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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3화 (13/163)
  • 13화

    애튼은 테오도르의 그 모습을 지그시 쳐다봤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지 모르니 첫눈에 반해 쫓아다녔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그…….”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치자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그의 심장이 계속 올라왔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었다.

    “그런데 여기 음식이 너무 맛있네요. 대공님도 드세요.”

    메이아의 말에 테오도르는 홍조 띤 볼을 쓰다듬으며 애튼에게 말했다.

    “요리사에게 팁을 전해 주도록.”

    “네……. 나갔다 오겠습니다.”

    맛있게 먹는 메이아를 보며 테오도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메이아 또한 웃는 테오도르에게 미소로 답해 주었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식사를 했으니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주시죠.”

    테오도르는 간절함을 담아 애타게 말했다.

    제발 그녀가 허락하기를 빌었다. 대답을 듣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렇네요.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기로 했었죠.”

    테오도르는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방긋방긋 웃었다.

    ‘너무 잘 웃는 남자야. 꼭 머리 위에 꽃이라도 핀 것 같네!’

    “그러면 같이 가시죠. 에스코트할 수 있는 영광을 주세요! 아니, 주십시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더듬거리며 말하는 모습에 입꼬리를 위로 씰룩거리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 대공 생각보다 순진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음식 먹는 속도를 맞춰 주면서 함께 먹어 주었다.

    작은 배려라는 게 느껴졌다.

    메이아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테오도르 또한 따라 포크를 내려놓았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식사 다 끝나셨습니까? 그러면 가실까요?”

    “네, 대공 각하께서도 다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테오도르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지으며 메이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하츠벨루아 공녀님.”

    “아시는 찻집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공녀님도 무척 마음에 드실 겁니다.”

    *

    테오도르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한 고민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은발 미인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잔 것이다. 옆에 있던 애튼은 그런 테오도르를 타박했다.

    “내가 못 삽니다. 못 살아!”

    새벽이 지나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테오도르는 온통 은발 미인 생각만 했다.

    “하아, 마법사님 이름이라도 알면 좋을 것 같아. 밤새 마법사님 얼굴이 떠올랐어.”

    테오도르의 말에 애튼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마법사님한테 반하셨네, 반하셨어.”

    “반한 거 아니야. 마법사가 대공가에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러다 갑자기 느껴지는 마력으로 테오도르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은발이 햇빛에 비쳐 오팔의 빛처럼 반짝거렸다.

    밤새 자신을 한숨도 못 자게 괴롭힌 그녀였다.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 듯한 푸른 눈동자 커지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햇빛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은발 미인 마법사를 만나면 먼저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그것을 두고 밤새도록 고민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제일 말하고 싶은 걸 말해 버렸다.

    “마법사님! 우연히 또 만났군요.”

    잠을 못 자 피곤했지만 그 피곤함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식사하자는 말에 은발 미인은 수락해 주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상냥해 보이고, 무엇보다 올바른 예법을 구사해 자신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 또한 예법을 멋지게 구사하고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멋지게 인사를 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은발 미인은 카르펜 제국의 하츠벨루아 공녀였다.

    ‘대공가로 스카우트하기 어렵겠다.’

    공녀가 뭐가 아쉬워 대공가에 취직을 하겠는가. 그 생각 때문에 테오도르는 우울해져만 갔다.

    그 와중 음식을 먹는 그녀의 모습은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정말 참 귀족다운 식사 예절을 보여 주었다.

    음식이 흐트러지지 않게 네모 각지게 썰어 먹는 모습, 손끝의 모양과 나이프 포크 쥐는 모습들이 몹시 우아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품이 철철 넘쳤다.

    “흠흠.”

    애튼이 옆에서 소리를 내 주지 않았다면 식사는 하지도 않고 계속 메이아의 먹는 모습만 멍하게 바라볼 뻔했다.

    스스로 자제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에 땀이 차올라 손수건에 젖은 손을 문질렀다.

    머리는 심장한테 제발 자제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심장은 자제할 수 없다고 머리에 대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계속 메이아와 같이 있고 싶다’라는 바람과 계속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점이었다.

    <밥을 계속 사 주고 싶은 영애가 생겼다면 사랑스럽게 행동하면 된다.>

    <아버지, 사랑스러운 행동이 무엇인가요?>

    <계속 웃으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이 떠올린 테오도르였다.

    메이아는 바닷가 인근의 디저트 가게에 테오도르와 함께 들어갔다.

    진열대에 예쁘게 장식된 케이크들이 먹기 아까울 정도로 귀여웠다.

    “케이크 너무 귀엽다.”

    메이아는 디저트 가게에 들어와서 직접 구경하고 케이크를 골라서 먹는 건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귀엽고……. 뭘 먹을지 결정하는 거 너무 어렵네.”

    언제나 메이아에게는 전속 파티시에가 있었다. 그러므로 디저트에 대한 고민을 당연히 해 본 적이 없었다. 주는 대로 먹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디저트 진열대 앞에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메이아를 쳐다봤다.

    아까는 너무 아름답고, 도도하고, 우아하고, 기품이 넘쳐나 보였다면 지금의 모습은 앙증맞은 병아리처럼 귀여워 보였다.

    아니, 병아리보다 더 귀엽다! 세상에 이런 생물이 존재했다니!

    “공녀님, 케이크들 참 귀엽죠?”

    “네, 너무 귀여워서 먹기도 아까워요. 고르는 것도 어려워요.”

    고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메이아의 얼굴은 다소 심각해 보이지만 테오도르의 눈엔 세상 어떤 것보다 무척 귀엽게 비쳤다.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건 다 고르셔도 됩니다. 제가 사 드리겠습니다. 혹시 어떤 케이크를 다 좋아하시나요?”

    “케이크 다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딸기 케이크를 좋아해요.”

    “음료는 어떤 거로 드시겠어요.”

    “딸기 주스를 좋아해요.”

    딸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메이아의 우물거리는 입술이 귀여운 다람쥐 같아 테오도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예법에 어긋나는 일인 줄 알고 있었지만 시선 떼기가 참 어려운 여자였다.

    “대공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닙니다. 다른 것도 드시겠어요?”

    메이아 또한 테오도르가 한 것처럼 빤히 테오도르를 쳐다봤다.

    “대공님께서는 안 고르세요?”

    테오도르는 왠지 부끄러운 기분에 저도 모르게 메이아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고르겠습니다!”

    테오도르는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손으로 자신의 붉어진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메이아는 여러 가지 모양의 딸기 케이크 종류를 잔뜩 고른 뒤에 테오도르와 함께 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의 3층으로 올라갔다.

    “와.”

    테오도르의 말대로 끝내주는 해변의 경치에 메이아는 시선을 뗄 줄 모르고 바다를 바라봤다.

    살짝 열린 창가에선 바다의 짠 내가 풍겨 왔는데 그마저도 좋았다.

    듣기 좋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합주를 하는 것 같았다.

    턱을 괴고 바다를 바라보는 메이아는 흘러내려 오는 은발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바다가 경치가 마음에 들어요. 오길 잘했어요. 고맙습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

    “공녀님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메이아의 하얀 손가락이 우아하게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잘라 입 안에 넣어 우물거리며 먹은 뒤 손수건으로 입을 살짝 닦는 모습이 테오도르의 시선을 계속 사로잡았다.

    “맛은 괜찮으신가요?”

    달콤한 향기와 파도 소리 그리고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

    메이아는 모든 오감이 만족스러워 진심으로 밝은 미소를 보이며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케이크가 귀여워서 먹기 아까웠지만 먹어 보니 너무 맛있네요.”

    맛있다고 말하는 메이아 모습에 테오도르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공녀님이 드시는 모습이 더 귀여우십니다.”

    “네?”

    “아닙니다.”

    테오도르의 중얼거림을 잘 듣지 못한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파도에 움직이는 바다를 보았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길 잘했네요.”

    테오도르는 그런 메이아를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메이아는 그의 시선을 느껴져서 더욱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다만 쳐다봤다.

    이대로 고개를 돌리며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이상하게 뭔가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지?’

    메이아는 속으로 왜 자꾸 뚫어지라 쳐다보느냐고 따져야 하나 생각했던 찰나였다.

    “어머머! 메이아 공녀님 아니신가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메이아는 바다에 시선을 떼고 자신을 부르는 인물을 쳐다봤다.

    ‘아, 역시 세상은 좁다. 설마 했는데 여기서 마리엔느 부인을 만날 줄이야.’

    자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사람은 카르펜 제국에서 모피 사업을 하는 알렝드 남작 가문의 마리엔느 남작 부인이었다.

    알렝드 남작 가문은 알거지 집안이었지만 마리엔느가 남작 부인이 된 뒤에 집안을 일으킨 걸로 유명한 가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모피의 연인이라 부르면서 그녀의 높은 사업수완에 박수를 쳐 주며, 그녀와 인맥을 쌓고 싶어 한다. 또한, 마리엔느 부인은 눈치가 빠르고 메이아를 매우 좋아한다. 물론, 메이아도 그런 마리엔느 부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 메이아 공녀님.”

    “안녕하세요, 마리엔느 부인.”

    마리엔느 부인은 엘른 항구에 메이아가 왜 있을까 생각했지만 반가움이 먼저 앞서 자신이 왜 엘른 항구에 왔는지 주저리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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