가 “이건 안나가 해야 할 일이에요.”라고 말했다가 그의 축 처진 어깨에 괜히 마음만 더 쓰이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게 되었다.

    “메이아 공녀님, 여기.”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테오도르는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바람직한 미모다. 남자다우면서도 순해 보이는 인상이 마음에 든다.

    웃지 않을 때는 다소 차가운 냉미남 같아 보이지만 웃을 때 정말 예쁘다.

    그리고 볼과 귀가 새빨개진 테오도르는 잘생김을 떠나 귀여웠다.

    “고마워요. 안나 시켜도 될 일인데.”

    “제가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공녀님.”

    “네.”

    “바로 마탑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네. 바로 스승님을 뵙고 싶어서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눈꼬리가 축 내려갔다.

    “왜 그러세요?”

    “공녀님과 헤어지기 싫습니다.”

    버림받은 강아지같이 자신의 주위에서 끙끙거리며 헤어지기 싫다고 말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동안 저는 마탑에 있을 테니, 편지를 보내 주세요.”

    테오도르는 그녀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자 심장이 갈라질 것 같은 통증에 괴로워졌다.

    메이아와 좀 더 같이 있을 방법이 진정 없을까? 애튼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벌써 15일의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차라리 배가 멈추면 좋겠다는 기도를 매일 하고 있지만 유람선은 야속하게 도착 지점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갔다.

    테오도르는 다가오는 이별에 밤새 잠도 못 자고 끙끙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별을 막을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아 괴로웠다. 애튼 역시 함께 생각해 주었지만 딱히 메이아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한숨만 쉬었다.

    메이아는 간편하고 움직이기 쉬운 옷과 망토를 걸치고 나왔다.

    유람선에서 내리기 전, 선원과 선장, 부선장과 사용인들이 앞으로 나와 절도 있게 외쳤다.

    “카르펜 제국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메이아 공녀님에게 다들 경례!”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꽃과 손수건을 던지며 영웅이라며 찬양했다.

    “감사함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다들 영웅이라 말씀하시니 부끄럽네요.”

    메이아는 뒤를 돌아보며 아센과 안나를 쳐다봤다.

    “아센 그리고 안나, 이제까지 수고했어.”

    “저희야말로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아센은 진정한 귀족이 어떤 사람인지 메이아를 모시며 깨달은 바가 많았다. 그건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또 만났으면 해.”

    “저희도 또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저희 유람선을 이용해 주십시오.”

    “그래.”

    메이아는 다시 정면을 보니 테오도르가 에스코트를 하기 위해 서 있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보자마자 정신이 멀어졌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과 새하얀 피부와 은발의 조화는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튼……, 메이아 공녀님은 사람이 아니고 눈의 요정일 거야. 그렇지 않아?”

    애튼은 테오도르의 등을 꾹꾹 눌렀다.

    “각하, 에. 스. 코. 트.”

    “맞다!”

    테오도르는 메이아 앞으로 달려 나가 손을 내밀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 공녀님, 에스코트를 허락해 주십시오.”

    “테오도르 플로렌스 대공 각하의 에스코트 받겠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메이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계속 전했다.

    경비대에서는 해적들을 연행했다. 마침 수배받은 해적들이었기에 경비대는 기뻐하며 메이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바로 연행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대머리 마법사였다.

    그의 이름은 파울로다. 마법사가 죄를 지으면 마탑으로 보내진다. 그의 죗값은 의지가 있는 마탑이 결정할 것이다.

    “제가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고, 흑흑 제 어머님이…… 인질로.”

    파울로는 끝없이 변명했지만 그건 변명일 뿐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해적들을 도왔을 뿐입니다, 흑흑.”

    메이아는 파울로에게 차갑게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이 죄를 저지르는 걸 바라고 계셨을까요? 당신이 죄를 저지를수록 어머니가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죄를 저지른 아들을 보는 어머니가 그걸 기뻐했을까요?”

    “그, 그건…….”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고요? 당신은 이미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마탑까지 호송할 생각입니다.”

    “수고 많으시군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법 구속구에 묶여 걸어가는 파울로는 결국 오열하며 잘못했다고 외쳤다.

    “저자는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예요.”

    메이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억울하고, 죄를 저지른 이유가 타당하다고 세상이 인정해도 파울로가 저지른 죄를 기억하는 자들이 있는 이상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그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메이아의 이야기를 들은 테오도르는 그녀가 쳐다보고 있는 하늘을 같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죄를 저지른 자들은 자신이 한 짓을 기억하지 않죠.”

    *

    엘르민 세베린 마브로.

    카르펜 제국의 황후인 그녀는 황태자의 파츠래리의 어머니다. 영애들과 귀부인들은 엘르민을 존경하며 우러러봤고, 그녀는 그걸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요즘 점점 옛말이 되었다.

    영애와 귀부인들은 노골적으로 눈치를 보며 황후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메릴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바뀐 파츠래리의 약혼녀를 거부하고 있었다.

    황후 역시 말다툼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메이아를 따른 영애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약혼녀 자리에서 물러난 메이아를 그리워하며 그 자리를 차지한 메릴을 좋지 않게 생각해 충돌이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사람들이 메릴을 거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메릴 공녀를 데리고 티 파티를 열겠어.”

    엘르민은 메릴과 함께 티 파티를 열려고 노력했다. 황후의 초대를 받는다는 건 귀족에게 있어 영광이다. 그런데 티 파티에 메릴이 참여한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티 파티 초대를 피하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귀부인 그리고 영애들이 티 파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또한 정당했다.

    고민 끝에 엘르민은 메릴의 이미지를 바꿔 주기 위해 가문의 힘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메릴과 공동 티 파티를 열 계획을 세웠다.

    “메릴 공녀.”

    “예, 황후마마.”

    “티 파티 준비는 잘하고 있죠?”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메릴을 본 엘르민 황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면 요번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황후의 콘셉트에 이야기에 찻잔을 들던 메릴의 손이 멈췄다.

    “콘셉트요?”

    “그래요. 티 파티를 여는 이유는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찻잔을 완전히 내려놓은 메릴은 입술을 뾰족 내밀었다가 집어넣었다. 황후는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체한 느낌이 싸하게 올라왔다.

    “이야기해 봐요. 직접 계획 세웠을 거 아니에요.”

    “사실 노르만 자작 부인이 도와준다 해서 그녀에게 맡겼습니다. 저는 분명 제가 해 보겠다고 했는데 노르만 자작 부인이 걱정하지 말라고 맡겨 달라 해서요.”

    황후는 메릴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입을 다물었다.

    ‘티 파티를 남에게 맡겨?’

    물론, 그렇게 하기도 한다. 집안에 여자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런 경우 가신 가문의 귀부인들이 티 파티가 아닌 소개의 장으로 파티를 대신 열고 꾸며 주곤 하지만 메릴은 남자가 아닌 여자인 데다 공녀의 신분이다.

    그러니 응당 티 파티는 본인이 계획하고 꾸며야 한다.

    “노르만 자작 부인이 메릴 공녀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가 준비하겠다며 고집을 피운 거라면 그녀에게 벌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메릴 공녀.”

    엘르민의 싸늘한 눈빛과 차가운 말에 메릴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벌을 주시는 건 안 됩니다. 저도 자작 부인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메릴 공녀! 티파티의 콘셉트나 계획은 직접 짜야 합니다.”

    “그렇지만 황후마마, 티 파티 같은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쾅!

    엘르민은 테이블 위로 거칠게 손바닥을 내려쳤다.

    “메릴 공녀!”

    티 파티를 뭐라 생각하는 건지, 남에게 티 파티를 맡긴 메릴의 무개념에 황후는 얼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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