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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9화 (19/163)
  • 19화

    “…….”

    보다 못한 애튼은 테오도르 뒤에서 그의 등을 꾹꾹 눌렀다.

    “아.”

    “어디 편찮으세요? 저녁 다음에 드시겠어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정신을 바로 차렸다.

    “아닙니다.”

    테오도르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 메이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이아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테오도르 대공님은 근사하시네요. 제복이 참 잘 어울리세요.”

    “고맙습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서는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스코트 고마워요, 테오도르 대공님.”

    “아닙니다!”

    메이아는 방긋 웃으며 자신의 눈을 피하는 테오도르의 눈 맞춤을 시전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얼굴이 금세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시네요.”

    “제가 열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시구나.”

    테오도르 뒤에서 쫓아오고 있던 애튼은 답답함에 가슴팍을 치며 한숨만 내쉬었다.

    유람선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이 들어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테이블을 안내받은 메이아와 테오도르는 레스토랑 한가운데 설치된 피아노에서 연주자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색을 즐기며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가지고 온 이에게 메이아는 오늘의 추천 메뉴를 주문했다.

    테오도르 역시 같은 메뉴로 했다.

    “연주자 실력이 좋은데요.”

    “피아노는 누가 치시던 자유입니다. 저 연주자분은 레스토랑 이용 고객님이십니다.”

    “아.”

    생각해 보니 피아노를 안 친 지 오래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좋아하는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음식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 걸리나요?”

    “물고기를 잡아야 하므로 20분 정도 걸립니다.”

    짝짝.

    피아노 연주를 했던 사람이 피아노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연주에 박수를 보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에게 물어봤다.

    “테오도르 대공님, 피아노 좋아하시나요?”

    “네, 피아노는 못 치지만 듣는 건 좋아합니다.”

    “그러면 제가 음식이 나오기 전에 피아노 연주 한번 하고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메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보기 드물게 좋은 그랜드 피아노였다.

    살짝 건반은 눌러 보았는데, 관리가 꽤 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식사를 멈추고, 피아노 앞에 있는 화려한 은발 미인에게 호기심을 가득 담은 시선을 던졌다.

    ‘소른도프네의 A장 달빛 요정의 심술.’

    이 곡은 엄청나게 빠른 연주 속도 때문에 많은 연주자가 꺼리는 곡이다.

    빠른 박자만큼 실수를 많이 하므로 이걸 완벽히 치는 사람은 흔치가 않았다.

    그렇지만 이건 어릴 때부터 메이아가 굉장히 좋아하고 즐겨 치는 곡이다.

    피아노의 넓은 건반 위에서 메이아의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였다.

    연주할 때마다 흔들리는 은발 또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전문 연주자들도 피하는 곡을 빈틈없이 쳐 내는 모습에 모든 사람은 식기를 내려놓고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땅따땅!

    짧은 연주가 끝나자 레스토랑 안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내 엄청난 박수와 함께 사람들은 메이아에게 환호를 보냈다.

    “브라보!”

    “앙코르!”

    메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 자락을 살짝 쥐고 왼손을 가슴골을 살짝 가린 채 박수를 보내 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은 메이아를 테오도르가 격하게 반겼다.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자 바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낚시꾼들이 즉석에서 신선한 생선을 잡았다고 해서 메이아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테오도르 대공님은 뫼니에르를 좋아하시나요?”

    메이아의 질문에 테오도르는 몸을 굳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대공님?”

    아니, 내가 무슨 어려운 질문 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저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거지?

    아니면 무슨 못 물어볼 걸 물어본 건가?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굳은 몸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저는, 저는.”

    비장한 표정과 다르게 말까지 더듬더듬하며 긴장하고 있던 테오도르는 주먹을 꽉 쥐며 메이아에게 말했다.

    “……좋아합니다.”

    ‘뫼니에르를 좋아하냐’라는 메이아의 질문에 테오도르는 또다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최선을 다해 답했다.

    부끄럼이 상당히 많은 테오도르를 바라보며 메이아는 싱긋 웃었다.

    “네, 저도 좋아해요.”

    메이아의 말 한마디에 테오도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비장한 얼굴로 진지하게 메이아에게 말했다.

    “저도 좋. 아. 합. 니. 다.”

    다시 한번 재차 뫼니에르를 좋아한다는 답변을 한 테오도르에게 메이아는 우아하게 웃어 주며 말했다.

    “네, 좋아하는 거 알겠어요. 오늘 저도 메뉴에 대해 기대가 커요.”

    테오도르는 그저 멍하니 메이아만 바라봤다.

    테오도르 뒤에 있던 애튼은 가슴팍만 두들기며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지켜볼 뿐이었다.

    *

    테오도르와의 식사는 즐거웠다.

    그는 부끄럼을 많이 탔지만 예의도 바르고 순수했다.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창.

    요리를 나르던 아이가 실수로 넘어져 메이아와 옆 테이블 여자 손님 드레스에 음식을 떨어뜨려 옷을 더럽히고 말았다.

    “이 천박한 것이! 이 드레스가 얼마짜린 줄 알아?”

    메이아의 바로 옆 테이블의 부인은 일어나 서빙을 하던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체 여긴 일하는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넘어진 아이는 엎드려 그저 벌벌 떨며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메이아도 자신의 드레스 끝자락에도 음식물이 묻어 있는 걸 확인했다.

    드레스에 음식을 묻은 걸 보고 테오도르는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메이아 공녀님?”

    “네, 전 괜찮습니다.”

    “드레스가.”

    “드레스가 뭐요?”

    “드레스가 더러워졌습니다.”

    “드레스가 더러워진 게 중요한 게 아니죠. 드레스는 또 구매하면 될 일이지만…….”

    메이아는 식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떠는 아이를 측은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그제야 메이아의 드레스도 더럽혀진 걸 확인한 아이는 벌벌 떨며 질문에 답했다.

    “앨리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라니? 이곳에서 누가 죽을죄를 저질렀니?”

    “제가 넘어져서 그만 드레스를 더럽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죽을죄가 아니란다. 실수한 것뿐이잖니.”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앞으로 이런 실수를 다시 하면 안 되겠지? 세 번 이상 하면 고의란다.”

    “죄송합니다. 흑흑, 봐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실수를 용서할 테니. 너무 울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렴.”

    맞은편에 있던 여자 또한 메이아의 드레스를 봤다.

    딱 봐도 자신이 입은 것보다 훨씬 더 고가의 드레스이다.

    그래서 자신의 드레스를 당장 배상하라고 따지기가 껄끄러웠다.

    저 여자가 자기처럼 드레스를 배상하라고 말해야지만 자신 또한 레스토랑 측에다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히려 화려한 은발 미인은 분해하는 표정이 없었다.

    자기 혼자 열 내는 것 같아 무안해질 정도였다.

    메이아 또한 맞은편 여자의 드레스를 바라봤다.

    “부인, 입으신 드레스는 마담 루안나 작품 아닌가요?”

    “어머머! 어떻게 아셨어요!”

    “당연하죠.”

    메이아에겐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사교계의 꽃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의 드레스 특징과 패턴을 모두 안다.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떤 가방, 어떤 보석을 어떤 디자이너에게서 구매했는지 한눈에 파악하도록 고도의 훈련을 받아 왔다.

    그래서 어딜 가든 제아무리 깐깐한 여자 귀족이라 할지라도 메이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마담 루안나가 스물한 번째 계절을 맞이하며 만든 여름 드레스네요.”

    “세상에, 이걸 어찌.”

    “저도 루안나 작품을 좋아해서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구매했답니다.”

    “저랑 똑같네요.”

    “드레스가 이렇게 된 건 속상하겠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 부인께서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하시죠.”

    마담 루안나의 드레스는 절대 평민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므로 자연스럽게 옆의 부인이 귀족이라는 것을 메이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그렇죠.”

    메이아의 말에 바닥에 엎드리며 울고 있던 앨리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네, 마담 루안나에게 다시 한번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죠. 제 드레스는 마담 클레리라가 만들어 주신 건데 또 만들어 달라고 하려고요.”

    고가의 드레스로 유명한 클레리라의 드레스라는 이야기를 들은 귀부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자신이 입은 것보다 훨씬 비싸고 유명한 드레스였다.

    “그, 그러시군요. 저도 클레리라 디자이너의 드레스 즐겨 구매합니다, 호호.”

    메이아는 말을 쉽게 내뱉었지만 이미 품절된 드레스를 개인적으로 다시 의뢰를 하게 되면 기존보다 더 비싼 돈이 든다.

    그렇지만 여기서 보상이나 배상이니 이야기하거나 메이아 말에 뭐라 답하면 자신은 오히려 돈 없어 보이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보이기는 싫었다.

    “앨리, 자리에서 일어나렴. 여기 앞에 계신 마음 좋은 부인께서 용서해 주시겠단다.”

    앨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부인. 죄송합니다.”

    “호호호, 다음부턴 조심하렴. 호호, 드레스가 얼마나 한다고.”

    귀부인은 메이아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더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냥 자신이 아끼는 비싼 드레스만 더럽혀졌을 뿐이다.

    속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제일 비싼 드레스를 입고 밥 먹으려 온 건데…….

    그렇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자신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에 없어 보이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앨리, 이만 가 보렴.”

    “감사합니다. 흑…… 감사합니다.”

    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질러진 접시를 치우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지켜보던 애튼은 메이아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앨리라는 아이는 크게 혼이 날 뻔했지만, 메이아가 막아 줬다.

    큰 소란도 없었다.

    모든 일을 조곤조곤하고, 평화롭게 해결했다.

    메이아의 언행에 애튼의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플로렌스 대공비가 되셔야 하는 분이야!’

    애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메이아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애튼의 모습을 본 테오도르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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