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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7화 (17/163)

17화

“메릴 공녀님이 오셔서 예법을 지적하시고. 저희 집 다과가 별로라 하시고. 참고로 예법 지적은 황족에게 하는 인사를 안 했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차도 맛없다고 하시고.”

아이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영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세상에 그렇게 지적했다고요? 아이리스 영애?”

“네, 전 두 번 다시 메릴 공녀님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으려고 해요.”

“저희 어머니 메릴 공녀님에게 티 파티 초대장 보냈는데. 어떡하죠? 아이리스 영애 이야기만 들어도 엄청 까탈스러우신 것 같은데…….”

티 파티 초대받은 사람은 다과나 차가 별로여도 그걸 대놓고 지적하면 굉장히 실례이다.

사람의 입맛은 다양하므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맛들을 자신의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을 하면 안 된다.

“그거 말고도 또 있어요.”

“뭔데요? 말씀해 주세요.”

“저희 시녀에게 뜨거운 차를 머리부터 뿌리셔서.”

아이리스의 말을 듣고 있었던 리히터 자작가의 필리아가 말했다.

“말씀 도중 흐름 끊어서 죄송해요. 아이리스 영애, 혹시 때리진 않았나요?”

“아니요……. 뜨거운 차 때문에 시녀가 화상을 입었을 뿐이에요. 저와 친한 사용인인데 속상했답니다.”

필리아는 아이리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티 파티에서는 다과랑 차가 맛없다고 저희 시녀를 때렸습니다.”

“때렸다고요?”

“때리는 폼이 한두 번 구타해 본 솜씨가 아니에요. 전 메릴 공녀님이 하츠벨루아 가문이라 하더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로 다짐도 했고요.”

“무서워서 티 파티 초대하겠어요?”

“앞날이 어둡네요.”

“어떡하죠? 저희 어머니 티 파티에 메릴 공녀님을 초대했을 텐데……. 마음 심약하셔서 메릴 공녀가 그런 지적 하면 속상해하시면서 식사도 안 하실 거예요.”

“우리 모두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다면 대비를 해야겠죠.”

“절대 초대하지 말아야겠어요.”

올리비아와 모인 영애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젠 메릴을 티 파티에 초대하면 안 되겠다.

서로 초대도 하지 말고, 초대에 응해 주지도 말자고…….

그렇지만 이미 많은 가문의 안주인들은 예비 황태자비가 될 메릴에게 모임 초대장을 보낸 상황이다.

“황제 폐하조차도 제국 귀족들을 대우해 주시는데,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가 저희를 대우하지 않는다면 저희도 대우 안 하면 되는 겁니다.”

올리비아의 말 한마디에 모든 영애는 대동단결했다.

“그렇게 해요. 절대 초대하지 말고, 초대받아도 가지 말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네?”

“2황자이신 데미안 황자님께서도 요즘 메이아 공녀님을 입에 올리고 있다는 걸요!”

“네에? 아이리스 영애 그게 정말이에요?”

“그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

“목 좀 축이고요.”

목을 축인 아이리스는 눈동자를 굴리며 호기심 가득한 영애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황제는 상석에 앉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흠흠.”

황제의 헛기침 소리에 황후 엘르민과 황태자 파츠래리 그의 약혼녀 메릴 그리고 후궁 루루나와 2황자인 데미안이 그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황태자의 새로운 약혼녀를 환영하기 위해 모였소. 그리고…….”

하지만 황제의 말은 끝내 다 마무리되지 못했다. 메릴이 중간에 말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환영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황후는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을 의식하며, 메릴에게 상냥히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이야기하실 때는 말을 끊는 게 아니랍니다, 공녀.”

“앗, 죄송합니다. 기뻐서 그만.”

황제는 황당함에 한숨도 내쉬지 않고 메릴에게 말했다.

“흐음, 메릴 공녀는 참 밝군.”

“칭찬 감사하옵니다.”

“하. 칭찬이라……. 순진하군.”

황제의 말에 메릴은 부끄럽다는 듯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했다.

그의 말에 웃지 않은 사람은 황후 엘르만과 파츠래리뿐이었다.

황제는 시선을 돌려 파츠래리와 황후 엘르민을 한 번씩 날카롭게 쳐다봤다.

“메릴 공녀는 앞으로 예법 공부를 잘 시켜야 되겠소, 황후.”

“알겠습니다.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파츠래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의 차가운 시선을 받은 파츠래리는 이를 악물며 감정을 숨겼다.

“메릴 공녀와 형님은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파츠래리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2황자인 데미안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데미안, 넌 황자비를 안 들일 거냐?”

황제의 말에 메릴은 또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폐하! 황자비가 필요하시다면 제가 친하게 지내는 영애들이 있습니다.”

“콜록.”

황후는 메릴의 발언에 기침이 아니라 먹던 걸 뿜어낼 뻔했다.

“황후마마, 괜찮으십니까?”

그 모습에 데미안은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잠시 숨을 진정시키며 파츠래리를 한 번 쳐다보며 입꼬리를 쭉 올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데미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전 메이아 공녀 정도가 아니면 황자비를 둘 생각이 없습니다.”

데미안의 말에 황제는 호기심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메이아를 며느리로 들일 수 없어 많이 섭섭했었다.

“호오…… 메이아 공녀라…….”

황제는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데미안을 쳐다봤다.

“메이아 공녀는 아름답고 박학다식하며…….”

데미안은 말끝을 흐리면서 파츠래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메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것도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완벽하죠. 메이아 공녀님께서는 과연 단점이 있으실까요?”

데미안의 말에 메릴은 기분이 나빠져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파츠래리는 그런 메릴을 쳐다보곤 속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데미안은 웃으며 메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메릴 공녀님께서는 사촌이시니 메이아 공녀의 단점 정도는 아시겠군요.”

데미안의 말에 메릴은 즉답했다.

“메이아의 단점은 깐깐하다는 것이에요.”

메릴의 말에 데미안은 바로 맞받아 질문했다.

“꼼꼼한 게 아니고요?”

“사치가 심해요.”

“공녀니까 품위 유지를 위해 기본 사치 필수죠. 저는 그녀가 황자비가 되어 사치하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습니다.”

“잔소리가 엄청나게 심해요.”

“누구한테 잔소리하나요? 사용인들? 아니면…….”

데미안의 마지막 말에 메릴은 답을 하지 못했다.

메이아는 사용인들에게 잔소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가장 잔소리가 심하다.

이걸 데미안에게 말한다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깨달은 순간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데미안은 재미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메릴에게 말했다.

“사촌의 단점 잘 들었습니다. 완벽한 분에게도 단점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인간답고 매력적이군요.”

“메…… 메이아는.”

메릴은 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파츠래리가 중간에서 막았다.

“메릴 공녀, 앞에 음식을 먹어 보세요.”

하지만 메릴은 파츠래리의 답에 답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며 포크만 잡고 음식만 노려보았다. 메이아의 칭찬을 하는 데미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데미안은 황제를 바라보며 마저 이야기했다.

“황제 폐하, 저는 메이아 공녀가 황자비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교계의 꽃이면서 많은 영애에게 지지받은 모범적인 귀족 영애로서 제가 찾던 이상형이니까요.”

데미안의 말에 황제는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그래그래, 메이아 공녀 정도면야 내 며느리로 딱 맞지!”

데미안의 생모인 후궁 루루나 또한 아들의 발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를 보며 빙긋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미도 좋습니다.”

“루루나…….”

“네, 황후마마.”

“메이아 공녀는 황태자의 전 약혼녀였습니다. 그런데 2황자와 결혼시키려 하는 겁니까?”

황후의 날카로운 말에 황제는 후궁 루루나와 데미안을 두둔했다.

“황후, 그게 그렇게 중요하오? 메이아 공녀 정도면야 파혼 몇 번 한들 그게 흠이 아닐 거요. 지금 많은 가문에서 메이아 공녀에게 청혼서와 연서를 날린다 했소. 사교계의 꽃이 아니오? 엄청난 지지를 받는 영애란 말이오. 비록 황태자비에서 물러났지만, 데미안과 이어진다면 난 괜찮을 거 같소. 내 전부터 메이아 공녀가 며느리면 좋겠다 하지 않았소.”

황제의 말에 황후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메이아 하츠벨루아의 남편 자리를 놓고 2황자인 데미안까지 합류하게 된 순간이었다.

*

메이아는 갑판 위에 의자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리는 머리카락을 잡았다.

머리카락 때문에 귀찮아하는 메이아를 본 안나는 물어봤다.

“아가씨, 머리 묶어 드려도 될까요?”

메이아의 부드러운 은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메이드 안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줄래?”

안나는 메이아의 머리카락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부드러워 심호흡하며 들뜬 자신을 진정시켰다.

안나는 메이아의 부드러운 은빛의 머리카락을 올렸다가 풀며 멋지게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그러고 나서 안나는 메이아의 머리카락을 살짝 틀어 올리며 잔머리까지 실핀으로 고정시키고 마무리했다.

“아름다우세요.”

안나는 진심이었다.

“안나, 고마워. 아센.”

메이아는 뒤에 서 있던 아센을 불렀다.

“예.”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편지를 아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쪽에 검은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큰 키의 얼굴 빨개진 남자 보이시죠?”

메이아의 턱짓에 아센은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예.”

기둥 뒤에는 메이아를 계속 힐끔거리며 훔쳐보는 테오도르가 서 있었다.

“기둥 뒤에 숨어서 쳐다만 보시는데…… 왜 그러는지.”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에 아센은 미소 지었다.

“부끄러우신 모양입니다.”

“그러니 아센이 가서 편지 좀 전달해 줘요.”

“예, 알겠습니다.”

메이아에게서 편지를 받은 아센은 테오도르가 있는 기둥 쪽으로 걸어갔다.

아센이 보기에도 그의 얼굴에서 메이아가 좋아 죽겠다는 마음이 눈에 읽혔다.

사랑에 빠진 풋풋한 사내를 보니 지난날 자신의 첫사랑 생각이 나 아센은 미소 지었다.

애튼은 기둥 뒤에 서 있는 테오도르에게 잔소리하기 직전이었고 아센은 애튼의 잔소리가 나오기 전 테오도르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아가씨께서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테오도르는 평소보다 빨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편지를 건네받은 테오도르는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메이아의 모습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고 싶고, 닿고 싶은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머리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몸은 정지되어 멈춰 버렸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훔쳐만 봤다.

편지를 펼쳐 본 테오도르는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처음으로 쓴 편지이니 소중히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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