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푸링은 자신의 로브 소매에서 브로치 하나를 꺼내 메이아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무엇인가요? 스승님.”
“텔레포트 타는 것과 마탑 1층 이상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는 브로치입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마탑 1층 이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법사 등록증 내지는 대마법사의 브로치가 필요했다.
“언제든지 마탑으로 와 주십시오. 오신다면 이 늙은 스승은 기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메이아는 생각했다.
‘만에 하나 파혼이 된다면. 마탑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 같아.’
“조심히 돌아가세요, 스승님.”
*
올리비아의 티 파티 참석을 위해 아름답게 꾸민 메이아는 페르젠 후작가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멈추고 마부가 노크했다.
똑똑.
“공녀님, 페르젠 후작가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응.”
조심스럽게 열린 마차 문 사이로 화려한 은빛 드레스가 비쳤다. 마차에서 내려온 메이아는 한 마리의 우아한 고양이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하츠벨루아 공녀님.”
페르젠 후작가의 집사가 앞장서 나와 메이아에게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집사.”
“예,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하츠벨루아 공녀님, 티 파티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집사가 안내해 준 곳은 아름다운 유리 온실이었다.
페르젠 후작가의 집사는 유리 온실의 문을 열었다. 온실 안에는 싱그러운 초록색 잎이 가득한 나무들 때문에 꼭 숲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하츠벨루아 공작가의 메이아 공녀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시종이 메이아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온실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 외쳤다.
메이아보다 먼저 도착한 영애들은 그녀가 왔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동안 칩거 아닌 칩거를 한 메이아를 모두 보고 싶어 했던 차라 그녀의 방문에 모두 미소를 지으며 환하게 메이아를 맞이했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받은 메이아가 자리에 앉자 다른 영애들도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메이아 님!”
쓸데없이 높아진 말투에 호들갑이 깃든 톤의 주인공.
“올리비아 영애.”
메이아는 있는 힘껏 온화한 미소를 짓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올리비아 영애, 오래간만이에요.”
“메이아 님, 괜찮으세요?”
다짜고짜 괜찮냐고 말하는 올리비아의 표정을 보니 굉장히 선을 넘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무엇이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안 좋은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겪으셔서 걱정했습니다.”
“걱정 고맙습니다, 올리비아 영애. 저는 괜찮습니다.”
힘겹게 미소 짓는 메이아에게 올리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문 들었습니다.”
여기서 소문이란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의 죽음과 시신 없는 장례식 그리고 ‘파혼’이 주제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메릴이 돌아다니면서 메이아 대신 자신이 황태자의 약혼녀가 될지 모른다고 티라는 티는 다 내고 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무조건 메릴의 말을 믿지 않았다. 메이아는 이 소문을 이용할 생각에 더 소문이 퍼지라고 방에서 칩거했다.
그리고 마침 올리비아에게 티 파티 초대장이 왔다.
“올리비아 영애, 무슨 소문이요?”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메이아를 바라본 올리비아는 살짝 미간을 구겼다 풀었다.
소문을 들었다고 말하면 메이아가 불편한 기색을 보일 것 같았는데,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고 웃으며 화답해 반대로 당황해 버렸다.
“공녀님, 나중에 이야기해요. 호호, 다들 온 것 같네요.”
메이아가 또 질문할지도 몰라 올리비아는 자리를 떠났다.
메이아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살짝 웃었다.
자리에 앉은 영애들은 올리비아의 티 파티 콘셉트 설명을 간단히 들었다.
설명을 마치자 테이블 위에는 홍차와 샌드위치가 나왔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메이아 님의 은빛 드레스는 정말 우아하네요. 원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색상 계열이라면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잘 어울리세요.”
“은하수 같아요.”
“달빛 같아요.”
저마다 그녀를 향한 동경 어린 칭찬에 메이아는 우쭐해질 만도 하지만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고 눈매를 곱게 휘며 예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칭찬 고마워요.”
올리비아는 메이아가 칭찬받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을 노릇이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며 처연한 표정으로 메이아에게 말을 걸었다.
“마음이 심란하실 땐 얼마든지 절 찾아 주세요, 메이아 공녀님.”
그 말에 메이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심란할 때라…… 제가 꼭 심란할 때가 또 있을 거라는 말로 들립니다, 올리비아 영애.”
메이아는 올리비아의 입에서 파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메릴이 퍼뜨린 파혼 소문을 올리비아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올리비아 또한 입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말해, 빨리. 말해 줘, 올리비아 영애. 그래야 나도 편하게 말할 테니깐.’
메이아는 속마음을 숨긴 채 올리비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마음이 계속 안 좋으실 것 같으셔서……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그 말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면 될 일이다.
“언제까지 부모님의 죽음으로 슬퍼할 수 없지요. 곧 성인식을 올리고 황태자비가 됩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 하는 입장입니다. 부모님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저는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 말에 주위에 있던 영애들은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귀족의 모범이세요.”
“남자셨더라면 난 반했을 거야.”
“저라면 슬퍼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방 안에만 있었을 거예요. 메이아 공녀님만큼 황후 자리에 어울리는 분도 없을 거예요.”
계속되는 메이아를 향한 칭찬에 올리비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메이아가 기다린 메릴이 퍼뜨린 소문 이야기를 했다.
“제가 듣기론 약혼녀 자리가 공녀님 대신 메릴 공녀님으로 바뀐다 들었습니다.”
올리비아의 말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영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암암리 퍼진 소문을 아예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귀족 영애답지 않은 소양이다.
메이아는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
“올리비아 후작 영애……, 지금 하신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으십니까?”
메이아는 도도하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귀족이란 응당 자신이 한 말에 책임져야 합니다.”
“그…… 그런 소문이 실제로…….”
올리비아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소문에 흔들리다니…… 올리비아 영애는 그럴 분이 아니시잖아요.”
올리비아는 속으로 후회하며 변명을 이어 나가려고 했으나 메이아의 말이 더 빨랐다.
“설마…… 삼촌께서 부모를 잃은 지 얼마 안 되고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조카에게 약혼녀 자리를 자기 딸에게 양보하라 말할까요? 삼촌이 절 얼마나 아끼시는데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에요. 하물며 황태자 전하와 10년의 약혼 기간 내내 함께했는데 황실에서 파혼을 원하실까요?”
그 말에 올리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영애들도 메이아의 말에 수긍했다.
“맞아요. 황가 분들은 메이아 공녀님을 매우 아끼시잖아요.”
“황태자님도 그렇고요.”
“10년의 세월은 절대 무시할 수 없죠…….”
메이아는 자신의 찻잔을 들고 다시 한 모금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헛소문인 게 더 확실하네요.”
“당연하죠. 10년을 함께한 공녀님하고 파혼? 헛소문이 분명해요.”
“호호, 왜 그런 소문이 났을까요?”
사람들은 메릴이 말하고 다니는 걸 알고 있지만 메이아의 말에 수긍했다. 메릴의 말보다 메이아의 말이 더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비아의 분해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저래서 무슨 황후를 하겠다고. 자기 감정도 하나 컨트롤 못 하면서.’
탁.
찻잔을 다시 내려놓은 메이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전 이만 가 봐야 하겠군요. 다들 오래간만에 만나서 즐거웠어요. 곧 공작저에서 티 파티를 열 예정이니 놀러 오세요.”
“네! 꼭 초대장 보내 주세요.”
“저도요!”
메이아는 그저 싱그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났고, 다른 귀족 영애들 또한 따라 일어서서 메이아에게 인사했다.
유리 온실을 나간 메이아를 확인한 영애들은 소문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파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런데 메릴 공녀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글쎄요?”
“전혀 파혼할 분위기가 아닌데요?”
“하지만 가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되잖아요. 지금 현재 가주는 메릴 공녀의 아버지이신 루만 공작님이시고요.”
“설마 메이아 공녀님께 약혼녀 자리를 메릴 공녀님에게 양보하라 할까요?”
메이아가 앞으로 황후가 될 귀한 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떠한 소문이 돌지언정 이미 선대에서 맺은 약혼을 번복한다는 것은 현재 벨루아 공작의 야망이 엿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자칫 정치 싸움에서 공격받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안 된 조카의 자리를 가주로서 빼앗아 간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일이었다.
“네.”
“파혼은 하지 않겠죠…….”
“할 리가 없죠.”
“아무튼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힘들어하실 줄 알았는데, 잘 극복해 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황가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말하는 것은 사교계의 꽃으로서 노력한 메이아를 무시하는 일이며, 그동안 보여 줬던 행동은 황가의 연기로 보일 것이다.
파혼하는 즉시, 신뢰를 잃는 황실.
파혼하는 즉시, 민심을 잃는 파츠래리.
메이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약혼 유지가 된다면 별일 없겠지만 파혼을 하게 된다면 사교계 소문이 꽤 재미있어질 것 같은데?’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메이아는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