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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6화 (16/163)

16화

다음 날 아침 7시, 메이아가 마탑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것도 유람선을 타고 말이다.

텔레포트로 빠르게 마탑에 갈 수 있지만 좀 더 바다를 보고 싶어서 유람선을 타기로 결정했다.

현재 마탑은 1년 내내 눈이 내리는 테일론에 있다.

마탑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위치가 수시로 바뀐다.

위치 이동의 이유는 마탑주의 탄생과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게 아니라면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위험하다 느꼈을 때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닷속으로도 위치를 이동시킨다.

메이아는 설레는 기분으로 자신의 짐을 마법 이공간에 정리해 넣었다.

“스승님은 내가 가면 좋아하시겠지?”

아침에 일어난 메이아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네이비색의 로브를 챙겨 입은 뒤에 호텔에서 나왔다. 혹시나 테오도르와 마주칠까 천천히 내려왔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어디서든 또 만나겠지.’

테오도르도 마탑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다를 보며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메이아는 호텔 측에서 대신 예약해 준 유람선에 도착했다.

메이아는 VVIP 실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집사와 메이드가 직접 나와 선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저희 유람선 이용을 감사드립니다. 여기 있는 종을 흔드시면 언제든지 밖에서 대기하는 저희가 노크를 하고 들어올 겁니다.”

설명하는 집사의 이름은 아센이었고, 메이드의 이름은 안나였다.

“여기 있는 동안 잘 부탁해.”

“네.”

“예.”

메이아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한 폭의 그림 같아 보였다.

절벽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느낌이 달랐다.

한참을 바다를 보던 메이아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메이아 공녀님!”

메이아는 대체 누가 나를 부르지? 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그 남자, 테오드르가 서 있었다.

그것도 환하게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잘못 본 거라 생각한 메이아는 자신의 눈을 꾹꾹 눌렀다가 다시 그를 쳐다봤다.

“환상이 아닌데…….”

“메이아 공녀님!”

그는 메이아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테오도르 뒤에는 보좌관인 애튼도 있었다.

“애튼이 하츠벨루아 공녀님은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테오도르 대공 각하, 그리고 애튼.”

테오도르는 환하게 메이아를 보고 웃고 있었고, 애튼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또 얼굴 빨개진 것 봐라.’

메이아는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계속 생겼다.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려서 그런지 그의 빨간 얼굴이 더욱 잘 보였다.

“대공님께서도 유람선에 타실 줄은 몰랐어요.”

“네……, 제가 급한 일이 있어…… 나중에 뵙겠습니다.”

빠른 뒷걸음질로 테오도르는 메이아 시선에서 벗어났다.

‘이상한 남자다. 볼 때마다 얼굴 빨개지고, 내 눈치를 보고…….’

테오도르가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거둔 메이아는 유람선 갑판 위 불어오는 바람을 다시 느끼며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 소리 좋다.”

유람선은 출항했고 이대로 15일 뒤에는 테일론에 도착한다.

이제 메이아가 할 일은 여기서 흘러가는 파도를 보는 것이다.

“공녀님, 여기 담요와 의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편하게 앉으셔서 바다를 감상하시지요.”

바다를 계속 쳐다보던 메이아를 주시하고 있었던 아센이었다.

“마침 앉고 싶었는데 고마워, 아센.”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아센은 오랜 단기 집사 생활에 귀족 얼굴만 보면 성향 파악이 되었다.

그래서 메이아는 과하게 챙겨 주더라도 성질을 내실 분이 아니며, 성격이 온화하다는 걸 느꼈다.

아센은 옆에 있는 메이드 안나만 들을 수 있도록 낮게 말했다.

“좋으신 분이다.”

안나는 아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메이아는 의자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며 꽤 지루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책으로만 공부했던 바다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건 나만 보면 안 되겠지?

“쥬안.”

메이아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쥬안이 나왔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아센과 안나는 갑자기 나타난 쥬안에게 깜짝 놀랐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쥬안도 바다는 처음 보지? 바다 보라고 불렀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많이 봐.”

“예.”

쥬안은 메이아의 뒤편에 서서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갑판 위에서는 VVIP인 손님만 유람선 전용 메이드와 집사를 배치받는다.

VVIP실을 이용하는 데다 재력이 있어 보이고 게다가 아름다운 미모까지 갖춘 화려한 여인은 갑판 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메이아는 사람들의 시선에 매우 익숙하다.

갑판 위 남자들의 눈에서 번들거리는 시커먼 욕망이 느껴졌다.

소중한 아가씨에게 흑심을 가득 담아 쳐다보고 있었다.

‘쓰레기 자식들. 감히 어딜 보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테오도르라는 남자 또한 메이아와 엮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보았다.

‘젠장, 날파리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쥬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메이아를 쳐다보는 남자들에게 살기를 흘려보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씩 갑판 위 남자들은 자리를 떠나거나 메이아에게 보내던 음흉한 시선을 거두었다.

“쥬안.”

“예.”

“날파리 쫓는 거야?”

“예. 티 안 나게 날파리 약을 뿌렸는데…… 다음부턴 더 조심하겠습니다.”

쥬안은 자신의 살기를 느꼈을 메이아에게 몹시 죄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잘하고 있어. 그런데 날파리들 쫓아내려면 약을 더 뿌려.”

쫓으려면 확실하게 쫓아 버리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쥬안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남자들이 메이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모두 사라지자 쥬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뿌듯해했다.

“좋다, 바람.”

바람을 마음껏 맞으며 메이아는 평화를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자리에 앉아 하늘과 바다만 바라봤다.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보던 메이아는 어두워지는 하늘에 아센을 쳐다봤다.

“아센,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네.”

아센이 메이아에게 설명했다.

“바다 날씨는 매우 변덕이 심한 편입니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선실로 들어가시죠. 안나, 공녀님을 모셔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센 님.”

안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빗방울이 하나둘씩 가판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쉽다.”

“날씨가 또 좋아지면 나오시죠. 지금은 비가 쏟아지기 전에 선실로 가셔야 합니다.”

“알았어.”

어차피 테일론까지 도착하려면 보름 정도 걸린다 했으니 충분히 그동안 바다를 마음껏 즐길 생각이다.

선실로 들어온 메이아는 자신의 마법 가방에서 부모님의 초상화를 꺼내 침대 맡에 두었다.

왠지 이렇게 놓으니 부모님과 함께 유람선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밖을 보니 쏴아, 하는 빗소리가 유리창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를 바라보는 것도 좋네.”

그렇게 메이아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방울과 바다가 만나는 장면을 오랜 시간 쳐다보았다.

*

메이아가 떠나기 전 공작저에서 열렸던 티 파티에서 메릴은 올리비아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고, 올리비아는 그걸 사과하라고 가문 대 가문으로 요구했지만 하츠벨루아 공작저에서는 공작으로부터 사과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올리비아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참석하는 모임마다 노골적으로 메이아를 그리워했다.

“메이아 공녀님이 그리워요.”

“저도요. 그분만큼 완벽한 분이 없는데. 어쩌다가…….”

“그렇지만 파혼을 환영하는 가문들이 많다죠?”

“저희 집안에선 메이아 공녀님께 청혼서 넣었는데 거절당했답니다.”

“어머, 저희도요.”

“거절하시고 마탑으로 떠나셨죠?”

“성인식 전에는 오신다고 편지는 받았어요.”

“저도 받았어요.”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올리비아는 자신 앞의 영애들을 바라보며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이야기를 꺼냈다.

영애들 또한 올리비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뭐가 잘되었다는 거죠? 올리비아 영애.”

“아들 가진 모든 가문이 메이아 공녀님에게 청혼서를 보낸 일이요. 요즘 파혼이 큰 흠도 아니잖아요. 황태자 전하도 새 출발 하셨는데 메이아 공녀님도 새 출발 하셔야죠.”

올리비아 이야기에 영애들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만에 하나 메이아 공녀님께서 마탑에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다시 한번 영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메이아 공녀님의 행복을 위해서!”

“위해서?”

올리비아의 말에 영애들은 더욱 그녀가 말하는 걸 경청했다.

“멋진 영식를 소개해 드리는 거예요! 정략혼이 아닌 멋진 사랑을 하실 수 있도록 말이죠! 황태자 전하와의 파혼을 잊으실 수 있도록 저희가 돕는 거예요.”

“정말 멋진 계획이에요!”

“저희 남동생과 오라버님한테도 말해 둬야겠어요.”

“저도 메이아 공녀님이 새언니라면 좋겠어요.”

“메이아 공녀님을 두고 영식들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겠습니다.”

“그런데 올리비아 영애는 메이아 공녀님 싫어하신 거 아니었어요?”

“안 싫어해요. 그냥 완벽하신 분이라 질투 나서 그런 거죠.”

“어머나.”

귀족 영애의 입에서 질투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황태자 전하는 10년 동안 옆에 있던 공녀님 손을 놓아 버렸잖아요. 독신으로 돌아온 메이아 공녀님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요!”

올리비아의 돌직구에 영애들은 흠칫 놀랐다. 사실이지만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은 말이다.

그렇지만 올리비아의 돌직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라 할지라도 저희를 무시하는 건 옳지 않아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올리비아는 고개를 돌려 류이엘 백작가의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아이리스 영애, 티 파티는 어떠셨나요? 솔직하게 말해 줘요.”

올리비아의 질문에 아이리스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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