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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7화 (7/163)

7화

올리비아가 나간 뒤 유디가 들어왔다.

“지금 메릴 아가씬 티 파티 장소로 향했다 합니다.”

“그래.”

“아가씨, 분하지 않으십니까?”

전 공작 부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자신이 메이아를 지켜야만 했다.

그렇지만 지키지 못했다. 자신은 힘없는 유모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저는……, 저는.”

유디에게 메이아는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키운 귀한 공녀님이다.

“유모는 많이 분해? 화나?”

“네, 전 매우 분하고 억울하고 한이 맺힙니다.”

유디는 입술을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메이아는 그런 유디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을 쓸었다.

“입술 깨물지 마. 피 나려고 하잖아, 유모.”

유디는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 주는 어른스러운 메이아의 말에 꽉 깨물던 입술을 풀고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유모의 말에 그저 메이아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려 미소를 보여 주며 웃었다.

오랫동안 메이아를 보필해 온 유디는 메이아의 미소가 억지로 입술만 끌어 올려 만든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억장이 더 무너질 것만 같았다.

“지금쯤 티 파티 인원들이 많이 모였겠지? 슬슬 출발해야겠어. 그나저나 아그니타는 언제 와?”

“너무 깊은 골짜기 밑에서 혼자 수색 중이라 만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 헬레나한테 땅의 정령들을 통해 편지를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메이아는 눈의 부기를 빼고 남은 치장을 받고 티 파티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

티 파티 장소에 다다른 올리비아는 자신의 이름과 가문이 적힌 자리에 앉았다.

다른 영애들도 하나둘씩 티 파티 장소로 들어왔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주위에 꾸며진 꽃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어머나, 카네이션으로 꾸미다니.”

“어머, 여기 라그라스에…….”

“향이 아주 좋네요.”

“라그라스, 카네이션의 꽃말은 감사인데…… 티 파티 콘셉트 설명이 기대되네요.”

귀족 영애들에게 있어 메이아는 귀족 영애의 표본이자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녀의 우아한 발걸음과 기품 있는 미소를 모두 닮고 싶어 한다.

특히 티 파티를 여는 메이아는 완벽했다. 많은 영애들 또한 티 파티를 준비할 시에 ‘메이아 공녀님처럼’이란 말을 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티 파티 열 때 좋은 조언을 해 주기 때문에 메이아의 티 파티는 항상 인기가 많다.

“오늘 나올 다과도 기대되네요.”

“메이아 공녀님께서 황후가 되시고 이끌어 가실 사교계가 기대되네요.”

영애들은 우아한 기품이 넘치는 황후다운 황후를 옆에서 보필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하며 계속 담화를 이어 나갔다.

아무도 메이아의 파혼을 모르니 할 수 있는 말들을 들으니 올리비아의 속이 더부룩하게 답답해져만 갔다.

딸랑딸랑.

그때 시종이 들어와 들어오는 사람의 가문과 이름을 외쳤다.

“메릴 하츠벨루아 공녀님 들어가십니다.”

메릴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대화를 멈췄다. 농담으로라도 사촌 여동생의 약혼녀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메릴을 그 누구도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릴 공녀님도 오셨네요.”

“아무래도 한 집이니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화려한 금빛 드레스와 높게 올림머리를 하고 나타난 메릴의 모습은 당당하고 화려했다.

“저 자리는?”

“저곳은 메이아 공녀님 자리인데…….”

테이블 상석으로 걸어가던 메릴은 당당히 그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여기겠지.”

티 파티 주최자가 앉아야 할 상석에 너무나 당당히 앉는 모습에 티 파티장에 있던 영애들은 입만 뻐끔거리며 기막혀했다.

티 파티 주최자가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면 상관은 없었지만, 현재 주최자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촌이란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나는 테이블 매너 모른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과 같았다.

보다 못한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릴에게 말했다.

“메릴 님, 그 자리는 메이아 공녀님의 자리입니다. 아직 주최자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 양보를 받지도 않고 무작정 앉는 것은 사교계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올리비아의 말에 다른 영애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메이아가 앉을 자리에 마음대로 앉아 버린 메릴에게 고운 시선이 가지 않았다.

메릴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메릴 님이라니. 난 내 이름 부르는 거 허락하지 않았는데? 메르젠 후작 영애야말로 예법이 좋지 않아.”

메릴은 올리비아를 비아냥거리며 삐딱한 태도로 받아쳤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왜요? 메르젠 후작 영애?”

분명 페르젠 후작가라는 걸 알면서도 고의로 메르젠이라 부르는 메릴의 예상 밖의 언행에 올리비아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다른 영애들이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저는 페르젠가의 올리비아입니다.”

“아……, 메르젠이 아니고 페르젠 후작 영애구나.”

“지금 앉아 계신 자리는 메이아 공녀님이 앉아야 할 자리이니 일어나 주십시오. 아직 티 파티 개최자가 오지도 않았는데 앉는 건 예법에 어긋납니다.”

“괜찮아. 메이아라면 이해해.”

“이해의 문제는 메이아 공녀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나는 하츠벨루아 공녀야.”

“알고 있습니다.”

“메이아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나도 앉을 수 있다는 뜻이야.”

메릴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영애들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고 다들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는 거야?”

메릴의 말은 꼭 메이아가 가지고 있는 ‘약혼녀 자리’도 앉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도 파츠래리의 약혼녀가 자신으로 바뀐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보다 못한 영애들은 메릴을 노려보며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공녀님 발언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아십니까?”

메릴은 바로 앞의 탁자 위를 손바닥으로 쾅쾅 두들기며 오히려 큰소리를 냈다.

“너희 아직 못 들었겠구나? 나는 곧 황태자비가 될 몸이야! 알아서 고개들 숙여.”

메릴의 발언에 티 파티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올리비아는 침착한 어투로 메이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르는 척하며 메릴에게 물어봤다.

“소문대로 약혼녀가 바뀌었다는 겁니까?”

“소문이 아니야. 내가 황태자님의 약혼녀가 되었어. 내일 공표되긴 하지만 미리 아는 게 좋겠지? 그러니깐 여기선 내가 가장 계급이 높으니깐 알아서 예를 갖추면 좋겠어.”

그 말에 삽시간에 모든 영애들은 경악했고, 올리비아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계급의 높낮이는 상관없이 예법을 지켜 달라고 했습니다. 황태자비가 되시든, 황후가 되시든 테이블 매너를 지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딸랑딸랑.

“메이아 하츠벨루아 공녀님 들어오십니다.”

메이아의 입장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릴은 곧 파츠래리의 약혼녀가 되고 황태자비가 될 사람은 자신인데도 약혼녀 자리에서 물러나는 메이아에게 예를 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들 어서 와요……. 어머나, 메릴 언니. 벌써 와 있던 거예요?”

메릴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메이아에게 다가오라는 신호를 줬다.

“언니, 그렇게 손가락을 흔들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 참 잘한다.”

“언니 또한 저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높임말을 사용하셔야 됩니다. 그게 예법입니다.”

“아! 또 교육하는 그 말투 듣기 싫어! 평소 하던 대로 반말해.”

“메릴 언니, 그 자리는 제자리이니 비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는 주최자가 앉아야 할 자리예요.”

“공녀 자리니깐 내 자리 아니야? 내 자리는? 나도 상석에 앉고 싶어.”

“그렇지 않아도 언니 앉을 자리 마련한 다음에 오시게 하려고 했는데 일찍 오셨네요.”

“일찍 오면 안 되는 거야? 왜 내 자리가 없는 거야? 아랫것들이 일을 제대로 못 했구나.”

“그게 아니에요. 제가 저번에 시간 맞춰 부르겠다고 미리 언질 드렸잖아요.”

메이아는 메릴의 말에 짧은 한숨을 쉬며 시종에게 의자 하나를 더 내오라 시키고 자신의 옆자리에 배치했다.

“옆에 앉으세요.”

메이아 옆자리 또한 상석이니 메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메이아의 처신에 다른 영애들은 그녀가 슬기롭고 인자하다는 생각을 하는 반면, 메릴의 언행에 다들 어처구니없어했다.

“이 정도로 넘어갈게.”

메이아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티 파티장에 온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사람들 또한 예를 갖춰 메이아에게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메릴뿐이었다.

눈치를 보던 메릴은 자신도 자리에서 슬쩍 일어섰다.

메이아가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자 모두 자리에 앉았다.

메릴은 그 모습이 굉장히 못마땅했다.

“다들 내가 한 말 무시하는 거야 뭐야…….”

메릴의 사나워진 말투에 메이아는 간절하게 말했다.

“메릴 언니, 제발 경어를 써 주세요.”

자꾸만 가르치는 말을 하려는 메이아에게 짜증이 난 메릴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이젠 내가 황태자님 약혼녀라 말했는데 메이아 네가 왜 인사받는 거야?”

티 파티장은 순식간에 얼음처럼 싸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혼녀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메릴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잠시의 시간이 걸렸다.

메이아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가 자유분방한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긴 다른 귀족 영애들도 있는 티 파티 장소이니 그에 어울리는 말투와 행동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교계 예법을 떠나 넌 항상 가르치는 식이야. 너 지금 나한테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 자리 양보해 준 게 마음에 안 드니까 자꾸 꼬투리 잡으려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네가 왜 인사를 받아?”

메릴의 발언에 주위 영애들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약혼녀가 메릴 공녀님으로 바뀌었다고 말한 거죠?”

“저만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맞을 거예요.”

“말도 안 돼요. 메릴 공녀님은 다른 자리에서도 자기가 약혼녀가 된다고 말했잖아요. 그런 거 아닐까요?”

속닥거리며 키득거리는 영애들의 작은 속삭임으로 메릴의 이성의 끈이 풀리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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