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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100화 (100/100)
  • 100화. 에필로그 2-2

    “하오나 저를 부르러 온 분이.”

    “착각한 거다. 그만 가 봐라.”

    카시스는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의사의 말을 잘라 냈다.

    “예, 예.”

    카시스의 서슬 퍼런 기색에 사색이 된 의원이 방을 나가자, 카시스가 나지막히 미카엘을 불렀다.

    “미카엘, 저자가 입을 함부로 놀리는지 감시자를 붙여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하면 없애.”

    “예, 알겠습니다.”

    카시스의 명을 받은 미카엘이 나가자 아일라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의원이 가던데. 뭐라고 해요? 아리엘 정말 괜찮다고 하나요?”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다.”

    아리엘이 정말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던 아일라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아, 다행이에요. 왜 나까지 잠이 들어서는.”

    아일라는 아리엘을 아직도 훌쩍이는 아리엘을 품에 꼭 안아 들었다.

    “부인 탓이 아닙니다.”

    “아니요, 제 탓이에요. 제가 잠드는 바람에 생긴 일이에요.”

    “하아, 아리엘.”

    카시스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아리엘은 눈물 어린 눈을 카시스를 봤다가 흠칫 놀랐다. 아리엘은 처음으로 카시스가 화난 얼굴을 마주했다.

    “히끅!”

    “위험하게 호수 가까이 가면 어찌 하느냐? 위험하니 물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했거늘.”

    “아리엘도 놀랐을 텐데. 왜 화를 내요.”

    지금 카시스가 아리엘에게 화를 내는 거야? 이런 적 없었는데.

    “언제는 제가 아리엘에게 무르다 하지 않았습니까? 위험한 행동을 했으니 혼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게 달려들어 들이받는 것은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 그런 건 얼마든지 제가 조심해서 어린 딸이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었으니까. 아까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제 딸이 제게 달려와 들이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저는 그 정도로 다치는 일이 없기에 아리엘이 다치지 않게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것과 위험하게 호수 가까이 가서 놀다 위험해지는 것은 별개였다.

    이번에 제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니, 만일 아리엘이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더라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아리엘은 그와 아일라 사이에서 태어난 소중한 아이였다.

    “그건 그렇지만. 지금 아리엘이 아직 진정이 안 됐잖아요.”

    “우우- 우와아앙-!!”

    “그래, 괜찮아. 그만 울자 응.”

    아일라가 아리엘을 달랬다. 카시스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눈을 뗀 제 잘못도 있다는 것을. 아리엘이 만약 아일라의 피를 물려받지 못해서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면 그 잠깐 사이에 아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파아, 마아. 훌쩍! 아리가 짜모해쪄요.”

    “잘못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이냐?”

    “혼내는 건 아리엘이 진정된 후에 해도 되잖아요.”

    카시스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화가 나 굳은 카시스의 표정과 목소리에 아일라가 아리엘을 안고 있지 않은 손으로 그를 붙잡으며 타일렀다.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 알겠느냐?”

    “우웅. 녜.”

    “알았으면 됐다. 아빠,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카시스는 아일라와 아리엘을 함께 끌어안았다. 그도 아리엘이 호수에 빠진 것을 알고 제 어린 딸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싶어 사색이 됐었다. 하지만 놀란 아일라 앞에서 저마저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됐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 * *

    나들이를 갔다가 아리엘이 호수에 빠진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후, 카시스와 아일라는 아리엘을 데리고 메르바 항구 마을의 해안가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레스가 먼저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드가 어머니께 착실히 연락해 드리나 봐요.”

    “내가 너를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연락을 하는 거란다.”

    아일라가 뒤를 힐끗 보며 말하자 세레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아일라가 세레스를 끌어안았고 세레스가 그녀를 마주 안았다.

    “큰일이 있었다지.”

    “제이드가 그런 것까지 말했나요?”

    아일라는 세레스가 말하는 큰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에 되물었다.

    “그래서 아이는 괜찮고?”

    “네, 아리엘도 마린족의 피를 물려받기는 했나 봐요.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을 보면요.”

    “저 아이가 물속에서 숨을 쉬었니.”

    “네. 시스가 아일라를 구하러 호수에 들어갔다가 아리엘이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을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별문제 없었어요.”

    “그것 다행이구나.”

    세레스가 카시스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아리엘은 카시스의 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 엄마와 닮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세레스가 저를 보자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리엘, 네 외조모님이시다.”

    “할무니?”

    “그래, 네 외할머님이시다.”

    카시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아리엘에게 가 보란 듯이 내려놓았지만 아리엘은 쭈빗쭈빗하고 눈치를 보다 카시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카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아리엘의 등을 살짝 밀어 줬다. 그러자 아리엘은 세레스를 부르며 달려가 그녀에게 안겼다.

    “할무니!”

    “그래, 네가 아리엘이로구나. 정말 어여쁜 아이구나. 네 엄마 어릴 적 모습을 닮았어.”

    “쩌마요? 쩌마 마마와 담아써요.”

    “그렇고 말고.”

    “저, 어머니. 아버지는요?”

    아리엘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쓰다듬어 주는 세레스에게 아일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세레스는 뒤를 힐끗 보며 눈짓했고, 아일라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위 위에 아슐레이가 등을 돌리고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그래도 와 주셨네요. 계속 오시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니? 아리엘에게 일이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 네 아버지가 많이 걱정했는데.”

    “네, 정말요?”

    아버지가 아리엘을 걱정해 주셨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아일라는 멀리서 등을 돌리고 있는 아슐레이를 바라봤다.

    “네게 화난 것은 이미 오래전에 풀렸단다. 네게 모진 말을 한 것이 미안해하면서도 네 남편을 이제는 인정해 줘야 하는데 그것이 싫어서 저리 고집을 부리는게야.”

    “정말요?”

    “그렇고 말고.”

    “아버지도 참.”

    그렇게 말하며 웃던 세레스가 아리엘의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아슐레이를 향해 달려갔다. 아일라가 그렇게 뛰면 넘어진다고 소리쳤지만 아리엘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아리엘에게 뭐라고 하신 거예요?”

    “가만히 보고 있으렴. 손녀가 어리광을 부리면 풀어질 게야.”

    “네?”

    아일라가 되묻고는 아슐레이에게로 향하는 아리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할부지!”

    “-!!?”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란 아슐레이가 뒤돌아 밑을 바라봤다.

    “아리, 꼬개 아파요. 따리도 아파요.”

    어린 아리엘은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있는 성인을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뒤로 한참 꺾여 있었다.

    “아나 주세요. 할부지가 아리 아나 주면 조케써요.”

    양팔까지 들어 올리며 말하는 아리엘의 모습에 당황한 아슐레이가 세레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세레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어서 손녀를 안아 주지 않고 뭐 하고 있냐는 눈빛에 적지 않게 당황한 아슐레이가 바위에서 내려와 아리엘의 앞에 섰다. 그러자 아리엘이 아슐레이의 한쪽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올려다보고 웃으며 얼굴을 비볐다.

    “아리 할부지가 아나 주면 조케써요.”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슐레이가 아리엘을 안아 들었다.

    “할부지!”

    그러자 아리엘이 밝게 아슐레이를 부르며 끌어안았다. 제 품에 안겨서 얼굴을 비비는 아리엘을 내려다보던 아슐레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세레스와 아일라에게로 다가왔다.

    “손녀가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는데 계속 그렇게 고집을 피울 건가요? 계속 아일라와 아리엘을 안 보고 살 거예요?”

    “아버지.”

    “아픈 곳은 없는 것이냐?”

    “네, 저는 언제나 건강해요.”

    “아리엘은.”

    “아리도 아픈 곳 업떠요!”

    아슐레이의 물음에 아리엘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아리엘의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지은 아슐레이의 시선이 카시스에게로 향했다. 카시스와 눈이 마주치자 눈살을 찌푸린 아슐레이가 아일라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잘 지낸 것을 보니 네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구나. 혼인 다시 하거라.”

    “아버지?”

    “부모도 참석하지 않은 혼인은 진짜가 아니다.”

    “아버지.”

    “그러니 제대로 다시 해라.”

    “고마워요, 아버지!”

    아일라의 눈이 붉어졌다. 그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오더니 아슐레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마 우러?”

    “이건 기뻐서 우는 거야.”

    아일라는 정말 기뻤다. 아버지가 카시스를 인정해 준 것 같아서. 아리엘을 손녀로 받아 준 것이 정말 기뻤다.

    “기쁜데 왜 우러?”

    아리엘은 기쁜데 운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세 살인 딸 아리엘이 있었지만 아슐레이의 말에 4년 만에 카시스와 아일라의 혼인식이 다시 준비되었다. 이번에는 바다 한가운데의 배 위에서 아슐레이와 세레스가 참석한 카시스와 아일라의 두 번째 혼인식이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리엘이 칼리스토 대공이자 마린족의 여왕이 되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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