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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22화 (22/163)

22화

메이아는 루파츠의 도발에 오히려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며 말했다.

“얼음 창 하나씩 없애 줄게. 인질 한 명씩 풀어 줄래?”

루파츠는 메이아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뭐라고?”

“내 얼음 창 한 개에 인질 한 명 어때? 맞다! 인질보다 얼음 창이 더 많지? 인질 한 명당 얼음 창 세 개 없애 줄게. 어때?”

메이아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루파츠는 어이가 없었다.

얼음 창 세 개에 인질 한 명씩 풀어 달라니……. 예쁘지만 미친 여자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루파츠의 예상된 답변에 메이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솔직히 그 인질 한 명 죽어서 다른 인질들을 살리고 너희 해적들 다 죽이면 남는 장사 아닐까? 잘 생각해 봐.”

메이아의 말에 인질로 붙잡힌 여자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살, 살려 주세…… 흐끅, 요. 흑흑.”

메이아의 말에 루파츠는 기가 막혔다.

보통 이럴 땐 다들 무기를 버리고 인질을 살리려 하지만 앞의 은발 미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비열한!”

“비열한 건 내가 아니고 너잖아. 여자를 인질 삼고 나한테 협박 중이면서.”

“이 여자 목숨은 은발 너한테 달렸어. 이 여자가 죽으면 네 탓이라고!”

루파츠의 말에 메이아는 오히려 덤덤히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 인질을 내가 죽였다고 생각할까? 설사 내가 죽였다고 해도 난 처벌받지 않아. 참고로 난 귀족이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람을 살해했다 해도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루파츠는 인질을 잡으면 현재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줄 알았다.

많은 배를 털면서 인질을 잡으면 항상 거래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질 한 명과 여기 배 위의 너희들 목숨을 받고, 인질들 전부 살린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탓할 것 같아?”

“그럼 한 명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것이냐.”

메이아가 얼음 창으로 인질과 함께 자기를 꿰뚫더라도 다른 인질들을 구했기 때문에 죄로 삼지 않고 오히려 상을 받을 것이다.

이럴 때 인질을 잡는 건 큰 손해다.

그렇다고 인질을 놓아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부하들 앞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크윽.”

메이아의 말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루파츠는 신음만 내뱉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부하들은 살려 줄게. 루파츠, 너만 순순히 잡혀 준다면.”

“뭐라고?”

메이아는 오른손을 위로 뻗었다가 아래로 내리자 열댓 개의 얼음 창들이 해적들 발 앞에 날카롭게 꽂히기 시작했다.

해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메이아는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그들에게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루파츠 부하들.”

그 부름에 해적들은 메이아를 바라봤다.

“두목을 잡아 밧줄로 묶어서 내 앞으로 데려온다면 목숨만은 살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난 마음을 금방 바꾸니깐. 빨리 루파츠를 잡아 묶으면 좋겠어.”

메이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위기를 느낀 루파츠는 서둘러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하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었다.

“두목…….”

“저희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루파츠의 부하들은 더는 묶인 다른 인질들에게 칼을 겨누지 않았다.

그들의 칼끝은 루파츠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배신자들! 가까이 오면 이 여잔 죽어.”

“상관없습니다.”

루파츠는 칼을 휘저으며 자신이 잡은 인질을 껴안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오지 마!”

루파츠는 크게 외쳤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비열하게 웃을 뿐이었다.

메이아는 해적들에게 좀 더 확실하게 부추기는 말을 했다.

“인질 목숨까지 구한다면 한 명당 1만 루벨 줄게.”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난 카르펜 제국의 하츠벨루아 공녀야. 돈이 썩을 만큼 많지.”

메이아는 자신의 마법 이공간에서 엄청난 양의 금화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이 돈 가지고 싶지?”

직접 돈까지 본 해적들은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메이아는 재미있다는 듯 양 입술 꼬리를 올리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 바뀌기 전에 빨리 잡아.”

해적들은 메이아 말에 충성스럽게 대답했다.

“예!”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탈출이다. 거기다가 돈까지 준다 하니 어쩌면 배신은 당연한 거다.

“잡혀 주십시오, 루파츠 두목.”

“으악! 너희! 감히 날 배신해!”

다가오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루파츠는 있는 힘껏 저항했다.

루파츠 손아귀에 잡혀 있던 인질은 서럽게 오열했다.

그 모습을 보고 메이아는 쥬안에게 말했다.

“쥬안, 인질 살리고 저 남자 죽여.”

“예, 아가씨.”

쥬안은 독이 묻은 단검을 품에서 꺼냈다.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는 루파츠에게 단검을 던져 그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끄악!”

루파츠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즉사였다.

루파츠를 잡기 위해 다가오던 해적들은 갑자기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루파츠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꺅.”

인질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쥬안을 서둘러 루파츠의 시신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품속의 손수건을 꺼내 루파츠의 깨진 머리를 가리며 메이아에게 외쳤다.

“아가씨, 보지 마십시오! 흉물스럽습니다.”

“쥬안, 이미 봤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메이아는 어쩔 수 없다는 말투였다.

쥬안은 이를 으득으득 갈며 품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들었다.

*

테오도르는 선실 밖을 내달리며 마주친 해적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젠장, 해적들이라니!”

“급습인 것 같습니다.”

테오도르의 걱정스럽고 초조해져 갔다.

분명 해적들은 갑판 위에서 남자들을 죽이고, 돈이 될 만한 것들과 여자들을 납치해 갈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한다.

“각하!”

“빨리 메이아 공녀에게로 가야 해. 아무리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여자 혼자 몸으로 상대하기 벅찰 거야!”

애튼은 메이아가 데리고 다니는 ‘그림자 일족’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접었다.

처음 보는 테오도르의 표정이 너무 필사적이었기 때문이다.

‘저 봐. 좋아하는 거 맞네, 맞아. 부정맥은 무슨.’

애튼은 속으로 혀를 차며, 다가오는 해적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해적들이 최상층 갑판 위로 올라간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생길수록 테오도르의 얼굴은 창백해져만 갔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제어되지 않았다.

“흐압.”

잠긴 갑판 문을 검으로 베어 낸 테오도르는 바로 메이아를 찾았다.

해적들과 대치 중인 그녀가 보였다. 해적들의 칼날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테오도르의 눈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분노가 일어났다.

이렇게 화가 나고 감정이 제어 안 되는 건 17년 인생 처음이다.

“감히.”

생각이란 걸 포기했다. 손에 꽉 쥔 검만이 테오도르의 기분을 대변했다.

테오도르의 살기 가득 기운이 갑판 위에 쏟아졌다.

해적들은 메이아의 협박(?)과 두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에서 테오도르의 살기를 받으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애튼, 먼저 인질들을 구해.”

“알겠습니다.”

애튼은 싸울 수 있어 보이는 사내들 먼저 풀어 주었다. 그리고 인질이었던 남자들은 애튼의 검에 맞고 쓰러진 해적들의 칼을 들고 맞서기 위해 일어섰다. 해적들은 끝이 난 상황에 하나둘 칼을 버리고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인질들은 일어나 메이아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영웅이 나타나셨습니다!”

“카르펜 제국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메이아 공녀님이라 했어요.”

“오! 난 방금 영웅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애튼은 잡혀 있다 풀려난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만 대화하시고 다른 인질들도 풀어 주세요!”

해적을 하나둘 쓰러뜨리며 메이아 앞까지 다가간 테오도르는 그녀를 자신의 품속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어!”

갑자기 자신을 껴안은 테오도르를 불렀다.

“테오도르 대공님?”

테오도르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더욱 메이아를 꽉 껴안았다.

“저 테오도르 대공님, 지금 전투 중…….”

메이아를 껴안은 테오도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몸이 심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밀어 내기보다는 토닥여 줘야겠다고 판단한 메이아는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네.”

테오도르 품에서 빠져나가는 걸 포기한 메이아는 그의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떨림이 잦아드는 걸 느꼈다.

“괜찮으세요? 테오도르 대공님? 많이 놀라신 거예요?”

메이아는 아기 달래듯이 테오도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해 줬다.

“다 끝났어요. 괜찮아요.”

다 큰 남자가 자신을 와락 껴안아서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포옹만큼 그의 걱정이 느껴졌다.

“전 너무…….”

메이아는 계속 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적들이 급습했다. 긴장감이 감돌며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테오도르가 메이아를 껴안은 덕분에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유람선 갑판에서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사라져 버리고, 핑크빛 분위기가 감돌았다.

‘뭔가. 상황이 그러네.’

해적들은 테오도르 행동에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인질이었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남녀의 포옹을 보고 ‘꺅’ 하고 작게 비명 질렀다.

“어머머! 연인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나 봐요!”

“세상에 멋지다.”

“이런 장면 연극에서만 본 건데 실제로 보니 설레네요.”

“로맨틱해.”

인질들은 테오도르가 본의 아니게 연출한 로맨스의 한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불편한 건 메이아였다.

“테오도르 대공님, 계속 껴안고 계실 거예요?”

테오도르는 그녀의 어깨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이해되기 시작되었다.

“어머! 저분 얼굴 빨개지신 거 봐요!”

“사람들 앞이라 부끄러운가 보네요.”

“귀여운 커플이네요.”

인질들은 위험 속에서 더욱 곱게 피어난 사랑이라며 영웅 메이아와 그의 연인인 테오도르에게 박수까지 보냈다.

“딸꾹.”

“대공님?”

테오도르의 목덜미부터 귀 그리고 양 뺨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가출했던 이성들이 그의 머릿속 제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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