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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8화 (8/163)
  • 8화

    메이아는 수군거리는 영애들에게 다가가는 메릴의 앞을 가로막았다.

    “메릴 언니!”

    “비켜! 황족 불경죄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

    메이아는 메릴에게 물어보았다.

    “황족 불경죄를 정확히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메릴에게 무덤덤하게 물어보는 메이아의 표정에는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것들이 비아냥거리는 게 불경죄지 뭐겠어!”

    “카르펜 제국 1조 51항 황족 불경죄는 정식으로 혼인한 제1 본처와 국서의 경우에 적용된다.”

    메릴은 법률을 이야기하는 메이아를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카르펜 제국 1조 55항 황족 불경죄에 관한 판단은 황제 폐하께서 상황과 언행을 보고받은 뒤에 직접 판결이 내려진다.”

    “뭐라는 거야! 메이아 너도 내 편을 들어 줘야지!”

    “제가 말한 것들을 이해 못 하셨습니까? 언니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황족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영애들의 수군거림으로는 불경죄를 묻기 어렵습니다.”

    메이아의 카리스마 있는 말과 행동에 주위 영애들은 메이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멋지세요.”

    “저 불경죄에 관한 법률을 처음 들어 봤어요.”

    “정말일까요? 황태자 전하께서 메이아 님을 놔두시고?”

    “저도 믿을 수 없어요.”

    “메릴 공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얼굴이 빨개진 메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메이아는 고개를 돌려 영애들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메릴을 쳐다보며 말했다.

    “장차 황후가 되신다면, 여기 계신 영애 중에서 후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영애들과 잘 지내셔야 합니다.”

    “뭐? 후궁이라고!”

    “황태자 전하께서 황제가 되시면 당연히 후궁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모르시는 겁니까?”

    “후, 후궁은 안 돼……!”

    메릴은 큰소리로 씩씩거리며 잡아먹을 듯이 영애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후궁은 절대 안 될 말이야, 메이아.”

    “그건 황태자 전하와 이야기하십시오. 저는 후궁 두는 걸 허락했습니다.”

    “넌 그렇겠지만 난 그 꼴 못 봐!”

    메릴의 매서운 눈빛을 받는 영애들은 하나같이 ‘너 같은 황후와 후궁으로 지내기 싫어’라는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메이아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참아야 했다.

    메이아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더는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가 아닙니다. 여기 제 옆의 메릴 언니가 약혼녀가 되었습니다. 이젠 저에게 황족에게 하는 예를 갖추실 필요가 없습니다.”

    메릴과 메이아의 대화에서 ‘설마?’라는 건 다들 예상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직접 확인 사살까지 해 주니 자리에 있던 영애들은 충격에 빠졌다.

    메이아는 메릴을 쳐다보며 안타까움을 듬뿍 묻힌 목소리로 말했다.

    “메릴 언니, 오늘 조금 자중 좀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자중?”

    “오늘 주제는 감사입니다. 여기 카네이션으로 꾸며진 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메이아의 말에 메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탁 위나 꾸며진 꽃들이 카네이션 중심이었다.

    “카네이션 보고 모르겠다니? 너 자꾸 나 무시할래?”

    “무시하는 게 아니라, 카네이션의 꽃말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전 얼마 전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가족 전부를 말이죠.”

    “여기서 그거 모르는 사람 있어?”

    “가족을 잃었다는 것은 옷을 입지 않은 채 추위와 더위를 견뎌 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게 티 파티랑 무슨 상관이야.”

    “제가 덥고 추울 때 여기 계신 많은 영애분께서 더위와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도록 절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기리며, 여기 계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티 파티입니다. 그리고 언니가 황태자비로서 움직일 때 여기 계신 많은 영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려 드리고 영애 한 분씩 언니에게 모두를 소개하려고 했는데…….”

    메릴은 모를 것이다. 여기 모인 영애들은 계급 상관없이 강한 재력과 무력, 인맥으로 무장한, 카르펜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안의 귀한 자식들이라는 걸.

    황태자비가 되었다고 미쳐 날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밖이었다.

    끝까지 상대방에게 반말을 하며 예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메이아 님.”

    충격으로 뒷목을 잡고 앉아 있던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메이아를 찾았다.

    “올리비아 영애, 안색이…….”

    “공작가라 하더라도 저의 가문을 욕보인 메릴 하츠벨루아 님에게 정식으로 가문 대 가문 사과문 요청할 겁니다. 그냥 넘기지 않겠습니다.”

    메이아는 올리비아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선 도저히 상냥한 올리비아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오기도 전에 제대로 사고를 쳤구나.’

    “메이아 공녀님, 죄송합니다. 페르젠가의 올리비아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더는 여기 있다간 메릴 하츠벨루아 공녀에게 ‘흰 장갑’을 던져 버릴 것 같습니다.”

    흰 장갑을 던진다는 것은 결투를 신청한다는 말과 동시에 죽이고 싶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올리비아 영애! 나에게 감히 흰 장갑을 던진다고 말한 거야?”

    “메릴 하츠벨루아 공녀님, 저는 공녀님에게 제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후작 영애 주제에 지금 공녀한테 허락을 운운하는 거야?”

    올리비아와 메릴의 언성이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 누구도 둘을 말릴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른 채 이 상황을 쳐다만 보았다.

    “언제 파혼될지도 모를 위치에서 벌써 황태자비처럼 굴지 마시죠?”

    “뭐야?”

    끝없이 올라가는 언성에 메이아는 싸우는 두 사람 앞을 막아섰다.

    “올리비아 영애, 그리고 메릴 언니. 두 분 다 진정하시면 좋겠습니다.”

    “메이아! 후작 영애가 나 노려보며 말하는 것 좀 봐! 보라고! 왜 내 편 안 들어 줘? 하나밖에 없는 사촌 언니잖아! 가족 편을 들어야지.”

    메릴의 말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영애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 주었다. 가족 운운하는 것이 너무 이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메이아 공녀님, 더는 평화로운 사교계가 끝나 버린 것 같군요. 저보고 새로운 황태자비이신 분을 도와달라 했던 말씀은 완벽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올리비아의 말에 메이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힘겹게 이야기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티 파티 파하겠습니…… 다. 어…….”

    그렇게 말한 메이아는 비틀거리더니 서 있던 자리에서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꺄아아아악!”

    “메이아 님!”

    영애들은 동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비명에 시녀들은 티 파티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가온 시녀들은 쓰러진 메이아를 보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티 파티 장소에 메릴이 있다는 걸 알았던 유디는 온실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다른 영애들의 비명은 신경 쓰지 않지만 “메이아 공녀님!”이란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유디는 사색이 되어 쓰러진 메이아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아이고! 연달아 큰 충격으로 밥도 못 드시고 매일 힘들어하시더니만……. 이 사달 날 줄 알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메이아 아가씨. 어흑.”

    유디는 한 맺힌 큰 소리로 울며 이야기했다.

    “전 공작 부부님께서도 그리 허망하게 가셨는데 아가씨마저 보내면 이 유모는 죽어 버릴 겁니다! 너희들 뭣들 하는 게야! 빨리 의원을 부르지 않고!”

    메이아의 기절로 티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 그녀가 원하는 대로 엉망이었다.

    다음 날, 사교계에서 이미 퍼진 소문이 기정사실화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며 입에 오르락내리락 되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황태자 약혼녀에 기대했지만 이미 메릴을 겪어 본 영애들의 말을 듣고 실망을 하며 황태자 파츠래리는 보는 눈이 없다고 뒤에서 조롱했다.

    그렇지만 메이아의 파혼에 쌍수를 들고 좋아하는 가문들이 더 많았다.

    “황태자 약혼녀만 아니었어도.”

    “메이아 공녀님이야말로 우리 가문 안주인으로 딱인데.”

    “파혼이라도 진짜겠지?”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만 아니었다면 딱 내 며느리로 좋을 텐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각 가문의 수장들은 오히려 파혼을 기뻐하며 메이아를 어떻게서든 가문 안주인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각종 선물과 청혼서를 그녀 앞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메이아 하츠벨루아가 어느 가문과 결혼하느냐!

    최대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

    “아가씨, 꼭 가셔야 합니까?”

    “갈 거야. 나한테 청혼서 넣는 집안들 봤잖아! 진짜 제정신으로 보내는 거야?”

    메이아와 황태자 파츠래리의 파혼이 결정된 이후부터 공작저 앞에는 메이아에게 보내는 선물과 연서들, 청혼서들이 날이 갈수록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아는 거절했고, 모두 다시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거절을 당한 집안들은 절대 메이아를 포기하지 않았다. 청혼서를 거절하니 당연히 가문 대 가문으로 청혼서를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공작은 수락할 수 없었다. 신전에 공증받은 자유 결혼 계약서가 있는 이상 말이다.

    비싼 값에 조카를 팔아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루만의 얼굴을 보며 메이아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괜히 여기 있다가 무슨 일 당할까 봐 그래, 유모. 마탑이 안전하잖아. 마탑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고, 조용히 지내고 싶고.”

    “그렇긴 하지만…….”

    “성인식 전에 돌아올게. 이해해 줘, 유모. 응?”

    메이아의 간절한 말에 유디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흑흑.”

    “유모는 울 때마다 나이 탓이래. 울지 말고 나 안아 줘.”

    “눈물이 옷에 묻습니다, 흑흑.”

    메이아는 유디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품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유디는 나의 제2의 어머니 같은 존재야. 고마워, 유모.”

    메이아의 말 한마디에 유디는 정신을 잠시 놓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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