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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2화 (12/163)
  • 12화

    10분을 날아 도착한 뒷산이었다.

    산의 낭떠러지 앞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은 상상보다 더 좋았다.

    “이쯤이 좋겠네.”

    메이아는 낭떠러지 앞에 주저앉았다.

    “반짝반짝 예쁘다. 바다 보러 오길 정말 잘했어.”

    그림으로만 보던 바다는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상쾌한 공기와 청량감 넘치는 바다의 소금 향.

    처음 보고 처음 겪어 보는 모든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메이아는 깊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하.”

    한참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메이아는 자신의 마법 가방에서 한 개의 그림 액자를 소중히 꺼냈다.

    액자에 끼어 있는 그림은 바로 부모님의 초상화였다.

    메이아는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액자를 한 번 쓱 닦았다.

    초상화에 그려진 부모님들이 자신의 품이 아닌, 바다를 볼 수 있도록 가슴에 품고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 바다예요.”

    성인식을 치른 다음 국혼이 정해지면 부모님과 바다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었다.

    “꼭 어머니와 아버지랑 오고 싶었는데. 음…….”

    부모님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이별이란 걸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이제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은 지독한 그리움을 안겨 주고 홀로 미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을 들게 했다.

    복잡한 미로 속에 갇혀 답도 없고 걸어갈 방향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그리워한다면 꿈에서라도 한번 볼 수 있을까?

    좋았던 기억들도, 섭섭했던 마음들도. 여러 가지 추억들이 마음속에서 범벅되어 말 그대로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엉망진창 속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보고 싶네요, 어머니, 아버지.”

    ‘안 울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흐끅.”

    혼자 있을 때 울되, 언제나 사람들 앞에선 웃을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 왔다.

    지금은 혼자니깐 자신의 눈물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지금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러자 더욱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남겨 주신 약혼녀 자리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런데…… 제가 황후가 되더라도 좋아해 주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옆에 없잖아요. 그래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포기하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메이아는 한참 바다를 바라보며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을 맞았다.

    품 안의 액자를 꼭 껴안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메이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만이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주며 불어 갔다.

    한동안 메이아는 액자를 꼭 껴안은 채 바다를 실컷 바라보며 울었다.

    흘러내린 눈물을 닦다 눈가를 만져 보니 눈덩이가 부은 게 느껴졌다.

    “치료 마법 좀 익힐걸.”

    혼자 있으니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걸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메이아는 액자를 정성스레 닦은 다음 가방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바다 구경을 해야겠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맨 꼭대기 스위트룸 창문으로 날아갔다.

    “어라.”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설마?”

    메이아는 다시 한번 창문을 잡고 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문이 안 열리잖아.”

    아무래도 사용인들이 청소하며 문을 잠근 것 같았다.

    “이대로 내려가야겠네. 문 잠그지 말라고 메모 남겨 놓을걸.”

    어쩔 수 없이 메이아는 지상 위로 착지하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내려가는 중에 있던 호텔 창문이 벌컥 열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연히 또 만났군요.”

    어젯밤에 만났던 테오도르가 창문에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자고 늦게 일어났는지 머리는 부스스했지만 미모만큼은 끝내주게 눈부셨다.

    “그러게요. 갑자기 창문이 열려서 놀랐네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창문을 열었을 뿐인데 마법사님이 계셔서 저도 놀랐습니다.”

    생각이나 했을까? 설마 이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디 다녀오신 길입니까? 마법사님?”

    “네, 바다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메이아는 대답을 하고 ‘아차’ 싶었다.

    다녀왔다는 대답하게 되면 내가 이 호텔에 묵고 있다는 걸 말해 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방긋방긋 예쁜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말했다.

    “우연히 마주쳤으니 이름 알려 주시고, 식사 한 끼 하시죠, 마법사님.”

    “저번에 분명 식사가 아니고 커피 한잔이라 이야기했었는데.”

    “점심 먹고 차 한잔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마법사님, 부탁드립니다.”

    “그러죠. 어차피 저도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으니…….”

    메이아의 허락에 테오도르는 얼굴에 빨갛게 상기된 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며 창문을 좀 더 활짝 열었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테오도르의 희고 고운 살결이 메이아 눈에 꽉 차기 시작했다.

    넓은 어깨와 가슴 그리고 잘 잡힌 근육과 매끄러운 복부도 눈에 보였다.

    메이아는 자신의 눈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몸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굉장히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물론 기본적인 성교육을 받았지만 이렇게 가까이 남자의 팔과 가슴의 튼실한 근육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법사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1층에서 뵐까요? 아니면 제가 모시러 갈까요?”

    “1층에서 봐요.”

    “네! 마법사님.”

    1층으로 내려간 메이아는 안내인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VVIP 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용인들에게 창문을 닫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마법 가방에서 가벼운 베이지 드레스와 심플한 액세서리를 꺼냈다.

    메이드들에게 적절한 팁을 준 다음에 치장을 받고,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1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테오도르는 메이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사님!”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는 홍조 띤 미소를 지었다.

    메이아는 살짝 드레스를 쥐어 잡고 허리를 숙이며 귀족 영애들만이 할 수 있는 예법으로 인사를 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절제된 예법 인사를 받으며 자신 또한 제대로 예법을 갖추고 메이아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애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이아를 바라봤다.

    귀족 영애들만 할 수 있는 예법으로 인사하는 모습에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란 걸 느꼈다.

    “예법이 아주 훌륭하시네요.”

    “마법사님이야말로 훌륭하십니다. 제 옆에는 제 보좌관인 애튼이라고 합니다.”

    테오도르 옆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애튼은 메이아의 훌륭한 예법 인사에 속으로 찬사를 보내며 예를 갖춰 메이아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시리우스 제국 리코튼가의 애튼이라 합니다.”

    “그러면 자리를 옮길까요, 마법사님?”

    테오도르는 손을 내밀었고, 메이아는 자신의 손을 살짝 올리며 답했다.

    “그러죠.”

    테오도르와 애튼 그리고 메이아는 사용인의 안내를 받으며 따로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우선 다 주문했습니다.”

    “가리는 거 없습니다.”

    “저, 마법사님 성함을 알려 주십시오.”

    메이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다른 제국이라 하더라도 귀족 세계는 좁으면 좁고 넓으면 넓다.

    가명으로 알려 주려고 했으나 사람의 인연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자신의 가문과 이름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카르펜 제국 하츠벨루아가의 메이아라고 합니다.”

    애튼은 메이아의 소개에 깜짝 놀랐다.

    “하츠벨루아 공작 가문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맛있는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테오도르 대공 각하, 밥도 먹었고 이름도 알려 드렸습니다.”

    “어디 가시는지도 알려 주시겠습니까?”

    “설마 저를 플로렌스 대공가로 스카우트하려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건가요?”

    “네, 이상하게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메이아를 넋 놓고 쳐다보던 테오도르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말에 답했다.

    옆에서 테오도르를 지켜보던 애튼은 속 터진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테오도르가 말했다.

    “공녀님, 저희 대공가로 정말 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공녀인 절 보고 대공가에 마법사로 취직하라는 말씀인가요?”

    붉게 물든 얼굴로 테오도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답답함에 보다 못한 애튼은 결국 끼어들며 말했다.

    “대공 각하, 공녀님이 대공가에 마법사로 취직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공가에 마법사가 없으세요? 마탑에 문의하면 갈 마법사가 많지 않나요?”

    애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현재 시리우스 제국의 록벨리온 공작가에서 마법사들을 죄다 채용해 갔습니다. 저희 가문에 소속되어 있던 마법사도 위약금을 내고 록벨리온가로 떠났습니다.”

    메이아는 시리우스 제국으로 떠난 마법사들 때문에 마탑으로 돌아간 스승 푸링이 생각이 났다.

    “위약금을 내고 떠날 정도라면…… 록벨리온 공작가에서 마법사들이 거절할 수 없는 보상을 걸었다는 거네요.”

    “예, 록벨리온의 마정석이 보상이니…… 갈 수밖에요.”

    마법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마정석 구매 때문이다. 그런데 돈 대신 마정석을 준다 하면 거절할 마법사는 없다.

    “플로렌스령은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인만큼 해적들 침범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마법사가 만든 공격과 방어가 되는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절 보자마자 스카우트하려고 하셨던 거군요.”

    “맞습니다. 무례하게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마법사 힘이 필요합니다.”

    “대공 각하, 록벨리온 공작님한테 이야기 잘해서 마법사 한 명만 보내 달라고…….”

    “애튼, 얀 형이 곧 영지전을 할 예정이라 인력을 나누어줄 수 없다 했어.”

    “록벨리온 공작님도 참 매정하네요.”

    “약혼녀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마법사를 보내 달라고 계속 말할 수도 없었어.”

    테오도르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메이아는 테오도르와 애튼의 대화를 들었다. 그래서 테오도르와 록벨리온 공작은 친한 사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영지전이 끝나면 마탑의 마법사들은 돌아오지 않을까요?”

    “영지전이 언제 시작할지도, 또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마법사님을 만나서 대공가로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공녀님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절 붙잡으려 따라오셨던 이유는 이해했습니다.”

    메이아는 도도한 눈빛으로 테오도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말에 더욱더 얼굴이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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