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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4화 (14/163)
  • 14화

    “제가 요번에 외국에 갔다가 너무 괜찮은 모피를 발견했어요! 요번 겨울 시즌에 내놓을 건데요! 우리 메이아 공녀님께서 꼭 입어 주시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요? 좋은 모피를 발견했다니 역시 마리엔느 부인은 능력이 출중하세요.”

    “메이아 공녀님,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라니요. 당연한 걸 말했을 뿐인데요.”

    “이번에도 기대해 주세요! 메이아 공녀님.”

    마리엔느 부인은 첫 모피 가방을 만들어 메이아에게 선물을 했었다.

    메이아가 선물 받은 모피 상품들을 입고 사교계 나가니 제품은 모조리 완판이 되어 버렸다.

    그녀 덕분에 마리엔느 부인은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 뒤부터 심혈을 기울이며 메이아가 입을 첫 모피 코트를 비롯해 모피로 만든 가방, 머리 장식 등등 겨울 시즌마다 정성껏 만들어 계속 메이아에게 선물을 했다.

    “달빛 야수라는 동물의 가죽을 구했는데 달빛을 머금고 자란 털이 오팔처럼 아름답습니다. 참고로 사람들을 자꾸 공격해서 요번에 위험 동물로 분류되어 사냥으로 허가받았습니다. 그래서 잡은 달빛 야수의 털을 보고 온 길이랍니다. 분명 메이아 공녀님의 은빛 머리카락하고 너무 잘 어울릴 거예요! 올해 겨울 상품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항상 좋은 선물 감사해요, 마리엔느 부인.”

    “아니에요. 메이아 공녀님께서 저에게 해 주신 거에 비하면 저는 정말 보잘것없죠. 그나저나 엘른 항구에는 황태자 전하와 함께 오셨나요?”

    마리엔느 부인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펴고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메이아 맞은편에 앉아 있는 테오도르를 흘겨보다 파츠래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힘든 일 겪으신 뒤에 황태자 전하와 바다 보러 오신 거죠? 메이아 공녀님 다행이에요. 황태자 전하라도 공녀님 곁에 있어서요.”

    아무래도 마리엔느는 외국에 있어 소식을 접하지 못한 모양인 것 같아 메이아는 머쓱한 표정으로 우선 테오도르를 마리엔느에게 소개했다.

    “마리엔느 부인, 소개할게요. 여기 제 앞에 앉아 계신 분은 시리우스 제국 플로렌스가의 테오도르 대공 각하이십니다. 어제 제가 위험한 일 겪을 때 도움 주신 고마운 분이랍니다.”

    위험한 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마리엔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떨며 말했다.

    “아니! 위험한 일이라니! 누가 감히 우리 공녀님한테! 황태자 전하는 뭐 하고 계셨답니까? 곁을 지키는 기사들은요!”

    “마리엔느 부인, 진정해요.”

    마리엔느는 부채를 다시 접고 살짝 드레스를 올리며 테오도르에게 몸을 돌려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 카르펜 제국 알렝가의 마리엔느입니다. 정말 카르펜의 한 귀족으로서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아닙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걸요. 과한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마리엔느는 테오도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에 다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계속 파츠래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황태자 전하는 함께 오지 않았어요, 마리엔느 부인.”

    메이아의 말에 마리엔느 부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미래의 황태자비와 타 제국의 대공이 단둘이서 디저트 가게라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데이트하는 거로 오해할 수 있는 모습이다.

    마리엔느는 계속 생각을 하는 동시에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메이아는 당연히 그런 마리엔느의 마음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아, 마리엔느 부인.”

    “네.”

    “황태자 전하와의 약혼이 취소되었습니다.”

    “네?”

    “파혼했어요.”

    마리엔느는 메이아의 말을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런 마리엔느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메이아는 자신 앞의 딸기 케이크를 포크로 살짝 잘라 입 안에 넣었다.

    “맛있다. 외국에 있으셔서 소식 못 들으셨군요. 이젠 황태자 전하의 새로운 약혼녀는 제 사촌인 메릴 언니가 되었어요. 메릴 언니가 저 대신 사교계의 꽃이 될 거예요. 더는 저에게 모피 선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메이아의 말을 듣자마자 마리엔느의 얼굴은 다소 심각해졌다.

    분명히 전 공작 부부가 죽은 뒤에 메이아의 삼촌인 루만이 공작위를 이어받았다.

    분명 루만이란 작자의 딸 이름이 메릴이였다. 그렇다면? 메이아를…….

    ‘쫓아낸 거야!’

    생각이 마치자 마리엔느 부인의 얼굴은 서서히 얼굴이 창백해져만 갔다.

    “처음 뵙는 자리에서 죄송합니다. 대공 각하,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그러시죠.”

    마리엔느는 메이아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이에요, 공녀님, 흑.”

    “울지 말아요. 예쁜 얼굴 부어요.”

    메이아는 자신의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마리엔느에게 건넸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힘든 일 겪으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마리엔느는 메이아의 파혼 이야기를 듣고 계속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놔두지 않았다. 마리엔느는 황당하고도 원통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흡…….”

    마리엔느는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알렝드 남작과 결혼해 아픈 시어머니를 돌보고, 살림을 돌보았다.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알렝드 남작가는 재정이 어려워져만 갔다. 당연히 망해 가는 남작 가문의 부인이 티 파티에 참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티 파티에 참석할 때 입어야 할 드레스도 없었을뿐더러 돌봐야 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또한 알렝드 남작가 사정을 아는 사람들 또한 티 파티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아는 새로운 남작 가문의 부인으로서 자신을 초대했다. 그러나 마리엔느는 입고 갈 드레스가 없어 여러 번 거절했다. 그리고 어느 날 편지와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새로운 남작가의 안주인으로서 축하하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우아한 드레스와 신발, 그리고 심플한 보석 세트가 선물로 왔다.

    그리고 다시 티 파티 초대장이 도착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메이아는 망해 가는 알렝드 남작가를 무시하지 않았다. 철저히 알렝드 남작 부인으로서 대우해 주었다. 그게 몹시 고마웠다.

    그 뒤에 알게 된 사실은 메이아가 황태자의 약혼녀이며 성인식을 올리고 황태자비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전율했다.

    메이아가 황후가 된다면 그녀의 곁에서 보필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생각만 하더라도 짜릿했다.

    그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인맥을 넓히고 쓰러져 가는 남작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사교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리엔느 부인의 앞으로가 더 기대되네요.>

    <메이아 공녀님…….>

    다른 사람들은 남편을 무능력하게 만든 독한 여자라 손가락질하며 마리엔느를 질투했지만 메이아는 그 능력을 믿었다며 소중하게 대해 줬다.

    그녀는 자신의 뮤즈였으며 존경해야 할 공녀이자 미래의 황후였다.

    가난과 낮은 자존감 그리고 자격지심으로 얼룩진 인생이었지만, 마리엔느는 메이아로 인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파혼이라니…….

    “전 지금 엘른 항구에서 우연히 공녀님 마주치고. 흐끅, 기뻐서 왔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흐엉엉, 농담이라고 해 주십시오. 제발 아니라고 해 주세요.”

    메이아는 서럽게 우는 마리엔느의 등을 토닥이며 테오도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면 안 될까요? 대신 오늘 저녁 사겠습니다. 7시쯤에 레스토랑에서 봬요.”

    테오도르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고 있었기에 메이아의 말에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때 로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테오도르는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 그녀만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런 테오도르를 바라보는 애튼은 한숨을 쉬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자신이 모시는 테오도르는 하츠벨루아 공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각하…….”

    얼른 마탑에 갔다가 대공가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신이 모시는 테오도르는 요지부동했다.

    지금도 메이아를 기다리는 모습이 무척 애달파 보이기까지 했다.

    “대공 각하.”

    “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올라가.”

    “언제까지 여기 계실 생각이세요?”

    “……그녀가 올 때까지.”

    “그래도 오실 때까지 로비에서 기다리시는 건…….”

    “그만 말하고 가. 무슨 말인지 알아.”

    보좌관 애튼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애튼의 말을 듣기 싫었던 테오도르는 애튼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입구 쪽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영락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언제 올까.”

    둥둥둥.

    “저쪽으로 들어오겠지?”

    쿵쿵.

    ‘자꾸만 가슴에 울렁거리네. 이 느낌 대체 뭘까. 둥둥거리고 쿵쿵거리고.’

    테오도르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보았다.

    살아오면서 이렇게나 가슴이 울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간질간질하는 심장이 기분 좋은 속도로 자신을 들뜨게 하는 생소한 감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말 마법사이기에 신경 쓰시는 거죠? 각하?”

    “아마도 그런 거겠지……. 그래, 그런 것 같아.”

    왜 ‘그런 것 같아’라고 답변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애튼에게 그렇게 답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마탑에 관한 소문을 들어 보니 대마법사 푸링은 마탑에 계신다고 합니다. 그분이라면 현재 플로렌스령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실종과 해적들 문제를 도와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탑에는 마탑의 의지에 뽑히는 마탑주와 그 밑에 보좌해 주는 대마법사들이 존재한다.

    대마법사들은 마탑주를 보좌하며 마탑의 내외적인 일과 따로 개인적인 일도 하고 있다.

    대마법사는 모든 마법사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다.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기 위해서는 마법 6써클 이상과 가르친 제자의 수 내지는 마탑 관련 일이나 전쟁 참여도를 보고 마탑주와 기존의 대마법사들과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그분이 과연 대공가에 와 주실까요?”

    “잘 설득해 봐야지. 애튼, 먼저 올라가 봐. 수고했어. 그리고 그 디저트 맛있었어. 용케도 그런 곳을 단시간에 찾아냈네.”

    “마음에 들어 하시다니 다행이군요. 이 근방에선 그 카페가 유명했습니다. 그러면 대공 각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공녀님과 맛있는 식사 하십시오.”

    “응.”

    애튼이 방으로 올라간 뒤에도 테오도르는 굳어 버린 망부석처럼 의자에 앉아 입구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지루할 것 같았는데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드디어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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