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녀의 부모님이 타고 있었던 마차가 산사태로 휩쓸려 깊은 골짜기에 떨어졌다.
처음에는 실종으로 보고받았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에서 하나둘 시신이 발견되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부모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다들 그녀의 부모님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 말했다.
<그 높은 데서 떠밀려서 떨어지셨는데…… 살아 계실 리가…….>
메이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 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도 결국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깊은 골짜기와 거센 물살 때문에 시신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붙잡을 수 없는 흐르는 시간 속에 허무함은 깊어지고, 가슴의 답답함은 커져 가기만 했다.
<메이, 반짝인다고 무조건 보석이라는 법은 없단다. 진흙에 파묻힌 보석을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된단다.>
황후가 되는 날을 위해 덕목을 가르치며 딸로서 부족함 없이 기르셨다. 덕분에 메이아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사교계의 꽃이자 미래의 황후로서 대우받았다.
그런데 부모님은 메이아가 황후가 되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부모님이 사라진 날 이후부터 메이아는 모든 걸 멈춰 버렸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메이아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뭐 가지고 싶은 건 없니?>
<없습니다.>
<다녀오마.>
조심히 다녀오시라고 말할걸. 아니면 아무 데도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걸.
한 번만 안아 드릴걸.
존경한다고 말할걸.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럴걸. 그랬으면 좋았을걸.
난 그러지 못했어.
수많은 생각과 꺼내지 않았던 말들이 머릿속에 물밀듯이 몰려왔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수십 번 되새기며 괴로워했다.
메이아는 자신의 방 안의 커다란 창문틀에 앉아 멍하게 밖을 바라봤다.
창밖을 보던 메이아의 공허한 시선은 점점 허공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깜박이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메이, 함부로 눈물을 보이는 건 남에게 약점을 보이는 짓이란다.>
<네, 아버지.>
<그렇지만 메이.>
<네?>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는 혼자 조용히 울어도 괜찮단다.>
“흐읍.”
눈물은 그녀의 눈가를 한참 동안 젖게 했다.
마음속에 겹겹이 쌓여 가는 허무함과 슬픔, 그리고 혼자 남겨졌다는 괴로움이 뒤섞여 참았던 감정이 눈물과 함께 치밀어 올랐다.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입을 틀어막아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가슴을 아플 정도로 계속 때려도 외면하려고 했던 슬픔은 계속 터져 나왔다.
<아직 희망을 가져 보세요.>
<곧 시신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살아 계실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위로했다.
약혼자인 파츠래리도 똑같이 말했다.
위로를 받더라도 현실은 알고 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머릿속에는 온통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뿐이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마음 또한 텅 비었다.
텅 빈 상실감을 잠시나마 채우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끊임없이 되새김했다.
<우리 메이, 너무너무 잘해. 기특해.>
<역시 우리 딸.>
<최고의 황후마마가 될 거야.>
그러나 텅 빈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회상할수록 더 큰 상실감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했다. 조금씩 부모님의 부재를 느꼈다.
가신들은 공작의 부재를 걱정하며 삼촌인 루만이 공작위를 이어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메이아가 성인식을 치른 성인이었다면 공작위는 그녀가 이어받게 되지만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미성년자였다.
비어 있는 하츠벨루아 공작직은 제국법에 따라 직계 가족인 삼촌이 이어받게 되었다.
시골에 있던 그는 하루 만에 카르펜 제국의 하츠벨루아 공작이 되었다.
그녀의 사촌 언니도 자연스럽게 공녀가 되었다.
루만은 깊은 골짜기로 마차가 휩쓸려 떨어졌기 때문에 부모님의 시신을 찾는 것이 어렵다며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른다 말했다.
“어떻게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른단 말입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러실 수 없습니다! 삼촌, 제발 시신만 찾게 해 주세요…….”
어쩔 수 없다는 루만의 반복적인 말만 들었다.
“그 깊은 골짜기에 떨어졌다면 살아 있을 가망은 없다.”
결국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메이아는 다시 방 안의 창틀에 앉았다.
“아가씨 수프라도 드셔 주세요.”
“유디…….”
어릴 때부터 곁을 지키던 유모 유디는 나날이 말라 가는 메이아의 모습에 마음 아파했다.
공작 부부의 죽음은 충격적이었지만 유디는 슬퍼만 할 수 없었다. 메이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디는 메이아 곁을 지키며 혹시라도 그녀가 잘못될까 걱정했다.
“성인식 올리시고, 국혼도 올리셔야죠. 데이빗 님과 바이올렛 님이 남겨 주신 자리에 올라가셔야죠.”
“유디 말이 맞아.”
부모님이 날 위해 만들어 준 자리.
“그러니 수프 한 입만 드셔 주세요.”
“……응.”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수프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수프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눈물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되었다.
유디는 손수건을 꺼내 메이아 볼에 흐르는 눈물을 꾹꾹 눌렀다.
“수프 다시 떠올게요.”
“아니야. 맛있어. 유디.”
그렇게 하루하루 슬픔을 이겨 내는 척을 하며 메이아는 성인식을 기다렸다.
국혼을 올리고 황궁에 들어가는 일만 생각했다.
놓았던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메이아에게는 쉽지 않았다.
*
루만은 집무실 위 서류들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메릴이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에게 마음이 있다더구나.”
메이아는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꽉 쥐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다. 들끓어 오르는 격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속으로 한숨을 삼켜 봤지만, 오히려 분노가 더 커져 버렸다.
“그렇지만 메릴이 첫눈에 반했다고…….”
쾅.
메이아는 온 힘을 실은 한쪽 발을 들어 쿵, 하고 바닥을 내려쳤다. 살짝 발목이 뒤틀려 아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제게 남겨 주신 자리입니다.”
황태자비가 되기 위해 태어났을 때부터 부단히 노력해 왔다.
성인식을 치르고 바로 국혼을 준비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메릴이 파츠래리에게 첫눈에 반했으니 파혼을 해 달라는 말에 분노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되는가.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로 파혼해야 할 이유는 없다.
메이아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황가와 직접 맺은 정략혼입니다. 그렇게 쉽게 파혼하자고 해서 파혼되는 게 아닙니다. 황가에서 파혼을 받아 주지 않을 겁니다.”
“받아 준다면?”
루만의 ‘받아 준다면’이란 말 한마디에 자신을 예뻐하는 황궁의 어른들을 의심했다.
의심하는 자신에게 순간 실망감을 느꼈다.
한 번 이러한 의심이 생기면 그동안 쌓아 올린 신뢰가 조금씩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0년의 약혼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사교계의 꽃으로, 그리고 황궁의 경조사 일까지 맡으며 공녀로서 책임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난 그분들을 믿는다.
루만은 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황가는 어차피 공작가 누구와 결혼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단다.”
“예상일 뿐인 거지,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께서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정략혼이지 않느냐.”
“차라리 메릴 언니에게 황후 자리를 주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삼촌은 파혼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된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을 누군가 거칠게 두들겼다.
쿵쿵.
“아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사촌 언니 메릴이었다. 루만의 말과 다르게 상사병에 걸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파츠래리 님 완전 내 이상형이야!”
메릴은 들어오자마자 메이아에게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메이아, 파혼해 주면 안 될까?”
메릴은 붉게 물든 볼로 수줍게 말했다.
“넌 황태자 전하를 사랑하지 않잖아. 난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어.”
“사랑이 아니더라도 10년의 신뢰가 있어.”
그래, 사랑은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몇 년 동안 쌓아 올린 신뢰라는 것이 존재한다.
매정하게 배신할 사람이 아닐 거라 믿는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나한테도 황태자비로서 준비한 세월이 있어.”
“무슨 준비?”
“사교술, 정치학. 필요하면 군사론과 수학이나 기본적인 것 이외 많은 걸 배웠어.”
“그런 거 배워야 해, 꼭? 어차피 후계만 잘 낳아 주면 되지 않아?”
“난 파혼 못 해.”
메이아는 훌쩍이기 시작한 메릴을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파혼은 황실에서 안 해 줄 거야.”
난 믿는다.
“황실에서 파혼하면 해 줄 거야? 파혼?”
함께한 신뢰를 믿는다.
“파혼을 입에 올리시지 않을 거야.”
“……사랑해 주지 않을 거면 전하를 놔 줘.”
“누가 보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연인 사이를 괴롭히는 악녀 같네.”
메릴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눈동자에 촉촉한 물기가 보였다.
“울지 마.”
“너무 못되게 말하는 거 알아? 왜 이리 정이 없니……? 난 황태자 전하를 사랑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메릴에게서 시선을 뗀 메이아는 루만을 올곧게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말하거라.”
메이아는 메릴을 보며 말했다.
“우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몸을 틀어 나가려는 메이아에게 루만은 다급히 외쳤다.
“황가에서 메릴을 더 원할 수도 있어!”
난 그분들을 믿는다. 신뢰한다.
하지만, 현재 하츠벨루아 공작은 루만이다. 당연히 그의 입장에선 조카보다는 친딸인 메릴이 황후가 되는 걸 원한다는 것쯤은 예상했다.
메이아는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며 분노를 억누른 채 말했다.
“만에 하나 황가 측에서 약혼녀를 바꿔도 괜찮다고 말한다면 바꾸세요.”
메릴은 메이아의 말에 눈물을 멈추고 기쁜 표정을 지으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고마워, 메이아.”
메릴은 파혼이 확실하게 정해진 것처럼 굴며 눈물을 닦고 기뻐했다.
“황태자 전하도 나한테 반했다면 믿을래?”
“사랑만으로 살 수 없는 세계야.”
“아니, 사랑은 세상도 구한다는 말도 몰라?”
“황태자비가 되고 황후가 되는 자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야, 언니.”
“아무튼 약혼녀 자리 양보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