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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8화 (18/163)

18화

[테오도르 대공님, 저녁 같이 드실래요? 답변은 직접 와서 들려주세요.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녀의 저녁 식사 제안에 심장이 쿵 하고 또 내려앉았다.

편지에서 시선을 뗀 테오도르는 갑판 위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애튼은 가늘게 눈을 뜨고 테오도르를 노려보았다.

“그냥 가셔서 인사하시면 됩니다. 뭘 그리 부끄러워하십니까?”

“나도 모르겠어. 애튼……, 내가 왜 이럴까?”

테오도르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자꾸 메이아 공녀님을 보면 가슴이 이상해져. 분명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피하게 돼. 눈 마주칠 때마다 심장도 아파. 왜 이럴까? 애튼.”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편지를 자신의 마법 이공간에 소중히 넣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왼쪽 가슴이 쿵쿵 뛰니깐 갈비뼈도 살짝 아픈 것 같고, 부정맥일까?”

“네?”

“메이아 공녀님한테 가서 대답을 해야겠어.”

“저 대공 각하, 부정맥…….”

애튼의 애달픈 목소리를 뒤로한 채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달려 나갔다.

테오도르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들뜬 왼쪽 심장을 달랬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의 쿵쾅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메이아 공녀님.”

“오늘 저녁 메뉴가 아주 맛있다고 하네요.”

“네.”

메이아는 바다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잘 익은 딸기 같았다.

“테오도르 대공님은 왜 저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세요?”

“부…….”

“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공녀님만 보면 얼굴이 빨개집니다. 맹세코 이런 적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부정맥 같습니다.”

“저만 보면 얼굴 빨개지는 게 부정맥 같다고요?”

테오도르는 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메이아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탑에 도착하시면 얼른 의원을 만나 보셔야겠어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테오도르의 답변에 메이아는 방긋 웃으며 안나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지고 오라 시켰다.

안나는 빠른 걸음으로 의자를 가지고 왔다.

“여기 앉으세요. 차라도 한잔 준비하라고 할까요?”

“예.”

테오도르는 안나가 가져다준 의자에 앉아 또다시 메이아만을 바라보았다.

바다와 그녀의 모습이 몹시 잘 어울려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텔레포트 타고 가면 마탑에 빠르게 도착할 텐데 왜 굳이 유람선에 탑승하셨나요?”

“유람선을 좋아합니다.”

엘른 항구에서 마탑까지 텔레포트 하려면 하루 이틀 정도 대기해야 한다.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면 굉장히 빠르게 이용한 거라 할 수 있다.

텔레포트에 사용되는 마정석의 수와 마법사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테오도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만 먹고 텔레포트를 타고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메이아와 더 있고 싶은 나머지 텔레포트 이용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15일이나 걸려 마탑에 도착하는 유람선에 탑승했다.

“마탑에 가시는 이유가 마법사 고용 때문에 가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다만, 전 대마법사 푸링을 만나기 위해 갑니다.”

대마법사 푸링이라면 메이아의 마법 스승이기도 했다.

“제 스승님이신데.”

그 말에 테오도르는 깜짝 놀랐다.

“대마법사 푸링의 제자시라고요?”

“네. 저도 스승님 뵈러 가는 거예요.”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비장한 얼굴로 메이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시는 길이 같으니 동행 어떠십니까?”

“같이 가자고요?”

“네, 거절하셔도 괜찮지만. 같이 가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기로 하셨었고…….”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권유에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금세 끝났다.

가는 방향이 같다면 동행해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좋아요.”

“혹시 식사도 매일 같이하면 안 되겠습니까?”

테오도르의 새빨개진 얼굴과 목덜미를 보고 메이아는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싫어요.”

메이아의 답변에 테오도르는 금세 슬퍼하는 얼굴이 되었다.

“제가 식사 권유하려고 했는데 먼저 권유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맞는다면 점심 아니면 저녁 어떠세요?”

“저와 식사 같이해 주실 겁니까? 가는 동안?”

“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의 표정에 메이아의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테오도르의 얼굴은 차가운 인상과 달리 표정이 풍부했다.

그래서 다양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세상 귀엽게 보였다.

메이아는 갑자기 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데…….’

“테오도르 대공 각하는 몇 살이세요?”

“열일곱 살입니다. 시리우스 제국은 열여덟 번째 생일날 성인식을 올립니다.”

그 말에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던 메이아는 살짝 미끄러졌다.

“네?”

잠깐! 나보다 연하라고?

“열일곱 살입니다. 성인식은 곧 올릴 예정입니다.”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메이아는 그가 더 귀엽게 보였다.

‘연하였구나…….’

“솔직히 열일곱 살인 줄은 몰랐어요.”

“다들 저를 제 나이로 안 봅니다.”

“나이 있어 보인다는 뜻이 아니에요.”

“네?”

“분위기나 풍기는 느낌들이 열일곱 살 느낌이 아니라서요.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외모는 어려 보였기에 물어본 거예요.”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말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말은 메이아 공녀님에게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제 검술 스승님도 저보고 생긴 건 애늙은이라 그러셨거든요.”

테오도르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르게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오도르는 대화할 때마다 솟구치는 심장의 뜨거운 피가 자신의 얼굴에 모인 것 같은 열기에 온몸이 쿵쿵거렸다.

애튼은 뒤에서 테오도르와 메이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을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테오도르의 키는 무려 190cm다. 큰 키와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공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는 말에 놀라워한다. 생긴 외모에 비해 상당히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로는 안 보이십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자신의 어린 나이에 약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나이를 물어본 메이아의 질문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살짝 굳어 있는 걸 보았지만 그녀는 ‘성숙한’, ‘느낌 있는’, ‘분위기’라는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며 테오도르가 가진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않고 나이에 대한 대화를 끌고 나갔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한결 좋아 보여 애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애튼이 보기에 메이아야말로 예법과 화법, 귀족으로서의 분위기 그리고 말 한마디의 분별력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였을 때 만점짜리 귀족이었다.

‘저런 분이 대공비가 되시면 정말 안성맞춤인데…….’

애튼은 테오도르를 바라봤다.

‘어차피 미혼이시잖아. 물론 파혼 경력은 있으시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그동안 옆에서 대공을 보좌했지만 그에게서 저렇게 당황하거나 웃는 얼굴 그리고 달콤함이 한가득 느껴지는 눈빛은 모두 처음 본다.

테오도르는 분명 메이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아니, 저건 아무리 보더라도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모습이다.

지금은 부끄러워 시선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지만 메이아를 훔쳐보는 테오도르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걸려 있다.

‘스스로 부정맥이라며 우기고 계시지만…….’

처음 겪는 사랑이니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우고 직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애튼의 투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

테오도르와 저녁 식사를 하는 곳은 드레스 코드가 있는 유람선 내 레스토랑이다.

선실에 돌아온 메이아는 마법 가방에서 여러 벌의 드레스와 보석함을 꺼냈다.

안나는 너무 아름다운 드레스와 보석으로 메이아를 꾸밀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공녀님.”

“안나, 뭘 입을까?”

그 질문에 안나는 메이아가 꺼낸 드레스를 살펴봤다.

뭘 입어도 그녀와 어울릴 것이라는 상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 잘 어울리시는데…….”

“안나가 추천해 주는 걸로 입을게.”

안나는 저녁에 메이아와 함께 식사할 상대를 생각했다. 안나의 고향에서는 데이트할 때 여자들이 상대방 눈동자 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고 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었다.

“검은 드레스가 좋겠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약간 웨이브 지게 한 다음에…… 진주로…….”

쉬지 않고 쏟아지는 안나의 말에 메이아는 중간에 말을 끊고, 안나에게 단장을 맡기기로 했다.

“안나가 보는 안목이 좋구나. 모두 맡길 테니 잘 부탁해.”

칭찬에 안나는 기쁘게 웃었다.

“맡겨만 주세요. 최고로 아름답게 꾸며 드리겠습니다.”

“믿을게.”

메이아는 화장대 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테오도르와 헤어지기 전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러면 이따가 에스코트 부탁해도 될까요?>

<에스코트요?!>

<싫으시면.>

<하겠습니다. 꼭 하게 해 주십시오!>

다급한 그의 눈동자와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그를 또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 버렸다.

안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메이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무슨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떠올리셨나요?”

“응……, 귀여운 블랙 레트리버가 생각이 나서.”

“그 크고, 꼬리 엄청나게 흔드는 개요?”

“응. 귀엽고 커다란 강아지.”

그는 정말 강아지 같다. 아주 커다란 강아지.

“레트리버 강아지들은 다 귀엽죠. 그런데 골든 레트리버가 아니고 블랙 레트리버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난 골든 레트리버보다는 블랙 레트리버가 더 귀엽다고 생각하거든.”

몰래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과 커다란 검은빛의 눈망울이 몹시 귀여운 그를 자꾸만 챙겨 주고 싶다.

“자꾸 생각나네.”

자꾸 심장이 간지러웠다.

머리와 화장이 끝난 이후 안나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모든 치장이 끝난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테오도르가 메이아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문 앞에 도착했다는 노크 소리였다.

“오셨나 봐요. 다녀오세요!”

문을 열고 나가니 푸른 계열의 멋진 제복을 입은 테오도르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테오도르 대공님.”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보자마자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경직되었다.

“테오도르 대공님?”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메이아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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