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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5화 (5/163)
  • 5화

    메이아는 공작저에 돌아오자마자 티 파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유디 또한 오래간만에 티 파티를 하는 메이아를 돕겠다며 의욕을 뿜어냈다.

    똑똑.

    “메이아, 나야.”

    “들어와, 언니.”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민 메릴은 귀엽게 혀를 내밀고 쑥스러워하며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뭐 하나 싶어서.”

    “티 파티 준비를 하는 중이야.”

    “티 파티를 왜 네가 준비해?”

    질문을 받은 메이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메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내가 준비하지. 누가 준비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메릴은 답했다.

    “당연히 밑에 사용인들과 가신 가문의 부인들이지.”

    메릴은 말 한마디 한마디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티 파티 준비도 미래 황후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인 걸 언니는 모르고 하는 소리야?”

    티 파티의 콘셉트를 생각한 뒤에 계획을 세우고 사용인들에게 준비시킨다.

    그런 사용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이 티 파티 주최자가 해야 할 일이다.

    티 파티는 그냥 모여서 차 한잔하자는 모임이 아니다. 귀족 영애가 어느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통솔력을 보이기 위한 예행연습이다.

    티 파티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놀러 와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주최자가 손님들을 위해 얼마나 정성 들여 준비했는지를 본다.

    그냥 사용인들에게 알아서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티 파티 준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와 사고는 모두 주최자가 안고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황후가 되어서도 밑에 애들 시키면 되지.”

    “명령만 내리면 다 되는 게 아니야, 언니.”

    “티 파티 준비는 머리 아파서 난 하지 않아. 내가 황후가 되더라도 보조해 주는 부인들이 다 해 줄 테니, 난 그런 준비 안 할래.”

    꼭 자신이 미래의 황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메릴을 보고 메이아는 불쾌해졌다.

    할 말은 많았지만 안 하는 게 낫다고 느꼈다.

    “그건 그렇고 대체 왜 온 거야?”

    “맞다! 아빠가 불러서.”

    “언니,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해.”

    “또 가르치는 말투. 오늘은 그냥 넘어가 줄게. 얼른 가자.”

    자신의 불만을 말하면서 묘하게 들떠 있는 메릴이 신경이 쓰였다.

    뭐가 저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벌써 폭풍우가 온 건가?’

    메이아는 불안한 기분이 급습해 왔다.

    메이아는 메릴과 함께 집무실로 찾아갔다. 메릴도 그렇고 공작의 표정이 매우 좋았다.

    “오! 메이아, 어서 오너라.”

    뭐가 그렇게 좋을까?

    “무슨 일이시죠? 삼촌.”

    “그게 말이다……, 음.”

    “말씀하세요.”

    공작은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메이아에게 말을 꺼냈다.

    “황궁에서, 약혼녀를 메릴로 바꾸기로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단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메이아의 귓가에, 마음에 파고들었다.

    생각도 하기 싫었던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어차피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주 오던 황후의 편지도 오지 않고, 파츠래리는 바쁘다면서 만나러 오지 않거나 만나 주지 않았다.

    “네.”

    “넌 정략혼이었지만 메릴은 황태자 전하가 좋다고 하니 양보해 주렴.”

    양보해 달라는 루만의 말에 메이아는 더없이 기분이 나빠졌다.

    루만은 양보라고 말하지만 명백히 빼앗아 가는 거다.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파츠래리는 이복 남동생 데미안에게서 황태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안다.

    정략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파혼을 해야 한다는 현실과 부모님이 남겨 주신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은 안타까움에 메이아는 괴로워졌다.

    차라리 파츠래리가 파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게 도와줄 수 있는데…….

    10년의 세월을 함께했는데, 정작 편지 한 통 없구나.

    결국 폭풍우가 온다는 의심은 맞아떨어졌다.

    메릴의 앞에서 파혼될 리 없다고 큰소리쳤었다.

    “메이아, 기분 안 좋아?”

    10년을 함께했는데 고작 삼촌에게 파혼당할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은 이 상황이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언니가 보기에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당연하지. 얼굴이 창백해.”

    “언니가 그렇게 보는 거라면 그게 맞을 거야.”

    메릴은 기분이 좋은지 기쁘게 웃으며 메이아의 눈치를 봤다.

    “아무튼 내가 메이아 몫까지 좋은 황후가 될게.”

    메릴의 발언에 메이아의 자존심은 갈가리 찢어지기 충분했다.

    “아직 확정 난 것이 아니잖아. 삼촌, 확정되면 말씀해 주세요. 전 티 파티 준비 때문에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약혼녀가 바뀌게 된다면 전에 진행했던 약혼서는 파기하겠다.”

    루만의 말에 메이아는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췄다.

    꼭 바뀔 거라는 확신을 두고 말하는 루만과 메릴을 한 번씩 쳐다보며 메이아는 말했다.

    “만에 하나 황궁에서 언니로 약혼녀 변경을 한다면……. 제 부탁을 두 개만 들어주세요.”

    화가 난다. 부모님의 시신도 찾아 주지 않는 루만과 기어코 부모님이 내게 남겨 주신 자리를 빼앗아 가려는 메릴이 몹시 미웠다.

    “부탁이라니? 말해 보아라.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들어주마.”

    “약혼녀가 바뀐다면 저는 성인식 전까지 마탑에 다녀올 겁니다.”

    “마탑이라…….”

    메이아한테 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걸 루만 또한 알고 있다.

    “시리우스 제국의 영지전 때문에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두 록벨리온 공작가로 갔다 합니다.”

    “그 전쟁광 소드 마스터?”

    “그래서 제 스승님이신 푸링 님도 급하게 마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배워야 할 스크롤 공부가 있는데 마탑으로 가서 배우고 싶습니다.”

    “마탑에 잘 다녀와! 아빠, 보내 줘요.”

    메릴은 메이아가 마탑으로 떠난다는 말에 더욱 신나 했다.

    “그래 너도 바람은 쐬어야지. 마탑에 다녀오거라.”

    루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다녀오거라……. 약혼녀가 바뀌는 것이 확실해진 모양이네요, 삼촌.”

    허를 찔린 공작은 헛기침했다.

    “크흠!”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라는 말에 공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조카를 바라봤다.

    “말해 보거라.”

    “제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이건 계약서를 받아 신전에서 공증받을 겁니다.”

    공작은 살짝 고민에 빠졌다. 아는 곳에 정략혼으로 내밀어 보내 버리려고 했는데 이런 꼼수 계약을 내세울 줄은 몰랐다.

    ‘눈치 하나는 빠르군.’

    거기다가 신전 공증은 지키지 않으면 신벌을 받기 때문에 꼭 이행해야 한다.

    “흠.”

    고민하는 공작을 바라보던 메이아는 올곧은 눈으로 말했다.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그 정도 아량은 베풀어 주실 거죠?”

    지금은 메릴을 황태자비로 세우는 게 루만에겐 중요했다.

    “두 가지 부탁을 동시에 들어주시면 됩니다.”

    고민하는 루만의 모습에 메이아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자유 결혼서에 이렇게 한 가지를 넣을게요.”

    루만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카르펜 제국의 어떠한 남성과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하츠벨루아의 메이아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시킨다.”

    루만은 메이아의 말을 곰곰이 듣고 생각했다. 나쁜 조건은 아니지만, 비싼 지참금을 못 받을 생각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결혼서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메이아가 마탑으로 떠나 준다는 건 매우 좋다.

    10년간 약혼 관계를 유지한 메이아와 파츠래리다. 아무리 파혼을 하더라도 파츠래리가 뒤늦게 메이아를 다시 원한다고 한다면 골치 아플 수 있다.

    메이아가 만에 하나 타 제국의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면 영원히 메릴의 자리를 넘볼 수 없을 게 아닌가!

    “그래.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그리하마.”

    루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메이아는 자신의 마법 이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계약서 두 장을 꺼내 뭔가를 적어 넣은 후, 루만 앞에 내밀었다.

    “여기다 사인해 주세요.”

    얼떨결에 계약서를 받아 읽기 시작한 루만은 적힌 내용들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메이아 하츠벨루아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을 시, 결혼서에 가주의 인장을 찍어 준다.

    원하는 날짜에 결혼식을 올리게 한다.

    메이아 하츠벨루아는 카르펜 제국의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다.

    이 계약서는 신전에 공증을 올리고 5년만 유효하다.]

    계약서를 읽고 내려놓은 루만은 한숨이 나왔다.

    “지키지 않으면 신벌을 받겠구나.”

    “이 계약을 이행하면 아무 문제 없으십니다. 또한 계약서는 5년만 유효합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좀 생각을 해 보면 안 되겠느냐.”

    루만의 말에 메이아는 메릴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마탑에 가지 않고 제가 계속 이 집에 머물면서 황태자 전하의 마음을 흔들어 놔도 괜찮으시겠어요? 저와 전하는 10년의 약혼 기간만큼 쌓인 정이 있어요.”

    메이아의 말에 메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루만을 다그쳤다.

    “아빠, 메이아가 마탑 간다잖아. 간다고 할 때 보내 줘. 그래야 나랑 황태자님이랑 오붓하게 정을 쌓지!”

    메릴의 말을 듣고 루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더 확실해졌다. 황실은 날 버렸다는 걸.

    “그래…….”

    “고마워요. 사랑하는 조카를 위한 훌륭한 결정이십니다. 행복해지겠습니다.”

    공작이 계약서 위에 사인을 한 뒤에 인장을 찍었다.

    메이아 또한 그 위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계약서 한 장을 루만에게 건네주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로써 파혼되더라도 자신에게는 공작의 손 위에서 정략혼을 안 맺어도 되는 방패가 생긴 셈이다.

    어차피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5년이면 마탑에서 힘을 쌓아 올리고 충분히 하츠벨루아 공작 자리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시간도 번 것이다.

    *

    파츠래리는 오로지 자신 앞에 쌓인 업무를 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메릴 공녀가 데미안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나아.”

    “황태자 전하!”

    “더는 말하지 마. 어차피 정략혼이야. 약혼녀가 누가 되든 어차피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힘만 있으면 되는 거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메이아 공녀께서는 사교계의 꽃이고 이미 예비 황태자비로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전하 곁을 지켜 주신 분입니다.”

    “그깟 사교계 꽃이 내가 황태자 자리 지키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고……. 됐어. 어차피 같은 공녀인데 누가 되든 나에게 힘만 실어 주면 되지. 메이아의 사촌 언니이니 그녀보다 더 잘 보필해 주겠지.”

    파츠래리는 간단히 생각했다.

    보좌관 앤디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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