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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21화 (21/163)

21화

‘왜 이렇게 심장이 거칠게 뛰지?’

메이아와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발끝부터 부끄러움이 치솟아 올라왔다.

심장이 거칠게 뛰면서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테오도르는 잠시 후퇴를 선택했다.

“저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테오도르는 잠시 선실로 후다닥 들어와 자신의 얼굴에 마른세수를 몇 번이나 했다.

열이 오른 얼굴은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 심하게 쿵쾅거리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계속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후아, 후아, 후아.”

심호흡을 계속하는 그의 옆에 있던 애튼이 답답하다는 듯 테오도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걸 못 견디십니까!”

“그렇지만 숨을 못 쉬겠는걸.”

“그것도 견디셔야 합니다, 대공 각하.”

“노력 중이야.”

“이젠 곧 테일론에 도착합니다. 이대로 메이아 공녀님하고 ‘이별’하실 겁니까?”

이별이란 말에 테오도르는 갑자기 심장에 큰 통증이 오는 걸 느꼈다.

이별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안 돼!”

테오도르는 애튼의 말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빛이 꽤 심각해졌다.

“대공 각하는 메이아 공녀님이 마음에 드신 겁니다. 인정하셔야 합니다. 지금 부정맥에 걸리신 게 아닙니다.”

“이게 부정맥이 아니라고?”

“공녀님 볼 때만 그러시는 거죠?”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떼기도 어렵고, 보고 싶고, 닿고 싶고.”

“정확해!”

“그게 사랑이라는 겁니다. 제가 볼 땐 대공 각하께서는 공녀님을 보고 첫눈에 반하신 겁니다.”

애튼의 말끝과 동시에 굉음이 배 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소리는?”

“각하, 유람선에 무슨 비상이 생긴 모양입니다.

“메이아 공녀를 혼자 두고 왔는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테오도르는 선실 문을 열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

기지개를 켜고 나서 메이아는 턱을 괴고 바다를 보며 안나가 가져다준 딸기에이드를 마셨다.

콰앙!

“응? 뭐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네?”

심상치 않은 소음에 메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둘러보았고,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이 되었다.

“뭐야. 해적들이야? 쥬안, 아직 나오지 마. 몇 명인지 파악해야 하니깐.”

[네.]

딱 봐도 ‘나 불량하오’라는 얼굴과 옷차림의 사내들은 허리춤에 모두 칼을 차고 유람선과 해적선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밟으며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 올라오는 계단 입구로 밧줄에 묶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적들은 유람선 갑판 위를 포위했다.

자신은 최상층의 갑판 위에 있느라 몰랐지만 이미 많은 선원과 그리고 선장과 사람들을 해적들이 인질로 잡고 있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돼지 같은 사내가 침을 흘리며 메이아를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크하하! 올라오자마자 눈 튀어나오게 예쁜 여자라니!”

메이아는 절로 인상을 썼다.

[당장 나가서 저놈의 목을 따겠습니다.]

“쥬안, 진정해.”

그림자 속에 있던 쥬안의 검은 살기가 미처 감춰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튀어 나가 죽이겠습니다.]

최고급 유람선이 해적에게 급습당하다니. 대체 어디서 뚫린 것일까?

지금 이 문제보다 급한 건 바로 인질들의 목숨이다. 해적들은 여자들이나 아이들을 인신매매하지만 남자들의 경우 자리에서 죽이는 잔인한 범죄 집단이다.

해적들 수는 얼추 30~50명 정도에 미세하게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마법사도 있는 듯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특등품인데?”

해적단의 돼지같이 생긴 남자는 게슴츠레하게 메이아를 물건 가격을 매기는 듯한 눈으로 쑥 훑어보더니 만족스럽게 침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애들아, 저 은발 계집애 얼굴은 다치지 않도록 해라.”

“두목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가씨, 나가겠습니다.]

“쥬안, 내가 부를 때 나와.”

[하지만 아가씨, 저자들이 감히!]

“가뜩이나 스트레스 좀 쌓였는데 잘 되었다.”

[묶어 놓으신 뒤에 스트레스 푸십시오!]

“그래도 표적이 움직이는 게 재밌지.”

“뭐야, 혼잣말하다니 미친 여잔가? 그래도 예쁘니깐 비싸게 팔릴 거야.”

명령을 받은 해적들은 메이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이아는 얼음의 마법 주문을 외웠다.

“마법사?!”

“으악! 마법사입니다.”

메이아의 마법 주문에 바닥은 얼음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그녀의 마법 주문에 우울했던 얼굴빛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바닥에 얼음이 퍼져 나가면서 메이아에게 다가오던 해적들 발도 얼어붙었다.

“저 계집애 마법사였어?”

“발이 얼었습니다!”

그때 해적들 사이에 로브를 입고 나온 대머리 남자가 불꽃 마법을 시전했다.

얼음이 서서히 녹아 갔다.

“예상대로 마법사가 있나 보네, 쥬안.”

메이아는 쥬안을 불렀다. 그리고 맞은편 대머리 마법사의 손에 있는 불꽃을 끄기 위해 강력한 얼음 마법 주문을 읊자 불꽃 마법을 부리던 마법사의 손에서 얼음이 생기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으악.”

손이 얼어붙은 마법사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메이아는 그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보냈다.

분노로 가득 찬 지독한 검은 살기로 똘똘 뭉친 쥬안이 순식간에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마법사의 얼어붙은 손을 잘라 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쥬안, 마법사는 죽이지 말고 속박해.”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다 죽일 거야!”

대머리 마법사는 화염 주문으로 잘린 팔을 지져 지혈하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다른 한쪽 팔을 들고 다섯 개의 화염구를 만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메이아는 자신의 허공 위에 여섯 개의 얼음구를 만들었다.

“이익!”

대머리 마법사는 계속 화염구를 늘려 갔다. 메이아는 또한 얼음구의 수를 점차 늘리기 시작했다.

“뭐야. 나이도 어린 게 마력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메이아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설마 화염구 다 만든 건 아니겠지?”

메이아의 머리 위에 있던 수많은 얼음구들이 날카로운 창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대머리 마법사가 재빨리 화염구를 없애고 실드를 형성하려는 찰나 쥬안은 빠르게 대머리 마법사의 급소를 치고, 기절시켰다.

그 모습을 보던 해적들은 외쳤다.

“마법사가 당했습니다, 두목!”

메이아는 해맑게 웃으며 그런 해적들을 즐겁게 바라봤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가방에서 각종 스크롤과 각종 아티팩트를 꺼내기 시작했다.

메이아는 해적들을 보며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게 너희 목숨에 좋을 거야.”

웃고 있는 메이아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해적들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공포를 느꼈다.

메이아의 미소에 다리가 떨려 자리에 주저앉은 해적 앞에 날카로운 얼음 창이 따다닥, 꽂히기 시작했다.

“히익!”

“왜 움직이는 거야? 내 말이 우스운 거야?”

해적들은 바닥에 박힌 얼음 창들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해맑게 웃으며 메이아는 가방 속에서 아티팩트 팔찌를 하나씩 꺼내 자신의 팔에 착용했다.

“오래간만에 껴 보는데…….”

아티팩트 팔찌들은 마력 증폭과 부족한 마력 충당용이다.

그 밖에 목걸이와 귀걸이 용도로 된 것도 따로 있지만 이런 조무래기 해적들 상대로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해적들은 긴장감을 가진 채 아티팩트를 끼고 있는 메이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의 마법사는 팔이 잘리고 그림자에 속박당했다.

“이것들아! 우리가 마법사 없었을 때는 해적질 못 했냐! 당장 잡아! 칼이라도 던져 저 계집애를 맞춰!”

두목으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전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마법사와 검사의 싸움에선 마법사가 불리하다.

주문을 외울 시 빠른 동작의 검사가 공격을 한다면 바로 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메이아는 그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와 스크롤 그리고 주문을 외울 때 지켜 주는 쥬안이 있었다.

“시끄럽네.”

아티팩트가 메이아의 손목에 채워지자마자 허공에 떠 있는 얼음 창들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메이아는 꺼내 놓은 스크롤 몇 장을 찢기 시작했고 머리 위에 더 많은 얼음구들이 떠올랐다.

유람선 위에 밧줄에 묶인 인질들은 환성을 연신 보내며 메이아를 응원했다.

“영애! 힘내세요!”

“언니, 이겨라!”

“젠장! 묶이지만 않았어도 아름다운 저 영애 곁을 지키고 해적들을 함께 소탕할 텐데!”

사람들은 승기를 잡은 것이 확실하다 느꼈는지 조잘거리며 해적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했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다 죽여 버리기 전에!”

해적들의 거친 호통에 인질들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메이아를 바라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씩씩거리던 해적은 메이아를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두, 두목 저거 보십시오! 얼음이 더 늘어나고 커졌습니다!”

“말도 안 돼.”

“안 되겠다!”

해적단의 두목으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가 덩치와 어울리지 않은 재빠름으로 근처에 있던 여자의 목에 칼을 겨누며 자신의 품에 가뒀다.

“꺄아아악.”

해적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메이아에게 비아냥거렸다.

“당장 얼음 안 치우면 이 여자 죽일 거야!”

자기들의 두목이 인질을 잡고 메이아에게 협박하는 모습을 보자 해적들은 잃어버린 미소를 다시 지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질들의 희망찬 얼굴이 다시 우울한 낯빛으로 바뀌었다.

“쥬안.”

“예.”

“난 분명 움직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저들은 왜 움직이는 걸까?”

“아가씨 말을 무시한 자들은 모두 죽이겠습니다.”

쥬안은 말이 끝나자마자 움직인 해적들에게 검을 내려쳤다.

“으아아악.”

“살, 살려 줘, 쿨럭.”

메이아는 쥬안이 쓰러뜨린 해적들을 한번 쓱 훑어본 뒤에 해적단 두목으로 보이는 돼지 같은 사내에게 말했다.

“네가 대장이구나.”

“내 이름은 루파츠다. 지금에라도 얼음 창을 없애면 이 인질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

“루파츠, 지금 인질 잡고 나한테 협박하는 거야?”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 당장 허공에 떠 있는 얼음 창 없애지 않으며 이 여자를 죽이겠다.”

메이아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해적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인질’의 목숨을 놓고 메이아와 협상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질이 잡혔다 해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도, 눈물 흘리면서 봐 달라거나 인질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따위는 절대 보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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